개신교는 근대화의 장애물이냐 촉진제냐

류재광 기자  jgryoo@chtoday.co.kr   |  

이주영 교수 “긍정적 영향 부정할 수 없다”

				▲건대 사학과 이주영 명예교수가 한국 근현대사에서의 개신교 역할과 관련, 민감한 화두를 꺼내들었다. ⓒ류재광 기자
▲건대 사학과 이주영 명예교수가 한국 근현대사에서의 개신교 역할과 관련, 민감한 화두를 꺼내들었다. ⓒ류재광 기자

“오래 전에 작고한 프린스턴대학의 서양사 교수인 로버트 파머는 ‘어떤 사회의 근대화란 일차적으로 종교로부터 벗어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종교는 흔히 개인의 이익보다는 전체의 공동선을 강조하기 때문에 종교와 관련된 이론이나 제도와 관습은 개인의 자유와 자기 실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개신교는 근대화의 문제와 관련하여 어떠한 위치에 있는가.”

건국대학교 사학과 이주영 명예교수가 개신교가 서양 및 한국의 근대화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가를 밝히며 앞으로 한국 개신교가 나아가야 할 지향점을 제시했다. 이 교수는 26일 영익기념강좌에서 ‘개신교가 서양의 근대화와 개신교, 그리고 그 한국적 파장’이라는 주제로 발제하며 이같은 담론을 펼쳤다. 이날 이 교수의 주장은 개신교가 근대화의 장애물이었느냐 혹은 촉진제였느냐 하는 논란을 낳을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근대화 핵심요소인 ‘개인주의’, 개혁신앙과 일맥상통

이 교수는 결론적으로 문명화, 또는 국가 발전에 개신교가 기여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특히 대한민국이 개신교 성장 추세와 국가 발전이 맥락을 같이했다는 점을 들어 “이러한 사실은 순수한 기독교적 입장에서 보면 예수 잘 믿어서 복 받았다는 신앙의 문제로 보이겠지만, 역사가의 입장에서 보면 ‘문명’의 문제로 보이는 것”이라고 했다. 즉, 개신교를 받아들이는 과정이 서양의 선진 문명을 받아들이는 과정과 상당히 일치했다는 것. 이주영 교수는 “개신교가 대한민국의 발전을 가져왔다고 단정하는 것은 지나친 일이지만, 적어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개화파, 친일 비난 받았지만 결과적으로 국가발전에 기여

이주영 교수는 근대화의 핵심적 요소로 ‘개인주의’를 지목하고, 이것이 개신교의 기본 정신과 상통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개인주의가 자유시장과 자유선거를 낳으면서 경제와 사회 발전을 견인했는데, 이것이 ‘만인사제론’을 주창하며 개개인의 신앙을 중요시한 개신교와 맞아떨어졌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이어 구한말 외세의 압박에 시달리던 우리 민족이 유길준, 김옥균, 박영효, 서재필, 윤치호와 같은 ‘문명개화파’와 최익현, 이만손, 전봉준과 같은 ‘위정척사파’로 갈라졌다는 사실을 언급한 뒤 개화파의 역할을 높이 평가했다. 이 교수는 “학교, 언론사, 교회를 운영해야 했던 이들 최초의 자유주의자들(개화파)은 일제시대에 일본인 지배자들과 어느 정도 타협할 수밖에 없었고, 그 때문에 친일파라는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으로 문명개화파의 전략은 성공했다”고 말했다.

이주영 교수는 “많은 청년들이 일본인 밑에서 교육자, 기술자, 관료, 군인으로 지식과 경험을 쌓았다”며 “해방 직후부터 5년의 짧은 기간에 사회질서를 회복하고, 또 6.25 전쟁의 파괴 속에서도 경제 발전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은 일제시대에 훈련받은 인재들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이승만 대통령 주도의 해양문명권 편입, ‘문명사적 혁명’

이 교수는 대한민국이 이승만 대통령의 주도 의해 해양문명권에 편입된 사건을 ‘문명사적 혁명’이라며 추켜세우고, 이 큰 변화에 적응하는 데 있어서도 개신교의 역할이 중요하게 작용했다고 말했다. 그는 “만일 대한민국이 반공국가가 아닌 좌우합작 국가로 출발했다면, 대륙문명권과 해양문명권 양쪽을 기웃거리는 허약한 나라가 되었든가 아니면 대륙문명권으로 완전히 돌아갔을 것”이라며 “결국 대한민국은 (개신교의 적극적 역할로) 해양문명에 적응하는 데 성공했고, 그 결과로 자유와 번영의 열매를 얻었다. 그러나 새로운 해양문명에 적응해 볼 기회가 없었던 인민공화국 국민은 압제와 빈곤의 국가적 재앙을 만나야 했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주영 교수는 지난 1세기 동안 한국의 역사에서 개신교와 문명 개화의 연결 고리가 가장 확실하게 드러난 대표적 인물로 윤치호와 이승만을 꼽았다. 그는 윤치호에 대해서는 “서구 문명을 여러 차례 접하면서 문명사회는 곧 민주사회와 기독교 사회라는 점을 알게 됐고, 조선이 주권을 잃자 기독교 교육을 통한 개인의 경제적·정신적 자립을 운동의 방향으로 설정했다”고 평했다.

이승만의 경우 대한민국을 미국의 해양문명권에 굳게 묶어 놓으려 노력한 점을 칭찬했다. 이주영 교수는 “이승만 전 대통령은 통치 기간에 모두 135명의 장관과 장관급 부서장을 임명했는데, 그 가운데 기독교인은 절반에 가까운 47.7%였다. 그리고 군대와 감옥에 기독교를 보급하기 위해 군목제도와 형목제도를 도입했다”고 말했다. 또 사회 전반의 미성숙으로 실패로 끝나기는 했지만, 개인의 평등을 전제로 하는 자유선거제도의 확립에도 많은 노력을 쏟았다고 덧붙였다.

민족적·민중적 영웅 떠오르는 풍토, 개신교엔 위기

마지막으로 이 교수는 최근의 사회적 분위기에 대해 “정약용, 신채호, 김구와 같은 민족적·민중적인 영웅들이 떠오르는 지적 풍토”라며 “개신교 세력에게는 그야말로 심각한 위기”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그는 “문명개화파의 전통을 이어받은 자유주의자들과 개신교도들은 이와 같은 바람에 휩쓸릴 필요가 없다. 어떤 이념, 어떤 체제, 어떤 수단도 개인의 자유와 자기실현이라는 목적보다 더 귀중할 수는 없다. 그러한 의미에서 개인주의 철학에 토대를 둔 자유주의 이념은 인간 사회가 존재하는 한 영원한 가치체계로 남게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 교수는 그러면서 “자유주의 이념은 개신교의 기본 정신과도 상통한다”며 “따라서 개신교는 어떤 상황에서도 종교적 개인주의라는 원래 성격을 유지해야 한다. 그것은 가톨릭과는 물론, 유교, 불교와도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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