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죽어도 좋아> 재심의 결과 제한상영가 결정
지난해 8월 헌법재판소의 영화진흥법 제21조 4항에 명기되었던 "등급보류" 조치가 "사전검열"이라 하여 위헌 판결을 내린지 꼭 1년만에 70대노인 부부의 사랑의 이야기를 다룬 박진표 감독의 영화 <죽어도 좋아>가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의 재심의 결과 "제한상영가" 결정이 내린것에 대해 시민사회와 문화계에서 치열한 찬반양론의 논란이 진행중에 있다.이 영화는 지난달 7월 23일 "18세관람가" 결정을 기대하며 영등위 영화등급분류소위원회에 심의를 요청했으나, 소위원회에서 제한상영가와 18세 관람가 결정을 놓고 표결결과 각각 4대4로 나왔으나, 소위원회 위원장이 제한상영가쪽의 손을 들어줘 "제한상영가"로 결정되었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제작사인 메이필름은 결정에 불복하여 재심의를 요청했고, 재심의때는 영화등급분류소위원회 위원과 본위원 등 15명이 모여 영화를 관람하고 각자의 의견을 2시간여에 걸쳐 발표한 후 표결에 부쳤으나 제한상영가 10, 18세관람가 5라는 큰 표차로 "제한상영가" 결정조치가 내려졌다.
이번에 또다시 영화 <죽어도 좋아>가 영등위로부터 "제한상영가" 결정이 내려지자 영화계 일각에서는 '참담한 심정이다'고 솔직한 심정을 토로하며 이번 결정을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고, 네티즌들과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이번 결정은 부당하다는 목소리를 온라인상에서 드높이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은 '이번결정은 헌법재판소에서 내린 사전검열 위헌조치를 영등위 라는 국가기관에서 복원시킨 것이며, 문화계에대한 잔인한 폭력이다'고 표현할 정도로 분노에 찬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영등위의 이번 조치로 인해 "잘못된 결정이다" 좀더 심한 표현을 빌자면 "똥 오줌도 못가리는 도덕주의자들의 오만불손" 이라는 표현이 절대적 우세를 점위 하고 있는 가운데, 언론이나 온라인상에서 의도적으로 보도하지 않고 있는 몇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사항이 분명히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번 영등위의 결정을 놓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전근대적인 조치, 또는 '국민의 볼권리 박탈'이라는 표현을 즐겨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이번결정에 찬성의견을 내비치는 개인이나 단체는 '검열주의자' 또는 '박물관에 가 있어야 할 사람'라고 매도하고 있다. 그런데, '표현의 자유'를 침해당해서 기분좋아할 사람이 우리나라 사람가운데 누가 있겠는가? 만일 필자의 이글을 놓고 누군가 잘못되고 틀린생각 이라며 직접적인 비난을 가해 온다면 불쾌하기 이를데 없을 것이다.
왜그런가? 필자도 헌법에 명시된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결정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결정이다'고 강하게 주장하는 문화생산자들의 생각을 액면 그대로 받아 들일 수 없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우리나라 헌법이 모든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지만, 이 기본권은 내재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고 무제약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헌법 제 21조 제 1항은 "모든 국민은 언론, 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고 명시되었고, 제2항도 "언론, 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 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고 못박고 있어 '표현의 자유'는 국민의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헌법 제21조 4항은 "언론, 출판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여서는 아니된다"고 명시하고 있어 모든 표현의 자유가 완·전·히 보장되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논란의 소지는 공중도덕과 사회윤리의 기준과 적용범위가 될 것이다.
'완전한 표현의 자유'를 주장 하는자들도 이점의 모호성을 지적하며 완전한 표현의 자유, 즉 '완전한 무삭제 표현물'을 제단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영등위의 결정은 공중도덕과 사회윤리의 기준을 감안하더라도 제대로 내려진 결정이다. 그 이유는 영화<죽어도 좋아>에서 문제시되었던 7분간의 실제정사 장면이나 구강섹스 장면은 영등위의 심의기준을 보더라도 그렇고, 공중도덕과 사회윤리 기준을 감안한다 해도 당연히 "제한상영가" 결정을 내려져야 할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를 만든 감독은 연출 의도상 문제시되는 장면을 집어 넣었고, 그런이유로 삭제할 수 없다고 하였지만, 똑같은 상황을 다르게 표현할 수 도 있었고, 연기자들의 연출이 아닌 실제정사 장면이나 구강섹스 장면을 아무런 여과없이 담은 것은 사회적 제약을 받아야 마땅한 것이다.
선진외국의 사례를 보더라도 이 영화에서 문제시된 장면을 그대로 '일반극장'에서 상영하고 선례는 없다. 영화 <죽어도 좋아>에서처럼 실제정사장면이나 구강섹스장면을 묘사하는 이런류의 영화들은 모두 '제한상영극장'에서 상영되고 있기 때문에 이번 결정이 전근대적인 조치라는 비난을 들을만한 이유는 없는 것이다.
영화업자들이 분노에 찬 목소리로 영화<죽어도 좋아>가 현행 영화진흥법에 의하여 또다시 "제한상영가 조치를 받게되어 아직까지 제한상영관이 전국에 한곳도 없는 우리나라에서는 상영하지 말라는 것 아니냐!"고 항변하는데는 이해가 간다. 수익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극장업자들이 '제한상영관' 오픈을 꺼려하고 있기 때문에 '제한상영가' 조치는 곧 '국내상영불가'인 것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행법으로 제한상영극장을 강제로 만들게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영등위의 결정에 절대불복하며 끝까지 투쟁하겠다는 영화업자들과 일부시민단체들 항변에서 '상업적인 계산을 고려하는 업자들의 속셈'을 읽을 수 있어 왠지 찜찜하다. 정말 <죽어도 좋아>라는 영화에 가위를 댈 수 없고, 영등위의 결정에 굴복할 수 없고,또한 이를 위해 영화인들이 힘을 합쳐 투쟁하기로 결의하기를 굳게 다짐한다면, 영화인들이 펀드를 조성하든가, 아니면 투자회사를 물색하여 '제한상영극장'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일방적인 주장으로 영등위 결정 반대여론을 조성하여 영화를 홍보하려는 전략이야 말로 전근대적인 발상으로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
영등위의 이번 결정은 과거 군사독재 정권이 정치적인 목적으로 문화예술 창작품에 대해 무차별적으로 가위질을 했던 검열의 성격과는 전혀 거리가 먼 조치이다. 영등위가 과거의 공윤처럼 국가의 눈치를 보며 활동하는 단체도 아닐뿐더러, 영등위 구성원 자체가 영화산업계와 영화창작자집단은 물론 시민사회단체의 추천을 받아 위촉받았기 때문에 영등위의 이번 결정이 단지 소수의 도덕주의자들의 횡포라고 주장하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라 할 수 있다.
또한, 헌법재판소의 영화진흥법 제 21조 4항의 '등급보류' 결정이 사전검열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는 이유로 위헌판결을 받은 판례를 따지고 보더라도, 영등위의 이번 결정은 영화진흥법의 등급보류 처분이 '제한상영가' 처분으로 대치된 것을 적용한 사례에 불과하기 때문에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뒤집는 초법적인 결정도 아니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사전 검열도 아닌 것이다.
아무쪼록 자신의 의견을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오가며 적극적으로 자유롭게 개진하는 소수의 목소리들이 국민 대다수의 여론인양 크게 부각되고 있는 이때에 지혜로운 분별력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주성진(기윤실 문화소비자운동본부 정책간사, gidohasey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