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베드로는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니라"(벧전2:9)고 선포했다. 만인제사장설의 중요한 근거가 되는 이 말씀은, 말 그대로 제사장의 권세가 특정한 기득권을 가진 이들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는 모든 이들에게 주어진 것이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한국교회에 가장 심각한 문제 중의 하나는 목사와 장로, 집사 등 신도 간의 갈등이다. 설교권, 세례권, 교회 치리권 등을 둘러싼 이들간의 다툼은 교회 내에 분쟁을 일으키는 주요한 원인이 되었다. 이러한 가운데 '주의 종'이라는 절대적 권세를 바탕으로 목회자들은 말씀을 전하고 세례를 주는 권세를 목회자만의 것으로 고착화시켰다.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전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18-19)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지상명령(Great Commission)은 그의 제자된 모든 이에게 주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한 마지막 당부의 말씀을 통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줄 권세는 교회와 목회자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권세요 특권이요, 나아가 명령임을 강조하셨다.
세계에 가장 많은 평신도 선교사를 파송한 4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모 선교단체가 한국교회로부터 칭찬을 받기는 커녕 이단으로 매도당하기도 했던 것은 자기들만의 공동체를 이루어 예배를 드리는 것은 물론, 목회자 안수도 받지 않은 이들, 심지어 대학생들이 강단에서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이유로 인한 것이었다.
물론 교회가 요구하는 전통을 존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초대교회에 대한 성경의 증언은 교회가 건물이 아니라 예수를 그리스도라 칭하는 무리가 모인 공동체이며, 말씀을 전하고 세례를 줄 권세는 그리스도인 누구에게나 주어진 권세였음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초대교회의 사도들의 행적을 기록해 놓은 사도행전은 성령의 역사가 모든 계급과 인종을 초월해서 일어나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오순절의 성령강림역사는 남종과 여종에게도 차별없이 임했으며, 자녀들이 예언하고,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늙은이들은 꿈을 꾸는 놀라운 역사를 만들어 냈음을 성경은 증언하고 있다.(행2:17-18) 또한 아프리카 이디오피아 내시에게 세례를 줌으로 아프리카 선교의 첫 문을 열었던 사람이 빌립이라는 집사였음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예루살렘 교회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유대인들이 안디옥이라는 이방의 대표 교회를 개척하는 데는 성령이 충만했던 집사 스데반의 순교의 피가 있었다. 그는 대제사장과 무리를 앞두고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위대한 설교자의 모습을 선보였다.
중세시대 카톨릭은 당시 성경을 라틴어로만 번역하는 것은 물론 성경을 읽을 수 있는 권한을 사제에게만 부여했다. 이로 인해 거의 1600년이라는 시간 동안 일반 신도들은 성경을 가까이 할 수도 없었다. 이는 남종이나 여종이나 차별없이 임하는 성령의 역사를 가로막는 매우 악한 행위였다. 중세시대가 암흑의 시대가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사제들의 지나친, 그리고 빗나간 교권욕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일부 신학자들은 21세기가 평신도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이는 목회자의 권위가 떨어지고 이로 인해 평신도의 권한이 강화된다는 논리가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향해 제사장적 권위를 회복하는 진정한 만인제사장론이 성취될 것이라는 예언이다. 현재 성경보다 높아진 교회법이 한국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놀라운 성령의 역사를 막지 않도록, 더욱 본질적인 성경의 말씀에 대한 연구가 절실한 때이다.
초대교회는 지역교회의 자율, 교직의 평등, 교회와 교회 사이의 연합을 강조하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기를 힘썼으며, 사도들은 항상 성경을 논리의 기초로 삼으면서 교회를 지도하였다. 이제 한국의 교회와 목회자들은 자신들이 가진 기득권을 내려놓고, 진정으로 사도행전을 통해 사도들이 보여주었던 성서의 전통을 계승하기 위해 힘써야 할 때가 되었다.
노승현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