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큐티] 10월 3주 191장 내가 매일 기쁘게(427장)
-찬송묵상: 내가 주의 큰 복을 받는 비결은 주의 영이 함께 할 때이다
-찬송요약
1절: 지켜주시고 큰 복으로 채워주실 성령님을 믿고 순례자의 길을 기쁘게 떠나자
2절: 평안함을 누리지 못하고 죄악 속에 사는 이들에게 십자가의 공로를 증거하자
3절: 예수 믿고 새사람이 되었으니 참된 평화와 자유함의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자
4절: 세상 모든 정욕과 욕망을 십자가에 못 박고 주님과 함께 은혜의 삶을 살아가자
-찬송가 해설
‘내가 매일 기쁘게’의 찬송은 요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는 말씀을 배경으로 나사렛 교단의 ‘허버트 버펌’(H.Buffum) 목사가 작시하고 ‘생크스’(D.M.Shanks)가 작곡하였다. 허버트 버펌 목사는 미국 일리노이주의 라파엘 태생으로 나사렛 교단의 목사가 된 후 단독으로 전도여행을 하며 찬송시를 쓰기 시작 그 후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찬송시르 ㄹ지었다. 191장 ‘내가 매일 기쁘게’의 찬송은 천국을 향한 순례자의 승리에 찬 삶의 여정을 노래한 것으로 고난 속에서도 주님만 바라보며 신앙으로 기쁨의 생애를 살아간 버펌 목사의 일생을 잘 드러내 주는 동시에 순례자의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도 주의 영이 함께 하시므로 날마다 승리하는 기쁨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축복의 내용이 진솔하게 담겨 있다. 실제로 가사의 내용을 살펴보면 예수 믿기 전 나의 삶은 죄에 빠져 평안함이 없었고, 염려와 불안으로 늘 고통 속에 살아가는 삶이었으며 또 세상 모든 정욕과 욕망으로 인해 어두운 밤을 사는 나그네들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을 영접한 후 복음의 순례자가 된 나의 모습은 주의 팔이 항상 나를 안보하고 지켜주시므로 죄의 사슬은 사라지고 기쁨이 넘치는 삶, 숲의 새와 같이 자유로운 삶, 성령의 내주 함 속에 참된 평화를 누리며 살아가는 은혜의 삶이 되었음을 작사자는 찬송 속에서 간증하고 있다.
-찬송설교
찬송가 1절의 강조점은 순례자의 삶입니다. 기독교의 역사는 믿음으로 집을 떠나 거룩한 생활을 하는 순례자의 생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삶이 그랬으며 신약에 와서는 바울의 삶이 거룩한 나그네의 삶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현대에 들어와서도 성인이라고 불리는 성 안토니, 크리소스톰, 요한 칼빈, 죤 번연, 성 프란치스코 등의 삶이 순례자의 삶이었습니다. 이들은 신앙의 순수성과 거룩성을 지키기 위해 하나밖에 없는 목숨까지 아끼지 아니하였습니다.
이 많은 인물들 중에서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는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갈대아 우르를 떠나 정처없는 나그네의 삶을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은 한번도 아브라함에게 미리 목적지를 밝혀준 적이 없습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보고 따라 나섰듯이 아브라함은 순간순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정처없는 순례자의 길을 떠났습니다. 물론 아브라함도 자신의 욕심과 생각을 따라 자기 멋대로 길을 한두번 행진하였다가 큰 어려움을 당하는 시련도 있었지만 그 이후로는 한번도 주의 길을 어기지 않았습니다. 그런 아브라함을 하나님은 항상 넓으신 주의 팔로 안아주시고 지켜주셔서 넘치는 평강의 길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주님으로부터 큰 복을 받기 위해서는 항상 주의 인도하심과 가르침을 따라 살아가는 순례자의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인간들은 당장 눈앞에 보이는 물질의 소유와 육신의 배부름과 안일만을 위하여 살아가는 것을 봅니다.
그 단적인 예가 마태복음 19장과 마가복음 10장에 나오는 부자 청년의 모습입니다. 부자 청년은 예수님으로부터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고 너는 빈손으로 나를 쫓으라”(마 19:21)는 가르침을 받고서도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다 나누어주면 앞으로 나는 무엇으로 살라는 말인가?”는 근심, 염려와 불안으로 인해 주님을 따르지 못하고 세상길로 떠나고 말았습니다.
이렇듯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서 따뜻하게 먹이시고 입히시며 돌보시는 주님의 팔을 인지하지 못하고 살아가다 보니 당장 눈앞에 닥쳐있는 여러 어려움의 문제들로 시험에 빠져 세상길로 돌아가는 것을 봅니다(마 6:25-34). 돈많은 이병철, 정주영 회장도 죽을 때는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하고 빈손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우리는 세상에 쌓아둔 어떤 보물이 있기에 주님을 기쁨으로 따라나서지 못하고 주춤하며 불안해하고 있는 것입니까. 이러한 사람들을 향하여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마 7:13-14)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길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결코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그 이유는 찬송가 가사와 예레미야 선지자가 말한 것처럼 주의 강한 팔로 그의 백성들을 눈동자 같이 보호하시고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후 낮에는 구름기둥과 밤에는 불기둥의 징조와 기사로 40년 동안을 안전하게 먹이고 인도하사 그 열조에게 맹세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주셨듯이(렘 32:17-23) 눈동자같이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주님의 팔이 순례자의 길을 떠나는 믿음의 사람들을 평안과 형통의 길로 인도해주신다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도 눈앞에 보이는 잠간의 이익과 쾌락과 만족을 위하여 살기보다 하늘의 상급을 기대하며 전도자의 길, 순례자의 길을 기쁨으로 떠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