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즈비언·페미니스트 女교수는 왜 기독교로 회심했나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건강한 목회자와 교회 공동체를 통해 변화하는 한 사람의 이야기

뜻밖의 회심
로자리아 C. 버터필드 | 아바서원 | 296쪽 | 14,000원

“‘회심’이라는 말은 내가 살아계신 하나님과 일대일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겪은 파국적인 결정을 설명하기에는 지나치게 온전하고 세련된 말이다.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이뤄진 나와 하나님과의 조우를 설명하기 위한 단어는 하나밖에 없다. ‘충돌(impact)’이라는 단어다. 수많은 사상자를 남기는 다중추돌의 충격. 나는 이제 하나님께서 내 삶에 부딪쳐 오신 과정을 다시 되살리고자 한다.”

28세에 레즈비언임을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미국에서 매우 유명한 여성학과들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고, 많은 대학들에게서 급진좌파 이념을 고취하기 위해 교직과 행정직을 맡아 달라는 요청을 받고 있었다. 36세의 나이에 이미 큰 대학교에서 종신교수직을 보장받았고, 페미니즘계에서 날로 지명도를 높이고 있었다. 한 기독교 우파 잡지에 예수와 공화당의 정치 논리, 가부장적 삼위일체론을 공격하는 글을 게재해 파란을 일으켰다.

바로 그 때, 하나님께서 그녀를 부르셨다. <뜻밖의 회심>의 주인공, 로자리아 버터필드(Rosaria C. Butterfield)의 이야기이다. 우파 잡지에 쓴 글 때문에 수많은 찬반 편지가 쇄도하던 가운데, 매우 친절한 어투로 질문하는 한 목회자의 편지를 받고 ‘뜻밖의 회심’의 기나긴 여정을 시작하게 된다.

물론 그녀의 회심기는 드라마틱하다. ‘레즈비언 영문학 교수의 충격적인 회심’이라는 슬로건은 강렬하고 기적적인 체험을 떠올리게 하지만, 그녀는 단번에 마음을 돌리지 않았고 그럴 사람도 아니었다. ‘게이와 레즈비언의 삶의 도덕성’이라는 주제로 논문을 쓸 만큼 스스로의 삶에 만족할 뿐 아니라, 자신이 속한 세계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세례를 흠뻑 받은 그녀에게 기독교인들은 반지성적이고 배타적인 존재일 뿐이었다.

그런데도 제목처럼 ‘뜻밖의 회심’이 가능했던 건, 건강한 교회 공동체와 따뜻하고 끈기 있게 그녀를 품었던 한 지역교회 목회자 부부 덕분이었다. 그녀는 앞서 말한 그 목회자의 편지를 몇 차례나 재활용 박스에 던져 버렸다가 다시 집어들기를 반복했고, 결국 그들과 대화하고, 만나고, 그들 가정을 관찰하면서 서서히 마음을 열게 된다.

책이 ‘뜻밖’이었던 건 레즈비언이나 페미니스트 같은 그녀의 수식어들 때문만은 아니었다. 회심 이후, 즉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나서의 삶을 계속 열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공공연한 레즈비언 종신교수’라는 보장된 자리를 자의 반 타의 반 박차야 했고, 한 차례 결혼이 파기됐으며, 결혼 후 한두 차례 입양 실패도 겪었다. 지금은 네 명의 자녀를 홈스쿨링하면서 지역사회를 돌보는 사모로서 사역하고 있다.

▲로자리아 버터필트 교수.
▲로자리아 버터필트 교수.

책을 통해 그녀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사도 바울의 삶이 계속 떠올랐다. 그는 사울이었던 시절 교회를 잔멸했고, 스데반의 순교에 증인을 자처할 만큼 자신이 믿던 신념에 그야말로 헌신했다. 하지만 진정한 진리를 발견한 후, 이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여기고 정반대의 삶을 살게 됐다. 회심 전의 로자리아도 마치 다른 사람처럼 게이와 레즈비언들을 위해 헌신하고 그들의 권익을 위해 싸우면서 기독교를 공격했지만, 회심 후 과감하게 주변을 정리하고 가정을 이루었으며, 네 자녀를 입양한 엄마가 된다.

‘사소한 것들에 정확하기보다는 중요한 것에서 틀리기를 원한다’는 말을 좋아하는 로자리아는 새로운 생각들을 알아보는 데 따르는 위험을 기쁘게 감수하려 했고, 이 같은 그의 태도는 정중한 편지 한 통에 반응하게 했다. 하지만 서둘지 않은 채 ‘은근과 끈기’로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와 그리스도인 가정의 모범을 삶으로 보여주면서 2년간 기도를 멈추지 않았던 켄 목사 부부의 태도는 ‘예수천당 불신지옥’ 한 마디로 자신의 책임을 전가하는 이들에게는 하나의 시금석이다.

로자리아도 “만약 켄과 플로이가 첫번째 식사를 위해 나를 교회로 초청했더라면 나는 그 길로 뺑소니를 놓고 다시는 그들을 만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켄 목사 부부는 그녀를 교회로 데려가는 대신, 로자리아의 표현을 빌면 “교회를 그녀에게로 데려왔다”. 켄 목사는 서둘지 않았고, 그녀의 두꺼운 몇 겹의 눈꺼풀을 조금씩 하나하나 벗겨냈다.

저자는 최근 인터뷰를 통해 “잘 알려지지 않았던 제 작은 세상에서 이 책이 껍질을 깨고 나왔을 때, 제 삶은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세상에 공개됐다”며 “한 가지 놀랍고도 기쁜 사실은 LGBT 공동체의 제 친구들-옛 친구들과 새 친구들 모두-이 모두 이 책을 읽으면서 하나님 백성으로서 자신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해 함께 대화를 나누게 됐다”고 근황을 전했다. 원제 ‘The Secret Thoughts of an Unlikely Conve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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