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의 기도가 한 사람을, 한 나라를 살렸습니다”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경제개발 50년사’의 숨은 주역, 백영훈 박사를 만나다

한국산업개발연구원장 백영훈 박사(84)는 눈부신 성장을 기록한 ‘한국경제 50년사’의, 숨은 주역 중 한 사람이다. 독일 유학으로 ‘대한민국 1호 경제학 박사’가 되어 돌아온 그는 1960년대 광부와 간호사들의 독일행에 공헌했으며,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서독 방문을 수행하면서 상업 차관을 들여와 경부고속도로와 울산·구미·창원 공업단지 건설 등 경제개발의 기초를 닦았다. 이 같은 사실은 지난해 동아일보 창간기념호에 대대적으로 보도되기도 했다.

▲조국 근대화의 초석을 닦은 백영훈 박사는 “세계 석학들이 21세기는 ‘아시아·태평양 시대’라 하고, 그 중심에는 대한민국이 있다고 말한다”며 젊은이들에게 희망과 포부를 가질 것을 주문했다. ⓒ이대웅 기자
▲조국 근대화의 초석을 닦은 백영훈 박사는 “세계 석학들이 21세기는 ‘아시아·태평양 시대’라 하고, 그 중심에는 대한민국이 있다고 말한다”며 젊은이들에게 희망과 포부를 가질 것을 주문했다. ⓒ이대웅 기자

그러나 백영훈 박사는 자신의 인생에 있어 진정한 주역은 따로 있다고 했다. “이 모든 것은 어머님의 눈물의 기도 덕분”이라는 것이다. “어머님의 눈물의 기도가 한 사람을 살렸고, 한 나라를 키웠습니다. 제 고향은 전북 김제입니다. 만경평야 갯벌에서 농사짓던 가난한 집에서, 저희 어머님이 얼마나 고생하셨겠습니까? 아홉 자녀를 키우시면서, 믿고 의지할 데가 없어 하나님을 믿게 되셨답니다.”

백 박사의 어머니는 새벽마다 교회당엘 나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자녀들을 위해 기도했다고 한다. “365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교회당 마룻바닥에 엎드려 기도하셨습니다. 자식들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해 달라고, 하나님의 재목으로 키워 달라고, 써 달라고요. 젊은 시절 새벽기도회를 따라갔을 때, 어머님의 그 눈물의 기도가 평생 잊히질 않습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언덕 위에 있는 교회로 올라가셔서 30-40분간을 그렇게 혼자 기도하셨지요.”

그는 그 눈물을 잊지 않고 열심히 공부했다. 그래서 그 혼란하던 시절, 1950년 서울 고려대학에 입학하게 된다. 시골 출신으로 희망을 안고 어렵사리 상경했지만, 그를 기다린 것은 북한 공산당의 침략이었다. “다리가 폭파돼 고향으로 피난을 갈 수도 없었지요. 며칠 있으니 김일성대 학생들이 학교에 와서 연설을 하는 겁니다. 결국 수건 하나 든 채로 인민의용군으로 끌려갔지요. 낙동강 전투에 투입됐습니다.”

어머니의 기도 덕분이었을까. 4학년 선배의 지시 아래, 한밤중에 함께 탈출에 성공한다. 산으로 가서 인민군복을 모두 벗은 다음, 밤마다 산길을 걸어 무려 15일 만에 고향에 무사히 도착했다. 숨어서 지내던 어느 날, 서울이 수복됐다는 소문에 학교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번엔 학도병으로 백마고지에 나가 맹렬한 기세의 중공군을 막아야 했다. 미군은 영어 가능자를 찾았고, 현지 임관으로 통역장교가 돼 석 달간 생사를 무릅쓴 임무를 수행한다. “휴전 후에 병무청에 신고를 하러 갔더니, 군번이 없다며 다시 군대를 가야 한다는 겁니다(웃음). 1930년생이 대한민국 징병 제1기인데, 고민이 많았지요.”

당시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국민소득이 인도 다음으로 낮은 국가였다. 유엔 한국재건위원회 인도 대표 메논(Menon)은, 우리나라를 둘러본 후 “쓰레기통에서 과연 장미꽃이 피겠는가”라고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국토는 폐허가 됐고, 먹고 살 길은 막막했다. 유엔 보고서에 눈물 흘린 이승만 건국대통령은 해외 유학을 통해 인재를 양성하기로 결심한다. 이때 패전국에서 ‘라인강의 기적’을 이룬 서독을 배우라는 교수의 가르침에 따라, 백 박사는 국비 장학생에 지원해 15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홀로 합격, 독일로 떠난다.

“그 땐 비행장이 서울 여의도에 있었어요. 독일로 떠난다니 그 시골에서 어머니가 올라오셨지요. 독일이 어디 붙어 있는지도 모르시는 분이 떠나는 자식을 보시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리고는 손을 붙잡고 기도해 주셨지요. 지금도 63빌딩 근처를 한 달에 한 번씩 지나면서 그 어머님의 기도를 생각합니다. 어머님께선 제 눈물을 닦아 주시며 한없이 눈물을 흘리셨지요.”

백 박사는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를 떠올리며 독일에서 ‘목숨 걸고’ 공부했다. 그렇게 남들은 5년도 넘게 걸리는 경제학 박사 학위를, 3년 만인 1958년 11월 ‘하나님 은혜로’ 따낸다. 돌아갈 차비도 없어 아르바이트를 하다 대통령이 보내준 여비로 간신히 귀국, 그는 28세에 은사가 있던 중앙대 부교수가 됐다.

▲백영훈 박사는 책에서 “개발연대는 전복과 복수라는 파괴적 역사의식이 아니라, 계승과 지양의 변증법적 역사의식 속에서  국가 선진화, 민족통일이라는 새로운 시대사적 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거름으로 삼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대웅 기자
▲백영훈 박사는 책에서 “개발연대는 전복과 복수라는 파괴적 역사의식이 아니라, 계승과 지양의 변증법적 역사의식 속에서  국가 선진화, 민족통일이라는 새로운 시대사적 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거름으로 삼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대웅 기자

이후 5·16 군사정변이 일어나자, 아시아 지역에 쿠데타가 확산될 것을 우려한 미국은 경제원조와 함께 잉여 농산물 지원까지 모두 중단시킨다. 앞뒤가 막힌 상황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같은 분단국가인 서독에 승부수를 던지기로 한다. 그러나 독일 대사관 직원들 7명 중 독일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없었고, 수소문 끝에 백 박사가 호출된다. 그는 당시 괘씸죄에 걸려 논산훈련소에서 훈련을 받던 중이었다고 한다.

“독일에서도 얼마나 고생이 많았는지 모릅니다. 경제 장관은 만나주지도 않고, 간신히 차관 약속을 받았지만 담보가 없어 지급보증서를 떼 주는 외국 은행도 없었지요. 저는 매일 무릎을 꿇은 채 기도해야 했습니다.” 그러기를 20여일, 함께 공부하던 노동부 슈미트 과장이 찾아왔다. 그가 내놓은 복안은 광부 5천명을 보내 달라는 것이었다.

“작업 조건이 열악하더군요. 지열이 40도여서 일본, 파키스탄, 터키 등 외국 근로자들이 왔다가 모두 도망갔다고 합니다. 함께 있던 독일 대사가 걱정 말라고, 5만명도 가능하다고 장담했습니다.” 실제로 전국 신문에 광고를 냈더니, 4만7천명이 몰렸다. 고교 졸업자만 신청을 받았는데, 대학생들이 이력서를 속여 지원했다. 슈미트 과장이 간호사도 2천여명을 요청했는데, 2만7천명이 응시했다. 1진 123명을 뽑아 출발한 것이 1963년 12월 21일, 그래서 지난해가 ‘파독(派獨) 광부 50주년’이었다.

이후 대학으로 돌아간 백 박사를, 1964년 박정희 대통령이 다시 청와대로 불렀다. 서독 국빈 방문이 성사됐는데, 통역관을 맡아 달라는 것이었다. “그 때가 대한민국 반만 년 역사에서 국가원수의 첫 해외 국빈 방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빌리려던 미국 노스웨스트 비행편마저 취소돼, 1주일 먼저 가서 독일 대통령에게 비행기를 보내 달라고 부탁해야 할 만큼 국력이 약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독일에서 13일간 머물며 ‘라인강의 기적’을 열심히 배웠다. 그리고 탄광촌에서 파독 광부들을 만나 그 유명한 ‘눈물의 연설’을 했다. 독일 대통령은 “라인강의 기적은 아우토반과 폭스바겐에서 시작됐다”며 고속도로 건설을 권했다. 박 대통령은 아우토반을 달리다 모든 수행원을 멈추게 한 뒤, 차에서 내려 허허벌판 도로 한가운데에서 아스팔트에 입을 맞췄다.

박 대통령은 귀국하면 경제수석으로 임명하겠다고 했지만, 인사차 들른 독일 은사는 “너희 나라에는 장관이 아니라 교수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연구소를 만들었고, 그곳이 바로 지금도 원장으로 있는 한국산업개발연구원이다. 경부고속도로 타당성 조사를 했고, 공업단지를 구상했으며, 서울 강남 한복판에 무역센터를 세워 국제회의장과 컨벤션센터, 호텔과 백화점, 시티터미널 등 5개 기능을 갖추도록 했다. 담보로 했던 파독 광부·간호사들의 월급이 보전되도록, 세일즈 단장으로 나서 전 세계 백화점을 돌아다녔다.

“담보를 풀어주려고 목숨 걸고 수출했더니 되더라구요.” 1964년 11월 30일, 수출 1억달러를 처음 달성했다. ‘수출의 날’로 지정됐고, 지금은 ‘무역의 날’이라고 한다. 1977년 1인당 GNP가 1천달러를 돌파했다. 세계는 우리를 ‘한강의 기적’이라 불렀다.

“저는 그 역사의 현장에서 박 대통령님 모시고 정말 일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 기적이 사람의 힘으로 가능했을까요? 저는 인민의용군에서, 백마고지에서, 독일에서 죽을 고비를 세 차례나 넘겼습니다. 지금은 1인당 GNP 3만달러를 이야기하지만, 경제개발을 시작하던 1960년대에는 70달러밖에 되질 않았어요. 지금 우리나라를 바라보면, 하나님 은혜가 얼마나 놀라운지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어머님의 기도를 잊지 않았던 제가 조국 건설의 역군이 됐듯, 이제 우리 크리스천들이 전세계를 놓고 기도해야 합니다.”

▲백 박사가 최근 쓴 저서.
▲백 박사가 최근 쓴 저서.

최근 백영훈 박사는 자신의 50여년 인생을 담은 책 <조국 근대화의 언덕에서(마음과생각)>를 탈고했다. 백 박사는 오는 19일 오후 2시 30분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출판기념회를 진행할 예정이다.

“책을 쓰면서 참 많이 울었습니다. 그냥 책이 아니라, 눈물의 책입니다. 다음 세대를 위해 썼어요. 우리 조국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이 이제 새로운 역사의 주인공이 되어야지요. 세계가 우리를 부르고 있습니다. 지난 50년의 역사, 가난을 극복한 조국의 역사를 놓고 다음 세대가 다시 역사 앞에 서야 합니다. 지구촌 시대에, 우리 국민들이 하나님 은혜로 전 세계에 750만명 흩어져 있는데, 이들을 위해서라도 이 책이 격려가 되고 역사 앞에 보람을 느끼고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크리스천이 여기에 힘을 실어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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