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1장 4절 (2)
‘죽은 자’는 ‘함메팀()’인데 명. 남. 복. 이고, 어근은 ‘무트()’다. 죽다는 뜻이다. 이 죽음에 대해서 올바른 개념이 확립되어 있지 않고 있는 것이 기독교다. 일반적으로 목숨이 죽는 것을 죽음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 일반화된 개념이다. 그래서 부활도 목숨이 죽었다가 다시 부활되는 것으로 대부분이 알고 있다. 이러한 개념으로 인식을 하다 보니, 육체와 함께 목숨이 부활되는 것이 현실적으로 믿기지 않게 된다. 그래서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문자적으로 성경을 읽고 문자적으로 성경을 해석하고 현상적인 믿음을 갖게 되는 결과에 따른 필연적인 현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하늘나라도 현상적인 상태로 가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왜냐, 하나님의 실존도 현상적으로 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잣대를 모르니, 사람의 잣대에 의해서 신령한 세계를 말하고, 믿고, 소망하는 것이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분들의 현주소다. 하나님께서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다. 샤머니즘 신앙의 대상이 되시는 분이 아니시다.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의 지식을 모르면, 하나님께서 근본 의도하신 높은 뜻과 계획을 알 수 없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지식의 높이와 넓이와 깊이를 헤아릴 수 없다는 말이다.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근본 의도하신 높은 뜻과 계획은 인간의 마음땅에다 초점을 두고 계신다. 인간의 마음땅에는 본래적으로 혼돈과 공허와 어두움인 무지가 깊음인 무저갱의 얼굴들이 되어 자리잡고 있다. 이 얼굴들이 인간의 마음땅을 옥이 되어 가두고 있다. 그래서 이 마음땅을 육의 생각들이 왕이 되어 하나님을 대적 하면서 다스리고 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이 무저갱의 얼굴들을 깨트리고 잘라내어 진멸시키시는 데에 목표를 두고 계신다. 이것이 구원이다. 무저갱의 옥에서 빠져 나오는 것이 자유함이다. 구원의 개념을 바르게 이해를 해야 한다. 하나님의 목표로 하시는 것이 넷째 시기, 다섯째 시기, 여섯째 시기인 인간의 마음땅이다. 이 마음땅에 자리잡고 있는 어두움인 무지를 잘라내고 소멸시키는 것을 목표로 있는 사역으로 죽는다고 말을 하는 것이다. 마음땅의 어두움인 무지가 죽고 소멸되어야 생명으로 부활을 하게 된다. 기독교는 죽고 사는 종교라고 말을 하면서도, 이 개념이 확실하게 정리가 되지 못한 채 사용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피조물인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의도하신 목표 안에서, 모두 목표로 있는 사역으로 죽어야 할 자들이다.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이렇게 죽을 자들에서 어두움인 무지를 깨트려 죽이고, 생명의 부활을 시키는 성령의 역사하심에 따라서 부활하신 것이다. 능력이 무엇인가? ‘게브라()’인데 명. 여. 단. 이고, 힘, 권능을 뜻한다. 어근은 ‘가발()’인데 “강하다, 정복하다, 이기다”는 뜻이다. 마음땅의 어두움인 무지의 짐을 지고 깨트리고 죽여서 진멸시켜 이겨서 정복한 힘을 말한다. 이 능력의 개념을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은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고, 선지자 노릇을 하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다. 이 능력을 오해하고 있는 자들은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 되어, 주님께 “나는 너를 모른다”고 철저하게 부인을 당하게 된다. 하나님의 잣대인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 안에서 자신과의 싸움에서 어두움인 무지를 깨트리고 죽여서 정복을 하고 생명으로 부활을 하는 것이 능력이다. 이 능력을 현상적인 것으로 오해를 하고 많은 사람들이 미혹을 당하고, 무저갱의 옥에서 빠져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깊은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십자가의 여섯 걸음을 익히고 적용하며 잘 통과하여 어두움인 무지를 깨트리고 소멸시켜 생명으로 부활하는 능력이다. 성령께 이 능력을 받아야 한다.
이 능력의 본질을 모르는 사람들은 현상의 것을 능력으로 믿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최면술을 배우고 있다고 한다. 왜인가? 사람을 최면시켜 쓰러뜨리는 능력을 행하고자 함이다. 사람을 쓰러뜨리면서 부흥회를 하는 사람도 있지 않은가? 성경에 사람을 쓰러뜨리는 은사가 있는가? 예수님께서는 육적인 문제로 쫓아다니는 자들을 피해 다니셨다. 예수님께서 능력이 없으셔서 그렇게 하셨겠는가? 인간을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로 세워서 말씀이 육신이 되신, 그리스도 예수의 몸을 짓게 만드는 복음 사역이 아니기 때문이셨다. 사람의 잣대를 좇아가는 자들은 모두 다른 영, 다른 예수, 다른 복음에 사로잡힌 자들이다. 실상이 아닌 헛것에 사로잡혀서 분별력을 상실한 자들이라는 말이다. 사람의 잣대에 속한 인간을 하나님의 잣대인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생명의 부활을 시켜 새롭게 지어가는 것이 하나님의 근본 의도하신 높은 뜻과 계획이시며 성경의 전부다. 영과 육이 분리되는 죽음 앞에서 나는 허무하게 살았다는 후회를 하지 말자.
‘인정되셨으니’는 ‘후칸()’인데 홒. 완. 3단. 남. 이며, 어근은 ‘쿤()’, “세우다, 확정되다, 형성하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가 아니라, 하나님의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인 잣대에 의하여 사람이 세워진 분으로 그리스도 예수는 확정함을 입게 되셨다는 말이다. 피조물인 모든 인간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세워진 자로 확정되심과 같이 세워진 자로 확정되게 됨을 입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인간을 향하여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로 근본 의도하신 높은 뜻과 계획이시다. 하나님께서 근본 의도하신 계획대로 사람이 세워져서 형성되어야 한다. 기적 중의 최고의 기적은 사람이 새롭게 되는 것이다. 능력 중의 최고의 능력은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 즉 물고기 속에서 어두움인 무지가 완전히 부패되고 발효되어 생명으로 부활하여, 육의 속성이 완전히 성령의 속성으로 변화된 ‘요나’가 되는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는 자는 자신을 부인하고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고 하셨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걸어가신 십자가가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다.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이 안에서 어두움인 무지를 완전히 깨트려 죽이시고 생명의 부활을 하셨다. 이 십자가의 여섯 걸음을 익히고 적용하며 통과해서 자아가 소멸되고 없어진 자가 하나님께서 근본 의도하신 높은 뜻과 계획대로 세워진 자가 되는 것이고, 동시에 세워진 자로 확정되는 것이다. 이렇게 확정되신 분이 그리스도 예수시다. 그리스도 예수가 인간이 가야 할 길과 진리와 생명이시다. 그리스도 예수와 똑같은 십자가의 여섯 걸음을 걷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계획대로 세워진 자로 확정될 수 없다. 그리스도 예수의 고난과 부활은 기념으로 지키는 절기가 아니다. 내가 어두움인 무지를 죽이는 고난을 받고, 생명으로 부활하여 하나님의 세우신 자라는 확정되는 필연적인 과정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서균석 목사는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장로회 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
하늘교회(통합) 담임목사 은퇴
한국히브리신학원 학장
문의: 010-3728-0245
홈페이지: http://www.koreahebrew.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