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1장 6절
‘너희도 그들 중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니라’
맥(잣대)에 의한 번역:
‘너희들의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가 그들의 넷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의 목표로 있는 것을 적용하는 안에 있는 바 넷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의 본체의 사역을 하는 너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받은 자들이니라’
여기에서 ‘너희들의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를 말하는 ‘힌네켐()’이 번역되지 않았다. 다시 말하면,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를 축약한 단어인 ‘힌네()’가 빠져 있다는 말이다. 여기에서 뿐만 아니고, 신구약 성경에 ‘힌네()가 많이 나오는데, 번역되지 않고 있다.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의 개념을 모르니까 번역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성경은 문법만 가지고는 해석해 나갈 수 없다. 그렇다면, 많은 사람들이 왜 문법에만 의존해서 성경을 해석하려고 하는가? 그것밖에 다른 길이 없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창세기 1장은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의 내용이다. 창세기 1장은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내용이 아니다. 사람을 그리스도 예수께서 세워지신 본체대로 집을 짓듯 양육해서 세워나가는 과정이다(저서 ‘천지창조’ 참조.) 하늘들과 땅을 하나로 결합해서 완성하는 과정이라는 말이다. 창세기 1장은 하나님께서 창조를 하신 내용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근본 의도하신 높은 뜻과 계획이다. 즉, 하늘들과 땅이 입을 맞추고 하나로 결합되는 과정을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인 잣대로 세우시고, 이 잣대대로 익히고 적용해 나가도록 하신 것이다.
성경의 맥을 모르는 사람들은 “하나님은 창세기 1장에서 창조하시고, 창세기 2장에서도 창조하셨다”고 무지한 소리를 하고 있다. 또 “신약성경은 헬라어로 기록되어 있는데, 왜 히브리어 성경으로 보느냐?”라고 묻고 있다. 심지어 “히브리어로 기록된 신약성경이 존재하느냐?”라고 어이없는 소리를 하는 사람도 있다. 부끄럽게 생각해야 한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서론에서 충분히 설명을 하였음에도 서론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도 있는 모양인데, 하나님 말씀을 상고하는 기본 자세가 아니다. 이전까지 가지고 있던 현상적인 생각의 개념을 내려놓지 않으면 성경의 흐르는 맥도, 성경의 깊이와 넓이와 높이도 깨달아 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성경의 근본적인 핵이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인데 이 내용은 하나님께서 기초로 세워 놓으신 비밀이다. 성경이 기록된 이래로 이 비밀이 열리지 않은 채 숨겨져 왔던 것이다. 성경이 열리지 않으니까 실상이 아닌 허상을 붙잡고, 사람이 만든 이론을 가지고 갑론을박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 예를 든다면, 요한계시록의 천년왕국에서 전천년·후천년·무천년이라는 이론을 만들어 가지고 전천년파·후천년파·무천년파로 갈리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정파가 갈라지듯 이 파 저 파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인가? 성경 어느 곳에 전천년·후천년·무천년이 존재하고 있는가? 어느 곳에도 없다. 종말론을 연구하시는 분들은 철저히 회개해야 한다. 허상을 붙잡고 있는 그 자체가, 어두움인 무지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이 무지를 깨트리고 죽여야 신령한 눈이 열리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니라’에서 ‘것으로’는 잘못된 번역이다. 헬라어에도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물이 되게 하기 위하여 부르심을 입은 자라는 말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라는 말이다.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의 본체가 그리스도 예수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란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로 부름받은 자란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1장에 근본 의도하신 높은 뜻과 계획을 세우시고, 이 계획을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시행해나가신다.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로 진행해 나가시는 것이 곧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진행해 나가시는 것이다. 창세기 1장에서 근본 의도하신 높은 뜻과 계획을 세우신 분은 ‘엘로힘(, 하나님)’이신데, 이를 진행하시는 분은 ‘여호와’시다. 그래서 창세기 2, 3장에는 ‘여호와 하나님’으로 나오고 계신다. 구약의 ‘여호와’가 신약의 ‘그리스도 예수’로 나오고 계신다. 이렇게 말을 하면 무슨 소리를 하느냐고 펄떡 뛰는 사람도 있다. “어떻게 여호와가 그리스도 예수가 되느냐?”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약의 여호와께서는 무슨 사역을 하셨으며, 신약의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무슨 사역을 하셨느냐?”라고 물으면 대답을 하지 못하면서도 무조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종교가 기독교다. 그런데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의 개념이 올바르게 확립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기독교의 현주소다. 심히 안타까운 일이다.
그리스도 예수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넷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의 본체의 사역을 하는 너희들’이라고 하였으니까, 넷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의 목표로 있는 것인 마음땅에 본래적으로 자리잡고 있는 혼돈과 공허와 어두움인 무지의 무저갱의 얼굴들을 잘라내고, 예수를 이루기 위해 그리스도인 하나님의 세우신 법을 적용하고 익혀 나가야 한다. 이 일을 하게 하고자 그리스도 예수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다. 이 일을 하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이 근본 의도하신 높은 뜻과 계획이다.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를 익히고 적용해 가면서 그리스도 예수가 완성된 자가 되어야 생명으로 부활을 한 자다. 생명으로 부활이 이루어진 자만이, 생명이 없는 자에게 생명을 꺼내주어 그에게도 하나님의 생명이 있게 하는 자가 될 수 있다. 그리스도 예수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하나님의 생명을 꺼내주기 위해 보내심을 받은 자가 되어야 한다.
복음이 무엇인가?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일반적인 개념으로 생각을 하면 안 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마음땅에 본래적으로 자리잡고 있는 혼돈과 공허와 어두움인 무지의 무저갱의 얼굴들을 깨트려 죽이고 생명의 부활을 하여, 말씀이 육신을 이루신 그리스도 예수의 신령한 몸을 이루게 된다는 기쁜 소식이 ‘복음’이다. 이 소식 이상의 기쁜 소식이 존재할 수 있는가? 무저갱의 옥에서 벗어나서 생명의 부활을 하여 날개를 달고 날아다닌다는 것 이상의 기쁨이 있을 수 없다. 이 기쁜 소식을 전하는 자가 되게 하시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다. 그리스도 예수의 소유물이 되기 위해서 부르심을 받은 자들도 되겠지만, 우선적으로는 그리스도 예수의 본체이신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를 정확하게 적용하고 익히면서 통과해 나감으로 어두움인 무지를 깨트리고 소멸시켜 생명으로 부활을 하여, 자신과 같이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를 적용하고 익혀서 어두움인 무지를 죽이면 생명의 부활이 이루어진다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서균석 목사는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장로회 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
하늘교회(통합) 담임목사 은퇴
한국히브리신학원 학장
문의: 010-3728-0245
홈페이지: http://www.koreahebrew.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