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1장 7절
‘로마에 있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맥(잣대)에 의한 번역:
‘로마 안에 있는 바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자들과 어두움인 무지가 타작된 속에 들어가 거룩해진 성도들로 존재하기 위하여 부르심을 받은 자들 모두에게 우리의 양육자 하나님과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본체로부터 너희들에게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에 매달린 잣대로 차꼬가 채워져 생명이 있게 하는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좇아’는 번역상 오류이고, ‘본체로부터’라고 해야 한다. 본 절에서는 부르심을 받은 자들의 목적과,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한 조건을 말씀하고 있다. 왜 부르심을 받았는가?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자들과 어두움인 무지를 타작해서 깨트려 소멸시키고 거룩해진 성도들로 존재하게 하시기 위해서다. 부르심의 목적이 분명하다.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자들이 누구인가? 하나님은 피조물을 사랑하신다고 하는, 일반적인 개념의 사랑이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인 인간의 마음땅에 본래적으로 자리잡고 있는 혼돈과 공허와 어두움인 무지의 무저갱의 얼굴들을 깨트리고 죽여서 소멸시켜 생명의 부활을 시키기 위하여,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육신의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셔서 길과 진리와 생명을 열어 주신 것이 사랑이다. 다시 말하면, 짐승의 속성을 가지고 짐승처럼 살아가는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을 입고 하나님처럼 살아가도록 그리스도 예수의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의 길을, 진리를, 생명을 열어 놓으신 것이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인 것이다. 이 사랑을 깨달아야 한다. 이 크신 사랑을 깨닫지 못한다면 짐승의 속성에서 벗어나 자유함을 누릴 수 없다.
‘사랑하시는 자들’은 ‘예디데()’이며, 명. 남. 복. 연계형이다. 어근은 ‘야다드()’인데, 사랑하다, 찬양하다, 던지다는 뜻이고, 이 단어는 ‘야드()’인 손에서 유래되었다. 첫째 시기, 둘째 시기, 셋째 시기인 하나님의 법인 손에 대롱대롱 매달려서 넷째 시기, 다섯째 시기, 여섯째 시기인 마음땅의 어두움인 무지를 완전히 내던져 버리고 하나하나 깨트려 가면서 소멸시키고 생명의 부활을 하여 감사하고 찬양을 드리는 것이 ‘사랑’이라는 말이다.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의 본체이신 그리스도 예수를 주신 것이 하나님의 그 큰 사랑이신데, 하나님은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 안에서 하나님이 근본 의도하신 높은 뜻과 계획대로 마음땅을 경작해 가는 자를 사랑하시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사랑을 받은 자는 사랑의 빚을 갚아야 한다. 그래야 사랑이 완성된다. 다는 못 갚을지라도 억만분지일이라도 갚는 자세를 갖는 자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들의 반열 속에 들어가는 복을 누리게 된다. 이것이 믿음의 첫 관문이다.
‘성도들’은 ‘케도쉼()’인데, 명. 남. 복. 이며, 성인들, 성도들을 뜻한다. 어근은 ‘카다쉬()’ 이며, 거룩하다, 성결하다, 구별하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거룩하다는 말을 근엄하고, 경건하고, 의식적인 것으로 인식을 하고 있을 뿐이다. ‘거룩’은 마음땅의 어두움인 무지가 깨트려지고 타작되어 ‘먼지가 된 상태’를 말한다. 마음땅에 어두움인 무지가 하나님의 지식의 빛으로 계몽되어 소멸되어야 먼지가 이루어진다. 사람을 흙으로 만들었다고 성경을 오역해 놓으니까, 사람을 지구의 흙으로 만들었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창세기 1장이 흙이다. 이 흙으로부터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를 익히고 적용하며 통과해 나감으로, 어두움인 무지가 타작되어 가루가 된 먼지로 사람을 창조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이 먼지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어두움인 무지가 없으신 분이시다. 지식의 빛 그 자체가 되신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말씀하셨다. 인간이 거룩해져야 하나님의 형상을 입을 수 있게 된다. 인간은 육적으로 거룩해질 수 없다. 육의 속성인 무저갱의 얼굴들인 혼돈과 공허와 어두움인 무지를 깨트려 죽이고 소멸시켜야 거룩해질 수 있다. 거룩해지는 것은 생명의 부활이 이루어진 자만이 소유할 수 있다.
교인들을 성도들이라고 부른다. 교회는 건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함에도 교회를 건물로 장식하고 경쟁하고 있는 듯하다.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로 만나서 무지를 소멸시키고 생명으로 부활하여 할렐루야 찬송을 부르기 위해 모인 회중들이 교회다. 그렇다면 어두움인 무지를 타작해서 깨트리고 생명으로 부활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곳이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자에게 하나님의 생명이 있게 양육하는 곳이 교회가 되어야 한다. 어두움인 무지가 죽고 하나님의 생명으로 부활되는 사역을 하는 존재들이 성도들이다. 도덕, 윤리, 철학으로는 어두움인 무지가 타작되어 먼지가 될 수 없다. 생명으로 부활되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는 것은 전혀 기대할 수 없다. 다른 영, 다른 예수, 다른 복음은 사람의 잣대다. 사람의 잣대로는 사람이 변화될 수 없다. 성도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변화받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변화라고 말하기보다 오히려 어두움인 무지가 깨트려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커지는 이유가 무엇이냐라고 말하는 것이 옳다. 하나님의 잣대인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 밖으로 나가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자들과 어두움인 무지가 타작된 속에 들어가 거룩해진 성도들로 존재하기 위하여 부르심을 받게 한 자들인데, 하나님의 잣대인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의 본체인 그리스도 예수 밖으로 빗나가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적인 어두움인 무지에 갇혀 있으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소경으로 있는 것만큼 불쌍한 영혼은 없다.
서균석 목사는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장로회 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
하늘교회(통합) 담임목사 은퇴
한국히브리신학원 학장
문의: 010-3728-0245
홈페이지: http://www.koreahebrew.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