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1장 11절
‘내가 너희 보기를 심히 원하는 것은 무슨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눠 주어 너희를 견고케 하려 함이니’
맥(잣대)에 의한 번역:
‘나 스스로 너희들이 경험하기를 바라고 원하는 것은, 너희들 자신이 생명을 실행한 속에 들어가 확고하게 확립되게 하기 위하여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인 이것의 어떤 성령의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의 선물(은사)을 너희들에게 생명을 익히는 속에 들어가 나누어 주는 것이니라’
‘내가 너희 보기를 심히 원하는 것은’으로 번역된 것은 문맥상 맞지 않다. 롬 1:10에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고 오역된 것에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경험하기를 바라고 원한다는 의미다. 경험한다는 말은 체험한다는 말이다. 기독교는 체험의 종교라는 것을 누구나 익히 알고 있다. 그런데 이를 내면의 체험이 아니고 현상적인 바깥 개념을 가지고 대부분 말들을 하고 있다. 병이 나았고, 가난에서 벗어나 부자가 되었고, 자손들이 잘 되었고, 금식을 여러 번 하여 큰 능력을 받아서 교회가 부흥되었다는 등의 체험을 간증하고 있다.
물론 이 체험이 틀리다는 말이 아니다. 지금 사도 바울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성경에 기록한 말씀의 내용은, 이 현상적인 체험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다. 너희들의 내면, 즉 속사람에 본래적으로 자리잡고 있는 혼돈과 공허와 어두움인 무지의 무저갱의 얼굴들을 깨트려 죽이고 소멸시키는 체험을 갖기를 간절히 바라고 원하고 있다는 말이다. 너희들에게 가서 얼굴들도 보고 궁금했던 소식도 알고 필요한 성령의 은사를 나누어 주고자 함이라는 말이 아니다. 성령의 은사는 사도 바울이 개인의 능력으로 나누어 주는 선물이 아니다.
부흥회에서나 기도원에서는 성령을 받는 방법이 있고 방언을 받는 방법이 있어서, 그것을 가르쳐 준다고 한다. 많은 종교인들이 최면술을 배운다고 한다. 성령의 은사로 위장해서 써먹고자 함이라고 한다. 분명히 다른 영, 다른 예수, 다른 복음을 가지고 있는 자들의 행위임이 분명하다. 최면술로 사람을 넘어트리는 사람이 있다고 하는 소리를 들었는데, 그런 것을 하는 것이 몹시도 부러웠는가 보다. 신령한 은사가 무엇인지 개념조차 정리가 되지 않은 채 믿음 없는 행위들로, 깨트려야 할 무저갱의 옥에 갇혀서 갈 길을 잃고 방황하는 자들이다.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자들은 속사람의 어두움인 무지가 죽고 생명으로 부활한 자가 된 체험을 해야 한다. 이 체험이 없으면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의 잣대인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의 본체이신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죽고 생명의 부활을 하여 산 자의 반열에 들어가지 않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고 누릴 수 없다. 다시 말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이다. 종교의식 행위를 한다 하여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고 영생을 얻는 것도 아니다. 사도 바울은 너희들의 모습이 보고 싶다는 것이 아니라, 죽고 사는 체험을 하는 자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원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주님께서도 내가 죽고 살기를 기다리고 계신다.
또 신령한 은사는 나누어 주는 것이라고 하였다. 은사는 ‘마타트()’인데 명. 여. 단이고, 선물, 예물이란 뜻이며, 어근은 ‘나탄( )’인데 주다, 적용하다, 비결, 좋은 정보를 제공하다는 뜻이다.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의 선물, 은사라는 말은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의 목표의 사역을 해나가는데 목표가 완성되도록 비결을 가르쳐 주고 좋은 정보를 제공하여 주어, 적용을 잘 할 수 있도록 선물로 준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은사는 헬라어로 ‘카리스마’인데 선물, 은사, 부여된 은총이라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그래서 은사는 은혜 가운데 선물로 주신 것을 말하는 것이고, 한문으로 표기된 단어다.
그렇다면 은사는 성령께서 주시는 선물인데, 선물을 주시는 목적이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인간을 향하신 목표는, 마음땅에 본래적으로 자리잡고 있는 혼돈과 공허와 어두움인 무지의 무저갱의 얼굴들을 깨트리고 죽여서 생명으로 부활시키시는 것이다. 넷째 시기, 다섯째 시기, 여섯째 시기인 인간의 마음땅이 하나님께서 목표로 계획을 세우시고,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진행하시고, 완성해 가시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께서 목표로 계획을 세우셔서 진행을 해나가시지만, 인간은 이 계획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불순종하며 거역을 하고 있고, 오히려 어두움인 무지의 속성에 안주하려 하는 본질을 가지고 있다. 어두움인 무지를 깨트리고 죽여 나가기 위해서는 육의 속성에 모반하는 아픔과 고난이 필연적으로 따르기 때문에, 무지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그 어두움인 무지에 져서 타협을 하고 종속되어 버리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넷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인 마음땅에 본래적으로 자리잡고 있는 어두움인 무지를 깨트려 죽이고 분명하고 확고하게 생명으로 부활하게 만들기 위해서, 성령이 도우시고, 붙드시고, 깨닫게 하시고, 결단하게 하시는 방편을 선물로 값없이 빌려 주시는 것이다. 빌려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생명으로 부활한 결실로 갚아야 한다. 고전 12:4에 ‘은사는 여러 가지’라고 하였다. 그래서 은사는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믿음, 병 고침, 능력 행함, 예언, 영분별, 방언, 방언통변 등 여러 가지가 있는 것으로 이해하고 이 은사는 특별한 사람만이 받는 것으로 우월의식을 가졌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은사는 여러 가지가 있다는 번역은 잘못된 것이다. ‘넷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의 목표로 있는 것을 주시는 은사들은 넷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로 반복하는 것들’이라고 번역을 해야 옳다. 은사들은 특별한 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어두움인 무지가 죽고 생명의 부활을 하도록 일평생 삶을 통해 넷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인 마음땅에 반복을 계속해 가면서 적용해 나가는 수단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일마다 때마다 성령께서 필요에 따라 선물로 빌려 주시는 은혜의 방편이시다.
서균석 목사는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
하늘교회(통합) 담임목사 은퇴
한국히브리신학원 학장
문의: 010-3728-0245
홈페이지: http://www.koreahebrew.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