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1장 15절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맥(잣대)에 의한 번역:
‘그러므로 로마 안에 있는 넷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의 사역을 하는 너희들의 본체에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의 복음의 본체를 듣고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 나의 마음을 나의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로 아낌없이 자발적으로 줄 것이니라’
한글 성경의 ‘할 수 있는 대로’, ‘원하노라’는 번역상 오류다. “나는 빈부귀천을 가릴 것 없이, 배운 자나 못 배운 자나 지혜가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나 그 모두에게 하나님의 생명을 주어야 할 의무를 가진 빚진 자이기 때문에, 지식을 가졌다고 하는 로마 안에 있는 너희들에게 하나님의 생명의 복음을 전하여야 하겠다는, 자발적으로 타오르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복음이 무엇인가? 기쁜 소식이라고 일반적으로 이해를 하고 있다. 기쁜 소식이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대부분이 막연한 대답을 할 것이다.
왜 그런가? 기쁨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을 할 수 있는 개념이 정립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어두움인 무지가 죽고 하나님의 생명으로 부활하는 종교다. 그런데 사람들은 부활은 좋아하는데 죽는 것은 싫어한다. 죽음에는 고난과 아픔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스운 이야기가 되겠지만 “고난은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히고 죽으셨기 때문에, 나는 고난은 싫고 부활의 복만을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한다고 한다. 복만 달라는 것이다. 죽어야 생명으로 부활하는 것인데, 죽는 것은 고난이 오기 때문에 생략하고 공짜로 생명으로 부활하는 열매만 따먹겠다는 어리석은 바보들의 소리다. 생명의 개념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하나님의 본체조차도 모르면서, 샤머니즘적인 믿음을 가지고 육적인 복만을 달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복음을 알고 있는 것인가? 생명을 모르는데 생명으로 부활되는 기쁨을 알 수 있겠는가? 영생이 무엇이냐고 묻는 청년과 다를 것이 없다. 복음은 기쁜 소식이다. 첫째 시기에서 여섯 째 시기로 마음땅에 본래적으로 자리잡고 있는 혼돈과 공허와 어두움인 무지의 무저갱의 얼굴들을 깨트려 죽이고 하나님의 생명으로 부활을 하게 되면 구원이 완성되고 영생을 얻게 된다는 기쁜 소식을 말한다. 무저갱의 옥에 갇혀서 짐승의 속성을 가지고 육의 종노릇하며 참 자유함을 누리지 못하고 신음하고 있는 인간들에게, 매우 기쁘고 기뻐서 춤을 추며 뛸 수밖에 없는 소식이다. 이것이 영생을 얻은 자에게 나타나는 특징이다. 예수를 믿고 이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을 체험하지 못하고 있는 자는 기쁜 소식을 들어 보지 못한 자다.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의 본체가 그리스도 예수시다.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나는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라고 성경에 수없이 말씀을 하고 계시지만, 이 말씀을 깨닫지도 못하고 열지도 못한 채 닫힌 성경을 문자대로 읽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복음을 전하면서 복음의 올바른 뜻을 전파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는 말이다.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생명은 인간의 혈과 육의 목숨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생명을 말한다. 인간에게는 마음땅에 혼돈과 공허와 어두움인 무지가 본래적으로 자리잡고 옥으로 가두고 있을 뿐 하나님의 생명은 없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마음땅에 생명이 있게 하시기 위해서 근본 의도하신 높은 뜻과 계획을 세우셨는데, 그것이 창세기 1장의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이고, 이 안에 기초를 바탕으로 두신 것이다. 이 바탕이 곧 그리스도 예수시다.
그런데 창세기 1장의 6일 창조를 현상의 천지만물을 창조한 6일이라고 온 세계가 보고 있고, 이것을 바탕으로 해서 성경을 해석하여 왔고 계속해 나가고 있다. 하나님의 생명이 인간 마음땅에 있게 하기 위해서는 넷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에 자리잡고 있는 어두움인 무지를 깨트려 죽여야 한다. 성경에서 죽음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 어두움인 무지를 죽이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무지한 인간들은 혈과 육의 목숨이 죽는 것으로 왜곡해서 알고 있다. 이 어두움인 무지가 깨트려져서 죽게 되면, 죽는 것만큼 하나님의 지식의 빛으로 계몽되어 하나님의 생명으로 부활을 하게 된다. 이 생명으로 부활되는 것이 구원이 완성된 것이고, 말씀이 육신의 몸을 입으신 그리스도 예수의 몸이 우리 안에 세워지게 되는 것이다.
이 영생을 얻은 신령한 몸은 단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넷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를 하나님의 생명을 익히고 적용해가며 깨트려서 죽인 만큼만 이루어져 가는 것이다. 그래서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를 쉬지 않고 반복해 감으로 죽이는 것을 실천해 가야 한다. 그래야 생명의 부활이 지속적으로 일어나게 되고, 구원도 완성을 이루어 가기 위해 진행하게 되고, 신령한 몸도 완성을 이루어 가게 되는 것이다. 이 세상에 살아가는 목적은 썩을 혈과 육을 위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짧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영생을 얻고 신령한 몸을 이루어 살아갈 안식처를 준비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확실한 소망을 가지고 있지 않는 사람은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인 하나님의 잣대 안에서의 믿음이 없는 사람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누리는 행복을 모르는 사람이다. 이 행복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다. 혈과 육의 속성인 혼돈과 공허와 어두움인 무지의 무저갱의 얼굴들을, 고난을 통해서 깨트리고 죽이는 것을 반복해 나감으로 죽여야 하나님의 생명으로 부활하여 승리를 선언하는 기쁨을 맛볼 수 있다.
이 기쁨이야말로 엔도르핀이 생성되어 솟아나는 기쁨이다. 이것이 예수를 믿는 궁극의 목적이다. 이것이 기쁜 소식이다. 복된 소리다. 내가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으로 부활하지 못하고 어떻게 하나님의 생명으로 부활하는 기쁨을 누리라고 복음을 전할 수 있겠는가? 마음땅의 어두움인 무지를 깨트리고 죽이는 것을 고난으로 생각을 하고 괴로워하면 안 된다. 고난을 기쁨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믿음이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당하신 고난이 기쁨으로 승화된 고난이다.
서균석 목사는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
하늘교회(통합) 담임목사 은퇴
한국히브리신학원 학장
문의: 010-3728-0245
홈페이지: http://www.koreahebrew.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