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1장 16절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맥(잣대)에 의한 번역:
‘나는 하나님의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로 무지를 잘라내는 짐을 지고 이기게 하는 능력 때문에 그리스도의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의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것이 없느니라 그녀(복음)는 모든 믿는 자를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로 구원을 하기 위해서 존재하는데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에서 첫째로는 첫째 시기에서 셋째 시기로 찬양하는 유대인을 위하여서이며 그와 같이 넷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에서 어두움인 무지를 발효시키는 헬라인을 위하여서이니라’
복음은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로 마음땅의 어두움인 무지를 깨트리고 죽여서 생명의 부활을 하게 됨으로 구원이 완성되어, 말씀이 육신의 몸을 입으신 그리스도 예수의 몸이 이루어진다는 기쁜 소식을 말한다. 죽는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성경은 산 순교를 말씀하고 있다. 살아서 죽는 것이 산 순교다. 혈과 육의 목숨이 죽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마음땅에 본래적으로 자리잡고 있는 혼돈과 공허와 어두움인 무지의 무저갱(지옥)의 얼굴들을 깨트려 소멸시켜 죽이는 것이다. 이 죽음은 하나님의 근본 의도하신 높은 뜻과 계획이시다. 피조물인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이 죽음에서 피해 나갈 수 없다. 그러함에도 아담을 비롯해서 모든 인간들은 이 죽음을 맞지 않고 모면하여 보려고,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사람의 잣대를 만들어 놓고 하나님의 잣대에 대항하여 반기를 들고 있다.
인간은 마음에 하나님의 법을 두기 싫어한다. 머리가 죽을 수밖에 없는 생각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계실 자리에 인간의 교만의 생각들이 앉아서 왕으로 군림하여 다스려 나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깨트리고 소멸시켜 죽여야 한다. 교만의 생각의 머리를 잘라 버려야 한다. 예수님께서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머리를 두시고 정착하실, 인간의 교만한 생각의 머리가 잘리고 깨트려진 머리가 없다는 말씀이다. 이 교만의 산봉우리인 머리에 하늘들의 물들이 덮여야 죽게 된다. 그래야 그 교만의 생각의 산들이 죽고 아라랏산 봉우리에 방주가 정착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이 교만이 깨트려져 죽으려면 고난과 아픔이 따르게 되어 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법칙이다. 그러나 인간은 이 고난을 싫어한다. 고난을 피해 도망가려고 한다. 피할 수 없는 고난이건만, 어리석은 도피다. 그래서 죽지를 못하고 있는 것이다.
복음의 가치를 모르면 복음이 부끄러울 수밖에 없다. 복음을 믿는 것이 미련하게 보이고 바보들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복음의 가치는 하나님의 잣대인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 즉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 그리스도 예수 안인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의 믿음을 가지고 좁은 길을 걸어가며 어두움인 무지를 죽이기 위해 고난을 통해 소망을 가지고 익히고 적용해 나가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땅, 즉 생명으로 부활하여 구원이 완성되는 생명의 가치가 된다. 이 가치를 가지고 있는데 복음이 왜 부끄러운가? 복음에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믿을 때 그것만큼 부끄러운 일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부끄러운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자들이 가장 불쌍한 존재들일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이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다.
하나님께서는 근본적으로 의도하신 높은 뜻과 계획을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진행해 나가신다. 그리스도 예수가 아니시면 사역을 해 나가실 수 없다. 그리스도 예수가 없으시면 복음의 시작도, 진행도, 결론도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 안에서 복음의 시작과 진행과 결론을 내시고 계신다. 그리스도 예수가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의 본체시다. 그런데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기독교가 그리스도 예수의 존재 개념조차 똑바로 확립하지 못하고 있는 데에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 그리스도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국한시키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지금 앉아 계신 분으로 믿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 보좌에서 구름을 타고 이 세상에 오셔서 심판하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초림도 재림도 하늘로부터이기 때문에, “오!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라고 기도를 하면서 하늘만 쳐다보고 있는 것이 기독교다.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로 어두움인 무지가 깨트려져 죽고 생명으로 부활되어 구원이 완성되는 기쁜 소식인 복음이, 하나님이 근본 의도하신 높은 뜻과 계획대로 하나님의 잣대를 믿는 모든 자들에게 그대로 이루어지게 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시기 때문에, 부끄러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여 드리는 것이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 하나님의 첫째 시기에서 셋째 시기의 법을 받고 찬양하며 감사하면서도 넷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인 마음땅에 적용해서 익혀가며 어두움인 무지를 깨트려 죽이고 소멸시켜 나가지 않는 유대인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고, 또한 첫째 시기에서 셋째 시기인 하나님의 법을 받고 넷째 시기, 다섯째 시기, 여섯째 시기인 마음땅에 적용해서 익혀가며 어두움인 무지를 하나님의 지식의 빛으로 발효시켜 부패시키고 생명으로 부활시키는 헬라인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헬라인이라는 말은 발효시킨다는 뜻이다. 발효가 되어야 육의 속성이 영의 속성으로 성분이 바뀌게 된다. 요나도 발효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요나도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 안에서 발효된 것이다. 삼일삼야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이 아니다.
유대인과 헬라인이라는 두 족속에게 구원을 주는 하나님의 복음의 능력이라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의 복음의 능력은 하나님의 잣대인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 안에서만 나타난다. 사람의 잣대인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에는 구원하는 복음의 능력이 역사할 수 없다. 하나님의 잣대도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 사람의 잣대도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로 나타나고 있다. 가짜가 진짜로 위장해서 미혹시키기 위해서다. 그래서 분별의 영을 받아야 한다.
서균석 목사는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
하늘교회(통합) 담임목사 은퇴
한국히브리신학원 학장
문의: 010-3728-0245
홈페이지: http://www.koreahebrew.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