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세계, 선교적 접근 필요” 주창한 레슬리 뉴비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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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기독교 내다보기(2)] 증인들의 이야기①

2018년 새해를 맞아 연재중인 서동준 강도사의 '세계 기독교 내다보기' 두 번째 편입니다. -편집자 주

어떠한 정보를 얻고자 할 때, 여러분들은 '수치화된 자료를 살피는 것'과 '그 정보와 관련된 경험을 지니고 있는 이들의 증언을 듣는 것' 중 어떠한 방식을 사용하시나요?  

제 경우에는 각각의 방식이 그 나름대로의 강점과 유익을 가지고 있기에, 상황에 따라 다른 방식을 사용하는 편인 듯 합니다. 예를 들면, 지난 글이 '수치화된 자료를 살피는 방식'을 사용한 글이었다면, 이번 글에서는 '그 정보와 관련된 경험을 지니고 있는 이들의 증언을 듣는 방식'을 사용하려고 하는 것처럼 말이죠.

지난 글에서 저희는 통계 수치가 제공해 주는 거시적 관점으로, 기독교 내에서 발생하고 있는 거대한 추세들을 간략하게 조망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통계 수치는 거시적으로 어떠한 사건의 추세나 흐름을 살필 수 있게 해 주지만, 우리에게 그 추세를 '체감적으로' 와닿게  해주진 못하는 듯 합니다.

이럴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증인들의 이야기'가 아닐까 합니다. 어떠한 사건이나 추세를 직접 경험하여, 우리에게 그 주제를 보다 '체감적'으로 다가오게 해줄 수 있는 이들의 증언 말이죠.

이러한 점에서 이번 글은 세 명의 증인을 선정하여,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세계 기독교가 어떻게 도래하고 있는지', 그리고 '세계 기독교가 우리 삶 근저에 어떤 식으로 다가오고 있는지'를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세계 기독교를 내다보는 여정을 이제 막 시작한 시점에서, 뛰어난 학자이면서도 선교사로서의 경험을 지니고 있는 세 인물의 증언을 따라가다 보면 이미 우리 가까이, 우리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세계 기독교'라는 거대한 추세를 조금은 더 체감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레슬리 뉴비긴. ⓒthe Humanitas Forum on Christianity and Culture

▲레슬리 뉴비긴. ⓒthe Humanitas Forum on Christianity and Culture

1. 레슬리 뉴비긴: "우리는 서구 세계를 선교적 관점에서 바라보아야만 합니다."

우리가 첫 번째로 살펴볼 이야기는 아마 여러분들께서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법한 인물의 이야기입니다. 존경받는 선교사이자 신학자였던 레슬리 뉴비긴(Lesslie Newbigin, 1909-1998)이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영국 뉴캐슬 출신인 뉴비긴은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후, 1936년 말 인도 선교사로 파송받게 됩니다. (다른 사역을 위해 인도를 잠시 떠나기도 했지만) 35년간의 선교사역을 신실히 감당한 뉴비긴은 1974년 선교사역을 마무리하고, 본국인 영국으로 돌아가게 되죠.

그런데 영국에 돌아간 뉴비긴은 큰 충격에 빠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가 영국에 돌아와 목도하게 된 서구 세계는 이미 근대 과학적 세계관에 잠식돼 버렸고, 그 속에서 교회는 자신의 정체성과 본질을 상실하고 무기력한 상태에 빠져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¹ 즉, 기독교 국가라고 여겼던 영국이 근대 과학적 세계관에 삼켜져 말 그대로 그 어느 곳보다 시급한 '선교지'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 앞에서, 뉴비긴은 당시로서 상당히 파격적인 주장을 다음과 같이 내놓았습니다.

"아시아, 아프리카, 오세아니아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서는 교회가 지속적으로, 심지어 눈부시게 성장하고 있다. 그러나 근대 서구 문화가 지배하는 지역(정치적으로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상관없이)에서는 교회가 계속 움츠러들고 있으며, 복음은 '쇠 귀에 경 읽기' 식이 되고 있다. 그러므로 선교학자의 연구 과제 가운데 복음과 근대 서구 문화가 선교적 차원에서 마주칠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 묻는 것보다 더 우선적인 것은 없다."²

서구권 밖의 기독교가 눈부신 성장을 경험하고 있는 동안, '기독교 세계(Christendom)'임을 내세웠던 서구 세계는 그 어느 곳보다 복음을 배격하는 세계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 앞에서 뉴비긴은 서구 세계를 '선교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서구 세계는 기독교의 중심지이며, 서구 기독교야 말로 세계 선교를 감당해 나가야 할 주역이라는 생각이 만연해 있던 당시에, 이는 상당히 파격적인 주장이었죠. 하지만 뉴비긴은 타문화권 선교지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이 그러하듯 서구 세계를 둘러싸고 있는 문화를 복음의 빛 안에서 면밀히 관찰하고, 이에 따라 복음을 전하기 위한 태도와 방식을 설정해 나가는 '선교적 접근'이 서구 기독교에 절급함을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실제로 자신의 여생을 서구 문화 기저에 깔려 있는 근대적 세계관의 실체를 파헤치고, 이미 그러한 세계관에 물들어버린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의 진정한 정체성을 새롭게 깨닫게 하는 데 헌신하게 됩니다.³

▲인도 마드라스 주교 시절 레슬리 뉴비긴. ⓒThe United Reformed Church

▲인도 마드라스 주교 시절 레슬리 뉴비긴. ⓒThe United Reformed Church

우리는 여기서 "서구 세계에 대한 선교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뉴비긴의 주장이 당대의 사람들이 만연히 가지고 있었던 선교 지형도, 곧 선교의 주역으로서 서구 세계가 비-서구세계에 신학적·문명적 양분을 제공해야 한다는 선교적 인식을 재편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유념해야 합니다.

즉 뉴비긴의 주장은 (그가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서구 세계'와 '비서구 세계'에 대한 획일적인 관계의 한 축(서구 기독교 중심성)에 큰 충격을 준 것입니다. 그리고 뉴비긴의 선교적 경험의 토대 위에서 터져 나온 이러한 주장은 세계적으로 (조용하게, 하지만 거대하게) 발생하고 있던 기독교 지형도의 변화, 곧 세계 기독교의 도래를 포착하도록 도와줍니다.

2. 앤드류 월스: "우리는 비-서구권 기독교에 진지한 관심을 기울여야만 합니다."⁴ 

우리가 두 번째로 살펴볼 이야기의 주인공은 아마 대부분 처음 들어보는 인물이 아닐까 합니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감리교도 앤드류 월스(Andrew F. Walls, 1928-)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월스는 옥스퍼드에서 문학과 신학을 공부한 뒤, 그의 나이 서른 살에 교육 선교를 위해 서아프리카 시에라리온으로 향했던 선교사였습니다. 서구권 교회의 신학 교육을 철저히 받은 인물이었던 월스는 당대의 많은 이들이 그러했듯이 '동생 교회(선교지 교회)'에게 '형님 교회(서구권 교회)'의 축적된 신학적 지식을 전해주기 위한 마음으로 선교지로 향했습니다.⁵

이처럼 서구 기독교의 헌신된 선교사이자 당대의 탁월한 신학 교사로 대변될 수 있는 월스는 선교지에서 예상치 못한 독특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는 이 경험을 여러 은유적 표현을 사용하며 회상하는데요.

-여러 천 조각들로 누벼진 이불: 2세기 기독교에 대한 연구문헌들을 토대로 추론적으로 형성된 지식

-2세기 교회: 2세기 기독교의 모습과 놀랍도록 비슷하게 살아가고 있던 선교지의 교회

▲앤드류 월스. ⓒYoutube

▲앤드류 월스. ⓒYoutube

위 은유적 표현들이 의미하는 바를 유념하면서, 월스가 회상을 통해 우리에게 들려주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언젠가 제 자신을 강타했던 깨달음을 저는 여전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2세기 기독교에 관한 문헌이라는 여러 천 조각들로 누벼진 이불을 제가 신나게 뽐내고 있었을 때, 사실은 제 자신이 2세기 교회 안에서 생활하고 있었다는 그 깨달음 말입니다.

2세기 기독교인들이 보여주었던 삶, 예배, 공동체에 대한 인식은 사실 제가 있는 곳(선교지)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그 동안 저는 왜 (제 자신이 가지고 있던 지식) 뽐내기를 그만두고, 제 주변에서 일어나던 일들을 관찰하지 못했던 걸까요? ...

이 때의 경험은 제 평생의 학문의 방향을 전환하였습니다. 즉, 수많은 고대 문헌들로부터 추론하는 것에 몰두하기보다, 제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토대로 2세기 기독교의 자료들을 살펴보는 작업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⁶ 

교육 선교사로서 아프리카인들에게 초대 기독교 역사를 강의하던 월스는, 자신의 강의를 듣고 있던 선교지 기독교인들의 모습에서 진정한 초대 교회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곤 자신의 지식을 그들에게 뽐내며 자랑하기보다, 오히려 자신이 그들의 모습을 배워야 겠다는 생각에 이르게 됩니다.

즉 자신을 포함한 '서구 신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초대교회를 이해'하는 것보다, 아프리카 교회가 실제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모습을 통해 초대 교회를 이해하는 것이 오히려 초대 교회를 이해하는 좋은 방식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⁷  이러한 깨달음은 앤드류 월스에게 큰 학적인 전환점이 되었고, 이후 그는 서구권 밖에 존재하는 기독교에 대한 연구에 전념하게 됩니다.⁸ 

결국, 월스의 증언은 한 문화권에 속한 교회(월스의 경우엔 서구 교회)가 오래된 기독교 역사 속에 수많은 자원(월스의 경우엔 특별히 학적인 자원)을 지니고 있다 할지라도, 다른 문화권에서 뿌리를 내리고, 자라나는 교회들과 (형님 교회-동생 교회와 같은) 일방적인 관계를 맺어선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알려줍니다.

오히려 월스의 이야기는 우리가 세계 각 지역과 문화권에서 자라나는 기독교에 진지한 관심을 기울여, 그들을 통해 우리를 돌아보는 유익을 얻어야 한다는 점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마치 월스가 아프리카 그리스도인들의 삶과 신앙을 통해 초대교회의 모습을 더욱 분명히 이해하게 됐다고 고백하듯, 우리 역시 세계 각 지역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보여주는 삶과 신앙을 통해 어쩌면 우리가 잃어가고 있을 수 있는, 혹은 우리가 발견하지 못했던 복음의 측면들을 발견해나도록 말입니다. <계속>

서동준 강도사
총신대학교 신학과(B.A)와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M.Div)을 졸업하였다. '세계기독교학'을 깊이 공부하기 위해 영국 유학을 준비하고 있으며,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post.naver.com/seodj59)

각주(FOOTNOTE)

1) 레슬리 뉴비긴, 홍병룡 역, '레슬리 뉴비긴의 선교적 교회론(최형근 교수 해설)', <교회란 무엇인가?(서울: 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 2010)>, 192쪽

2) 레슬리 뉴비긴, 홍병룡 역, <헬라인에게는 미련한 것이요(서울: 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 2005)>, 11쪽

3) 레슬리 뉴비긴, 홍병룡 역, '참으로 해방된 복음: 레슬리 뉴비긴이 20세기 교회에 준 선물(마이클 고힌의 해설)', <다원주의 사회에서의 복음(서울: 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 2005)>, 462쪽
 
4) 사실 비(非)서구권이라는 표현은 '서구 편향성'을 지니는 용어입니다. 서구를 '중심'으로 해야만 비-서구라는 표현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편향성으로 인해 많은 학자들은 '다수 세계(The Majority World)'라는 표현을 선호합니다. 흔히 비-서구권에 해당하는 국가와 민족들이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기에 붙여진 명칭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저 역시 '다수 세계(The Majority World)'라는 표현을 더 선호합니다. 하지만 본문에서 사용된 비-서구라는 표현은 앤드류의 월스의 경험을 토대로 좀 더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한정적인 목적에서 사용하였습니다.

5) Walls, Andrew F. 1997. The Missionary Movement in Christianity History: Studies in the Transmission of Faith. Maryknoll, New York: Orbis Books, xiii

6) Walls, Andrew F. 1997. The Missionary Movement in Christianity History: Studies in the Transmission of Faith. Maryknoll, New York: Orbis Books, xiii

7) 김상근, '세계교회사에 나타난 선교인물(6): 앤드류 윌스의 선교신학', <기독교사상 558호(2005.6)>, 230쪽

8) 영국에 돌아온 그는 이러한 작업의 일환으로 1982년에 에버딘 대학 내 비서구기독교연구소(Centre for the Study of Christianity in the Non-Western World)를 설립하여, 비서구 기독교에 대한 연구에 박차를 가합니다. 그리고 이 연구소는 1987년에 에딘버러대학 뉴컬리지(New College, 신학부)에 옮겨지고, 이후 서구 편향적인 '비서구'라는 표현을 '세계기독교'로 전환해 세계기독교연구소 (Centre for the Study of World Christianity)로 바뀝니다. 이재근, '세계기독교학의 부상과 연구 현황: 예일-에딘버러 선교운동역사 및 세계기독교학회를 중심으로', 한국기독교와 역사, (40), 2014. 384-3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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