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이사장 박진탁 목사, 이하 본부)는 얼마 전 향년 74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한 故 이훈구 전도사가 의학 발전을 위해 시신을 기증하며 마지막 순간까지 거룩한 사랑을 남겼다고 밝혔다.
70명 자녀 둔 부부, 물질보다 중요한 것은 사랑
“죽음을 슬퍼하는 장례식이 아니라, 천국에 입성한 남편을 축복하는 환송식이에요.”
지난 6월 27일, 故 이훈구 전도사의 시신이 고인과 유가족의 고귀한 뜻에 따라 경희대학교 의과대학에 인도됐다. 남편의 마지막 모습을 바라보던 이 씨의 아내 최연화(70세) 씨는 “발인 후 장례 절차가 없으니, 오히려 남편을 깊이 추억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시간”이라며 시신 기증에 대한 의연한 마음을 내비쳤다.
부부는 1995년부터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맡아 돌보기 시작한 일이 점점 늘어나 경기도 안성시 소재의 아동양육시설을 함께 운영하며 일평생 소외받은 아이들의 울타리로 살아 왔다. 이훈구 전도사가 백합그룹홈을, 최연화 씨가 수산나네집의 원장을 역임하며, 제 자식처럼 살갑게 먹이고 입히는 등 함께 키워낸 아이들만 무려 70여 명에 이른다. 특히 이 전도사는 아동양육시설에서 은퇴한 이후에도 지적장애를 가진 시설 아이들의 산책을 도맡아 할 정도로 애정이 깊었다. 정년을 마친 두 사람은 최근까지 요양보호사로 일하며, 캄보디아에 직접 세운 미션스쿨의 운영비를 매월 지원해 왔다.
주변 사람들에 ‘천사’라고 불리던 사람
여러 차례 암으로 투병하며 많은 고비를 넘겨온 고인은 1년 전 또다시 발병한 암을 치료하던 중 폐렴 증상이 위중해졌다. 그리고 지난 6월 25일 일흔네 번째 생일을 하루 앞두고 유명을 달리해 주변을 안타깝게 했다.
“사람들이 남편을 천사라고 불렀어요. 어려운 시절에는 먹고 사는 데 도움이 안 되는 그 별명이 참 싫었는데, 이제 와 보니 천사 같은 남편의 지지가 있었기에 수많은 아이를 길러낼 수 있었다는 것을 알겠어요.”
최 씨는 아이들 일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자신을 묵묵히 따르며 힘든 내색 한 번 없이 마지막까지 나눔의 여정에 동행해 준 남편을 추억했다. 생전 안성제일장로교회를 섬기며 신학 공부를 해온 이 전도사는 주중에는 아이들을 돌보다 주말에는 전도사로 활동하며, 교통비 한 푼 받지 않고 개척교회 사역을 도운 것으로 알려졌다.
아내는 신장 기증으로 환자 생명 살리고
남편은 시신 기증으로 환자들에 희망을
고인은 오래 전부터 생명 나눔에 대한 뜻을 확고히 했다. 가족들은 고인이 생전 “언젠가 한 줌 재가 되어 하늘나라로 갈 몸인데, 하나님의 사랑으로 만들어진 세포 하나하나가 다른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좋은 재료”라며, 자신의 생명을 고통 가운데 있는 이웃과 나누고 싶어 했다고 회고했다. 아내 최연화 씨는 1997년 7월 일면식도 없는 만성 신부전 환자를 위해 아무런 대가 없이 자진의 신장 하나를 나눈 생존 시 신장기증인이다. 그리고 당시 그 곁에서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준 이가 바로 남편 이훈구 전도사였다.
임종 직전 누군가 대화하는 듯 손끝을 움직이다 싱긋 웃음 지어 보이던 남편을 잊을 수 없다는 최 씨는 “남편의 기증이 우리 아이들에게 귀감이 되고, 의학 발전에는 밑거름이 되어 후대의 건강 증진에 기여하는 뜻깊은 나눔이 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한편 이 전도사의 발인예배를 맡은 안성제일장로교회 고정열 원로목사는 “일평생 헌신적인 삶을 살아온 이훈구 전도사님께서 생명을 살리기 위한 마지막 사역을 시작하셨다”며 고인과의 이별을 애도했다.
본부 박진탁 이사장은 “생명 나눔의 거룩한 의지를 보여 주신 고인의 뜻을 오래도록 기억하겠다”며 “고인의 숭고한 사랑이 절박한 기다림 속에 질병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에게 큰 희망이 될 것”이라고 존경의 마음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