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셉 칼럼
아니면 동성애자를 헤테로포비아나 반동성애혐오자로 쓰라
위키피디아(Wikipedia)에 의하면 ‘호모포비아’(homophobia)란 용어는 그리스어 포보스(φόβος)에서 유래된 말로 ‘두려움’ 또는 ‘병적인(소름끼치는) 두려움’이라는 뜻을 갖고 있으며, 심리치료사와 작가였던 조지 와인버그(George Weinberg)가 1969년 5월 23일 미국 포르노 잡지인 Screw에 처음 언급해, 동성애에 대한 이성애자의 두려움을 나타내는 뜻으로 사용돼 왔다고 한다. 그 결과 오늘날엔 호모포비아 또는 동성애혐오자란 용어가 ‘동성애를 반대하는 사람들’로 통칭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이 용어에 심각한 편견과 오류가 내포돼 있음을 인지 못한 채 습관적 또는 의도적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동성애자 박해의 역사를 가진 미국에서 심리적 저항 또는 박해 피해의 보상심리로 사용돼 온 용어가, 전혀 무관한 우리나라에서 그대로 사용되고 있음에도 아무런 문제의식 없다는 건 심각한 잘못이다.
정신분석용어사전에 의하면 포비아(phobia)는 객관적으로 볼 때 위험하지도 불안하지도 않은 상황이나 대상을 필사적으로 피하고자 하는 증상(공포증)을 말한다. 그리고 서울대학교병원 의학 정보에는 특정한 물건, 환경, 또는 상황에 대하여 지나치게 두려워하고 피하려는 불안장애의 일종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며, 공황장애, 불안장애, 우울장애, 광장공포증이 이에 해당한다고 돼 있다. 자, 그렇다면 이 무시무시한(?) 용어를 아무 데나 붙이면 어떻게 될까? 자신의 견해에 반대하는 사람을 매도하거나 비난하기 위해 이를 사용하면 세상에는 모두 공포증환자로 넘쳐날 게 뻔하지 않겠는가?
그런데도 유독 동성애자들이, 전통적으로 다수이며 지극히 정상적인 이성애자를 향해 ‘호모포비아’란 용어를 남발함에도, 아무런 이의제기 없이 허용되고 있다는 건 무엇을 뜻하는가? 그런 식의 논리라면 동성애자들은 ‘헤테로포비아’(heterophobia: 이성애공포증, 이성혐오)나 ‘동성 성중독자’(homo-sexual addict)로 불려야 마땅하지 않은가? 이렇게 논리에 어긋나는 신조어가 마치 현대 교양어인 것처럼 자리매김한 데는 사대주의적 학자·교수·지식인·언론인들의 묵시적 동의 내지는 직무유기가 기저에 깔려 있다. 외국어를 번역하거나 외래어로 사용함에 있어선 정확해야 하고, 우리 사회의 전통과 문화적 배경을 참작하여 신중히 번역하고 도입해야 훌륭한 번역 글과 거부감 없는 외래어가 될 것이다. 그런데 어설프게 외국어를 직역 또는 잘못된 모국어로 번역하거나 외래어로 할 경우엔 오독(誤讀)되거나 엉뚱한 해프닝이 발생한다. 지금 통용되고 있는 호모포비아처럼 말이다.
차용어(借用語) 연구에 관한 고전적 업적을 남긴 독일 학자인 베르너 베츠(Werner Betz)는 외래 차용어의 수용 양식을 외국어, 외래어, 부분 바꿈, 번역 차용, 신조어, 뜻 차용으로 분류했다 한다. 이에 비추어 볼 때, 호모포비아는 영어의 카페(Café, 프랑스어에서)처럼 외국어 낱말을 어떠한 변형 없이 그대로 들여온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그런데 이를 동성애자 집단에서만이 아닌 언론에서까지 그대로 사용해, 심각한 거부감과 불쾌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는 데 문제가 있다.
호모포비아라는 외국어가 동성애 집단에서 ‘동성애혐오자’란 뜻으로 통용됨을 알면서도 이를 아무런 여과 없이 언론방송에서 그대로 사용하고, 일반 국민들에게 무방비로 노출시키고 은연중 강요하고 있다면, 이는 심각한 언어폭력이자 동성애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 국민들을 모독하고 불쾌케 만드는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동성애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 상당수 일반 국민들이 존재함에도, ‘개독’이란 저속어와 맞물려 함부로 남발되다 보니 선뜻 이의 제기조차 못하는 지경으로 내몰려 언어 테러를 당하고 있으니 개탄스럽지 않을 수 없다.
정치학자와 언어학자인 김준형과 윤상헌이 공저한 『언어의 배반』(뜨인돌, 2013)의 서문엔 “우리는 보통 욕설, 막말 등을 언어폭력이라고 이야기하지만……나도 모르게 권력에 중독된 언어로 타인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권력자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를 ‘언어의 배반’이라 칭하기로 한다”고 설명돼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권력과 언론을 등에 업고 ‘호모포비아’란 폭력적 언어를 사용하는 순간, ‘언어의 배반’의 수렁에 빠지게 된다. 동성애자들이 동성애를 반대하는 이성애자들을 무조건 호모포비아로 매도하는 순간, 설령 박해를 받았던 경험이 있는 동성애자들이라 하더라도 동일한 언어폭력을 휘두르고 있는 셈이다. 새디즘적인 보복심리로써. 하물며 동성애박해의 역사가 없는 대한민국에서 호모포비아를 남용하는 건 심각한 언어폭력이자 사실왜곡인 것이다.
동성애를 지지·찬성하는 사람들을 자세히 살펴 보면, 동성애 단순 묵인·방관자, 심정적 지지자, 소극·적극적 우호자, 일시경험자, 장기몰입자, 평생몰입자,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동성애로의 재(再)전향자, 온건·과격 동성애운동가 등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럼에도 그들 전체를 향해 ‘헤테로포비아’(heterophobia)라고 비난하거나 ‘동성 성중독자’(homo-sexual addict)로 명명해오지 않았는데, 그렇게 호칭한다면 그들 기분은 어떨 것인가?
동성애를 반대·거부하는 사람들도 자세히 살펴보면, 동성애 단순 거부자, 심정적 기피자, 소극·적극적 비판자, 일시·장기적 동성애 반대운동가, 이성애로의 전향자, 완전 탈동성애자, 온건·급진 동성애 반대자, 동성애자를 미워 않고 사랑과 기도로 도우려는 자, 동성애 혐오자 등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럼에도 그들 전체를 향해 ‘호모포비아’(동성애혐오자)로 규정해 호칭한다면 그들 기분은 또 어떨 것인가?
동성애자 그룹이든 이성애자 그룹이든 너무나 넓은 스펙트럼이 존재함에도 우리는 쉽게 단순화시키고 한 가지 잣대로 재단하는 경향이 크다. 지금 대한민국 정치권에서의 프레임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는 매우 편협한 분류이며, 편의적 발상에 기인한 잘못된 레이블링(labeling: 딱지, 꼬리표)이다. 21세기 정치학대사전에 보면, 레이블링은 ‘사람이나 행위, 사건 등에 부정적인 꼬리표를 붙임으로써 그 대상을 일탈화하는 의미부여 활동’을 가리킨다. 지금까지 대한민국 언론을 비롯한 전 세계 언론이 동성애를 반대하는 이들을 향해 그러한 레이블링을 해왔기에, 이제는 더 이상 이를 좌시할 수 없다.
차제에 언론종사자들에게 부탁드리는 바, 앞으로는 호모포비아란 용어를 함부로 사용치 말고 ‘동성애반대자’ 또는 ‘반(反)동성애자’라는 명칭으로 사용해 주길 정식으로 요청하는 바이다. 만일 이러한 제안을 묵살하고 앞으로도 계속 호모포비아나 동성애혐오자를 언론에서 사용할 경우엔 좌시하지 않을 것이며, 해당 언론사와 기자에게 항의하고 단계적으로 구독·시청거부운동, 명예훼손 및 모욕에 상응하는 법적 조치를 밟아나갈 계획임을 천명하며 대한민국 언론 종사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촉구한다.
첫째, 지금껏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동성애를 거부하거나 반대하는 사람들을 일괄 ‘호모포비아’ 또는 ‘동성애혐오자’란 용어로 모독하고 명예를 훼손한 걸 반성하기 바란다.
둘째, 지금껏 아무런 비판의식 없이 ‘호모포비아’(homophobia)란 외국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이를 ‘동성애혐오자’로 번역해 기사화시키거나 방송한 걸 깊이 뉘우치고 재사용치 않기 바란다.
셋째, 앞으로 동성애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거나 거부감을 갖는 사람들을 ‘호모포비아’란 용어 대신 ‘동성애반대자’ 또는 ‘반동성애자’(antihomosexuality, antihomo)란 용어로 대체해 사용해 주기 바란다.
넷째, 만일 호모포비아를 계속 사용할 경우, 그에 상응하여 동성애자들에 대해 ‘헤테로포비아’ 또는 ‘반동성애 혐오자’로 지칭해 형평성 있게 사용해 주기 바란다.
다섯째, 일방적으로 동성애자들의 입장만을 비호하고 두둔하여 대다수국민들의 인격권을 무시하고 모욕감을 준 과오를 철저히 반성하고, 현재 대한민국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동성애 반대자들의 시각을 공정성의 원칙에 입각해 균형 있게 보도해 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