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예수’가 선포한 하나님나라, 그 총체적 구원의 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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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뉴스 서평] 김균진 박사의 <예수와 하나님 나라>

예수와 하나님 나라
김균진 | 새물결플러스 | 544쪽 | 25,000원

역사를 연구하는 방법 중 '기억의 정치학'이라는 방법이 있다. 이것은 국가권력의 공식기억과 민중의 대중기억이 서로 충돌하고 타협하면서 역사를 다시 쓰는 기법이다. 이 방법으로 역사를 보게 되면, 그동안 우리가 보편적으로 알았던 해석과 방법들 이면에 있는 새로운 현장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우리의 이해와 지평을 넓혀준다. 뿐만 아니라 승리주의적이고 결과론적으로 받아들어졌던 역사를 균형감 있고 정확하게 보게 해 주는 장점이 있다.

그런 면에서 처음부터 완성된 과거는 없다. 이미 다 결정되어 화석화된 것처럼 보이는 과거와 사건들이지만, 실은 우리가 인식하지 못한 새로운 가능성과 잠재성을 갖고 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한 단면일 뿐이지 사물의 전부는 아니고, 그렇게 될 수도 없다. 우리의 주인 되시고 구원자 되시는 예수님의 존재와 당시 사건들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복음서 기자들은 다양하게 예수님의 탄생과 삶과 사역들을 조명하며 해석했다.

그동안 우리는 예수님의 존재와 사역을 왕과 선지자와 제사장이라고 배웠다. 그리고 그 전통을 따라 신약에서 예수님의 실제 삶을 제대로 보지 않은 채, 예수님을 그 호칭에 해당하는 이미지로 인식해 왔다. 그러나 우리가 세밀히 복음서를 살펴보면, 예수님은 묵시사상에서 말하고 유대인이 간절히 원하는 왕도, 제사장도, 선지자도 아니셨다. 예수님의 존재와 그분의 목적은 후대에 정의된 직분과 칭호로 다 밝혀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물론 후대의 해석만으로 우리는 예수님의 존재를 알 수 없다는 게 아니다. 다만 예수님께서 자신을 향한 말씀과 사역을 보면, 주님의 존재와 목적을 더욱 깊이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은 사람들이 원하는 메시아이기를 철저히 거부하시고 죽음의 길로 향한다. 예수님은 자기 존재를 드러내는 게 목적이 아니셨고, 그의 모든 선포와 활동은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것에 집중돼 있다.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니라, 자기를 비우고 포기하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복종하신 분이시다.

이 책은 예수님의 탄생에서부터 그의 죽음과 부활에 이르기까지, 예수님의 말씀과 삶을 하나님나라 관점에서 서술했다. 예수님과 관련해 역사적이고 사회적이며 정치적이고 종교적인 배경 속에서 일어난 구체적인 사건들과 말씀들을 기술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이 특정한 칭호를 통해 자신을 알리는 것보다, 의와 평강이 넘치는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세우는 것에 총력을 기울이셨음을 입체적이고 총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그래서 책은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나라가 이 땅에 어떻게 임재하고 실현되며 이루어지는지 다루고 있다. 기존 묵시사상과 유대인들이 갖고 있던 심판·권세 있는 왕의 모습을 철저히 부수고, 죽음으로서 임하는 하나님나라를 그려내고 있다. 또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세속성과 종교성으로 이루어진 우리의 일그러진 욕망과 자화상도 계속 무너뜨리면서 우리의 인식을 새롭게 하고 있다. 그 하나님나라의 침투와 예수님의 모습이 우리를 엎드리게 한다. 그 분은 실로 죽음을 통해 이 땅에 죽음을 극복하고 생명을 불어넣는 하나님나라 자체이시다.

본서는 총 5부 18장으로 이루어졌다. 1부 '예수의 역사적 배경'에서는 중간기 시대의 역사와 예수님 당시의 정치·경제·사회·종교적 상황을 상세히 다루고 있다. 특히 중간 시대 역사는 복잡해서 이해하는 게 어려운데, 저자는 이 부분을 잘 요약하며 설명해 준다. 2부 '메시아 예수의 오심과 그의 인격'에서는 하나님나라의 담지자로서 메시아 예수님의 오심과 되어감 속에 있는 예수님의 메시아적 인격이 다루어진다. 여기서는 예수님의 탄생과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삶을 통해 그의 메시야 되심이 어떤 것인지 전방위적으로 소개된다.

3부 '사회 속에 있는 하나님 나라'에서는 주님의 나라가 죽어서 가는 천당이 아니라 우리 살아가는 구체적인 삶의 현실에 침투하여, 타락한 것을 고치고 점진적으로 거룩하게 확장되는 나라로 소개된다. 또 그 나라가 한 개인의 구원의 확신으로 종합되고 마무리되는 게 아니라, 현실적 물질 세계 속에서 어떻게 펼쳐지고 만물의 통치가 이루어지는지 다뤄진다. 아울러 가난과 소외와 차별, 억압과 착취가 해소돼 참 평화가 모두에게 역사하는 나라를 소망하게 된다.

4부 '종교와 하나님나라'에서는 인간이 종교의 형식들을 위해 존재하는 일그러진 종교와 법들을 뒤집으셔서, 종교와 율법과 규칙들이 인간의 행복을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바꾸시는 하나님나라를 그려내고 있다. 예수님은 타락한 성전과 변질된 제사와 오용되는 율법을 철폐화시키고, 인간의 행복과 평화가 이루어지는 질서를 다시 세우신다. 하나님의 참 뜻이 반영되는 종교와 법을 세우셔서 당신의 나라를 펼치신다.

5부 '십자가와 부활 속에 있는 하나님나라'에서는 십자가 형벌이 인간의 죄를 사하기 위한 종교적 죽음이었지만, 또한 당시 상황 속에서 부당하게 당한 예수님의 '정치적 죽음'이었음을 설명한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죽음은 개인의 회복과 사회·정치적 질서의 변화를 이루고, 이 땅에 모든 폭력을 종식시킨다. 아울러 예수님의 부활은 그의 무능력해 보이는 죽음이 실패가 아니라, 역설적인 승리이고 새로운 나라의 시작의 확증과 보증이다.

필자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펼쳐지는 본서를 통해 세 가지의 특징을 말하고 싶어한다. 하나는 하나님상(像)의 혁명이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가부장적 질서 속에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을 부각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본서를 통해 예수님의 삶과 말씀을 보면, 어머니 같은 한없이 자애로운 하나님의 모습이 그려진다. 독재와 정복자 같은 폭군이 아니라 자기를 희생하고 생명까지 헌신하는 자비로운 어머니의 모습이다.

가난한 자들에게 먹을 것을 공급해 주고, 사회적 구조 자체가 타락해서 부당하게 착취와 억압당하는 자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며 마음을 풀어주시는 것은, '어머니 되신' 하나님께서 깊이 하실 수 있는 일이다. 율법으로 불의하다 정죄당하고, 멸시와 조롱받는 자들과 거리의 거지들, 낙오된 양 한 마리까지 '하나님 어머니'께서 다 품어낼 수 있다. 이렇듯 본서는 여성신학적 관점을 넘어, 상실된 인간성과 인간과 피조세계의 존엄성 회복을 위한 '예수를 통한 하나님 어머니'를 충분히 볼 수 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의 포괄적 역사를 강조한다. 실제 예수님께서 불의한 정치와 사회 속에 하나님나라가 구현되는 위대한 일을 이루실 수 있었던 것은, 성령으로 충만하셨고 그 위에 항상 주님의 영이 머무셨기 때문이다. 또 주님은 구약에서부터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로 예언됐고,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도 성령님의 오심으로 하나님나라의 구체적 이야기가 펼쳐짐을 알 수 있다.

/방영민 목사(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전주서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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