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과 부활절을 맞아 '시앙스 앙피즈', '신학서적 중고장터' 공동 주최로 열린 공모전 '예수 죽음 부활' 수상작 심사평을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1. 특별상: 이경석, "교회의 개혁과 갱신- 부활 신앙에 대한 소고"
본 에세이는 "교회의 개혁과 갱신"이라는 주제를 부활 신앙을 중심으로 논하고 있다. 한국교회의 개혁과 갱신의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최근 한국교회의 커다란 화두가 되고 있는 "가나안 성도" 문제를 글의 서두에 언급하면서 한국교회의 문제점들 중 하나로 "신앙과 실천의 개인주의화와 사적인 영역으로의 환원"임을 잘 지적하면서 글을 시작하고 있다.
필자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여 참된 교회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복음에 대한 신자의 신앙과 실천을 결합시키는 데 있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이런 복음의 핵심은 예수의 부활 사건을 중심으로 형성된 부활 신앙이라고 주장하면서, 이런 부활 신앙이 무엇인가를 제자 공동체로부터 초대교회로 발전해 가면서 어떤 모습으로 형성되어왔는지에 대해 신약 신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구체적으로 설명하면서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 부분은 일반적인 내용이긴 해도, 잘 요약 정리된 것 같다. 그런데 이 에세이는 근본적으로 몇 가지 문제들이 있는 것 같다. 첫째, 논의하는 내용에 비해 제목이 너무 거창하다. 평가자가 보기에는 교회의 개혁과 갱신, 그리고 부활 신앙. 이 세 가지 주제를 짧은 에세이에 담는다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이다. 둘째, 부활 신앙에 대해서는 내용은 좋지만 에세이라기보다는 신약신학 연구논문의 몇 쪽을 읽는 듯한 느낌인데, 가나안 성도라는 한국교회의 문제와의 어떤 연관이 있을까 의구심이 든다.
셋째, 이 에세이가 가진 가장 큰 문제는 별다른 설명도 없이 갑자기 변선환 교수를 교회의 개혁과 갱신을 부활신앙으로 해결할 수 있는 열쇠를 주는 분으로 주장하면서, 바르트와 판넨베르그를 본회퍼와 이태석 신부와 대립되는 인물로 비교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자에 대해 평가절하하면서, 우리가 따라야 하는 모델이 후자라고 주장하는 부분은 근거도 너무 미약하고 편협한 주장 아닐까.
2. 에세이: 김종성, "부활을 부활답게, 죽은 자의 돌아옴을 기다리며"
본 에세이는 예수님의 장례를 도왔던 부자 이야기를 아주 잘 묘사해 주고 있다. 이 부자가 십자가에서 고통 가운데 죽은 예수를 장례 지내줌을 통해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를 기억하는 일을 도왔다는 사실을 아주 리얼하게 잘 그려주고 있다.
그런데 글을 읽어보면 필자의 의도는 이런 예수님의 죽음을 기억하거나 기억하도록 도와주자는 것만이 아닌 것 같다. 어렴풋하게 알 것 같긴 한데, 필자가 얘기하는 "죽은 자의 돌아옴"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하는 질문이 생긴다. 평가자의 입장에서는 예수님의 부활에 깊이 묵상하는 것과 이 죽은 자의 돌아옴에 대한 묵상이 어떤 관련성이 있는지 좀 아리송하다.
그런 면으로 보면 이 글은 쉬운 듯 하면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그런 면에서는 아쉬움이 남는 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 자체로 보면 대단히 잘 읽히고 설득력도 있고 좋은 글이라 생각한다.
3. 참고문헌: 권민수, "아 참! 읽히지 말아야 할 책들을 알려주마"
참고문헌 부분에 응모한 이 글은 여러가지 면에서 유익하고 재미나고 또 꼼꼼하게 주제와 관련해서 읽어야 하는 참고문헌을 잘 소개해주고 있다. 일단, 주제와 관련되어 필요한 참고문헌들을 잘 선별해 소개해 주고 있고, 소개해 주는 책들의 내용이나 그 책들이 가지고 있는 의미와 비중에 대해 아주 잘 설명해주고 있다. 글을 재미나게 쓰고 있다는 점 또한 큰 장점이다.
4. 서평: 윤유석, "그 자체로서의 십자가와 넘치는 십자가"
차재승 교수의 책 『7인의 십자가 사상』에 대한 서평이다. 아주 잘 쓰여진 서평이다. 먼저 서평으로서의 기본적인 틀에 충실하고 있다. 책 내용을 잘 요약해 주고 있고, 그런 다음 이 책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점에 대해 서평자가 비판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 비판적인 평가를 해고 있지만 책 저자의 의도를 충분히 밝혀주면서 비판을 하고 있기 때문에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니라, 대단히 건설적인 비판이다.
신학을 어떤 범주에 두고 해석을 할 때 생기는 문제점들을 잘 지적한 서평이라는 생각이 든다. 보다 나은 해석을 위해 사용한 틀이 오히려 올바른 해석을 방해할 수도 있다는 점을 다시 상기시켜주는 서평이라는 점에서 좋은 서평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