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혁 칼럼] 어거스틴의 세속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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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교회 김명혁 목사의 교회사 이야기 (31)

				▲김명혁 목사(한국복음주의협의회 대표, 강변교회 담임)
▲김명혁 목사(한국복음주의협의회 대표, 강변교회 담임)

교회가 당면하고 있는 어려운 문제들 중의 하나는 교회와 세상과의 관계의 문제다. 그리스도인들은 현세와 세속 질서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적대적인 ‘분리주의’, 포용적인 ‘적응주의’, 문화 완성적인 ‘종합주의’ 또는 변증법적인 ‘변혁주의’의 입장을 취할 것인가?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직면해오는 ‘영속적인’(enduring) 문제이다. 여기서 초대교회와 어거스틴이 지녔던 세상과 세속에 대한 입장과 견해들을 살펴본다.

초대교회의 세속관

세상의 멸시와 박해를 받던 초대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대체로 세상에 대하여 적대적인 ‘분리주의’의 입장을 취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요일2:15)는 요한의 권면 가운데 그들이 취했던 세속관이 잘 나타나 있다. 이와 같은 분리주의를 터툴리안(Tertullian)에게서 본다. 니버(H. R, Niebuhr)는 터툴리안을 ‘반문화적’ 입장(Christ against Culture)의 대변자로 분류하며, 터툴리안은 “원죄가 사회 질서 속에까지 스며들어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터툴리안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속 질서에서 멀리 떠나야 하며 세속적 집회와 세속적 직업을 멀리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한편, 복음과 세속(문화) 질서는 서로 상치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적응하고 보완하는 관계를 가진다고 믿는 ‘적응주의’가 나타났다.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문화적 관점에서 해석하고 그리스도와 사회적 전통 및 습관과의 갈등을 해소시키려는 경향이 기독교 영지주의자들에게서 나타난다. 이들은 기독교를 그들의 문화에 적응시키려 했으며(to accommodate), 따라서 당시 그들의 문화 생활에 참여하는 것을 조금도 꺼려하지 않았다.

또 한편, 복음과 문화의 주장을 공히 만족시키고 완성시키려는 ‘종합주의’가 클레멘트(Clement)에게서 나타난다. 클레멘트는 양자의 주장을 종합해 하나의 완성되고 통일된 생활 원리를 제시하려고 했다. 클레멘트에 의하면 그리스도인은 무엇보다 먼저 그 사회에서 도덕적으로 존경을 받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며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영적 삶을 살도록 힘써야 한다. 즉 클레멘트는 사회, 문화 질서가 요구하는 도덕적 삶을 (영적 삶과 모순되는 것으로 보지 않고 오히려) 영적 삶에 이르는 준비적 단계로 본 것이다.

어거스틴의 세속관

1) 세속 질서의 비종교성: 어거스틴은 세속 질서나 사회제도에 어떠한 도덕성이나 종교성을 부여하려고 하지 않았다. 교회도 하나의 사회 제도인 이상 본래적인 신성성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도나티스파(Donatists)는 두 영적 질서를 두 종류의 세속 질서와 동일시하여 이해하려고 했으나, 어거스틴은 이와 같은 세속 질서의 영적 양분법을 인정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는 성도들로만 구성된 교회가 하나도 없고 죄인들로만 구성된 국가도 없기 때문이다. 어거스틴이 “세상은 악하다”(malus est mundus)라고 했을 때 인간의 육체나 자연계나 사회 질서를 의미한 것이 아니라, 타락한 인간의 본성 즉 도덕적 질서를 의미했던 것이다.

2) 세속 질서의 죄악성: 어거스틴의 세속관은 비종교성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면을 드러내고 있다. 어거스틴은 정치, 사회, 문화 활동이나 인생 자체도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 모든 인간이 원죄의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현세의 행복이란 장차 누릴 행복과 비교할 때는 불행한 것뿐이다. 그러므로 어거스틴은 현세의 생활을 “가련하고 비참한” 생활이라고 묘사했다. 하나님과 더불어 내적 평화를 누리고 있는 그리스도인들까지도 지상에서는 계속 죄와 싸우고 있으며 육체의 세력에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어거스틴은 세속 질서나 문화가 복음의 능력으로 완전히 변혁되리라고 믿지도 않았고 기대하지도 않았다.

3) 세속 질서의 자연 및 구속사적 의미: 어거스틴은 세속 질서에 대하여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입장을 나타냈음에도 불구하고, 땅 위에 있는 모든 존재를 선한 피조물로 보았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은혜로우신 하나님의 선물로 극구 예찬했다. “하늘과 땅과 바다의 다양한 아름다움. 해와 달과 별들의 찬란한 빛의 풍요함과 아름다움, 가지 각색 깃을 가지고 갖가지 소리로 지저귀는 새들. 내가 바다에 대해서 말하리요? 초록색, 자색 그리고 푸른색으로 옷을 갈아입는 그 장엄한 바다! 폭풍의 바다를 바라보라, 그 얼마나 즐거운가!”

어거스틴은 또한 현세의 역사 발전 과정과 세속 질서를 “목적에 이르기 위한 수단”이나 “잠정적인 과정”에 불과한 것으로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섭리와 통치 가운데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인간 구원의 섭리가 이루어져 가고 있다고 보았다. 역사의 과정과 세속 질서의 영역이야말로 죄인들이 변하여 한 사람, 두 사람 하나님 나라의 구성원들로 등록이 되는 응모 장소이다.

어거스틴의 세속관에는 변증법적 요소가 있다. 세속 질서를 죄악의 영역으로 일축해 버리지도 않았고, 하나님 나라가 실현될 영역으로 생각하여 커다란 기대를 걸지도 않았다. 즉 어거스틴은 세속 질서에 대하여 부정적이면서도 긍정적인 입장을 취했다. 하나님의 나라가 세속 질서 안에서 완전히 실현될 수 없으며 세속 질서 안의 인간 생활은 “가련하고 비참하다”고 할 수 밖에 없다. 물론 세속 질서 안에서 두 종류의 사람들이 인간 복지의 공동 목표를 위해 함께 일할 수 있기는 하지만, 달성될 수 있는 한계는 극히 제한되어 있다. 인간은 사회질서를 유토피아적 이상으로 변혁시킬 수는 없다. 어거스틴의 이와 같은 “우울한 실재론”(gloomy realism)은 현대의 낙천적 진보주의의 입장과는 거리가 멀다. 이는 또한 칼빈주의적 문화 변혁주의 개념과도 구분된다고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말에 완성될 구원이 세속 질서 안에 이미 부분적으로 실현되어 가며, 구속의 사역과 인간 변혁의 과업이 지금 현재 개인 개인 안에서 이루어져 가고 있기 때문에, 세속 질서 안에서의 인간 생활 자체는 깊은 의미를 갖게 된다. 하나님의 구속의 섭리에 대한 전적인 신뢰 때문에 비관적 어거스틴은 낙관적 어거스틴이 되는 것이다. 콜롬비아 대학교수 딘(Deane) 박사가 지적한 대로, 어거스틴의 “우울한 실재론적 세속관”은 인간 본성과 세속 질서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는데 정당한 통찰력과 교훈을 제공해 주고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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