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주 목사, 원문과의 비교검토 소홀 지적
개역개정판 성경의 오역 논란이 재점화되고 있다. 예장합동과 통합, 고신 등 주요 교단에서 이미 개역개정판을 사용하고 있는 가운데 장신대 출신 강원주 목사가 1일 서울 연지동 한국교회언론회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개정개역판은 개정(改正)이 아닌 개악(改惡)”이라고 주장했다.
강원주 목사는 이날 자신이 쓴 ‘개역개정판에 대해 말한다(도서출판 소망)’을 들고 나왔다. 이 책에는 개역성경의 바른 번역을 개역개정판에서 왜곡한 8백여곳의 사례를 분석하고 히브리어와 헬라어 원문과 대조해 해설했다.
기자회견에서 강 목사는 “‘7만3천여곳이 수정됐으므로 그래도 개역판보다는 개역개정판이 낫지 않겠느냐’고 개정위원들은 말하지만 이는 어불성설”이라며 “수정된 부분의 대다수는 현행 맞춤법에 따라 고친 것이지만, 문제는 원문과의 비교 검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라고 밝혔다.
강 목사는 구체적인 오역 사례로 창세기 27장 34절의 ‘에서가 그 아비의 말을 듣고 방성 대곡하며 아비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하소서’의 ‘방성 대곡’을 개역개정판에서는 ‘소리내어 울며’로 바꾼 것을 들었다. 그는 “히브리어 원문으로는 에서가 우는 모양을 ‘매우 크게, 격동적으로 심히 울부짖는’이라는 뜻의 6개나 되는 단어를 사용해 수식하고 있다”며 “개역개정판의 번역은 원문의 의미를 약화시킨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수기 11장 6절의 ‘이제는 우리 정력이 쇠약하되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를 ‘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라고 개정한 것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개역판은 만나 외에는 먹지 못해 기운이 다 빠졌는데도 먹을 것이라고는 만나밖에 없다는 뜻인데, 개역개정판은 기력이 다 빠져서 다른 음식이 있음에도 만나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내용으로 해석될 수 있다”며 현대어로 바꾸려면 차라리 ‘우리의 기력이 다하되’로 바꿔야 한다고 했다.
기자들이 신학적으로 결정적인 문제를 불러올 수 있는 오역이 있느냐는 물음에는 신약 고린도전서 1장 30절과 로마서 4장 17절을 들었다. 고린도전서 1장 30절의 개역판에는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라고 돼 있으나, 개역개정판에는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라고 돼 있다. 강 목사는 이에 대해 “구속과 구원은 엄연히 원문상으로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며 “이것(구속과 구원의 차이)은 신학교에 가면 가장 기초적으로 배우는 것들”이라고 주장했다.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의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는 로마서 4장 17절 말씀도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분을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로 번역한 것이 잘못됐다고 밝혔다. 개역개정판의 번역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는 표현이며, 신학적으로 중요한 오류를 범한다는 것이다.
강 목사는 개역개정판을 만들 당시 개정감수위원들의 발언을 인용하며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개정감수위원회 서기였던 김중은 총장(장신대)은 강 목사와 지난 2004년에 만난 자리에서 “감수작업을 위해 최소한 3개월의 시간을 더 달라고 했으나 허락되지 않았다.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고 말했다고 강 목사가 밝혔다. 당시 김 총장이 그에 대한 보수를 받지 않겠다고까지 하면서 개정감수위 측에 강력히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개정감수위원회의 또다른 서기였던 도한호 총장(침신대)의 논문 ‘개역개정의 의의와 방법’에 나와있는 진술도 언급됐다. 도 총장은 논문에서 “시간에 너무 쫓겨 처음 계획대로 할 수 없었고, 작업을 서두르다 원문 확인없이 개정될 우려가 있었다”고 했다고 강 목사는 덧붙였다.
강 목사는 “개정개역판을 사용하는 교회들은 곧바로 이를 중단해야 하며, 성경공회 측은 한국교회 앞에 사과하고 개역개정판 보급을 당장 중지하며, 이를 회수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