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삼 목사 설교] 하나님의 산에 올라가! - “시내산에서!”

김진영 기자  jykim@chtoday.co.kr   |  
▲김병삼 목사(만나교회)
▲김병삼 목사(만나교회)

날짜: 2013년 11월 17일
본문: 출애굽기 19:1~6절
설교: 김병삼 목사
제목: 하나님의 산에 올라가! - “시내산에서!”

[출애굽기 19장 1-6절]
1.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을 떠난 지 삼 개월이 되던 날 그들이 시내 광야에 이르니라
2. 그들이 르비딤을 떠나 시내 광야에 이르러 그 광야에 장막을 치되 이스라엘이 거기 산 앞에 장막을 치니라
3. 모세가 하나님 앞에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산에서 그를 불러 말씀하시되 너는 이같이 야곱의 집에 말하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하라
4.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르비딤에서 무슨 일이?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떠난 지 삼 개월 만에 시내 광야에 이르게 됩니다.
(지도를 한 번 살펴볼까요? 그리고 지금까지 여정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시내산에 오르면서 느낀 점을 한번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시내산에서 일어난 일을 생각하기 전에 오늘 본문 1절과 2절에 먼저 주목해 보겠습니다.
1.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을 떠난 지 삼 개월이 되던 날 그들이 시내 광야에 이르니라
2. 그들이 르비딤을 떠나 시내 광야에 이르러 그 광야에 장막을 치되 이스라엘이 거기 산 앞에 장막을 치니라
출애굽한지 3개월 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기적과 시련, 그리고 믿음의 시험을 거쳐 이르게 된 곳이 바로 시내산입니다. 그런데 2절에 보니까, “그들이 르비딤을 떠나 시내 광야에 이르러”라고 말씀합니다.
설교 시간을 통해 소개하지 못한 장소 중에 ‘르비딤’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궁금한 것은 르비딤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 하는 것이죠.
출애굽기 17장에 나오는 르비딤의 일들을 짧게 요약해 보겠습니다.
이들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신 광야에서 떠나 그 노정대로 행하여 르비딤에 장막을 쳤으나 백성이 마실 물이 없는지라”(1절)
참 신기한 것은 광야를 지나는 동안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는데, 하나님께서 정하신 노정대로 행하면서 겪게 되는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무슨 뜻이 있는 듯합니다. 이곳에서 이스라엘이 경험한 것은 무엇일까요? 르비딤에 이르러 물이 없자, 이들은 여지없이 목마르다고 물을 찾으며 불평합니다.
“거기서 백성이 목이 말라 물을 찾으매 그들이 모세에게 대하여 원망하여 이르되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가축이 목말라 죽게 하느냐”(3절)

참 대단한 민족이죠?
마라의 쓴 물과 엘림을 경험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르비딤에서 또 불평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나일강을 치던 지팡이를 들고 반석을 치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반석을 치자 물이 나와 백성이 먹게 됩니다.
그런데 이 일을 명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세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 앞을 지나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나일 강을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5절)
이 명령을 통해 유추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장로들에 대하여 화가 나셨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반 백성이야 그렇다고 하지만 어떻게 장로들까지 하나님을 향하여 모세를 향하여 그렇게 불평할 수 있는지 말입니다.
결국, 그들의 불평에도 기적을 경험하지만, 명예로운 기적이 아니라 경고와 수치의 기적을 경험합니다.
“그가 그 곳 이름을 맛사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음이요 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하였음이더라”(7절)
그럼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그들의 하나님이셨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경고는 버리심이 아니라 돌이키심 혹은 신앙의 점검을 위함이라는 것을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심과 그들을 보호하심을 르비딤에서 다시 보이십니다. 어쩌면 마라의 쓴물 이후에 엘림으로 인도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출애굽기 17장 8절을 보세요.
“그때에 아말렉이 와서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니라”
그때에 모세가 산꼭대기에 서서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드는 동안 싸움에서 승리하게 되는 유명한 사건, 즉 아론과 훌이 모세의 팔을 붙들고 지팡이가 내려오지 않게 함으로 전쟁에 승리함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곳에 제단을 쌓고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부르게 됩니다.
“이르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16절)


기준이 필요하다!
시련 가운데 반복되는 불평, 그럼에도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 확증이 필요한가요? 하나님께서는 드디어 시내산에 이르셔서 뭔가 원칙과 기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따라야 할 규칙과 율례, 십계명을 시내산에서 주시게 됩니다.
제가 1013년 2월 7일 페이스북에 ‘기준’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기준!"
초, 중, 고 시절 운동장에 모일 때면, 여지없이 선생님이 한 사람을 지목했습니다.
"기준!"
그러면 모든 학생이 기준을 중심으로 대열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좌로 벌려, 우로 벌려, 뒤로, 앞으로…."
어떤 명령이 떨어져도 기준은 움직이지는 않습니다.
오늘 새벽 출애굽기 묵상 중.
광야로 인도하신 하나님이 삼 개월 만에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마주하시고 모세를 통해 율법을 주신 이유는 무엇일까? 앞으로 살아가는 날 동안, 그리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절대 양보할 수 없는 기준을 정해 주신 것이죠.
가끔 우리는 택함 받은 자신이 기준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살 때가 종종 있지요. 그래서 우리의 삶과 주변이 어지러울 때가 있을 것입니다.
일을 해결하는 방법!
하나님의 기준에서 어그러진 주변을 하나씩 교정해 나가는 것이 아닐까요?
요즘 갈등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교회에서 목회자와 장로, 가정에서, 나라에서조차.
"서로 생각을 맞추고 뜻을 정하려고 하니 힘들 수밖에요. 탐욕스런 인간들의 뜻이 어떻게 맞을 수 있나요? 하나님을 중심으로 서로 뜻을 맞춰가야죠."
이 거룩한 기준의 직무를 택하신 백성에게 주었다는 것. 우리가 내 뜻을 하나님의 뜻으로 우기지만 않는다면 진정한 기준의 삶을 살지 않겠습니까?

한번 상상해 보세요!
우리 인생의 광야에서 하나님이 특별히 나를 지목하셔서 말씀하시네요.
"너 지금부터 기준이다!"
왠지 마음 뿌듯하지 않나요?
당신 주변에 어그러진 일을 기준 앞에서 교정하는 하루가 되기를.

이제 시내산에서 하나님은 속도가 아닌 방향에 대한 문제를 점검하기를 원하십니다.
방향이 없는 열심이 얼마나 무의미합니까? 군대에서 사람들을 참 참을 수 없게 하는 일 중의 하나가 무조건 삽을 주고 땅을 파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메웁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참 힘들죠. 이유 없는 일을 시키는 것처럼 고단한 것이 없습니다.

비전 없는 분주함은 곧 지치게 합니다. 가치 없는 열심은 오래갈 수 없습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라는 베스트셀러를 쓴 스티븐 코비의 「소중한 것을 먼저 하라」라는 책의 앞부분에는 스티븐 코비와 결혼한 딸의 대화가 나옵니다. 출산 후 아이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자기 일을 거의 하지 못하는 딸이 푸념을 한다. "아버지, 이 어린아이 하나를 키우느라고 내 할 일을 전혀 못 하고 있어요.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사를 활용할 기회가 없어요. 이것이 일종의 시간 낭비는 아닌가요?" 그때 스티븐 코비가 이렇게 말한다. "시간관리 같은 것은 신경 쓰지 마라. 달력은 없애버려라. 그리고 지금 네가 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아이를 돌보는 것을 감사하고, 즐기도록 하여라. 명심해라.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시간이 아니라 방향이다."
우리는 방향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늘 시간에 쫓겨 살아갑니다. 우리에게 늘 부족한 것이 시간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이 3개월 동안 광야를 지나왔습니다. 이제 얼마를 더 가야 할 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이제부터는 시간이 얼마나 더 걸리느냐의 문제보다 이들이 올바른 방향을 향해 가느냐는 확신을 심어 주어야 합니다.
확신은 무엇보다 신뢰의 문제고 관계의 문제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늘 결정적인 순간에 믿음을 버렸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용납할 수 없습니다. ‘언약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산에서!
아직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기까지 수많은 시간이 남았지만, 하나님의 산에서 삶을 정렬해야 할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
군에서 사격 훈련을 할 때면 엄격하게 군기를 잡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두 가지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무서운 군기는 정신을 차리게 하고, 육체적으로 힘든 훈련은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도록 힘을 빼는 이유에서죠. 이 두 가지 과정을 통해 오직 사격의 타깃에 집중하도록 하고, 사고가 생기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입니다.
저는 출애굽의 과정을 시작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홍해를 건너 마라와 엘림을 경험하게 하시고, 르비딤을 통과한 후 시내산에 이르게 하신 것은 이제 목표를 분명히 할 시간이 되었다고, 광야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산에서 진지하게 재정비하자는 의도가 아닐까요?

한번 영상으로 시내산을 살펴보세요.
완전히 돌로 된 산입니다. 2,200m 정도 되는 산이죠. 무척 힘들게 올라왔습니다. 아마 모세의 시대에는 더욱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꼭대기에 모세 기념교회가 있고, 수도원이 있는 것으로 봐서 못 올라갈 산은 아니고 우리 인생에서 힘들지만, 하나님을 마주 대해야 하는 순간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오늘 본문 3절입니다.
“모세가 하나님 앞에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산에서 그를 불러 말씀하시되 너는 이같이 야곱의 집에 말하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하라”

3절 말씀을 보면서 모세가 하나님께 먼저 올라갔는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모세를 불러 올라오게 하셨는가? 의문이 생기기도 합니다.
모세의 입장에서는 지난 3개월을 지나며 하나님께 물어야 할 것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홍해, 마라와 엘림, 므리바, 아멜렉과의 싸움을 거치면서 이대로 이스라엘을 이끌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시내광야에 오는 동안도 그렇게 많은 어려움이 있었는데, 앞으로 가나안까지 가려면 더 큰 어려움이 있을 텐데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중요한 시점에서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갔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가장 큰 문제가 꼭 필요한 시점에 하나님을 만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일단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보죠. 그래서 열심히 살지만, 잘못된 목표를 향해가는 우리가 힘들고 불행한 거죠.
그런 점에서 모세가 “하나님 앞에 올라가니”라는 말이 출애굽 여정 가운데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는 듯합니다.

다른 하나의 가능성은 하나님께서 강권적으로 이스라엘과 모세를 인도하시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할 수 있죠.
애굽을 나올 때부터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오면서 있었던 모든 일이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있었죠. 훈련과 시험, 믿음의 고백을 통해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려주셨습니다.
이제 시내광야에서 그리고 시내산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결단을 요구하시려고 모세를 불러올리셨던 것 같습니다. “이제 ‘정체성’을 분명히 하자, 너희가 왜 고생하는지, 왜 이곳을 지나가야 하는지, 내가 왜 너희를 불렀는지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 그래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시내산으로 불러올리시지 않았을까?

그런데 이 둘의 가능성이 다른 사람에게는 상치되는 것일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일치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살아오면서 심각하게 하나님께 인생과 미래를 물어야 할 시점을 아는 사람, 그는 자신이 산 것 같아도 하나님과 함께했던 사람이 아닐까요? 하나님의 계획과 자신의 의도가 일치되는 삶, 사실은 그것이 우리가 꿈꾸는 신앙의 단계가 아닐까요?
우리는 종종 그렇게 기도하지 않습니까?
“하나님 이번에는 하나님의 뜻과 제 계획이 같았으면 좋겠어요!”
이 말은 그동안 내 삶의 계획이 하나님의 계획과 어긋나는 것이 참 많았다는 것이죠. 우리가 계획을 세웠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의 계획을 위해 우리의 삶을 틀어 놓으실 때가 많았죠. 물론 지나고 보면 하나님의 계획이 너무 감사하지만, 그 시간을 지날 때 절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 하나님의 계획을 알고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모세의 삶, 그리고 그의 지도력이 우리에게 많은 도전을 주는 이유입니다.
어쨌거나, 하나님께서 모세를 시내산에서 만나 의도하신 계획이 무엇이었을까요?

하나님의 계획을 보다!
본문 4~6절입니다.
4.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우리는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어떻게 인도하셨고 보호하셨는지를 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의 표현에 보면,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질문을 하나 하고 싶습니다.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이 과연 기쁘고 행복한 일인가?’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만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요? 거룩한 나라로 하나님이 구별하셔서 영원히 함께 하자는 사랑의 고백이 아니겠습니까?
마태복음 24장에 보면 말세의 때가 되면 하나의 현상이 있는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반대로 생각해 보십시오. 사랑이 자라나면 모든 불법이 사라질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 이 땅의 문제는 “불법이 성행하는 것”을 해결하려고 하기 전에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결국,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식으면서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의 관심과 멀어지면서 이웃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도 무시하게 됩니다. 폭력과 살인 간음과 사기가 난무하는 이 세상이 결국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그러졌기 때문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셨나요?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가 자녀를 위해 인내하며 돌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신혼부부가 결혼하고 아침밥을 해준다! (요즘은 여자가 남자를 위해 해준다!는 기준은 아니겠지요) 어쨌든 기쁨으로 해주던 일이 지루해지기 시작합니다. 아침밥을 해주는 것이 무거운 짐이 됩니다. 자식을 낳고 살아가는 삶이 지치게 합니다.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예전의 관계와 일상을 요구하기 전에, 이전에 가졌던 그 사랑이 있는지를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확인되지 못한 사랑에서의 요구들은 더 큰 문제들을 낳게 되죠.

시내산에서 맺어진 언약은 무거운 율법의 짐이 아니라 ‘사랑의 언약’이었다는 생각이 문득 드네요. 그래서 주님은 요한복음 14장 2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하리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게 되면 순종할 수 있습니다.
또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5장 2~3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맞습니다. 사랑하게 되면 계명은 무거운 것이 아닙니다. 계명에 순종하는 것은 다음 문제입니다. 진짜 문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시내산에서 일어난 일이 하나님이 사랑 때문이라는 것이 다음 구절에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오늘 본문 5~6절입니다.
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하나님과의 언약은 부담을 지우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가 되기 위한 전제 조건입니다. ‘제사장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제사장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대신하여 중보합니다. 축복을 빌어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아브라함을 부르시던 때가 생각나시나요? 창세기 12장 1~3절에 보니까, 아브라함에게 “너는 복이 될지라!”라고 축복하셨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모든 이가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고 그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의 집에 들고 나는 이들이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얼마나 위대한 축복입니까?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 된다는 것은, 이제 성도들이 자신만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 때문에 누군가 축복을 받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살아가는 여러분 때문에 가정이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크리스천 때문에 회사와 나라가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경제적인 축복, 관계의 축복, 그 모든 것의 근원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큰 특권입니까?

언젠가 어떤 분이 저에게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꼭 목사님과 붙어 다녀야겠어요. 목사님과 다니면 좋은 일이 참 많이 생겨요!”
제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가 아니겠습니까?
누군가 자신을 보며 “저 사람하고 다니면 좋은 일이 없어! 가능하면 피해 다녀!”라고 말한다면 얼마나 큰 저주입니까?

그뿐만 아니라 ‘거룩한 백성’이 됩니다.
거룩이라는 말은 하나님에게 해당하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에게 거룩하게 되는 특권을 허락하셨습니다. 우리의 자격이 아닌 은혜의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자아 정체성은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가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목적이 생기면 특별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목적(P.U.R.P.O.S.E)이 분명한 사람은 일곱 가지 면에서 보통 사람과 차이가 있다고 했는데 의미가 있습니다.  ① Pray(기도) : 목적이 분명한 사람은 보통 사람보다 더 기도하게 됩니다. ② Unite(연합) : 목적이 분명한 사람은 하나님과 인간관계에 있어 더 연합하게 됩니다. ③ Risk(위험) : 목적이 분명한 사람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믿음의 모험과 그에 따른 위험을 더 감수합니다. ④ Plan(계획) : 목적이 분명한 사람은 하나님의 계획하신 대로 자신의 인생과 가정을 세웁니다. ⑤ Observe(통찰) : 목적이 분명한 사람은 보통사람들보다 더 민감하게 사물과 사건을 통찰하게 됩니다. ⑥ Sacrifice(희생) : 목적이 분명한 사람은 하나님과 가족과 교회를 위하여 더 희생합니다. ⑦ Expect(기대) : 목적이 분명한 사람은 보통사람들보다 더 기대하게 됩니다. 위대함은 꿈의 차이에 있고 꿈의 차이는 기대감의 차이입니다.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는데 가장 큰 장애는 ‘성급함’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다루지 않았지만, 모세가 하나님의 계명을 받으러 시내산에 올라간 사이 이스라엘 백성은 기다리지 못하고 서두릅니다. 모세의 소식이 없자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동요하자 아론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하나님께 절하라고 합니다. 우매한 대다수는 당장 자신의 문제와 가려움을 긁어 줄 사람과 상황을 원합니다. 그러나 진리는 그렇게 서두르는 법이 없습니다.
유사 신앙과 진리의 차이가 무엇인가요? 진리는 절대로 인간의 욕구를 채워주기 위해 우상을 만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눈치를 보시지 않습니다. 여전히 하나님의 계획대로 우리를 인도하실 뿐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진리 가운데 서겠다는 것입니다. 그 진리를 분별하는 방법을 하나님께서는 시내산에서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는 자아정체성은 우리의 삶을 독특하게 바꿔놓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부르시고, 우리를 부르신 이유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로 거룩한 백성을 만드시기 위해 출애굽의 영광과 광야의 고난을 경험하게 하셨다면, 우리도 기꺼이 죄로부터의 출애굽을 체험하는 영광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또한, 기꺼이 고난을 감수하는 믿음의 고백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의 시내산은 어디인가요?
여러분을 부르시는 그 자리가 어디인지 응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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