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는 ‘영혼의 우아한 일부다처제’와 관계 없다”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이슈&책] WCC, 그 이후(1): <기독교와 자유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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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자유주의
J. G. 메이첸 | 복있는사람 | 264쪽 | 12,000원

90여년 전인 1920년대 초, 미국 장로교회에서는 보수-자유주의간의 신학 논쟁이 한창이었다. 마치 올해 WCC 총회 유치와 개최 과정에서 우리가 경험한 극심했던 신학논쟁과 비슷했다. 이때 보수주의의 깃발을 높이 들고 싸웠던 J. G. 메이첸(John Gresham Machen·1881-1937) 박사가 쓴 책이 바로 <기독교와 자유주의(Christianity and Liberalism·복있는사람)>이다.

‘20세기 위대한 100권의 책(크리스채너티투데이 선정)’ 중 하나로 선정된 이 ‘변증서의 고전’에서, 메이첸은 당시 유행하던 자유주의 신학은 우리가 ‘기독교’라 부르는 데서 완전히 벗어난다고 주장한다. 즉 ‘다른 복음(갈 1:7)’이자 기독교 아닌 ‘타종교’로 보아야 마땅하다는 것을 교리부터 하나님과 인간, 성경, 그리스도와 구원, 교회 등의 측면에서 서술하고 있다. 마치 이번 WCC 개최 과정에서의 ‘기독교와 WCC 간의 신학충돌’ 슬로건을 보는 듯하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독선적 근본주의자’라는 오명이 붙은 메이첸의 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메이첸은 한결같이 차분하지만 단호한 어투를 사용해, 성경적·논리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정밀하게 펼쳐 나간다. 적어도 이 책을 읽은 이들에게 자유주의 신학이 발붙일 곳은 없어 보인다. 자유주의 신학의 주된 주장들을 하나하나 통렬히 뒤집어 놓고 있기 때문이다.

메이첸에 따르면 ‘기독교’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던 위대한 구속(求贖)의 종교는 지금 전혀 다른 형태의 종교적 신념과 싸우고 있는데, 이는 ‘전통적인 기독교 용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기독교 신앙에 더 파괴적이다. ‘생명’ 등의 단어로 인해 WCC 문서들을 놓고 펼친 ‘이중 언어’ 논쟁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저자의 표현대로, 이 ‘작은 책’의 주장을 좀더 들어보자.

자유주의 종교의 뿌리는 성경이 아닌 ‘자연주의(naturalism)’로, 기독교의 발생에 (자연의 일상적인 과정과 다른) 하나님의 창조적 능력이 개입했음을 부인한다. “교회의 모든 설교가 자유주의 신학에 의해 통제된다면, 마침내 기독교는 지상에서 사라질 것이며 복음의 나팔은 더 이상 울리지 않을 것이다.”

‘기독교는 교리가 아니라 삶’이라는 자유주의자들의 교묘한 외침에는 ‘기독교는 교리에 기초한 삶’이고 ‘교리는 곧 삶’이라 반박한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는 말은 역사이지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은 교리이고, 이 둘이 분리된다면 더 이상 기독교가 아니라는 것.

예수를 ‘하나님의 독생자’가 아닌 ‘인간을 위한 최고의 모범’, 즉 소크라테스처럼 ‘윤리적 표상’으로 보려는 시각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한다. 예수가 제공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지침이 아니라 구원이고, 그는 자신을 사람들의 ‘신앙의 대상’으로 제시했다는 것. “예수를 자유주의 신학은 모범이자 안내자로 보지만, 기독교는 구주로 간주한다.”

성경에 대한 태도에서도 “기독교는 그 사상과 삶에서 성경을 근거로 하지만, 자유주의 신학은 죄 있는 사람의 무상한 감정에 근거해 있다”고 일갈한다. 또 성경에 나와있는 ‘기적’이 과거에는 믿음에 도움이 됐지만 (과학이 발달한) 지금은 도리어 믿음에 방해가 된다는 입장에는 “신약성경에 기적에 대한 서술이 없다면 믿기가 훨씬 쉬웠으리라는 말은 이야기가 평범할수록 참으로 받아들이기 쉬운 점에서 수긍할 만하지만, 평범한 이야기는 별로 가치가 없지 않는가”라고 반문한다. 죄에 빠진 세상에는 훨씬 더 큰 것, ‘죄를 이기는 선’이 필요한데 이는 하나님의 창조적 능력의 도입, 즉 (부활이라는) ‘기적’이 필요하다.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구원의 한 방법이지만 다른 방법도 있다-WCC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지 말라’고 한 것처럼-는 말에는 “기독교 메시지의 특징인 배타성을 포기하게 된다”고 우려를 표시한다. 기독교 복음은 구원을 제공할 뿐 아니라, 다른 모든 수단을 결연하게 거부한다는 사실 때문에 초기부터 수많은 충돌과 박해가 일어나지 않았냐는 것. 기독교는 ‘영혼의 우아한 일부다처제’와 아무 관계도 없으며, 절대적으로 ‘오직 그리스도만을 통해서’라는 배타적인 헌신을 요구했다.

▲저자 메이첸 박사.
▲저자 메이첸 박사.

“예수를 인류에 혜택을 준 사람들 중 하나로 간주하는 현대 자유주의 신학은 현대 세계에 전혀 불쾌감을 주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그것을 좋게 말한다. 그것은 전혀 불쾌하지 않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완전히 무익하다. 십자가의 거치는 것이 제거되면, 영광과 능력 또한 제거된다. 그러므로 기독교가 구원을 예수의 이름에 연결짓는 것을 공정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구원을 위한 기독교의 배타성 문제는 회피하려 해서는 안 되고, 직접 대면해야 한다. 기독교의 구원의 길은, 오직 교회가 그 길을 좁게 유지하기로 작정하는 한 좁을 뿐이다.”

메이첸은 교리적 차이를 덮고 기독교적 봉사 프로그램 위에 교회를 연합하려는 노력에도 “부정직한 일”이라는 이유로 불만족을 표시한다. ‘사소한 교리적 차이를 뛰어넘어 연합하자’는 움직임에도 “보수주의는 그 차이가 사소한 일이 아니라, 최고로 중요한 문제”라고 답한다.

그의 결론은 자유주의자들이 그리스도인이든 아니든, 자유주의 신학이 기독교가 아니라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으므로 둘이 동일한 기관의 테두리 내에서 계속 증식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지 못하고, 이 두 파의 분리는 현실적으로 절박한 요구라는 것이다. “자연주의적 자유주의 신학이 복음주의 교회에서 분리되면 교회 규모는 당연히 크게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기드온의 3백명은 미디안을 향해 행군하기 위해 처음 모였던 2만 2천명보다 더 강력했다.” 그는 책에 나온 자신의 주장에 따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신학교를 세우고, 새 교단을 설립했다.

이 책은 1929년 그가 세운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는 칼 트루먼이 새롭게 서문을 추가하고 편집해 다시 세상에 나왔다. 칼 트루먼 교수는 “많은 복음주의 신학자들이 이제 자유주의 대 근본주의라는 딜레마와 이분법이 만들어 낸 과거의 난관을 넘어서야 한다고 요구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메이첸의 책은 오늘날에도 적용된다는 것이 나의 신념”이라며 “메이첸은 자유주의 신학이 성경의 하나님이나 실제 삶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감상주의화된(sentimentalized) 종교’로 귀결될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기에, 자유주의 신학이 기독교와 전혀 다르다는 그의 주장은 이상한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메이첸 박사는

1881년 7월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서 태어나 장로교 출신 어머니의 지도로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을 배우며 정통 장로교 신앙 안에서 성장했다. 존스홉킨스대와 프린스턴신학교를 거쳐 독일 유학 시절 빌헬름 헤르만의 자유주의 신학에 영향을 받았지만 정통 신학으로 돌아와 그 수호자가 되었다. 1906년부터 23년간 프린스턴에서 신약학을 가르치며 자유주의 신학을 경계하다, 학교가 기존 정통 신학에서 이탈하자 웨스트민스터신학교를 설립했다. 이후 1936년 자유주의 인사들에게 이끌리던 미국북장로교회(PCUSA)를 떠났고, 새로이 정통장로교회(OPC)를 설립, 설교를 위해 미국 노스다코타를 방문했다 폐렴을 얻어 1937년 1월 1일 55세로 생을 마감했다.

저서에는 <기독교와 자유주의> 외에도 <바울 종교의 기원(1921)>, <신약 헬라어(1923)>, <믿음이란 무엇인가(1925)>,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1930)>, <기독교와 현대신앙(1936)>, <기독교 인간관(1937)>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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