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영 목사 설교] 위의 것을 찾으라

김진영 기자  jykim@chtoday.co.kr   |  

날짜: 2014년 10월 19일
본문: 골로새서 2:20~3:11
설교: 이수영 목사(새문안교회 담임)
제목: 위의 것을 찾으라

▲이수영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이수영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오늘 본문보다 앞선 2:8에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좇지 않고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좇으며 교인들을 노략질하는 거짓교사들을 주의하라고 강하게 경고한 바 있습니다. 거짓 교사들과 그들의 초등학문을 좇지 않고 그리스도를 좇는 것을 달리 말하면 그리스도와 함께 세상의 초등학문에 대하여 죽는 것입니다.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죽었다"는 것은 죽은 사람은 더 이상 아무 것도 하지 않듯이 이 세상의 초등학문과 더 이상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초등학문과 완전히 결별한 것입니다. 즉 무엇을 "붙잡지 말라", "맛보지 말라", "만지지 말라" 하는 등 세상의 초등학문의 이런 저런 규례에 순종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들이 어찌하여 세상에 속한 자들 같이 여전히 세상의 초등학문의 규례에 순종하느냐고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 신자들을 힐문하고 있습니다. 본문 20-22절입니다: "너희가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규례에 순종하느냐?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 이 모든 것은 한때 쓰이고는 없어지리라) 사람의 명령과 가르침을 따르느냐?"

사도 바울은 그런 규례들이 지혜 있는 듯이 보일지 몰라도 육체를 따르지 않고 그리스도를 따라야 하는 데는 조금도 유익이 되지 못한다고 단호히 비판합니다. 본문 23절을 봅니다: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 데는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따르는 것을 금하는 데는 조금도 유익이 없느니라."
거짓 교사들 가운데는 하나님은 아주 멀리 떨어져 계셔서 여러 단계의 천사들을 거치지 않고는 하나님께 이를 수 없다고 주장하며,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 이르기 위해서는 천사들을 숭배해야 한다는 가르친 것입니다. "자의적 숭배"라고 한 것은 이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또 위에 있는 세계에 대한 환상을 보았다고 말하고, 그런 환상을 더 잘 보기 위해서는 금욕을 해야 한다고 가르치며, 금욕의 한 방법으로 금식을 권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보이기 위하여 하는 금식이 바로 꾸며낸 "겸손"입니다.
겸손해 보이기 위하여 금식하는 것은 몸을 괴롭게 하는 것입니다. 또 유대파 거짓 교사들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할례의 필요성을 강조했는데 "몸을 괴롭게 한다"는 말은 이 할례를 가리키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규례들은 육체를 따르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를 따라야 하는 이들에게는 아무런 유익이 되지 못한다고 사도 바울은 주의를 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거짓 교사들과 그들이 지키라고 가르치는 규례들을 비판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바른 도리가 무엇인지를 권면합니다. 본문 3:1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본문 2절에서는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합니다.

우리가 위의 것을 찾으며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첫째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살게 되었고 그와 함께 영원히 살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나라를 살도록 다시 살아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위의 것이 아닌 땅의 것들을 추구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본문 3:1에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그리스도께서 위에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우편"이란 말은 특권과 권능을 의미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의 임재가 온 우주에 미친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즉 우주와 역사 전체에 대한 전권통치라는 의미가 더 큽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우편은 최고로 높은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자리가 높으면 높을수록 그 자리에 앉은 이의 권리과 힘이 점점 더 넓게 미치는 법입니다. 계장보다 과장, 과장보다 부장, 부장보다 그 윗자리에 앉은 사람의 책임과 권한과 영향력이 더 커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다"는 것은 고대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말하는 주된 구절의 하나로 사용한 것입니다. 과거 왕정시절에 왕이 옥좌 바로 옆에 세자를 앉히고 그로 하여금 왕을 대신해서 정사를 돌보게 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아직 왕이 되지 않았지만 왕으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아 통치권을 행사하고 필요할 때는 부왕의 뜻을 묻고 의논해가며 나라를 다스리는 세자는 사실상 왕이나 다름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스도는 그런 최고주권자이시고 통치자이시기 때문에 오직 그에게만 관심과 순종과 충성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미 이 편지의 앞부분인 1:15-19에서 만유 위에 계신 존재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다음과 같이 언급한 바 있습니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한 것입니다.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모든 것이 그 안에 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위의 것을 찾으라"는 말은 이 세상에서의 그리스도의 통치에 관계된 일들에 관심을 기울이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주인이시고 주권자이시기 때문에 그의 관심이 우리를 지배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종이 주인의 일에는 관심 갖지 않고 자기 관심사만 좇아 다니고 주인이 좋아하지 않는 일만 행하고 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죽거나 쫓겨나거나 들 중 하나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고는 있지만 우리가 진정 속한 곳은 하나님나라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세상이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차지하게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세상은 지나가는 것이고 하나님의 일들을 남는 것입니다. 나중에 주님의 심판대에 서서 일생의 삶을 결산할 때 지나가는 세상의 일들에 관해서 행한 수고나 업적은 전혀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일들에 관계해서 행한 것들만 주님께서 보실 것입니다. 온통 세상의 관심사에 몰입되어 사느라 하나님께서 명하시며 기뻐하실 일은 도외시하고 심지어는 세상 즐거움에 빠져 주일성수조차 하지 않고 놀러 다니거나 돈 벌기에 바빴던 사람들은 어두운 데 쫓겨나 이를 갈고 있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님 자신을 위해서 맡기신 달란트로 열심히 일해서 주님께 받은 바 달란트만큼의 또 다른 달란트를 남겨서 주님께 돌려드리지 않고 그 달란트는 땅에 파묻어놓고 실컷 자기 멋대로 세월을 즐기다가 주님 앞에 돌려드릴 것이 없게 된 종의 결말이 어떻게 되리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까?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는 심판입니다. 모든 사람은 각각 하나님께로부터 시간, 건강, 재능, 물질 등과 같은 삶의 에너지와 자산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우리 각자의 달란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신 그 달란트를 우리 자신을 위해서 우리 맘대로 쓰라고 주신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위해서 써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랑을 펼치는 일과, 이 땅위에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일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최대한 활용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나를 위한 일이 아니고 하나님을 위한 일이니까 슬슬 하자, 죽자 하고 할 필요가 어디 있냐, 최소한도로 하면 되지 하는 사람은 딱 예수님의 비유말씀 속에서 한 달란트 받아가지고 땅에 파묻었다가 주인이 오자 다시 꺼내 고대로 돌려준 종과 같은 자입니다. 그리고 그가 주님으로부터 받을 것도 꼭 같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크든 작든, 많든 적든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를 교육과 학문과 꾸준한 훈련을 통해 갈고 닦고 최대한 키워 더 널리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어주고, 더 크게 하나님나라 일을 하여 더 많은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경건한 삶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경건은 그저 교회 자주 들락거리는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경건은 우리가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주님의 뜻과 그의 일에 얼마나 큰 관심을 기울이느냐에 달린 것입니다. 경건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이루는 일에 얼마나 최선을 다해 바치느냐에 달린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위의 것을 찾는 데 온전히 바치기 위해 땅의 것들에다 쏟는 낭비를 없애거나 최대한으로 줄이는 것이 그리스도에게 속하고 하늘에 시민권을 가진 이들이 추구해야 할 경건한 삶입니다.

우리가 위의 것을 찾으며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아야 할 셋째 이유는, 우리의 생명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 3:3에서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합니다. 이 말은 우리의 참 생명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라는 일차적 의미를 갖습니다. 또한 우리의 삶의 의미와 목적과 기쁨과 방식을 세상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만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는 그 생명과 참된 삶을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우리의 삶을 이해할 수도 없지만 그 삶만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기뻐하시는 참 생명이 있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넷째 이유는, 미래의 영광 때문입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은 본문 3:4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우리의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그때 우리가 어두운 데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지 않고 그와 함께 영광 가운데 서기 위해서 땅의 것들을 찾지 말고 위의 것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이 있습니다. 위의 것을 찾는 경건한 삶은 그저 아무 때나 우리가 원하면 쉽게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경건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평소에 지속적인 경건의 훈련이 필요한 것입니다. 어떤 훈련이겠습니까? 우리에게서 죽여야 할 것을 죽이고 벗어버려야 할 것을 벗어버리는 훈련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합니다. 본문 3:5 이하에서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하는 것입니다. "땅에 있는 지체"는 우리의 육과 그것을 통하여 작용하는 악한 덕목들을 말합니다. 즉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같은 것들입니다. 특히 탐심은 우상숭배라고 합니다. 우상이란 사람들이 하나님만큼이나 아니면 그 이상으로 좋아하며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모든 것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진노와 준엄한 심판을 부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며 벗어버려야 할 것을 사도 바울은 또 말합니다. 곧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입의 부끄러운 말과 상호 거짓말과 옛 사람과 그 모든 행위입니다. 이런 것들은 위의 것을 찾는 그리스도인에게는 있어서는 안 될 일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왜 그런 것들을 벗어버려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까? 본문 10절을 봅니다: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새 사람을 입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돌지 않고서는 새 옷을 입고 그 위에 다시 낡은 옷, 더러운 옷, 해질 대로 해진 옷을 껴입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어 참되고 영원한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 다시 세상의 헛되고 거짓된 가르침을 따르려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새 사람을 입어야 하는 것은 모든 이에게 적용되는 구원의 원리입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누구든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옷 입고 그 안에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합니다. 본문 11절입니다: "거기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파나 무할례파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 여기서 야만인이란 주로 헬라인들이 헬라어를 말할 줄 모르는 사람들을 가리켜 한 말입니다. "스구디아인"은 흑해 주변의 족속들 중 무지한 노예계층으로 널리 알려진 자들입니다. 구원의 원리가 모든 민족, 모든 사람에게 꼭 같이 적용되는 이유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유의 주이시고 만민의 왕이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예수 그리스도를 옷 입고 새 사람이 되어 위의 것을 찾으며 사는 참된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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