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을 이렇게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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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더함 박사. ⓒ크리스천투데이 DB

▲최더함 박사. ⓒ크리스천투데이 DB

[서평] 최덕성 박사의 <위대한 이단자들>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바울을 이야기했다. 바울과 동시대를 살았던 주의 사도와 제자들은 물론이고 많은 증인들이 바울을 이야기했고, 교부들을 비롯하여 거의 모든 역사학자들과 철학자들과 종교개혁가들과 이후의 웬만한 신학자라면 그의 생애와 사상과 신학을 연구하고 논했으며, 그가 기독교회에 이바지한 공로를 평가하고 그 교훈에 대해 설파했다.

비록 학문적으로 수졸(守拙: 위기구품 중 말단의 품계로, 바둑에서 프로 초단을 일컫는 말이다)에도 미치지 못하는 나 또한 바울을 공부했고, 바울을 알고, 바울로 말미암아 나타난 하나님의 뜻과 계획과 그 영광을 흠모하며 나름대로 바울을 논하고 평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지금까지 이 사람만큼 탁월하게 바울을 이야기한 사람을 만나 보지 못했다. 그의 바울 이야기는 단연 독창적이고 독보적이며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다고 단언한다. 내가 이렇게까지 아부(?)를 떨며 그의 바울 이야기를 극찬하는 것은, 모두의 시샘과 질책과 조소의 '거리'가 될 위험한 발상과 시도임을 잘 안다. 나는 한국교회 안에, 소위 신학을 한다는 사람들 사이에, 그 바닥에 어떤 것들이 주로 깔려 있는지 경험적으로도 알고 있다.

언론인이었던 고 이규태 선생은 한국인의 의식구조를 논하면서 '콩나물 문화'를 거론했었다. 한국은 키가 먼저 크는 콩나물을 우선 뽑아 국을 끓여 먹는 사회라고 했다. 그런 분위기가 한국교회 안에 팽배해 있음을 부인할 사람이 드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사람을 소개하면 앞으로 온갖 비난의 소리를 들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의 바울 이야기를 여기에서 소개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는 최덕성이다(개인적으로 연배로 보나 위치적으로 보나 이렇게 호칭하는 것은 결례이지만, 오직 공적 차원에서 부득이한 표현임을 이해할 것으로 본다). 그는 한때 20년 이상 고신대학원에서 역사신학과 교의학을 가르친 신학교수였다. 지금은 부산의 모 교단신학교 총장으로 재직 중이다.

그는 지금까지 한국교회를 위해 20여 권에 달하는 신학적 저작들을 발표했다. 그 중 <한국교회 친일파 전통>은 한국복음주의신학회 신학자대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최근에는 <신학충돌 1, 2>를 연속으로 발표하여 WCC를 중심으로 한 종교다원주의와 혼합주의, 개종전도금지주의, 신앙무차별주의, 사회구원지상주의 등을 고발했다.

그런 그에게서 1월 중순경 한 권의 책이 배달되어 왔다. 출간한 지 며칠밖에 되지 않은,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그의 신간이었다. 제목부터 눈길을 사로잡았다. 하얀색 표지에 <위대한 이단자들>이라는 제목과 그 아래에 '종교개혁 500주년에 만나다'라는 부제가 찍혀 있었고, 톱으로 이단자를 처형하는 작은 그림 하나가 책의 하단부에 실려 있었다.

작년 여름 무렵에 그는 나와의 통신에서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두고 역사학자로서 무언가 공헌을 하고 싶다고 속내를 드러낸 적이 있었다. 이 책은 바로 그 결실이었다. 그는 이 책에서 2천 년 기독교회사를 통해 주의 복음의 진리를 위해 싸우다 장렬히 순교한, 바울부터 주기철까지 17명의 위대한 순교자들의 생애를 역설적 제목으로 추적하고 평가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이 책의 내용 전부를 거론하기보다, 그 중 그가 첫 인물로 내세운 바울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만 소개하려 한다. 왜냐하면 이 하나의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그를 소개하고, 그의 독보적 탁월함을 증명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먼저 그가 사용하는 단어는 풍성한 어휘력과 독특한 관점을 증명한다. 그의 독특한 단어는 적재적소에서 빛을 발한다. 그렇다고 그의 단어들은 생경한 것들이 아니다. 속세에서 사용하는 '왕따' 등의 단어들을 함부로(?) 구사하지만, 그것이 전혀 낯설지 않다.

그는 단어들을 새로이 조합하기를 즐긴다. 신학충돌에서 보여 준 '개종전도금지' 같은 용어는 너도나도 차용하게 된 지 오래다. 그는 이번 책에서도 같은 기술(?)을 구사한다. 그는 20세기 후반에 등장한 기독교를 '신종 기독교' '자연적 생명(bios) 문화공동체'라 부른다. 예수 처형 후 예수를 따르는 것을 '예수신앙운동'으로 정리한다.

반면 그가 구사하는 문장은 굉장히 단조롭게 시작한다. 총 85개의 문단 중 약 40개가 단 하나의 주어인 '바울은'으로 시작한다. 보통 이 정도의 글이라면 맥이 빠지거나 알맹이를 거의 건질 수 없다고 여길 게 뻔하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는 반복되는 주어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다음으로 이어지는 내용들이 단소의 호흡처럼 높낮이와 속도를 적이 맞추어 가며 독자들을 신비의 세계로 이끌어 간다.

혹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카메라 앵글을 기억하는가. 그 카메라는 잠시도 포즈를 놓치지 않는다. 그러면서 다음 장면으로 이어지다, 갑자기 넓거나 좁거나 하는 미지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한다. 그의 문장이 그렇다. 한 문장에 사로잡히면 계속 독자는 끌려간다. 그러다 갑자기 다음 장면에서 전혀 예상 밖의 안내를 받는다. 그것은 묘한 흥분이고 흥밋거리다.

▲위대한 이단자들(최덕성 | 본문과현장사이 | 620쪽 | 35,000원).

▲위대한 이단자들(최덕성 | 본문과현장사이 | 620쪽 | 35,000원).

 

나아가 그의 글을 맛깔나게 하는 것은, 도중에 잠시 낮은 바위나 언덕 위에 앉아 읊조리듯이 소설 같은 이야기를 전개한다는 것이다. 그 상상의 이야기는 무척이나 여유로워서, 마치 산길을 거친 숨소리로 오르던 한 사람이 시원한 그늘 아래 앉아 여유를 부리며 땀을 식히는 모습을 연상케 하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바울은 자신의 결혼, 아내, 자녀에 관해 언급하지 않는다. 바울이 결혼을 했으면서도 아내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면, 그의 아내가 다마스쿠스 길에서 회심한 바울을 싫어하여 헤어졌을 수도 있다(고전 7:10-15, 15쪽 각주)."

"베드로는 보름 동안 바울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 주었을까? 갈릴리 바다 고기잡이 이야기, 장모 소식, 제자들 가운데 누가 큰 자인가 하고 다투었던 화제로 시간을 소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바울에게는 절실하게 궁금한 것이 있었다. 과연 예수는 어떤 분이었는가? 지상에 있는 동안 가르친 것들은 무엇인가? 바울 자신이 계시를 받아 전하는 그리스도의 진리는 확실한가(21쪽)?"

더욱이 그의 글은 평면적이 아니라 입체적이다. 유명한 성경주석가인 헨드릭슨은 바울을 '뛰어난 지성과 강철 같은 의지와 온유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 평했는데, 이런 식은 좀 밋밋하다. 이에 비해 최덕성은 한 편의 파노라마를 보는 것 같은 장면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바울은 부모와 함께 터키 동남쪽 다소로 끌려갔다. 흩어진 유대인 이민자, 곧 디아스포라가 되었다. 바울이 자라고 청소년기를 보낸 '제2의 고향' 다소에는 흑염소들이 뛰놀고 마와 옥수수와 포도가 자라고 있었다(13쪽)."

"바울은 예루살렘 성 안에서 예수와 만나거나 마주쳤을 수 있다. 그러나 바울 서신들은 (이에 대해) 암시조차 하지 않는다. 나사렛에서 선한 것이 나올 리 없다고 생각하여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수 있다. 주후 30년 4월 7일 금요일, 유월절을 준비하는 날 일몰 때 죄수들의 십자가 처형이 집행되었다. 버둥대는 동물들을 짊어지고 성전을 향해 올라가는 사람들, 도살된 가축을 들고 나오는 사람들이 북새통을 이루었다(15쪽)."

글의 기술만을 가지고 그의 바울 이야기를 평가하고 싶지는 않다. 그는 바울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가 있는 사람으로 보인다. 마치 그는 바울의 곁에 앉아 그와 대화하듯, 그의 일거수 일투족 심지어 생각들까지 집어내고 있다. 그리고 그의 글은 완전한 기승전결 구조를 가진다. 그의 이런 실력은 이미 모 대학에서 교재로 사용하고 있는 <빛나는 논지 신나는 논문 쓰기>를 통해 입증됐다.

먼저 그는 서두에서 바울 메시지의 핵심인 '나무에 달려 죽은 구원자 예수'를 소개하며 글의 논지를 앞세운다. 그런 다음 자랑스러운 유대인, 회심 체험, 바울과 베드로, 복음 전도, 이단의 괴수, 바울과 아볼로 등, 바울의 일생을 시간 순으로 전개하면서 그의 일관된 사역과 메시지를 놓치지 않는다. 그리고 맺음말로 패러독스를 다시 상기시킨다. 그는 정말로 패러독스한 사람이다.

▲최덕성 교수. ⓒ크리스천투데이 DB

▲최덕성 교수. ⓒ크리스천투데이 DB

 

한편으로 그는 바울의 약점까지 언급하는 것도 놓치지 않는다. 바울에게 아볼로는 어떤 존재였는가를 세밀하게 파고든다. 그에 의하면 바울은 독불장군 유형의 사도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괴기한 종교발명가'로 인식되었다. 그런 그 앞에, 알렉산드리아 출신 유대인 개종자이자 구변이 탁월하고 구약에 정통한 아볼로가 등장했다.

아볼로의 지적 능력은 오히려 바울을 능가했다. 그런 아볼로가 바울의 심기를 불편케 했다. 그러나 바울은 아볼로가 지닌 철학적·지적 탁월성에 대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아볼로가 가진, 하나님에 대한 철학적·지적 사유가 복음을 손상시킬 것을 우려했다. 바울은 신학적 사변성과 철학적 방법으로 인기를 끄는 아볼로와 소수의 지식인들을 경계했다.

그래서 바울은 세상 지혜를 자랑하는 자들을 비판하는 맥락에서 고린도전서 1장 17절부터 2장 16절, 4장 7-8절 등의 말씀을 기록했다. 물론 최덕성은 아볼로에 대한 바울의 인식과 태도를 가지고 '신종 기독교'를 주창하는 자유주의자들에게 따끔한 충고를 하고 싶었음을, 신중한 독자라면 눈치를 챌 것이다.

나는 지금 바울에 이어 플라비우스 저스틴과 아타나시우스, 피터 왈도, 리용의 빈자들, 존 위클리프를 읽고 있다. 아마 오늘 밤을 새우며 이 책을 다 읽을 것이다. 그리고 성령께서 충분히 주시는 감동으로 모든 피곤함을 잊게 될 것이다.

끝으로 나는 한국교회 안에 존재하는 독보적이고 탁월한 작품 혹은 그 주인공이나 뜨거운 성령의 역사가 있다면, 주저치 말고 소개하고 기쁨으로 맞이하고 치켜세우는 풍토가 도래하기를 염원한다. 이제 깎아내리는 일은 그만두자. 그것은 소인배 같은 행동이다. 오늘 최덕성의 이야기가 그 출발이 되기를 학수고대한다.

/최더함 박사(아리엘개혁교회 담임목사. 개혁신학포럼 학술위원. 도서출판 리폼드북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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