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500주년 지상 강좌] 종교개혁의 비전과 신학사상의 재발견(3)
3. 인간의 타락한 본성 규명
지금 전세계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테러와 인종대립과 갈등으로 전쟁과 살인이 끝없이 반복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비극적인 살인과 반인륜적인 범죄가 과거보다는 훨씬 자주 일어나고 있다. 인간의 잔인함은 갈수록 더 해지고 있다. 2016년 2월, 한 목사가 재혼한 부인이 미워하는 자신의 딸을 죽이고, 집안에 방치하다가 적발되자 부활을 기다렸다고 엉뚱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자신의 쾌락에만 빠져있는 이런 기독교들에 대해서 국민의 분노와 증오가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예수님은 사람의 마음에서는 선한 것이 나오지 않는다고 선언하였다(막 7:14-23). 로마서 3장 23절에서, "모든 인간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다"고 지적한다. 지금까지 인간의 본질적 상태, 과연 인간이 어떤 조건에 처해 있는 존재인가에 대해서 가장 정확하게 지적하는 교훈을 제시한 기독교 사상가는 별로 없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인간은 자신들이 처한 비극과 비참한 상황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기 때문에, 혼란에 빠져있다. 종교개혁자들은 성경을 통해서 지적된 인간의 본성을 가감 없이 폭로하고, 바른 인식을 선포하였다.
인간은 역설적인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하나님의 피조물 가운데서 걸작에 해당하여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는데, 특히 자유함과 존엄성을 지니게 되었다. 그러나 타락으로 인하여서 죄를 범한 인간에게는 이 땅위에서 최선을 다하지만,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심을 기다리는 것 밖에는 소망이 없다.
가. 인간론 논쟁: 반펠라기우스주의와 신인협력설의 오류
종교개혁자들은 아담의 타락한 본성에 대해서 주목했다. 중세 말기에 로마 가톨릭에서는 죄로 인해서 인간 본성은 믿을 수 없는 상태에 처하게 되었다고 가르쳤다. 플라톤의 영향으로 이원론적인 구분을 시도하여, 하나님과 천사에게 연계된 "높은 자아"(영혼)가 있는가하면, 동물에게 연결된 "낮은 자아" (육체)로 구성되어져 있다는 것이다. 감각적 쾌락을 추구하는 육체의 욕망들, 즉 "강력한 육체적 욕망"(concupiscence)이 인간의 본성 속에 있는 바, 그것이 행동을 하지 않을 때에는 그 자체로서는 죄가 아니지만, 인간 본성의 연약함과 결함을 지적하는 요소라고 가르쳤다. 이들 강력한 육체적 욕망들이 정념에 휩싸이게 되면 죄악으로 옮겨지는 것인데, 치유를 위해서 은총과 협력하는 작업이 필수적이라고 가르쳤다.
로마 가톨릭에서는 타락한 인간 본성에 대한 반성보다는 자율적인 인간의 노력과 공로를 더욱 더 중요시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무한한 자비로서 인간이 스스로 구원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여 성취하도록 가치를 부여하셨다고 가르쳤다.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있던 아담에게는 죄를 지은 이후에 "덧붙여진 은사"(donum supreadditum)가 주어져서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자가 되게 했다는 것이다. 가브리엘 비엘이 말한 바,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스스로 노력하는 가운데서 무엇을 성취하도록 허용하셨다" (facere quod in se est) 고 주장했다. 심지어 이교도들이라도 그들의 이성을 사용하므로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칼빈은 아담의 선한 본성에다가 또 다른 덧붙혀진 은혜를 주실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였다.
중세 가톨릭 교회는 거룩함을 유지하는 방법으로서 인간의 부패성을 방지하기 위하여서 수도원이나 공동생활에서 엄격한 금욕주의를 시행하였다. 때로는 신비주의와 경건주의가 구원의 길이라고 강조하였다. 결혼한 삶은 수도사가 명상하면서 보내는 삶보다는 저급하다고 평가하였다. 결혼관계에서 갖는 성적인 결합관계는 인종번성을 목적으로 하는 것으로만 취급하였다. 순수한 영적인 명상의 높은 경지에 비하면 동물적인 단계라고 보았다.
종교개혁자들은 사람의 본성에 대한 이해를 성경적으로 확고히 제시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만 한다고 주장하던 종교개혁자들은 바로 그 성경에서 가르치는 사람의 본질적 타락을 재발견하였다. 루터는 아담이 타락함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형상이 완전히 파괴되었다고 선포했다. 루터는 하나님의 소명을 수행할 수 있는 도덕적 탁월함과 능력은 완전히 상실되었다고 보았다. 16세기로 접어들면서, 종교개혁자들은 성경이 가르쳐주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철저한 깨달음을 갖게 된 것이다.
칼빈은 영혼과 육체를 나누어서 죄악시하는 개념을 부인하였다. 우리의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은 본성 그 자체에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아담의 타락을 통해서 오염되고 부패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사도 바울은 아담의 죄와 그리스도의 의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전가되었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우리 심령의 깊은 곳에 교만한 것이 문제의 근원이라고 칼빈은 지적했다. 원래 아담과 이브는 선한 피조물이었고, 삼위일체 하나님의 도덕적 속성들을 반영하고 있었다. 순종에 합당하게 지어졌으나, 선택의 자유함을 자신의 욕망에 따라서 스스로 타락시켜서 멸망하고 말았다. 아담에게 주어진 것은 "자유 선택권"이었다고 칼빈은 설명한다.
"하나님은 사람의 영혼에 지성을 주셔서 그것으로 선과 악을, 옳고 그름을 분별하게 하셨고, 또한 이성의 빛을 안내자로 주셔서 우리가 피해야 할 것과 좇아야 할 것을 구별하게 하셨다....그러므로 아담은 자기가 원하면 얼마든지 설 수가 있었는데, 전적으로 자기 의지로 타락한 것이다....선과 악을 선택하는 것은 전적으로 그의 자유였다....처음에는 영혼의 각 부분이 의를 형성하고 있었고, 아담의 정신이 견고하게 서 있었으며, 그의 의지가 선택할 자유를 누리고 있었다."
칼빈은 아담의 후손들은 부패한 상태를 물려받았고, 유전적인 오염도 이어받았음에 유의하라고 충고한다. 아담의 후손들은 아담처럼 자유선택권을 가질 수 없다. 영적인 멸망 상태에 속한 자들은 잃어버린 것을 사람들은 죄책, 오염, 죽음 가운데서 태어난다. 인간은 이제 죽음으로 방향이 결정되어져 있을 뿐이다.
중세 말기, 로마 가톨릭에서는 아담의 범죄가 전 인류에게 죄악된 경향성을 남겼지만, 자유의지가 완전히 상실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본래의 기능을 발휘하기에는 다소 결함이 있어서 부족하게 되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중세 신학에서는 아담의 원죄를 받아들이지만, 그 영향력에 대해서는 총체적인 부패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죄책이 죄악된 본성을 포함하고 있으며 이런 경향성이 마음과 의지에 영향을 미쳐서 은총과 합작하여 중생에 이르게 된다고 주장했다.
사람의 본성에 대해서 새로운 인식을 가진 종교개혁자들의 주장들이 설득력을 발휘하게 된 배경에는 중세 말기 유명론과 르네상스와 기독교 휴머니즘의 시대를 거치면서 어거스틴의 신학사상이 널리 퍼졌기 때문이다. 이 당시에만 어거스틴의 글을 읽었던 것은 아니고, 중세시대 오랜 기간 동안 어거스틴의 저술들을 통해서 영향을 입어왔었다. 그러나 루터와 종교개혁자들은 가톨릭교회에 대한 순종, 특히 성례에 관한 강요에 대항하여 어거스틴이 제시한 구원론에 깊이 고무되어졌다. 워필드 박사가 이를 간파하여 어거스틴의 구원론이 어거스틴의 교회론을 이기고 궁극적으로 승리한 사건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와의 논쟁을 파악했던 칼빈은 바로 인간의 의지가 하나님의 은혜와 협력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여러 차례 칼빈은 사람의 부패한 본성에서 작동하고 있는 의지는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물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리하여 그는(사도 바울) 다른 곳에서, 하나님께서는 연약한 의지를 도우시고 부패한 의지를 교정시킬 뿐 아니라, 우리 속에서 의지를 갖도록 역사하기도 하신다고 말한다(빌 2:13). 이로 보건대,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의지 속에 있는 모든 선한 것이 다 오직 은혜의 역사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논지에서 칼빈은 구원을 이루는 과정에서 인간의 공로로 의를 이룰 수 없음을 거듭해서 강조한다.
"만일 털끝만큼이라도 우리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이 있다면, 우리에게도 약간의 공로 가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우리에게서 공로를 완전히 벗겨버리고자, 우리는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신 일을 위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창조함을 받은 존재이므로 (엡2:10) 우리는 아무 것도 받을 자격이 없음을 가르치며, 더 나아가서, 우리에게 있는 모든 선한 행실들이 다 본래 시초부터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가르치고 있다.... 더 나아가서 우리가 그 구원의 역사에 결코 참여하지 않았음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이는 마치, 구원의 전부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므로 사람에게는 조금도 자랑할 것이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은혜가 의지보다 선행한다는 뜻이라면, 의지를 가르켜 은혜의 추종자라고 부른다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변화된 의지 자체가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이므로, 사람이 자기 의지로 그 선행하는 은혜에 순종한다고 보는 것은 그릇된 논리이다.... 바로 앞에서 바울의 바울의 글에서 보았듯이(빌 2:13), 은혜가 그 의지 자체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종교개혁자들은 르네상스 휴머니즘이 인류의 창조에 과도하게 집중하면서 낙관론을 펼쳐나가는 것에 의문을 갖게 되었다. 로마의 멸망을 목격했던 어거스틴은 인간의 타락과 에덴동산에서의 추방에 관해서 철저하게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어거스틴은 서로마 제국이 급격하게 멸망해가는 것을 직접 목격하였기에, 기독교 왕국으로서 밝은 미래가 올 것이라는 기대를 접어버리고, 「하나님의 도성」에서 문명사의 재앙에 대한 성찰을 하였다.
인간의 죄와 은총을 새롭게 인식하게 된 종교개혁자들의 인식에 있어서 깊은 영향을 끼친 어거스틴의 신학사상을 살펴보자. 어거스틴(354-430)이 철퇴를 가했던 펠라기우스(425년 사망)는 5세기 서구 유럽교회 내에서 피조된 인간 본성에 대한 논쟁에서 아담이 범한 원죄의 영향으로 오염과 죄책이 전체 인류에게 전수되어졌다는 것을 부인했다.
자유의지라는 개념은 성경에서는 찾을 수 없다. 스토아철학에서 사용하던 단어인데, 터툴리안을 거쳐서 사용되었고, 어거스틴이 정확한 개념을 정립했다. 각 개인은 출생할 때에 전혀 오염이 없는 상태로 태어나서 스스로 의지의 결정 능력을 갖고 있다고 하는 펠라기우스의 사상에는 초기 오리겐과 암브로시애스터(Ambrosiaster)의 영향력이 들어있었다. 십 여 년간의 논쟁 끝에, 주후 418년 카르타고 회의에서 어거스틴의 주도하에 펠라기우스와 그의 지지자 켈레시우스(Celestius)가 주장하던 원죄의 부정, 유아세례에 대한 거부, 과거의 죄악들을 속죄하는 은총에 대해서 제한성 등을 주장하는 것들은 정죄 받았다. 영혼의 원래 상태를 간직했던 아담의 타락이 끼치는 영향력에 대해서 펠라기우스는 성경의 교훈대로 해석하지 않았고, 역시 도덕주의자들과 인본주의자들의 근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펠라기우스는 최초 아담이 태어날 때의 인간의 본성과 타락 이후에 인간성의 조건에 대해서 구별하는 데에 있어서 실패하였다. 따라서 인간의 칭의는 그리스도의 모범 (per exemplum Christi)을 따라서 자유의지(liberum arbitrium)로 자발적인 실천을 통해서 하나님의 의를 모방하려는 인간 자신의 자유롭고 도덕적인 노력에 좌우된다고 주장했다. 이런 내용은 펠라기우스의 추종자 줄리안(Julian of Eclanum)에게서 발견되었고, 어거스틴이 그에 대해서도 통렬하게 논박하였다.
어거스틴은 펠라기우스가 자유의지를 지나치게 과장하여 칭의론을 세웠다고 비판했다. 주후 411년, 「공로의 죄성과 사면」(De peccatorum meritis et remissione)에서 펠라기우스가 인간의 자유의지에 너무나 많은 것을 부여함으로써, 특별은총의 필요성 자체를 부인하는 효과를 일으켰다고 비판했다. 타락한 인간의 자유의지가 지닌 능력에 대해서 펠라기우스는 과장하였음을 지적한다. 어거스틴에 의하면, 비록 죄인도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지만 적절하게 기능하지 않기 때문에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자유의지는 포로가 될 것이므로 죄짓는 용도 외에는 쓸모가 없다. 만일 하나님의 도우시는 조치로 해방되지 않는다면, 의를 행하는데도 쓸모가 없다." 어거스틴에게서 자유란 선을 선택하고 완수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는데, 타락한 인간은 결코 이 능력을 소유할 수 없다.
어거스틴이 제기했던 문제의 핵심을 칼빈도 역시 파악하고 있었고, 원죄의 영향력에 관한 논의를 집중적으로 제기했다. 「기독교 강요」 제2권 1장에서 5장까지 무려 1백 페이지 걸쳐서 상세하게 사람의 비참한 현 상태는 죄의 영향으로 인해서 의지의 자유를 빼앗긴 채 종의 상태에 매여 있음을 강조했다. 인간은 자연적인 본성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 인간의 본성은 죄로 인해서 죽음과 정죄의 굴레 하에 놓여있다. 따라서 인간은 하나님과의 화해를 이루고자 오신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어거스틴의 가르침을 근거로 하여 칼빈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라는 용어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이 용어를 계속 사용하게 되면 크나큰 위험이 따르게 되므로, 오히려 그것을 폐기하는 것이 교회를 위하여 큰 유익이 되리라고 본다. 나 자신은 이 용어를 쓰지 않을 것이고, 혹 다른 사람들이 나의 조언을 구한다면, 그들에게도 역시 쓰지 말라고 말하고 하고 싶다."
반펠라기우스주의와 공로주의
어거스틴이 고심했던 문제들은 다소 완화된 형태로 중세 시대에 확산되었으며, '반펠라기우스주의'(semi-pelagianism)라는 개념으로 규정되어진다. 중세 로마 가톨릭 교회는 구원에 대해서 변형된 교리를 가르쳤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의 생활을 시작하지만, 각자 자신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거룩한 생활을 증진시킨다고 가르쳤다. 이런 신인협력이 선행과 공로를 이루게 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의 선행에 대한 보상으로 구원을 베풀어주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일곱 가지 성례에 참가하여 은총의 주입을 받아야만 한다고 가르쳤다.
여전히 루터와 칼빈이 살고 있던 시대에도 로마 가톨릭의 구원론에 핵심으로 가르쳐지고 있었다. 로마 가톨릭에서는 원죄의 개념을 받아들이지만, 그 영향에 대해서는 어거스틴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평가하였다. 원죄의 영향으로 인간의 의지가 다소 손상이 되었을 뿐이라며, 인간의 자유의지가 하나님의 은총과 협력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주로 수도원에서 널리 확산되었던 반펠리기우주의는 오리겐의 낙관론에 영향을 받은 존 카시안이 널리 확신시켰다. 주후 430년, 그의 사망과 함께 그의 저술들이 논란에 휘말렸으며, 주후 529년에 제 2 오렌지 회의에서 정죄되었다. 하지만, 그 후에 다시 되살아나서 중세시대에 확산되었다.
지금까지도 인간의 본성에 관련된 논쟁은 현대 기독교 신학자들 사이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17세기에는 유사한 알미니안주의가 파생되었고, 부흥운동에서 즉각적인 인간의 결단을 촉구하던 요한 웨슬레가 이를 흡수했다. 19세기에는 미국에서 챨스 피니가 반펠라기우스주의를 채택했고, 실용주의, 상업주의, 자기 결단적인 도덕주의 운동 등이 연계되어져 있다.
죄라는 것이 그저 단지 악한 행위에만 관련되어 있는 것이라면, 충분한 교육과 도덕적인 갱신을 통해서 교양을 증진시키고, 사회전체를 잘 정비된 법률을 통제수단으로 관리한다면 불의와 불법을 약화시키고 건강한 국가를 건설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류 역사상 지금까지 그 어느 시대 그 어느 국가에서도 사람들의 조직이나 사회적 구조 속에는 악행이 전혀 그치지 않고 있으며, 죄는 마르지 않고 확산되고 있을 뿐이다. 아담의 원죄와 그 죄책의 전가로 인해서 원천적으로 오염된 추악함으로 물들어진 인간세계는 가해자와 피해자로 상호 맞물려있다.
루터는 칭의와 구원에 관한 기본 개념들을 성경에 따라서 근본적으로 재구성하였다. 인간 사회의 죄악을 해결하는 길은 일반은총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만이 타락한 인간의 비극을 극복할 수 있는 비결이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에 이르는 참된 믿음을 주시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사람으로 태어나서 구원사역을 완성하셨다는 것을 신뢰함이다.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그리스도와 성도들을 연합시킨다. 루터는 1520년에 쓴 「기독교인의 자유」에서 믿음으로 얻게 되는 구원의 혜택에 대해서 자세하게 풀이하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