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 감동적 플롯과 영상미 속 ‘현대적 굿판’ 또는 ‘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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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도깨비>: 마법 같은 순간을 만들어 주는 신(神)

▲드라마 속 저승사자와 도깨비. 둘 다 전생에는 사람이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이 중 저승사자가 전생에 사람이었다는 설정은 한국 옥황상제계 신화를 충실하게 반영한다.

▲드라마 속 저승사자와 도깨비. 둘 다 전생에는 사람이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이 중 저승사자가 전생에 사람이었다는 설정은 한국 옥황상제계 신화를 충실하게 반영한다.

[박욱주의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 tvN 드라마 도깨비(中)

한국의 전통신화들을 비교적 충실하게 반영하는 드라마 <도깨비>는 도깨비 김신(공유 분) 외에도 다양한 영적 존재들을 등장시킨다.

그 중 드라마 전체에서 주인공과 거의 대등한 비중을 차지하는 캐릭터가 저승사자 김차사(이동욱 분)다. 사실 저승사자란 캐릭터도 도깨비 못지 않게 한국 전통의 신화, 기담, 설화, 심지어 경험담 등에서 자주 등장하는 친숙한(?) 존재이다. 저승사자뿐 아니라 지은탁의 특별한 재능(?)에 힘입어 등장하는 다양한 귀신들도 작품의 다신교적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작중 도깨비 김신의 대사대로, 그들은 "종종 인간들에게 마법 같은 순간을 만들어주는" 존재로 등장한다.

혼령과 귀신에 대한 문화적 인식 변화: "무섭긴... 고맙기만 했지"

저승사자와 귀신들은 과거 미디어에서 일반적으로 사람들에게 죽음과 공포, 해악을 가져다 주는 부정적 존재들로 묘사되곤 했다. 그러나 드라마 <전설의 고향>에서 저승사자가 선하게 살다 죽은 이들의 영혼에 사뭇 관대한 모습을 보이는 권선징악형 캐릭터로 그려진 적이 있었고, 1996년 개봉작인 영화 <은행나무침대>에서 미단공주(진희경 분)가 은행나무로 환생한 혼귀(魂鬼)가 되어 전생의 연인인 화가 수현(한석규 분)을 살리고 돕는 역할로 등장하는 등 그렇지 않은 경우도 간혹 있었다.

1999년 개봉된 해외작 <식스 센스(The Sixth Sense)> 역시 귀신을 해악의 원인으로 여기기보다는 대화와 소통이 가능하며 때로는 도움을 주기도 하는 인격체로 묘사했다. 그러나 1998년 개봉작 <여고괴담>이나 일본영화 <링(リング)>, 2000년 개봉작 <가위>, 2002년의 일본영화 <주온(呪怨)>, 2007년 국내작 <기담>에 이르기까지, 귀신이나 영혼과 관련된 영화와 드라마 대부분은 저승사자 혹은 귀신과 같은 영적 존재들을 우리 삶을 망가뜨리고 위협하는 공포의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처럼 혼령이나 귀신을 주로 공포의 대상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한국 대중문화계 전반에서 반전되기 시작한 시점은 언제일까?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2007년 임인스 작가의 웹툰 <싸우자 귀신아>의 연재 시점을 지목해 본다. 이 작품은 사람과 귀신을 때로는 코믹한 대립의 관계로, 때로는 달콤한 연인의 관계로 엮어내는 가운데, 혼령이나 귀신에 대한 문화적 이미지를 두려움에서 친근함으로 전환시키는 데 큰 역할을 담당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징조는 이미 2004년과 2005년 사이 방송된 임성한 작가의 드라마 <왕꽃선녀님>에서도 보이기 시작했는데, 2007년을 지나면서는 귀신이나 혼령의 친근한 이미지에 대한 대중적 호응의 폭이 갈수록 넓어지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2011년 드라마 <신기생뎐>, 2015년 드라마 <오 나의 귀신님>, 2016년 드라마 <싸우자 귀신아(동명 웹툰을 드라마화한 작품)>, 그리고 올해 드라마 <도깨비>가 이런 기조를 대표하는 작품들이다.

▲2007년부터 연재된 임인스 작가의 웹툰 &lt;싸우자 귀신아(왼쪽)&gt;, 이 웹툰을 원작으로 삼아 제작된 동명의 드라마(오른쪽).

▲2007년부터 연재된 임인스 작가의 웹툰 <싸우자 귀신아(왼쪽)>, 이 웹툰을 원작으로 삼아 제작된 동명의 드라마(오른쪽).

이는 비단 영화나 드라마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전편에 잠시 언급했던 2010-2012년 연재웹툰 <신과 함께>도 그렇고, 2008년 출간된 신경숙 작가의 베스트셀러 소설 <엄마를 부탁해>에서도 혼령과 귀신이 사람의 삶에 일상적으로 관여하는 친숙한 존재들로 표현되고 있다. <엄마를 부탁해> 속에 묘사된 귀신의 이미지에 대해 잠시 살펴보자.

하루는 주인공 '엄마'가 산밭에 일을 나갔는데, 어떤 사람이 먼저 와 밭을 매고 있었다. 누구냐 물으니 지나가는 사람인데 "밭에 풀이 많아 좀 뽑아주고 가려고 한다"고 답했다. 그 사람은 그 날 하루 내내 밭일도 해주고, 엄마가 싸간 새참까지 나눠먹고 떠나갔다. 그런데 밭에서 돌아와 자식들의 고모(남편의 누이)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며 그 사람의 인상착의를 이야기하니, 고모가 얼굴이 굳어지며 답하기를 "오래 전 그 밭주인으로 김을 매다 일사병으로 죽은 이"라고 했다.

'엄마'가 자기 딸에게 이 일을 이야기하자, 딸이 "죽은 사람하고 종일 같이 밭에 있었어? 엄만 안 무서웠어?"라고 물어본다. '엄마'는 "무섭긴, 내 혼자 그 밭을 다 매려면 이삼일은 걸렸을 틴디 함께 매줘서 고맙기만 했지"라고 대답한다.

이 '엄마'는 나중에 건강악화와 여러 엇갈린 사정에 의해 서울에서 실종된 뒤 죽어 영혼의 상태로 자식들의 고모를 찾아간다. 고모는 실종된 '엄마'가 안타까워 울며 이야기한다. "여름옷 입고 나간 사람이 겨울이 되도록 오질 않으니... 이미 저쪽 세상 사람인가?" 여기에 '엄마'의 영혼이 독백처럼 대답한다. "반은 귀신이오... 이렇게 떠돌고 있소."

이는 일부 독자들만 선호하는 괴기소설에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라, 최근 10년간 한국인에게 가장 많이 읽힌 베스트셀러이자 아직까지도 매년 최고 스테디셀러 리스트에 단골로 등장하는 소설 속 이야기이다. 죽은 자의 영혼을 '고맙고, 재미있고, 그립고, 안타까운' 존재로 묘사하는 것이, 대다수 한국인들의 정서에 별반 거부감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증거라고 봐야 하겠다.

물론 혼령이나 귀신을 공포의 대상으로 다루는 작품들은 아직도 매년 여름 어김없이 등장한다. 그러나 한국의 전반적인 문화 기조는 점차 영적 존재들을 우리 삶의 동반자로 취급하는 경향을 뚜렷하게 내보이고 있다.

▲2008년 출간된 이래 지난 10년간 한국인에게 가장 많이 읽힌 소설로 알려진 &lt;엄마를 부탁해&gt; 신경숙 작가. 죽은 사람의 영혼인 귀신을 친숙한 삶의 동반자로 묘사한다.

▲2008년 출간된 이래 지난 10년간 한국인에게 가장 많이 읽힌 소설로 알려진 <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작가. 죽은 사람의 영혼인 귀신을 친숙한 삶의 동반자로 묘사한다.

이는 비단 한국만의 사정은 아니다. 미국의 대중문화는 과거 공포스러운 대상으로만 여겼던 뱀파이어(vampire)를 삶의 동반자로 인정하는 일이 일상적으로 바뀌었다. 2008년 개봉작 <트와일라잇(Twilight)>이나 동년 방영을 시작해 2014년까지 열광적인 인기를 얻었던 드라마 <트루 블러드(True Blood)> 등은 뱀파이어 이야기를 몇몇 매니아들만 열광하는 서브컬쳐(subculture, 변두리 문화)의 범주에서 대중의 인기를 독차지하는 문화의 중심부로 옮겨 놓았다.

이런 현상이 국내에도 영향을 준 것인지 정확히 판단하기는 어려우나, 우연찮게 <도깨비>는 <트루 블러드>의 중심적인 캐릭터 설정을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트루 블러드>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을 가졌으나 별볼 일 없는 시골식당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수키(안나 파킨 분)와, 고결한 인간성을 유지하려 애쓰는 뱀파이어 빌(스테판 모이어 분)의 우연한 만남과 사랑 이야기, 그리고 여기에 관련된 여러 초자연적 존재들의 갈등을 전체 플롯의 주된 내용으로 설정하고 있다.

<도깨비>에서도 사람이 죽어 신이 된, 나름 고결한 인격을 유지하며 존재하고 있는 도깨비 김신과 천애고아로 어렵게 살아가지만 영적 존재들을 볼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수험생이자 치킨집 홀서빙 알바생 지은탁의 사랑 이야기가 중심을 이루는 가운데, 기타 초자연적 존재들의 관여에 의해 줄거리가 전개된다. 이처럼 2007년 혹은 2008년을 기점으로 해외와 국내 할 것 없이 대중문화계의 전반적 분위기가 혼령과 귀신을 삶의 동반자로 그려내는 방향으로 흘러갔음을 확인할 수 있다. <도깨비>의 영적 존재들에 대한 묘사도 이런 큰 조류의 맥락에서 바라보는 것이 이해에 도움을 주리라 생각한다.

▲미국에서 뱀파이어 붐을 일으켰던 드라마 &lt;트루 블러드&gt;. 뱀파이어를 인간과 함께 거주하는 시민이자 사랑의 대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미국에서 뱀파이어 붐을 일으켰던 드라마 <트루 블러드>. 뱀파이어를 인간과 함께 거주하는 시민이자 사랑의 대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환생한 저승사자: "들어왔던 데로 나가시면 됩니다. 저승은 유턴이거든요"

지난 칼럼에서 한국 신화는 대략 두 가지 계보의 신화들로 구성돼 있고, 그 가운데 옥황상제계 신화가 내세중심적 세계관과 영혼관을 반영하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 옥황상제계 신화들 중 내세와 영혼의 운명에 대한 우리 민족의 전통적 사고방식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저승사자 신화이다. 한국의 저승사자 신화에서 가장 유명한 이는 '강림도령'으로서, <도깨비>에 등장한 저승사자 김차사 캐릭터의 기원이 되는 인물이다.

강림도령의 신화를 간략하게 요약해 살펴보도록 하자. 동경국에 버물왕이라는 자가 살았는데, 그는 만사가 형통한 인물이었지만 자식이 없었다. 그는 자식을 얻기 위해 부처에게 수륙재(水陸齋, 물과 육지의 고독한 영혼들과 아귀들을 먹여 달래는 제사)를 올려 아들을 아홉이나 얻게 된다.

▲옥황상제계 신화에서 강림도령의 조력자로 등장하는 저승사자들. 일직사자(日直使者, 왼쪽)와 월직사자(月直使者, 오른쪽).

▲옥황상제계 신화에서 강림도령의 조력자로 등장하는 저승사자들. 일직사자(日直使者, 왼쪽)와 월직사자(月直使者, 오른쪽).

그러나 중간의 넷째, 다섯째, 여섯째 아들을 빼고 나머지 여섯 아들은 모두 병을 얻어 일찍 죽는다. 나머지 세 아들도 병을 얻어 죽을까 두려웠던 버물왕은, 세 아들을 도력이 높은 고승에게 보내 죽음의 운명을 피하도록 한다. 세 아들은 그 후 3년간 절에서 불공을 드리며 살았다. 부모가 그리워진 세 아들들은 고승의 허락을 얻어 명주와 비단, 은그릇과 놋그릇 등 귀한 선물을 챙겨 부모를 만나기 위해 고향으로 가는 여행길에 나선다. 그러나 세 아들들 모두 여행 중 그들이 가진 귀한 물건을 노린 과양각시라는 악녀에게 속아 술을 먹고 취해 그녀에게 살해당한다.

세 아들은 그 후 기구하게도 과양각시의 세 아들로 다시 태어난다. 악독한 성품을 가진 그녀에게는 과분하게도, 세 아들은 학식이 뛰어난 소년들로 자라 셋 모두 16세에 과거에 응시하여 급제하게 된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세 아들은 금의환향하여 과양각시가 보는 그 자리에서 함께 죽어 버린다.

과양각시는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으로 고을 원님을 찾아가, 세 아들의 사인을 밝혀달라고 탄원한다. 원님은 수하들을 시켜 사인을 찾아보나 답을 못 찾았다. 그러자 과양각시는 원님을 원망하기 시작했다. 원님은 당황스럽기도 하고 화도 나서 천신 10대왕 중 하나이자 저승을 관장하는 염라대왕을 잡아와 직접 따지기로 결심한다.

원님은 염라대왕을 소환하러 누굴 보낼까 고민하다, 가장 영특한 나졸인 강림을 협박해 염라대왕을 잡아오도록 명한다. 강림은 저승에 갈 방법을 몰라 고민했는데, 꾀가 많고 지혜로운 강림의 첫째 부인이 조왕신(竈王神, 부엌의 신이자 불의 신, 부엌을 아끼고 잘 다스리는 아낙네들의 소원을 잘 들어줌)에게 빌어 저승에 가는 방법을 알아내 강림에게 자세히 알려준다. 특히 그녀는 염라대왕을 잡기 위해 저승의 법도대로 붉은 종이에 흰 글씨로 염라대왕의 이름을 적어야 한다고 알려준다.

강림은 이 소환장을 갖고 길을 떠나 3년 동안 온갖 기지를 발휘하여 죽을 고생을 다해 저승에 이르러 염라대왕을 데려온다. 염라대왕이 와서 과양각시의 세 아들들이 죽은 이유를 살펴보니, 이들이 실은 과양각시가 죽였던 버물왕의 세 아들들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염라대왕은 이들을 원래대로 버물왕의 세 아들들로 되살려낸 뒤 고향으로 무사하게 되돌려 보냈다.

그 후 악행을 행한 과양각시는 쳐서 죽인 뒤 디딜방아에 빻아 가루로 만들어 바람에 날려버렸다. 모든 일을 처리한 염라대왕은 강림의 재주와 능력이 탐나서, 그의 혼을 가져가 죽은 사람들의 영혼을 저승으로 데려오는 사자로 임명한다.

▲저승의 상급신 염라대왕(가운데). 원래는 힌두교의 저승신이었는데 불교식으로 흡수되어 한국 신화에 전해진다.

▲저승의 상급신 염라대왕(가운데). 원래는 힌두교의 저승신이었는데 불교식으로 흡수되어 한국 신화에 전해진다.

저승사자가 된 강림은 대개의 경우 사람들의 수명에 맞게 영혼들을 거둬 오는 유능함을 발휘한다. 특히 다른 사자들이 3천 년 동안이나 붙잡기를 실패한 동방삭(東方朔)을, 꾀를 내 붙잡은 일이 유명하다. 그러나 요령을 자주 피우고 술과 음식을 좋아하다 보니, 간혹 큰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한 번은 사람들의 수명이 적힌 적배지(赤牌旨, 붉은 천에 저승으로 데려갈 자들의 이름을 쓴 것, 즉 저승 소환장)가 무거워 까마귀에게 운반을 맡겼다가, 까마귀가 적배지를 분실해 사람들이 잘못된 수명에 집단으로 죽기도 하고, 반드시 붙잡아 와야 할 사람에게 술과 음식을 거하게 얻어먹고 결국 다른 사람을 붙잡아가거나 수명을 늘려주는 등 어수룩하고 빈틈이 많은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강림도령이 저승사자가 된 신화를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 민족이 저승사자에 대해 갖고 있던 신앙을 확인할 수 있는데, 구체적 내용은 다음 여섯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1. 저승사자는 원래 사람이었다.
2. 저승사자는 사람이었던 적이 있기에, 죽음을 앞둔 사람의 심정을 잘 이해하고 있다.
3. 저승사자는 저승사자가 되기 전이나 후나 변함없이 꾀가 많고 유능하다.
4. 저승사자는 사람이었던 때의 습성 때문에 술과 음식을 좋아하고 인정에도 약한 편이다. 이로 인해 사마장자(악하게 살다 부인 덕에 저승사자를 잘 대접하고 개과천선하여 천수를 누린 인물)나 소사만이(길에 굴러다니던 해골을 잘 모셔 해골 주인의 영혼 덕에 저승사자를 잘 대접하여 3천 년이나 살게 된 인물) 등을 데려올 때 규칙위반에 연루된다.
5. 저승사자는 이승에서 내세로 가는 길을 가장 잘 안다. 즉 천신들이 거하는 저승과 사람들이 사는 이승을 연결하는 중간자적 역할을 담당한다.
6. 저승의 업무는 염라대왕과 최판관(崔判官, 죽은 자의 선악을 판단하는 관리), 동자판관(童子判官, 사람들의 수명을 정하고 기록하는 관리), 일직사자(日直使者, 저승 삼차사 중 하나), 월직사자(月直使者, 저승 삼차사 중 하나) 등 권위적 관료제에 의해 수행되고 있으며, 적배지, 살생부(殺生簿, 사람의 수명을 적어둔 명부) 등 서류 업무가 중시된다. 적배지나 살생부 등 서류에 기록된 수명은 염라대왕도 함부로 하지 못할 정도이다.

간략하게나마 신화적 배경을 알았으니, 이제 <도깨비>에 등장한 저승사자를 살펴보자. <도깨비>의 저승사자인 '김차사'는 전생에 도깨비인 김신이 아직 인간이었을 때, 즉 고려의 장군이었을 때 그를 역모로 몰아 죽인 고려의 왕 왕여(王黎)였다. 왕여는 이 기억을 잃어버린 채 차사의 직무를 수행하는 중이다. 김신 입장에서는 자기와 자기의 누이동생, 그리고 가족들과 아끼던 부하들을 전부 죽음으로 몰아간 원수 중의 원수이다.

왕여는 간신 박중헌에게 마음을 빼앗겨 김신이 백성들로부터 얻는 칭송을 시기하고, 김신과 그 누이동생 김선(김소현, 유인나 분)을 죽이도록 명령한 인물이다. 도깨비가 된 김신과 저승사자가 된 왕여는 작중 최고신의 장난(혹은 섭리)으로 온갖 경험 끝에 화해하고 둘도 없는 친우가 된다.

▲왕여의 환생인 저승사자(이동욱 분, 왼쪽)와 저승사자의 전생인 왕여(김민재 분, 오른쪽).

▲왕여의 환생인 저승사자(이동욱 분, 왼쪽)와 저승사자의 전생인 왕여(김민재 분, 오른쪽).

왕여는 죄업으로 인해 지옥에서 200년 간 고통을 받고서야 풀려난다. 그 후 어느 시점에선가 그는 스스로 기억을 잃는 차를 마시고 저승사자가 된다. 이로써 왕여는 자신이 전생에 김신의 원수였다는 사실을 잊은 채 도깨비 김신과 한 집에 살면서 김선을 만나고, 저승사자 감사팀에게 위법행위(주로 도깨비 김신과 그 누이였던 김선, 그리고 지은탁을 돕는 일)가 적발돼 기억을 되찾는 형벌을 받게 된다. 결국 그는 자신이 전생에 김신, 김선과 악연으로 얽혔던 사람이었음을 기억해낸다.

저승사자인 왕여는 이승의 사정과 현대문물(특히 스마트폰)에 대해서는 매우 둔하고 어설프지만, 김신을 골탕먹이는 일과 김신의 인간관계 문제(주로 지은탁, 그리고 김선과 관련된 문제)에 도움을 주는 일, 그리고 영혼들을 환생, 천계, 혹은 지옥으로 인도하는 직임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영악하고 유능한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죽은 영혼들을 저승으로 인도할 때, 겉으로 크게 드러내지는 않지만 선량하게 산 자들을 동정하고 우대하며 어리석고 악하게 산 자들을 조롱하고 경멸하는 모습을 보인다.

저승사자 왕여와 그의 동료 저승사자들은 엄격한 기수별 위계질서를 지키고 있고, 서류업무와 야근에 시달리며 자주 회식을 갖는다. 또한 저승사자들을 규율하는 상부 행동지침과 저승사자 감사팀의 제재를 두려워한다. 한 마디로 한국의 관료제적 공무원 사회를 저승사자들의 세계에 그대로 옮겨놓은 모습이다.

옥황상제계 신화에 등장한 강림도령과 <도깨비>에 등장한 김차사 왕여, 둘의 모습을 비교해 보면 상당히 많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둘 모두 전생에 사람이었다가 중간급 신이 된 반신(半神)적 존재이고, 영혼을 저승으로 데려가는 일에 재주가 많고 똑똑하며, 인정이 많아 선량한 자들을 우대하며, 능력에 걸맞지 않게 규칙위반이나 실수도 많이 저지른다. 신화에서든 드라마에서든 저승사자는 동료 사자들의 도움을 받기도 하며, 관료적 계급사회의 규율과 서류업무에 얽매여 있다. 이로 보건대 <도깨비>는 우리 민족의 저승사자 신화를 상당히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기존 무시무시한 저승사자의 이미지(왼쪽). 검은 도포와 갓, 창백하고 무서운 얼굴이 특징. 반면 &lt;도깨비&gt;의 저승사자(오른쪽)는 보다 현대적이고 매력적인 이미지로 표현되어 있다.

▲기존 무시무시한 저승사자의 이미지(왼쪽). 검은 도포와 갓, 창백하고 무서운 얼굴이 특징. 반면 <도깨비>의 저승사자(오른쪽)는 보다 현대적이고 매력적인 이미지로 표현되어 있다.

저승사자들이 전생에 죄를 많이 지은 자들이었다는 점, 그리고 과거의 기억을 잃었다거나 전생에 깊게 얽혔던 인연들에 연연한다는 점 등은 저승사자 신화들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드라마적 설정이긴 하지만, 이도 역시 무속 신앙에 깊게 영향을 준 대중적 불교사상을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다. 과양각시와 세 아들들의 일화에서 볼 수 있듯, 선연이든 악연이든 연자(緣者)들이 환생 후 다시 긴밀한 인간관계로 얽히는 류의 이야기는 옥황상제계 신화에서 드물지 않게 발견된다.

다시 말해, <도깨비>에 등장한 저승사자는 우리 민족 고유의 무속 신앙과 정서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이동욱이라는 미남 배우의 순애보적 연기, 그리고 으스스한 검은 도포와 갓 대신 현대적 패션감각이 돋보이는 롱코트와 페도라(fedora, 챙이 달렸고 위쪽 중간이 약간 파인 모자)의 이미지를 덧입어, 우리에게 보다 친숙한 외양을 갖춘 매력적인 신화적 우상으로 거듭난다.

인간적 귀신(鬼神): "너 아는 사람들 내가 싹 다 해코지 할거야"

<도깨비>에서 도깨비, 저승사자와 함께 빼놓을 수 없는 캐릭터가 바로 귀신이다. 앞서 간략하게 설명한 대로, 귀신이란 존재는 최근의 한국 대중문화에서 매우 친숙한 이미지로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있고, <도깨비>도 이런 경향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도깨비>의 귀신들은 우리 민족의 전통적 영혼관을 충실하게 반영한다. 한국의 전통적 영혼관은 단지 무속적 범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제사를 통한 조상신 숭배의 유교적 풍습과 연관돼 우리 민족의 생활 전반을 지배해 왔다. 오죽 하면 한국 사람들의 말 중 가정에 충실함을 표현하는 대표적 언사가 "내가 죽어서도 이 집 귀신이야"라는 말이겠는가. 이 대사는 <도깨비>의 중요 조연인 유덕화(육성재 분, 대대로 도깨비 김신을 섬기는 하인가문의 후예로 등장)가 작중 발설한 대사이기도 하다.

▲&lt;도깨비&gt;의 귀신들. 죽은 후에도 원한이 풀리지 않아 이승을 떠도는 원귀(寃鬼)로 규정된다. 다만, 기존 원귀의 이미지와 달리 살아있을 때의 모습과 성격을 그대로 갖고 있어, 사람과 거의 구별되지 않을 정도의 존재로 묘사되고 있다.

▲<도깨비>의 귀신들. 죽은 후에도 원한이 풀리지 않아 이승을 떠도는 원귀(寃鬼)로 규정된다. 다만, 기존 원귀의 이미지와 달리 살아있을 때의 모습과 성격을 그대로 갖고 있어, 사람과 거의 구별되지 않을 정도의 존재로 묘사되고 있다.

원래 한국 사람들의 귀신에 대한 이해는 중국에서 전래된 유교의 영향을 받았으며, 대략 두 갈래로 구분될 수 있다. 첫째는 조선시대 단종(端宗)과 세조(世祖) 대에 주로 활동한 문인 김시습(金時習, 1435-1493, 생육신의 1인)이 저술한 <금오신화(金鰲新話, 중국의 전등신화를 참고해서 만든 한국역사 최초의 한문소설로서, 불교와 도교적 사상을 강하게 반영)>에 나오는 귀신에 대한 설명이다. 다음은 금오신화에 수록된 이야기 중 '남염부주지(南炎浮洲志)'에 나오는 구문이다.

生又問曰 鬼神之說乃何 (박생이 또 물었다. "귀신이란 어떤 것입니까?")

王曰 鬼者陰之靈 神者陽之靈 蓋造化之迹而二氣之良能也 生則曰人物 死則曰鬼神 而其理則未嘗異也 (왕이 말하였다. "귀는 음의 영이고, 신은 양의 영입니다. 귀신은 대개 조화의 자취이고, 음양 두 기의 타고난 재능이 있는 자입니다. 살아있을 때에는 '인물'이라 하고 죽은 뒤에는 '귀신'이라 하지만, 그 이치는 다르지 않습니다.")

이 구문에서 깁시습은 도교의 음양론(陰陽論)을 통해 귀신의 존재를 설명하고 있다. 그는 귀신을 죽은 사람이 존재하는 방식으로 규정하며, 음과 양의 속성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음의 영은 귀(鬼), 양의 영은 신(神)으로 불리기 때문에, 둘을 합쳐 귀신이라 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어서 김시습은 음의 영인 귀는 원한과 증오 등 부정적이고 음(陰)한 기운을 갖고 있으므로 사람과 접촉하면 해를 입히고, 양의 영인 신은 생전의 덕행을 힘입고 있으므로 사람의 숭배를 받으며 행운을 가져다 준다고 해설한다.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과 &lt;금오신화(金鰲新話)&gt;.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과 <금오신화(金鰲新話)>.

귀신에 대한 이해를 대표하는 다른 한 가지의 설명은 조선시대 영조(英祖) 대에 주로 활동하였던 실학자 이익(李瀷, 1681-1763)의 <성호사설(星湖僿說, 이익이 독서하다가 느낀 점, 혹은 제자들과의 문답 내용 등을 담은 저서)> 제3권에 수록된 '천지문(天地門)' 편의 '귀신(鬼神)' 항에 기재돼 있다.

程子曰 鬼神造化之迹也... (정자가 "귀신은 조화의 자취이다"라고 하였다.)

橫渠云 二氣之良能也 朱子謂程說不如橫渠愚 謂二氣隂陽也鬼也者隂之靈神也者陽之靈... (횡거는 귀신을 "이기의 양능"이라 했는데, 주자는 "정자의 말이 횡거만 같지 못하다"고 평했다. 나는 이기를 음양으로 본다. 귀는 음의 영이고 신은 양의 영으로서...)

朱子又以甘蔗為喻其香氣便喚做神其漿汁便喚做鬼此 又魂魄之說也 别有說不贅 (주자는 또 사탕수수를 가지고 비유했으니, 그 향기를 신으로 부르고, 그 즙액을 귀로 불렀다. 이것은 또 혼백의 설이다. 또 다른 설도 있지만 덧붙이지 않는다.)

이익의 귀신에 대한 해설은 김시습의 것과 그리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다만, 이익은 사람뿐 아니라 생명력을 가진 모든 것이 귀신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을 택해, 귀신의 정체를 보다 넓은 범위로 규정하고 있다.

▲성호(星湖) 이익(李瀷)과 &lt;성호사설(星湖僿說)&gt;.

▲성호(星湖) 이익(李瀷)과 <성호사설(星湖僿說)>.

<도깨비>의 귀신들은 어떠한가? 우선 귀(鬼)에 대해선 김시습의 귀신관이 정확하게 반영되고 있다. 도깨비 김신, 저승사자 왕여, 귀신을 볼 수 있는 도깨비 신부 지은탁의 눈에 비친 귀신들은 모두 살아생전 풀리지 않은 깊은 원한을 갖고 있다. 그러면서도 영적 능력의 차이 때문인지 도깨비와 저승사자는 두려워하는 반면, 사람인 지은탁은 두려워하지 않고 자꾸 들러붙어 귀찮게 하며, 원한을 풀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간청한다.

이런 설정은 미국에서 크게 흥행했던 귀신 영화 <식스 센스(The Sixth Sense)>의 내용과도 일맥상통한다. <도깨비>에서도 시험을 준비하다 고시원에서 죽은 영혼이 지은탁에게 어머니의 마음을 위로해주도록 부탁하는 장면, 그리고 도깨비 김신과 지은탁이 보험금을 노린 남편과 내연녀에 의해 살해된 영혼의 원한을 갚아주는 장면이 나온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음의 영 중에는 900년 동안이나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죄업을 진 채 떠돌아다니는 왕여의 간신이자 김신의 원수 박종헌이 있는데, 이 영혼은 떠돌아다니며 사람들의 생기를 빼앗아 죽이는 힘을 가진 것으로 표현된다. 이처럼 <도깨비> 속 장면들은 귀신이 살아생전 원한을 가져 음의 기운을 갖게 된 영혼, 즉 죽은 사람의 영혼이라는 김시습의 귀(鬼)에 대한 설명에 상응한다.

그렇다면 <도깨비>에는 양의 영인 신(神)도 등장할까? 당연히 등장한다. 바로 도깨비 김신이 김시습이 말한 신에 해당된다. 그러고 보면 김신이라는 이름 자체도 의미심장하다. 원래 드라마 속에서 김신의 이름은 믿을 신(信)자를 쓴다. 그러나 간신 박중헌이 고려왕 왕여에게 김신을 모함할 때 발설한 대사에는 김신의 이름이 은연중에 '신(神)'을 대변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백성 위에 왕, 왕 위에 신(神), 그 신이 김신을 일컫는다 합니다."

김신이 죽은 뒤 최고신의 뜻에 따라 도깨비라는 반신적 존재가 된 것은 귀와 신의 탄생을 모두 충족한 처사로 해석할 수 있다. 고려 장군으로써 외적으로부터 나라를 보호하고 주군에게 충성을 다한 공으로, 반신적 존재인 도깨비가 되어 간신 박중헌에게 원한을 갚을 기회를 얻었다는 측면으로 보면, 김신의 정체는 신이다. 반면 왕에게 억울하게 모함을 받아 누이동생과 일가친척, 아끼던 수하들을 모두 잃은 원한을 갖고 있다는 측면으로 보면 김신의 정체는 귀이다.

사실 도깨비가 원래 사람이었다는 설정은 한국의 도깨비 신화에서 찾아볼 수 없는 드라마적 설정이다. 이로 보건대 <도깨비>는 극적 감흥을 극대화하기 위해 한국 전통의 도깨비 신앙에 무속과 귀신이해를 덧입힌 것처럼 보인다. 이 부분에 대해선 본 칼럼 하편에서 보다 자세하게 논할 기회를 갖도록 한다.

▲지은탁의 도움으로 어머니를 위로하고 한을 풀어 편하게 저승에 갈 수 있었던 고시생 귀신. 많은 시청자들의 마음을 움직인 감동적 장면이다.

▲지은탁의 도움으로 어머니를 위로하고 한을 풀어 편하게 저승에 갈 수 있었던 고시생 귀신. 많은 시청자들의 마음을 움직인 감동적 장면이다.

간신 박종헌의 귀신 사례를 제외하면, <도깨비>는 전반적으로 '감동 코드'를 넣어 귀신과 인간의 교류를 서술한다. 귀신들의 원한을 풀어주는 지은탁의 소소한 활약이 그렇고, 도깨비 김신과 저승사자 왕여, 그리고 김신의 누이동생 김선 사이에 얽혀 있는 원한의 해소 또한 감동으로 다가오도록 기획돼 있다. 드라마의 전반부와 마지막 부분이 김신과 지은탁의 러브라인 중심으로 진행된다면, 드라마 중후반부는 김신, 왕여, 저승사자 사이의 원한 해소가 줄거리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영적 존재와의 교류와 한(恨)의 해소, 이것은 우리 민족의 전통적이고 무속적인 종교성 밑바탕에 깔려 있는 근본사상이다. 이처럼 귀신에 대한 이야기가 감동적 휴머니즘으로 귀결되는 사례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간혹 발견된다. 앞서 언급한 영화 <식스 센스>가 대표적인데, 이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는 귀신을 보는 아이가 외할머니의 영혼을 보고 대화한 이야기를 전해 어머니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장면, 귀신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을 도우려다 죽은 말콤(브루스 윌리스 분)의 한을 풀어주는 장면 등이 나온다.

▲영화 &lt;식스 센스&gt;의 마지막 장면. 죽은 사람의 영혼을 볼 수 있는 아들로부터 외할머니의 전언을 듣고 울먹이는 어머니의 모습. &lt;식스 센스&gt; 최고의 장면.

▲영화 <식스 센스>의 마지막 장면. 죽은 사람의 영혼을 볼 수 있는 아들로부터 외할머니의 전언을 듣고 울먹이는 어머니의 모습. <식스 센스> 최고의 장면.

죽은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한을 해소하고 복을 비는 정서는 한국 무속과 조상숭배 사상의 핵심을 관통하는 것으로, 제사 혹은 굿을 통하여 가까웠던 조상이나 가족의 영혼과 교류하려는 욕망을 반영하고 있다.

결국 <도깨비> 속 귀신의 묘사라는 측면에 집중해 본다면, 감동적인 플롯과 영상미 속에 담아낸 현대적 굿판이자 제사의 장(場)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굳이 굿판에 가지 않아도, 그리고 제사상에 참여하지 않아도 접신과 한의 해소 장면을 목격할 수 있다. 박수나 무당이 죽은 가족들의 영혼과 접신하여 울며 소리지르고 대화하던 장면들을, 세련된 방식으로 현대화해 안방 모니터로 구경할 수 있다.

그 가운데서 함께 공감하며 함께 눈물짓는 것이 과연 기독교인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 것인지,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진지하게 숙고하고 반성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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