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와 ‘촛불’로 갈라진 그곳의 기독교인들

김진영·김은애 기자  jykim@chtoday.co.kr   |  

“거짓의 영에 휘둘려” VS “우리가 정의의 편”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살려주셨는데, 우리가 이렇게 가면 안 된다. (촛불 집회 참석자들이) 거짓의 영에 휘둘리고 있다."

"기독교인으로서 정의롭게 사는 게 옳다고 본다. 촛불집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정의의 편이라고 생각한다."

벌써 수주 째 '태극기'와 '촛불'로 양분된 대한민국 서울의 광화문과 시청 일대. 그리고 그 속에는 저마다의 신념과 가치관으로 무장한 기독교인들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 4주년이자 3.1절을 나흘 앞둔 25일, 태극기와 촛불을 든 기독교인들을 만났다.

▲태극기집회가 열리고 있다. ⓒ김진영 기자

▲태극기집회가 열리고 있다. ⓒ김진영 기자

"사람의 눈치를 보면 안 된다"

오후 3시가 조금 지난 시간. 이미 시청 앞 서울광장은 온통 태극기와 성조기를 든 이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대한문 앞에 설치된 중앙 무대 위 연사들의 발언이 곳곳에 설치된 스피커와 대형 화면을 타고 주변으로 흩어졌다. 그 때마다 태극기가 군중들의 함성과 함께 공중에서 휘날렸다.

한 눈에 봐도 중년 이상의 이들이 많았다. 간혹 젊은이들이 보였고 드물었으나 어린 아들 딸과 함께 나온 부모도 있었다. 군데군데 외국인들도 눈에 띄었다. 그러나 상당수는 요즘 젊은이들의 부모 세대였다.

태극기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성조기는 물론이었고, '육사' '군인' '대한민국' '보수' '기독교' '애국' 등의 단어가 들어간 단체명의 깃발들도 나부꼈다. '탄핵 무효' '종북 척결'  '안보 제일'  등이 적힌 플래카드들도 저마다 손에 하나씩은 쥐고 있었다. 이따금씩 '군가'가 울려 퍼지기도 했다.

70대 중반의 남성. 어릴 적 6.25 한국전쟁을 겪었고 소위 '꿀꿀이죽'을 먹어가며 허기를 달랬다고 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그런 걸 몰라. 어떻게 지켜온 대한민국인데. 그걸 알면 이럴 수 없지." 한 손에 든 태극기를 머리 위로 치켜들며 마치 토해내듯 말을 잇는다.

그는 다른 한 손에 성조기도 들었다. "미국의 젊은이들이 이역만리에서 이름도 모르는 나라를 위해 피를 흘렸어. 대한민국이 그 피 위에 있는 거야." 그는 자신을 기독교인이라고도 밝혔다. 그러면서 "교회가 회개해야 한다. 사람의 눈치를 보면 안 된다"고 했다.

▲태극기집회에서의 십자가가 그려진 현수막 ⓒ김진영 기자

▲태극기집회에서의 십자가가 그려진 현수막 ⓒ김진영 기자

50대 초반의 여성. 자신을 언론인이라고 소개했다. 교회 권사라고도 했다. 태극기 집회엔 이날 처음 나왔단다. "그 동안 가능하면 중립적이고자 했다. 하지만 더 이상 우리나라가 이래선 안 된다는 생각에 뛰쳐나왔다." 점잖았던 목소리가 갑자기 떨린다. "특히 언론이 거짓 선동을 하고 있다."

그녀는 또 "지금 우리나라가 마치 구약 성경의 사사기와 같다. 하나님을 떠나 제 각각 길을 가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믿는 이들이 더욱 기도해야 한다"며 "교인들도 교회에서 공개적으로 말은 하지 않지만 알음알음 이곳으로 나오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20대 중반의 청년. 그는 원래 촛불집회에 참석 했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곳에서의 구호가 점점 본질과는 멀어진다고 생각했고, 무엇보다 이렇다 할 사법적 판결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이 같은 분노가 합당하지 않다고 봤다. 상대적으로 촛불집회에 청년들이 더 많은 것에 대해선 "우리나라의 역사를 부끄러워하기 때문 아닐까"라고 했다.

▲춧불집회가 열리고 있다. ⓒ김진영 기자

▲춧불집회가 열리고 있다. ⓒ김진영 기자

"예수님이 지금 사셨더라도..."

여기에서 약 500m 떨어진 곳에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이 운집해 있다. 비교적 젊은이들이 자주 눈에 띈다. 더 이상 태극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종이컵을 받친 초를 하나씩 들었다. 그러나 사방으로 울려 퍼지는 우렁찬 구호와 함성은 태극기집회와 다르지 않다. 다만 '조기 탄핵' '적폐 청산'  등의 말들이 이곳을 수놓고 있을 뿐.

중앙 무대에선 연사들의 발언과 가수들의 노래가 번갈아 이어졌다. 당찬 모습으로 무대에 오른 20대의 대학생. 그는 4년 전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식에 참석했었다며, 그를 지지하진 않았으나 기대는 했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에 그 기대가 완전히 무너졌다고.

"박근혜 대통령으로 인해 우리나라가 더 비정상적이 되었습니다. 세월호 참사, 국정원 댓글 의혹, 일본 위안부 합의 등등 과연 제대로 된 것이 무엇입니까? 이제 끝내야 합니다." 울분에 찬 목소리가 광장을 흔들었다. 그의 뒤를 이어 노조 관계자, 제주 강정마을 주민 등도 단에 올랐다.

대중가요는 순서와 순서를 잇는 그야말로 윤활유였다. 태극기집회의 '군가'와는 그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군중들은 때론 눈을 감은 채, 때론 손을 흔들며 힘차게 노래를 따라 불렀다. 여기서도 여러 단체의 이름이 적힌 깃발들이 바람에 날렸다. 주로 노동자 관련 단체의 그것이었다.

▲촛불집회에 걸린 대형 현수막 ⓒ김진영 기자

▲촛불집회에 걸린 대형 현수막 ⓒ김진영 기자

30대 중반의 주부. 기독교인인 그녀는 이날 집회를 "역사적 순간"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기독교인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우리가 이 나라 국민이고 의식이 있다면 (촛불집회에) 참여를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정의와 공의가 있다. 종교를 떠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인격을 주셨고, 우리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알게 하셨다. 예수님이 지금 이 시대에 사셨더라도 아마 (우리와) 같은 편에 서지 않으셨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20대의 청년. 그 역시 기독교인이었다. 촛불집회에는 이날 처음 참석했다. 마찬가지로 이날 집회를 "역사적"이라는 말로 수식했다. 그래서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고. 그는 "기독교인으로서 정의롭게 사는 게 옳다고 본다. 촛불집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정의의 편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했다.

한편, 이날 태극기집회와 촛불집회 사이 약 500m의 공간은 경찰들이 혹시 모를 충돌에 대비해 버스로 '차벽'을 만들어 차단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국민들이 딱 그 만큼 서로 갈라져 있는 듯 했다. 교회는 무얼 해야 할까? 

<저작권자 ⓒ '종교 신문 1위' 크리스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구독신청

에디터 추천기사

10월 3일 오전 은혜와진리교회 대성전(담임 조용목 목사)에서 ‘제2회 한국교회 기도의 날’이 개최됐다.

“한국교회, 불의에 침묵 말고 나라 바로잡길”

대통령의 비상계엄, 자유민주 헌정질서 요청 목적 국회, 탄핵 ‘일사부재의 원칙 위반’… 증거도 기사뿐 공산세력 다시 정권 잡고 나라 망치도록 둬야 하나 12월 20일 각자 교회·처소에서 하루 금식기도 제안 대한민국기독교연합기관협의회, (사)한국기독교보…

이정현

“이것저것 하다 안 되면 신학교로? 부교역자 수급, 최대 화두 될 것”

“한국 많은 교회가 어려움 속에 있다. 내부를 들여다보면, 결국 믿음의 문제다. 늘상 거론되는 다음 세대의 문제 역시 믿음의 문제다. 믿음만 있으면 지금도 교회는 부흥할 수 있고, 믿음만 있으면 지금도 다음 세대가 살아날 수 있고, 믿음만 있으면 앞으로도 교회…

김맥

청소년 사역, ‘등하교 심방’을 아시나요?

아침 집앞에서 학교까지 태워주고 오후 학교 앞에서 집이나 학원으로 아이들 직접 만나 자연스럽게 대화 내 시간 아닌 아이들 시간 맞춰야 필자는 청소년 사역을 하면서 오랫동안 빠지지 않고 해오던 사역이 하나 있다. 바로 등하교 심방이다. 보통 필자의 하루…

윤석열 대통령

“탄핵, 하나님의 법 무너뜨리는 ‘반국가세력’에 무릎 꿇는 일”

윤 정부 하차는 ‘차별금지법 통과’와 같아 지금은 반국가세력과 체제 전쟁 풍전등화 비상계엄 발동, 거대 야당 입법 폭주 때문 대통령 권한행사, 내란죄 요건 해당 안 돼 국민 상당수 부정선거 의혹 여전… 해소를 6.3.3 규정 지켜 선거범 재판 신속히 해야 수…

한교총 제8회 정기총회 열고 신임원단 교체

한교총 “극한 대립, 모두를 패배자로… 자유 대한민국 빨리 회복되길”

한국교회총연합(대표회장 김종혁 목사, 이하 한교총)이 2024년 성탄절 메시지를 통해 국내외 혼란과 갈등 속에서 평화와 화합을 소망했다. 한교총은 국제적으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이 계속되는 상황과 더불어, 국내에서는 정치권…

차덕순

북한의 기독교 박해자 통해 보존된 ‘지하교인들 이야기’

기독교 부정적 묘사해 불신 초래하려 했지만 담대한 지하교인들이 탈북 대신 전도 택하고 목숨 걸고 다시 北으로 들어갔다는 사실 알려 북한 군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다 체포된 두 명의 북한 지하교인 이야기가 최근 KBS에서 입수한 북한의 군사 교육 영상, 에 기…

이 기사는 논쟁중

윤석열 대통령

빙산의 일각만을 보고 광분하는 그대에게

빙산의 일각만을 보고 광분하는 사람들 잘 알려진 대로 빙산은 아주 작은 부분만 밖으로 드러나고, 나머지 대부분은 물에 잠겨 있다. 그래서 보이지 않고 무시되기 쉽다. 하지만 현명한 …

인물 이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