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의 영에 휘둘려” VS “우리가 정의의 편”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살려주셨는데, 우리가 이렇게 가면 안 된다. (촛불 집회 참석자들이) 거짓의 영에 휘둘리고 있다."
"기독교인으로서 정의롭게 사는 게 옳다고 본다. 촛불집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정의의 편이라고 생각한다."
벌써 수주 째 '태극기'와 '촛불'로 양분된 대한민국 서울의 광화문과 시청 일대. 그리고 그 속에는 저마다의 신념과 가치관으로 무장한 기독교인들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 4주년이자 3.1절을 나흘 앞둔 25일, 태극기와 촛불을 든 기독교인들을 만났다.
"사람의 눈치를 보면 안 된다"
오후 3시가 조금 지난 시간. 이미 시청 앞 서울광장은 온통 태극기와 성조기를 든 이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대한문 앞에 설치된 중앙 무대 위 연사들의 발언이 곳곳에 설치된 스피커와 대형 화면을 타고 주변으로 흩어졌다. 그 때마다 태극기가 군중들의 함성과 함께 공중에서 휘날렸다.
한 눈에 봐도 중년 이상의 이들이 많았다. 간혹 젊은이들이 보였고 드물었으나 어린 아들 딸과 함께 나온 부모도 있었다. 군데군데 외국인들도 눈에 띄었다. 그러나 상당수는 요즘 젊은이들의 부모 세대였다.
태극기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성조기는 물론이었고, '육사' '군인' '대한민국' '보수' '기독교' '애국' 등의 단어가 들어간 단체명의 깃발들도 나부꼈다. '탄핵 무효' '종북 척결' '안보 제일' 등이 적힌 플래카드들도 저마다 손에 하나씩은 쥐고 있었다. 이따금씩 '군가'가 울려 퍼지기도 했다.
70대 중반의 남성. 어릴 적 6.25 한국전쟁을 겪었고 소위 '꿀꿀이죽'을 먹어가며 허기를 달랬다고 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그런 걸 몰라. 어떻게 지켜온 대한민국인데. 그걸 알면 이럴 수 없지." 한 손에 든 태극기를 머리 위로 치켜들며 마치 토해내듯 말을 잇는다.
그는 다른 한 손에 성조기도 들었다. "미국의 젊은이들이 이역만리에서 이름도 모르는 나라를 위해 피를 흘렸어. 대한민국이 그 피 위에 있는 거야." 그는 자신을 기독교인이라고도 밝혔다. 그러면서 "교회가 회개해야 한다. 사람의 눈치를 보면 안 된다"고 했다.
50대 초반의 여성. 자신을 언론인이라고 소개했다. 교회 권사라고도 했다. 태극기 집회엔 이날 처음 나왔단다. "그 동안 가능하면 중립적이고자 했다. 하지만 더 이상 우리나라가 이래선 안 된다는 생각에 뛰쳐나왔다." 점잖았던 목소리가 갑자기 떨린다. "특히 언론이 거짓 선동을 하고 있다."
그녀는 또 "지금 우리나라가 마치 구약 성경의 사사기와 같다. 하나님을 떠나 제 각각 길을 가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믿는 이들이 더욱 기도해야 한다"며 "교인들도 교회에서 공개적으로 말은 하지 않지만 알음알음 이곳으로 나오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20대 중반의 청년. 그는 원래 촛불집회에 참석 했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곳에서의 구호가 점점 본질과는 멀어진다고 생각했고, 무엇보다 이렇다 할 사법적 판결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이 같은 분노가 합당하지 않다고 봤다. 상대적으로 촛불집회에 청년들이 더 많은 것에 대해선 "우리나라의 역사를 부끄러워하기 때문 아닐까"라고 했다.
"예수님이 지금 사셨더라도..."
여기에서 약 500m 떨어진 곳에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이 운집해 있다. 비교적 젊은이들이 자주 눈에 띈다. 더 이상 태극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종이컵을 받친 초를 하나씩 들었다. 그러나 사방으로 울려 퍼지는 우렁찬 구호와 함성은 태극기집회와 다르지 않다. 다만 '조기 탄핵' '적폐 청산' 등의 말들이 이곳을 수놓고 있을 뿐.
중앙 무대에선 연사들의 발언과 가수들의 노래가 번갈아 이어졌다. 당찬 모습으로 무대에 오른 20대의 대학생. 그는 4년 전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식에 참석했었다며, 그를 지지하진 않았으나 기대는 했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에 그 기대가 완전히 무너졌다고.
"박근혜 대통령으로 인해 우리나라가 더 비정상적이 되었습니다. 세월호 참사, 국정원 댓글 의혹, 일본 위안부 합의 등등 과연 제대로 된 것이 무엇입니까? 이제 끝내야 합니다." 울분에 찬 목소리가 광장을 흔들었다. 그의 뒤를 이어 노조 관계자, 제주 강정마을 주민 등도 단에 올랐다.
대중가요는 순서와 순서를 잇는 그야말로 윤활유였다. 태극기집회의 '군가'와는 그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군중들은 때론 눈을 감은 채, 때론 손을 흔들며 힘차게 노래를 따라 불렀다. 여기서도 여러 단체의 이름이 적힌 깃발들이 바람에 날렸다. 주로 노동자 관련 단체의 그것이었다.
30대 중반의 주부. 기독교인인 그녀는 이날 집회를 "역사적 순간"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기독교인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우리가 이 나라 국민이고 의식이 있다면 (촛불집회에) 참여를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정의와 공의가 있다. 종교를 떠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인격을 주셨고, 우리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알게 하셨다. 예수님이 지금 이 시대에 사셨더라도 아마 (우리와) 같은 편에 서지 않으셨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20대의 청년. 그 역시 기독교인이었다. 촛불집회에는 이날 처음 참석했다. 마찬가지로 이날 집회를 "역사적"이라는 말로 수식했다. 그래서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고. 그는 "기독교인으로서 정의롭게 사는 게 옳다고 본다. 촛불집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정의의 편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했다.
한편, 이날 태극기집회와 촛불집회 사이 약 500m의 공간은 경찰들이 혹시 모를 충돌에 대비해 버스로 '차벽'을 만들어 차단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국민들이 딱 그 만큼 서로 갈라져 있는 듯 했다. 교회는 무얼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