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미술과 중세의 역사, 그리고 기독교

김신의 기자  ewhashan@gmail.com   |  

양정무 교수의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올해 초,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는 성경에 손을 얹고 “하나님 우릴 도우소서(So help me God)”라는 말로 취임 선서를 끝맺었다. 취임선서에서 중세 왕의 대관식처럼 공공연하게 하나님을 부르는 모습은 미국 뿐 아니라 영국, 프랑스, 캐나다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볼 수 있다. 미국 화폐에는 ‘우리가 믿는 하나님 안에서(In God we trust)’란 문구도 새겨져 있다. 더욱이 서양 미술의 역사에서 기독교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아름다울 미(美)’는 ‘양 양(羊)’과 ‘클 대(大)’가 합쳐진 글자입니다. 고대 한자어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미(美)’를 ‘양(羊)’과 ‘화(火)’가 합쳐진 글자로 보기도 한답니다. 즉 고대 중국 사람들은 제단에서 불타게 될 살진 양에게서 아름다움의 본질을 발견한 겁니다. 한 없이 착해 보이는 이 어린 양은 마치 예수가 인간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것처럼 인간의 속죄와 정화를 위해 죽어가겠지요.”-<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3권 도입부 중에서

▲양정무 교수. ⓒ사회평론 제공

▲양정무 교수. ⓒ사회평론 제공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속칭 ‘난처한 미술이야기’) 시리즈의 저자 양정무 교수는 이 책 3권에서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에 있는 <수르바란, 어린 양> 작품을 설명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덧붙이자면 <난처한 미술 이야기>는 미술사 관련 교양도서 중 유례없이 독자들에게 주목을 받았고 여러 언론사로부터 ‘올해의 책’, ‘올해의 저자’로 선정된 서적이다.

양정무 교수는 서양미술을 깊이 이해하려면 중세 역사를 알아야 하고, 또 중세의 핵심 요소는 기독교라고 말한다. 그는 질의응답과 대화 형식을 사용해 누구나가 미술사 뿐 아니라 서양의 역사에 친근하게 다가가도록 돕는다. 그리고 기독교가 서양의 회화, 건축 등 모든 면에 미친 영향에 대해 미술학자로서의 시각을 담아내며 문명사적 관점도 담았다. 책에 담긴 도판과 희귀한 자료들은 소장 가치를 더욱 높인다.

▲서울에 위치한 성 니콜라스 대성당(오른쪽)의 형태의 기원이자 중세 시대 원형교회 형태의 기준이 되는 &lsquo;하기아 소피아 성당&rsquo;(왼쪽). ⓒ양정무 교수 제공

▲서울에 위치한 성 니콜라스 대성당(오른쪽)의 형태의 기원이자 중세 시대 원형교회 형태의 기준이 되는 ‘하기아 소피아 성당’(왼쪽). ⓒ양정무 교수 제공

지난 4일 <난처한 미술 이야기> 후속 신간 3, 4권 출간을 기념해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는 양정무 교수와 함께 중세 미술을 엿볼 수 있는 성 니콜라스 대성당(한국정교회)을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다. 양 교수는 학창시절 미술관, 박물관 가이드를 가장 재미있게 하는 학생으로도 유명세를 탔다고 한다.

이날 양정무 교수는 “여러분을 유럽에 데려가 드릴 순 없지만 유럽 전통의 깊은 미술의 맛을 느낄 수 있도록 해드리겠다”며 성 니콜라스 대성당의 형태의 기원이자 중세 시대 원형교회 형태의 기준이 되는 ‘하기아 소피아 성당’을 소개했다. 여기서 나타나는 반복되는 회화와 건축의 형식은 ‘반복’의 의미이기보다 ‘전통의 계승’임을 강조했다.

특별히 이날 성 니콜라스 대성당의 한국정교회 대교구 측에서는 “예배는 삼위일체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고, 성화는 장식적인 면에서 사용되거나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의미 전달과 가르침에 목적이 있다”며 벽에 그려진 성화와 발견된 성화 중 밀랍(파라핀)으로 제작된 가장 오래된 성화에 대해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작은 도서관에서는 한국에서 찾아보기 힘든 오래 전 출판된 책들도 구비돼 있었다.

“그렇게 편한 일은 아니었을 겁니다. 길고 긴 순례길은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고단하고 힘든 여정이었고, 그래서 그 자체로 고행과 속죄의 과정이었거든요.”-<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4권 중에서 ▲&lsquo;성지순례&rsquo;를 가는 이들의 길을 따라 도시가 형성됐다. ⓒ양정무 교수 제공

▲‘성지순례’를 가는 이들의 길을 따라 도시가 형성됐다. ⓒ양정무 교수 제공


또 양정무 교수는 로마제국 이후부터 약 1000년간 유럽의 변해가는 면모를 간략히 설명하며 ‘성지순례’가 중심에 있던 점을 강조했다. 순례자의 길을 가는 이들을 위해 20~30km 반경마다 예배드릴 장소와 도시들이 지속적으로 생겨난 것이다. 이 같은 흐름에 맞춰 <난처한 미술 이야기> 4권은 순례길을 따라 답사 여행하는 형식으로 작성됐다. 중세 건축 양식의 꽃이라 불리는 고딕양식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은 교회의 ‘첨탑’임을 덧붙였다.

현재 양정무 교수는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이자 한국예술연구소 소장, 19대 한국미술사교육학회 회장을 역임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과거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했고 런던 유니버시티 칼리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난생 처음 공부하는 시물 이야기> 3권에서는 ‘초기 기독교 문명과 미술 - 더 이상 인간은 외롭지 않았다’라는 부제로, 1부에서는 로마제국의 멸망을, 2부에서는 기독교의 성장과 미술의 발전을, 3부에서는 게르만족의 이질적인 문화를 조명한다. 4권에서는 ‘중세 문명과 미술 - 지상에 천국을 훔쳐오다’라는 부제로 흔히 암흑기로 불리는 유럽의 중세를 찬란한 빛의 미술을 꽃피운 시대임을 강조한다. 1부에서는 ‘신을 찾아 순례를 떠나다’는 주제로 순례 여행을 떠났던 중세인들에 대한 배경을, 2부에서는 ‘십자군이 된 해적’이란 주제로 노르만족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바이킹의 후예들이 기독교를 접한 뒤 교회를 세우고 십자군으로 나서는 이야기를, 3부에서는 ‘찬양을 경쟁하다’란 주제로 고딕 양식에 대해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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