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 돌아보는 ‘자랑스런 기독교인’ 주시경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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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한글’이라는 이름 만든 학자

▲주시경 선생의 <말모이 원고(1911, 왼쪽)>, <말의 소리(1914)>. ⓒ이효상 목사 제공
▲주시경 선생의 <말모이 원고(1911, 왼쪽)>, <말의 소리(1914)>. ⓒ이효상 목사 제공

세종대왕이 만든 훈민정음은 배우기 쉽고 과학적인 글자임을 세계로부터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조선 시대에는 '언문', '암클', '아랫글'이라 불리며 무시당했다.

훈민정음은 갑오개혁 때 비로소 공식적인 나라의 글자로 인정을 받았지만, 15세기에 만들어진 글자이기 때문에 19세기 근대에 사용하기에는 잘 맞지 않았던 점도 있었다. 이를 오늘날 우리가 널리 사용하는 글자의 모습으로 만들고, '한글'이라는 이름으로 고쳐 부른 이가 바로 학자 주시경 선생이다.

주시경(1876-1914) 선생은 황해도 봉산 출신으로, 평생을 글공부에 바친 가난한 선비 주학원(周鶴苑)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11살 때 큰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온 뒤, 배재학당에 입학하여 근대 학문을 접하게 되었다.

1895년 배재학당에 입학한 그는 예배에 참석하며 기독교를 접했다. 한편 한글로 된 기독교 문서 보급과 학생들의 자립정신을 키우기 위해 배재학당 내에 마련된 삼문출판사(三文出版社)에서 시간제 직공으로 일했다.

그러면서 이곳에서 인쇄된 각종 기독교 서적 및 교회 정기간행물과 신문들은 그의 교열·수정 작업을 거쳐야 했고, 이로 인해 그는 기독교 신앙을 보다 가까이 접했을 것으로 보인다. 당시 교회는 한글로 된 성경과 교과서 등 여러 한글 책자의 출판을 통해 민족을 계몽하고 근대화에 기여하고 있었다.

1896년 4월 '독립신문'을 창간한 서재필(徐載弼)에게 발탁된 그는 서재필·윤치호 등이 주도하던 독립협회 회원 겸 기관지인 독립신문 회계 겸 교보원으로 활약하게 된다. 그는 신문 제작에 참여하면서부터 국문 연구에 관심을 갖게 됐고, 국문 표기의 통일을 해결하기 위해 국문동식회(國文同式會)를 조직해 국문 연구에 진력, 쉬운 한글로 된 독립신문을 만들게 된다.

이때 주시경은 "자국(自國)을 보존하며 자국을 흥성케 하는 도(道)는 국성(國性)을 장려함에 있고, 국성을 장려하는 도는 국어와 국문을 숭용(崇用)함이 최요(最要)하다"고 주장하면서 국어 국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1900년 그는 배재학당 보통과를 졸업하면서, 세례를 받고 정식 기독교인이 됐다. 이후 그는 선교사 어학선생으로 생활하면서, 1889년 설립된 최초의 여성병원인 정동 보구여관에 간호원 양성학교 교사 겸 사무원으로 근무했다. 그는 정동교회에 출석하면서 1902년 정동교회 월은청년회 인제국장 등 임원으로 활약하면서 기독교 선교사업에 깊이 참여했다.

1904년 상동청년학원 교사로 부임한 그는 한글운동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다. 당시 상동교회와 상동청년회에는 전덕기를 중심으로 많은 민족운동가들이 결집해 있었고, '경천애인(敬天愛人)'을 교육이념으로 하는 상동청년학원(설립자 전덕기, 초대교장 이승만)이 설립됐다.

그는 이 청년학원 설립 당시부터 교사로 봉직했고, 이후 전덕기 목사와 시작된 교분은 그의 별세 때까지 지속됐다. 이 무렵 소외계층인 민중과 민족에 대한 그의 관심은 한글계몽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심화됐다.

▲주시경 선생. ⓒ트위터 캡처

▲주시경 선생. ⓒ트위터 캡처

1907년 학부(學府) 안에 세워진 국문연구소 주임위원으로서 국어에 대한 연구 활동과 함께 개인적으로 국어 강습소를 열어 대중 계몽교육에도 심혈을 기울였으며, 한문 폐지와 함께 국문 글쓰기를 대중적으로 확대시키는 데도 앞장섰다.

그의 이러한 학문적 열정과 관심은 뒤에 최현배(崔鉉培)·김두봉(金枓奉)·권덕규(權悳奎)·정렬모(鄭烈模)·장지영(張志暎) 등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또 일본 식민지 시대 '조선어학회'의 국어국문 연구에 기초가 됐다. 조선어학회는 일제의 한글말살 정책에 반대하고 1921년 우리말과 글을 연구하기 위해 창립됐다.

장지영, 김윤재, 최현배 등이 중심이 되어 활동했으며, 잡지인 《한글》을 만들고 《조선어 사전》 편찬을 시작했다. 1942년 일제의 극렬한 탄압으로 인해 해체될 위기를 맞기도 했으며, 8·15 광복 후에는 '한글학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주시경 선생은 1906년 '대한국어문법', 1908년 '국어문전음학', 1909년 '국문연구' 등을 펴냈고, 1910년에는 국어의 문법체계를 근대 언어학의 방법과 관점에서 확립한 '국어문법(國語文法)'을 발간하게 된다. 중국의 한문이나 일본으로부터 수입한 한자어를 배격하고, 우리말로 학문하기를 실천한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일본의 강점이 시작되면서 '국어'라는 말을 더 이상 쓰지 못하게 되자, 표제마저 '조선어(朝鮮語) 문법(1911)'으로 바뀌게 된다. 조선총독부가 일본어를 '국어'로 부르도록 강요하고 우리 국어를 '조선어'라고 명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한글 연구는 후학들에게 이어져, 민족정신을 지키고 독립의지를 키우는 밑거름이 되었다.

주시경 선생이 1910년 박문서관에서 발간한 '국어문법(國語文法)'이나 1914년 신문관에서 간행된 '말의소리'는 국어 문장의 성분을 알기 쉽게 제시하기 위해 최초로 구문도해(構文圖解)의 방법을 활용했다. 특히 근대 언어학 용어를 순 우리말로 고안하여 이를 체계화한 것은 한글 보급에 있어 크게 주목할 만한 일이다.

그는 별세할 때까지 상동청년학원, 배재학교, 이화학교 등 기독교 계통 학교 교사로 꾸준히 활동했으며, 그의 장례식 또한 상동교회에서 거행됐다. 1980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됐다.

이런 주시경 선생의 선구자적 한글사랑과 사회 계몽운동이 가능했던 것은, 신앙심과 더불어 실천력이 뒷받침됐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에게 있어 한글은 유일한 하나님의 계시였고, 나라 사랑에 대한 응답이었을지도 모른다.

이효상 목사(교회건강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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