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로 인한 안면화상으로 고난을 겪었던 이지선 씨가 지난해 10월 선한목자교회에서 간증했던 영상이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해 6월 미국 UCLA에서 사회복지학 박사과정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던 그는 올 초 한동대학교 교수로 임용돼 현재 외부 간증은 하지 않고 있다. 이 영상은 교수로 임용되기 전 '삶은 선물입니다'라는 제목으로 간증한 내용을 담고 있다. 다음은 그 주요 내용.
이지선 씨는 "하나님께서 고난 가운데 선물을 주셨다. 오늘 나누어지는 이야기들이 작은 선물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전하겠다"라며 간증을 시작했다.
그는 16년 전 사고를 당했고 당시 대학교 4학년 학생이었다. 학교에서 집이 멀어 오빠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음주운전자가 사고를 내면서 일곱 대의 차량이 부딪치고 전복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이 씨는 "사고 중에 정신을 잃었고 오빠가 먼저 정신을 차렸는데 이미 상반신에 불이 붙어 있었다. 곧 차가 폭발 할 것 같다는 소리에 오빠가 저를 안고 차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차는 폭발했다"면서 "교통사고는 한번도 상상해본 적 없는 일이었다. 사고를 당한 후 병원 응급실로 이송됐고 맥박이 잡히지 않아 병원에서는 곧 사망할 것이라고 했지만 아직까지 잘 살고 있다"고 말했다. 살아났지만 산소호흡기도 끼워진 상태였고 온 몸에 붕대를 감았으며 살아남을 가능성은 희박했다.
이 씨는 그 사고를 '만났다'고 표현했다. "굳이 '만났다'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지나고 나서 보니까 제가 만난 사고가 모르는 사람과 길을 가다 어깨를 부딪힌 것과 같은 예기치 않은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사고를 만나고 나서 그 다음 길을 다시 걸어갈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주의 은혜로 사고를 만난 사람으로만 끝난 것이 아니라 그 사고와 헤어진 사람으로 살게 해주셨습니다."
살아난 뒤 처음 일주일 간은 삶과 죽음 사이에서 힘겨운 싸움을 하는 시간이었다. "교회에서 얼굴도 모르시는 분들이 금식하면서 기도를 해주셨다고 들었어요. 그 기도에 응답해주셨고 저에게 죽음이 아니라 삶이 주어졌습니다."
본격적인 화상 치료는 고통스러웠다. 전신 55% 3도 화상을 입었다. 온 몸에 소독약을 바를 때는 차라리 미쳐버렸으면 하는 날들도 많았다.
이 씨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는 그 곳에서 미쳐버렸으면 하는 순간에 미치지 않고 누구보다 건강한 마음을 지켜 주셔서 여기 서서 여러분들에게 그 때 아팠다고 남의 이야기 하듯 할 수 있어 감사한 일"이라며 "치료를 받으며 얼마나 다친 것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는데 피부의 살색은 거의 없고 빨갛고 노란 지방 덩어리들이 드러난 피부를 보는 순간 이제 더 이상 살 수 없구나"라며 절망했다.
삶의 의욕을 잃은 그는 식사도 하고 싶지 않았지만 자신을 살리고자 하는 어머니의 간곡한 부탁으로 억지로 한 술 한 술 밥을 먹었다. "어머니께서는 젓가락으로 제 입에 밥을 넣으면서 이렇게 기도하셨어요. 에스겔 골짜기 마른 뼈들에게 살을 입히시고 힘줄과 가죽 덮으시고 생기를 불어넣으신 것처럼 이 밥이 지선이의 살이 되고 밥이 되게 해주소서."
그 뒤 중환자실을 나와 수십번의 피부 이식 수술을 거치는 과정 가운데에서 차마 자신의 얼굴을 거울로 볼 수 없을 정도로 괴롭고 고통스러웠다. "23살 여대생의 마음을 갖고 살아가기에 제 삶이 너무나 많이 달라져 버렸다.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이 찾아왔다. 절망이 찾아오니 할 일은 두가지 뿐이었다. 하나는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거나 하나님을 찾는 것이었다."
그는 하나님에게 수없이 질문했다. 살렸으면 대책이 있지 않느냐고. 그러나 묵묵부답이었다. 더 이상 떨어질 나락도 없는 것 같은 그 때 어떤 목사님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됐다. "사랑하는 딸아... 라고 시작되는 기도를 해주셨어요. 저 조차도 제 자신을 사랑할 수 없는데 하나님께서 저를 사랑한다고 말씀해주셨어요. 그리고 병들고 힘들고 약한 자들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되게 할 것이라는 약속을 주셨어요."
그 기도를 들은 후 8개월 동안 일어난 삶의 일들을 글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덤으로 산다고 말하지만 죽지 못해서 던져 버리신 인생이 아니라 기쁨도 행복도 느끼면서 하나님 날개 아래 지켜졌던 생명이었구나. 내가 한 것이 아니었구나 깨달았습니다."
손끝 화상이 심하져 한 마디씩 절단해 키보드 자판을 엄지 손가락을 치면서 매일 매일의 삶을 기록한 영성일기를 남겼다. 이것이 '지선아 사랑해'라는 서적으로 출판됐고 작가 타이틀을 얻게 됐다. "제 몸에는 어디에도 쓸 수 없는 흉터 뿐인데 이것을 통해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다시 살아가게 하는 용기를 전하는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셨다."
고통이 심할 때는 '예수님께서 화상의 고통을 아실까' 물은 적도 있다. 어느 고난 주간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해 묵상하고 기도하는데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선아 너가 느꼈던 살의 찢김과 찔림 그 수치와 부끄러움, 그 공포와 두려움이 어떤 것인지 내가 다 알고 있다." 그 말씀으로 그동안의 고통과 눈물이 닦여졌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 어떤 고통도 안아주시는 진짜 사랑과 위로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 씨는 "너무나 기쁜 소식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그 자리에서 죽음으로 끝나버리신 것이 아니라 부활하시고 승리하셨다.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는 그 길을 따라 걷는 사람들이다. 이 길 끝에는 예수님처럼 분명히 승리가 있을 것을 믿는다. 이미 승리는 정해져 있으므로 지금 당장 그다지 승리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 지라도 미리 감사하고 고난 중에도 기뻐할 수 있는 것이 크리스천의 특권이 아니겠느냐"고 고백했다.
이지선 씨는 작가로 활동하면서 장애아동을 돕는 민간 단체 '푸르메재단'의 홍보대사를 맡아 뉴욕시에서 열리는 마라톤대회에 도전하게 됐다.
"곳곳에서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있어 완주하게 됐어요. 통증 때문에 눈물이 쏟아졌는데 이상하게 그만 둘 수가 없었어요. 인생이 왜 마라톤 같다고 하는지 알 것 같더라고요. 어디서 그만둬야 할지 도대체 그만둬도 되는 지점이 어디인지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어요. 거의 도착 하기 직전 쓰러질 것 같은 몸을 이끌고 완주한 것은 나를 위해 노란색 피켓을 들고 응원해 주던 한 사람 때문이었습니다. 주변의 응원으로 포기하지 않고 걸었더니 제 삶의 또 다른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 순간 저도 지쳐 있는 누군가를 위해 힘을 주며 응원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다짐하며 걸었습니다. 여러분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지선 씨는 "눈에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고 그것들이 영원할 것처럼 말한다. 사고 전에는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삶을 가지는 것이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어느 누구 하나 부러워하지 않는 피부를 가졌지만 제 안에 행복이 있다. 하나님께서 그 행복을 주셨다. 세상을 바라보며 이 면에서 혼미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면서 "이미 우리 안에 주신 빛을 드러내고 살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