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틈의 하나님? ‘빈틈의 다윈’은 왜 못 보나?”

김진영 기자  jykim@chtoday.co.kr   |  

[창조와 진화③] 지적설계연구회 회장 서강대 이승엽 교수

'창조론' 논의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분야가 바로 '지적설계론'(Intelligent Design)이다. 인간을 비롯한 생명체의 특정한 구조나 정보는 자연선택에 따른 진화의 결과가 아니라, '지적 존재'가 설계한 것이라는 게 그 주된 주장이다. 결국 누군가에 의해 창조됐다는 것인데, 조물주(造物主)를 기독교의 하나님 등으로 특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창조 대신 '지적 설계'라는 표현을 쓴다. 국내에선 '창조과학' 만큼 대중적이진 않지만, 다양한 분야의 과학자들을 중심으로 정기 심포지엄을 갖는 등 나름대로의 학술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본지는 '창조론 인터뷰' 그 세 번째 주인공으로 지적설계연구회 회장인 서강대학교 이승엽 교수(기계공학·융합의생명공학)를 만났다. 아래는 그와의 일문일답.

▲이승엽 교수는 지적설계연구회 회장이면서 개신교인이다. 그러나 지적설계론 자체는 생명의 기원 문제에 있어 지적 존재에 의한 ‘설계’ 가능성을 논증할 뿐, 특정 종교를 지지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김진영 기자

▲이승엽 교수는 지적설계연구회 회장이면서 개신교인이다. 그러나 지적설계론 자체는 생명의 기원 문제에 있어 지적 존재에 의한 ‘설계’ 가능성을 논증할 뿐, 특정 종교를 지지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김진영 기자

"진화론은 무신론이라는 철학적 사고"

-지적설계론이 나오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1990년대 초 미국 버클리대 법학 교수인 필립 E. 존슨 박사가 처음 주창한 것이다. 그는 당시 창조와 진화의 기원 논쟁을 종교와 과학의 이분법적 대결 구도로 보고, 이것이 다분히 과학적이지 않다는 문제의식을 가졌다. 현대 생물학에서는 자연주의에 근거한 자연선택의 진화론만이 유일한 과학 이론이 되어버렸는데, 이 불합리한 논쟁의 구도를 벗어나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그러면서 다윈주의 진화론에 대항하는 새로운 유신론적 과학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바로 지적설계론이다. 여기서 분명히 해 두고 싶은 건, 그 태동에 일부 무신론 과학자도 참여했고, 지금까지도 지적설계론은 종교적 관점을 전혀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과학'을 강조하면서 어떻게 지적 존재에 의한 '설계'를 말할 수 있나?

"지금 그렇게 질문하는 것이 바로 과학을 자연주의 관점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연주의 과학, 다시 말해 우주와 생명은 단지 물질과 에너지로만 이루어졌고, 따라서 모든 생명체의 기원을 물질로만 설명하려는 것이 바로 자연주의 과학이다. 이런 식으로 과학을 정의하면 자연선택의 진화론만이 생명의 기원을 설명하는 유일한 과학이론이 된다. 동시에 그것에 비판적인 연구는 과학적 증거의 유무에 상관없이 비과학이 되고, 어떠한 토론이나 반증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진화론만을 유일한 과학이론으로 보기에는 그 실증적 증거가 너무 부족하다. 과학을 말하면서도 비판적인 토론을 허용하지 않는 다윈주의 진화론은 무신론이라는 철학적 사고에 기대고 있을 뿐이다."

"'4진법'의 DNA 정보는 '지적 설계'의 명백한 증거"

-진화론에 어떤 허점이 있다고 보나? 그리고 설계했다는 증거는 있는가?

"종(種) 내의 작은 변이가 오랜 시간 축적돼 종의 분화라 할 수 있는 '대진화'가 일어났다는 것의 과학적 가능성은 인정하지만, 모든 생명체의 기원을 그렇게 설명하기에는 증거가 너무 부족하다. 가령 종과 종 사이의 중간 생명체 화석이 없다거나 과거 캄브리아기 대폭발 당시 단기간에 여러 종이 출연했다는 것 등이다.

무엇보다 생명 정보가 담긴 DNA의 실체는 진화론으로는 결코 풀 수 없다. 현대의 모든 정보는 수학의 2진법에 따라 디지털 정보로 저장하거나 복원한다. 0과 1만으로 이뤄진 2진법을 쓰는 이유는 그것이 가장 간단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DNA 안에 담긴 '생명 정보'는 2진법과는 비교할 수 없는, 복잡한 '4진법'의 디지털 코딩을 사용한다. 디지털 신호가 저장되어 있는 세포 핵 속의 염기들은 물질이지만, 4진법 디지털 정보 자체는 물질이 아니고 우연히 만들어 질 수도 없는 '지적 설계'의 명백한 증거다. 그야말로 확률에 기댈 수 없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 바로 DNA라 할 수 있다.

지난 50년간, 외계인의 존재를 밝히기 위해 우주의 신호를 탐색했던 세티(SETI: Search for Extra-Terrestrial Intelligence) 프로그램은 일종의 과학적인 활동으로 인정하면서도, DNA 생명 정보를 동일한 관점에서 탐구하는 연구는 왜 비과학으로 치부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결국 진화론이 설명하지 못하는 것을 지적설계론은 할 수 있다는 것인가?

"그렇다. 지적설계론은 모든 생명의 기원과 복잡성을 왜 진화론만으로는 입증할 수 없는지를 과학적으로 따져, 지적 존재의 설계 가능성을 논증하는 이론이다. 그렇다고 지적설계론이 다윈주의 진화론을 모두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다 설명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 '설계'의 증거를 찾는 것이다."

"3차원의 공간에서 2차원에 머문 진화론"

-'진화론이 설명하지 못한다'고 너무 섣불리 단정 짓는 건 아닌가? 과학이 더 발달하면 밝혀낼 가능성도 있지 않나?

"지적설계에 대한 주된 비판이 바로 그것이다. 소위 '빈틈의 하나님'을 지적설계가 주장한다는 것이다. 과학계가 밝히지 못한 '빈틈'을 신이나 다른 지적 존재로 비겁하게 메우려 한다는 것인데, 타당한 면이 아주 없지는 않지만, 이 역시 기본적으로 자연주의 사고에 기초한 비판일 따름이다. 오히려 진화론자들에게 이렇게 되묻고 싶다. '빈틈의 다윈'이라고.

예컨대 생명의 기원을 '3차원' 공간이라고 가정해보자. 위치를 나타내려면 3개의 좌표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 세상이 물질과 에너지로만 되어 있다는 '2차원' 좌표만 고집하면, 그 위치를 정확히 표시하기 어렵다. 이런 사고가 바로 3차원의 공간을 2차원으로 끼워 맞추는 '빈틈의 다윈'이다.

물질과 에너지로 다 설명하지 못하기에 제3의 좌표가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이를 '설계'라고 한다. 이렇게 자연적인 과정 이외에 다른 것도 존재할 수 있다는 '3차원' 사고로 우리의 시각을 조금만 넓히면 '지적 설계'의 가능성도 얼마든지 상정할 수 있다. 2차원에 머문 진화론적 시각을, 지적설계론자들은 흔히 '실재를 바라보는 잘려진 관점'이라 부른다."

▲바이오모방공학을 전공하는 이 교수의 연구실에는 나노구조로 특정 색깔을 반사하는 다양한 곤충들이 있다. ⓒ김진영 기자

▲바이오모방공학을 전공하는 이 교수의 연구실에는 나노구조로 특정 색깔을 반사하는 다양한 곤충들이 있다. ⓒ김진영 기자

"방법론적 자연주의? 그렇다면 그 한계도 인정하라"

-그렇다 하더라도 이런 논의들이 주류 과학계에서 자주 토론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교과서만 봐도 생명의 기원을 설명하는 과학적 이론으로 진화론만을 소개하고 있는 게 현실 아닌가?

"앞서 이야기 했다시피 자연주의 과학의 영향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진화론자들이 과학을 하는 데 있어 '방법론적 자연주의'를 고수하는 까닭이다. '방법론적 자연주의'란 쉽게 말해, 신이나 다른 어떤 지적인 존재가 생명을 설계했을 수 있지만, 과학을 하려면 적어도 방법론적인 면에서, 과학적 증명이 불가능한 신은 배제하자는 것이다. 그런 뒤 자연적인 원인으로만 생명의 기원을 설명해야한다는 것이 바로 방법론적 자연주의다. 그러니까 방법론이라는 '전제'를 깔고, 그 안에서라면 진화론만이 타당하다는 주장이다."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면, 단지 과학적 방법론에 있어서 자연주의를 택하자는 게 아주 터무니없는 것 같진 않다.

"나 역시 그런 생각에 어느 정도 동의한다. 문제는, 방법론적인 수단으로 택한 자연주의를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하나의 세계관 내지 철학으로까지 제시하려 한다는 데 있다. 다름 아닌 물질주의 혹은 무신론이다. 신을 탐지할 수 없으니 과학적 방법론으로 자연주의를 제한적으로 택하자고 했으면, 그렇게 해서 도출한 결론 역시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고 이를 공식적으로 대중에게 알려야 하는데, 그건 하지 않은 채 지적설계론자들과의 논쟁에서는 '방법론적 자연주의'를 이용해 논쟁의 핵심을 피해가고 있다.

진화론의 아버지인 다윈도 「종의 기원」에서 그 점을 분명히 했다. 자신이 발견한 건 갈라파고스의 핀치새, 곧 종 안에서의 변이를 기초로 한 '소진화'이며, 그것으로 종과 종 사이의 진화인 '대진화'를 추론해 낸 것일 뿐, 구체적 증거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이다. 그러면서 '수많은 연속적인 작은 수정에도 생길 수 없는 복잡한 구조가 존재한다는 것이 보이면 나의 이론은 완전히 깨질 것'이라고 했다. 한 마디로 다윈은 다른 가능성 역시 열어둔 셈이다.

요컨대, 다윈주의 진화론도 '방법론적 자연주의'의 산물일 뿐이고, 그 틀을 벗어나면 생명의 기원을 설명하는 데 있어 지적 존재의 설계 가능성도 얼마든지 논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창조과학과 유신진화론

-하나의 종이 다른 종으로 진화했다는 증거는 지금도 발견된 게 없나?

"생명체 종의 수를 적게는 20만 개에서 많게는 1,000만 개까지 이야기 하는데, 이 모든 종들이 오직 자연주의 관점에서 점진적인 변이를 거쳐 출현했다고 주장하기에는 증명돼야 할 게 너무 많다. 그것을 뒷받침하는 중간 생명체의 화석 증거도 부족할 뿐더러 이론적인 논증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 교과서에 실린 고작 몇 개 종의 증거를 가지고 모든 생명체의 진화를 과학적 사실로 받아들이라는 것은 정말이지 타당하지 않다."

-진화론의 한계를 지적한다는 점에서 창조과학과도 일부분 통하는 면이 있는 것 같은데, 지적설계와 창조과학의 차이는 무엇인가?

"창조과학은 성경적 관점에서 하나님에 의한 생명 창조와 성경의 내용이 과학적인 사실임을 변증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진화론을 비판하는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해 왔고 생명체의 창조를 나름대로 과학적으로 연구해 대중적으로 제시했다는 점에서는 역할을 했다고 본다.
 
지적설계론은 서두에서도 언급했지만 기원 논쟁에 있어, 진화론에 대한 학술적인 '대안 이론'을 제시하기 위해 '설계'를 과학계도 인정할 수 있는 이론으로 만들어보자고 한 시도였다. 창조과학과 달리 성경의 하나님에서 출발한 게 아니고, 탐지 가능한 생명 구조의 복잡성이나 생명 정보를 우선적으로 연구한 것이다. 따라서 자연선택에 대비되는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이나 '복잡 특수 정보'를 설계의 증거로 제시하고 학술적으로만 논쟁해 왔다. 이 점에서 창조과학과는 차이가 있다고 할 것이다."

-하나님이 창조의 방법으로 진화론을 사용했을 수도 있다는, 이른바 '유신진화론'은 어떻게 보나?

"사실 미국에서 지적설계론이 출현하면서 가장 많이 논쟁했던 그룹이 바로 유신진화론자들이다. 신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지만, 진화론을 보는 관점이 상이하기 때문이다. 만약 진화의 증거가 너무나 명백하다면 아마 나를 비롯해 모든 기독교인들은 유신 진화론자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유신진화론을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는 100% 과학적인 이유에서다. 여러 번 강조한 것처럼 다윈주의 진화론으로만 모든 생명의 기원과 복잡성을 설명하기에는 그것에 너무 많은 허점들이 있다.

국내 대표적인 유신진화론 과학자는 아마 서울대 우종학 교수일 것이다. 한동안 주로 신학자들이나 철학자들이 이 분야의 논의를 이끌어 왔는데, 우종학 교수가 여기에 참여하면서는 대중에게도 알려졌다. 그 점에 있어선 우 교수의 역할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다.

하지만 그가 창조과학, 그 중에서도 '젊은 지구론'을 유독 공격하는 모습에 대해선 유감이다. 뿐만 아니라 미국의 유신진화론 그룹과는 달리 우 교수는 국내 지적설계론자들과의 토론에도 잘 참여하지 않는다. 과거 두 차례 그에게 지적설계 심포지엄에 발표자로 나와 줄 것을 제안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우리 모임이 아니라면, 그가 의지를 갖고 추진하고 있는 '신학과 과학의 대화'(과신대) 모임에 나를 초대해 주었으면 좋겠다. 과신대의 취지가 대화를 위한 것이라면, 나를 그 자리에 부르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겠나?"

▲이승엽 교수는 “교과서에 실린 고작 몇 개 종의 증거를 가지고 모든 생명체의 진화를 과학적 사실로 받아들이라는 것은 정말이지 타당하지 않다”고 했다. ⓒ김진영 기자

▲이승엽 교수는 “교과서에 실린 고작 몇 개 종의 증거를 가지고 모든 생명체의 진화를 과학적 사실로 받아들이라는 것은 정말이지 타당하지 않다”고 했다. ⓒ김진영 기자

"지적설계론은 특정 종교를 지지하지 않는다"

-앞서 지적설계론 자체에는 종교적 동기가 없다고 했는데, 교수님의 종교가 무엇인지 물어봐도 되나?

"개신교를 믿고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

-지적설계론은 설계자가 기독교의 하나님일 수도 있지만 그 외 다른 신, 심지어 외계인일 수도 있다고 말하는데, 혹시 이 부분에 대한 신앙적 갈등은 없나?

"지적설계론은 생명 기원에 대한 유신론적 과학 이론으로서의 가능성을 연구하는 것이지, 특정한 종교를 설파하는 담론이 아니다. 간혹 지적설계론이 범신론을 지지한다고 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야말로 오해다. 지적설계론은 결코 특정 종교를 지지하지 않는다. 다만 지적 설계자가 있다는 논리적 귀결을 설득력 있게 보이게 할 뿐이다."

-우주와 지구의 연대 문제에 있어 지적설계론은 어떤 입장인가?

"그 분야는 큰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지적설계론의 주된 초점은 생명의 기원, 즉 생물학 쪽에 있다. 연대와 관련해선 고생대 캄브리아기 당시 일어난 대폭발로 인해 다양한 종의 생물이 출연했다는 것, 그리고 우주의 미세조정(fine tuning)을 설계론적 관점에서 연구하는 것 정도에 그친다. 따라서 이 문제는 주류 과학계의 연구 결과를 어느 정도 받아들이는 편이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지적설계론자들의 대부분이 '오랜 지구'를 지지한다. 그렇다고 그것이 지적설계 그룹의 공식 입장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지적설계론자 중에는 젊은 지구론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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