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윤 박사의 창조론 다시 쓰기
2. 고대 히브리인들의 세계관과 올바른 창조론
창세기의 첫 장을 읽으면서, "태초에 하나님은 '어디에서' 천지를 창조하셨을까?", 또는 "천지를 창조하기 전에 하나님은 어디에 계셨고, 지금은 어디에 계시는가?"라는 의문을 떠올리는 사람이라면, 그는 올바른 창조론에 매우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창조론에서 각론으로 이미 다루어져야 했었지만, 아직 다루지 않았던 문제를 질문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믿고, 그가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것을 믿으면서 창조 사건이 어디에서 일어났는지에 대해 궁금하지 않는 기독교인이라면, 그는 현실에서도 자기의 부모와 고향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창조론은 창조 사건을 사실로 이해하려고 질문을 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올바른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다.
기독교에서 창조론과 관련한 문제의 올바른 해답을 찾는 길은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모세가 직접 받아 쓴 것으로 전해지는 모세오경 토라의 창세기에서 시작해야 한다. 토라를 그대로 물려받은 기독교도 기본적으로는 창세기 해석에서 창조론을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창세기에는 태초에 하나님이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사실만 간략하게 기록해놓고 있다. 창세기는 그것을 가장 먼저 읽고 그대로 믿었던 고대 히브리인들에게 세계관을 형성하는 자료가 되었고, 그런 자료들이 문헌으로 남아 잇다. 그것이 유대교 랍비들의 창세기 미드라쉬(Midrash)다. 창세기 미드라쉬가 고대 히브리인들에게는 충분히 납득되는 것이었다 할지라도 현대인들에게 올바른 창조론을 서술하려는 입장에서 본다면, 너무나 사실과 괴리되어 있다. 그렇다면 올바른 창조론을 서술하기 위해서는 선조들이 남긴 자료들을 먼저 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 첫째 자료는 유대교 랍비들이 토라를 해석한 미드라쉬이다. 유대교 랍비들은 토라의 해석과 그 해석된 내용을 가르쳤고, 그 가운데 창세기도 포함되어 있다. 둘째 자료는 하나님이 모세에게 구전으로 전해준 전승을 해석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카발라(Kabbalah)이다. 세 번 째로는 기독교에서 창세기와 히브리 철학과 연결하여 창조 사건을 해석한 자료가 있다. 이 세 가지 자료들은 창세기 사건을 서로 다른 관점에서 해석하고 있다. 이번 주제에 대한 올바른 창조론의 서술은 이런 자료들을 먼저 개략적으로 검토한 다음에 '과학적 사실'에 기초하여 논의할 것이다.
1) 유대교 랍비들의 미드라쉬
유대교 랍비들이 창세기를 해석한 미드라쉬 자료를 살펴보면, 창조를 계획하신 하나님은 먼저 6가지를 준비하셨다. 그것들은 토라, 영광의 보좌, 선조들, 이스라엘, 성전과 메시아의 이름이다. 6가지는 모두 토라에 모두 나오는 존재들이다. 특히 유대교 랍비들은 토라가 하나님을 돕는 지혜라고 본다. 유대교 랍비들은 하나님이 토라의 조언에 따라 우주만물을 창조하셨다고 주장하고 있다. 랍비들에 의하면 하나님은 이런 준비를 모두 끝낸 태초 어느 날에 하늘(天)과 땅(地)을 창조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천지에 있어야 할 모든 것들을 단지 6일 동안에 말씀만으로 만들어내셨다. 창세기에서 히브리어로 하늘을 가리키는 용어인 '샤마임'은 복수형으로 표현되는데, 이는 고대 히브리인들이 하늘을 3층으로 구성된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나타낸다. 창세기에는 창조의 첫째 날에 빛을 만드신 하나님이 둘째 날부터는 땅에 내려오셔서 창조 작업을 진행하신 것으로 서술되고 있다. 둘째 날에 하나님은 궁창을 만드시고 하늘 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을 나누셨다. 궁창은 히브리어로 '라키아'인데, 금속판을 두드려 얇게 편 것을 말한다. 하나님은 궁창에 해와 달과 별들을 만들어 두셨고, 새들이 날아다니게 하셨다. 이것이 첫째 하늘이다. 그 위에는 땅을 지붕처럼 덮고 있는 물 창고가 있다. 고대 히브리인들은 천사들이 둘째 하늘에, 하나님은 셋째 하늘에 거주하시는 것으로 생각했다. 창세기에는 하나님이 나머지 4일 간의 창조 작업까지 마치시고 제7일을 안식일로 선포하실 때까지 지구에 머물러 계셨던 것처럼 서술되고 있다.
유대교 랍비들은 창세기 사건을 해석하기 위해 토라 이후에 저술된 구약성경의 나머지 부분들까지 인용한다. 구약성경에는 하나님의 창조를 찬미하는 방식으로 설명하는 구절들이 많이 나온다. 시편 기자는 궁창에 있는 해와 달과 별들을 찬미한다(시 19:6). 궁창 위에는 하나님과 천사들이 거주하는 하늘이 있다(신 26:15, 시 11:4). 그리고 땅 아래에는 땅의 기둥이 땅을 떠받치고 있다(삼상 2:8). 이사야는 하나님이 땅을 조성하시는 모습을 묘사한다(사 42:5, 44:24). 고대 히브리인들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땅을 평평한 단면으로 생각했다. 그것은 히브리어 동사 '라카'가 '두드려서 평평하게 펴다'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뜻에서도 드러난다. 그들은 땅의 기둥이 심연의 물을 바다의 물과 갈라놓고 있고, 심연 가운데 음부(陰符)가 있다고 생각했다. 시편 기자들은 하나님이 땅을 바다와 강 위에 건설했다(시 24:2, 136:6)고 노래했고, 땅을 빈 공간에 매달아 놓으신 것으로 생각하기도 했다(욥 26:7). 바다를 경계(잠 8:29)가 있는 평면으로 생각했으므로, 경계 너머에는 빛과 어둠이 함께 끝난다고 생각했다(욥 26:10). 그러므로 바다 바깥에는 아무 것도 없다고 보았다. 땅 표면에 네 귀퉁이가 있다는 표현도 등장한다(사 11:12, 겔 7:2). 땅과 관련하여 땅의 기둥들 (욥 9:6, 시 75:3), 주초(시 104:5), 기초(삼하 22:16, 잠 8:29) 등의 표현이 등장하는데, 이런 표현은 땅 아래 물에서 기둥이 땅을 받치고 있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진은 하나님께서 땅의 기둥을 흔들어서 일어나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욥 9:6).
특히 욥기 38장에는 하나님이 직접 설명하시는 창조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이 부분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 여러 가지 그림들이 나와 있다(이에 대해서는 먼저 『그랜드 종합주석』에서 욥기 38절을 설명하는 그림을 참조하라).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그 기초와 그 모퉁잇돌을 직접 놓으셨다고 말씀하셨다. 이때 하나님은 그가 제정하신 도량법으로 땅을 재고, 바다의 물에 경계를 정하셨음을 밝히셨다. 또한 하나님은 바다의 샘과 깊은 물, 광명의 처소와 흑암의 처소, 눈 곳간과 우박 창고 등을 만드셨다. 하늘에는 궤도를 만들어 법칙에 따라 다스린다고도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우주의 구조들을 말씀하신 후에 그가 창조하신 각종 생물들이 살아가는 법칙들도 말씀하셨다. 창조에 대한 히브리인들의 세계관을 형성한 구절들은 구약성경 여러 곳에 등장하고 있다.
고대 히브리인들은 평소에 하나님은 높은 하늘에 계신다고 생각했다(시 113:5, 사 57:15). 또한 하늘과 땅의 모든 일은 하나님이 말씀으로 천사들을 부려서 하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하나님의 보좌를 3층 하늘 가운데에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그럼에도 토라는 하나님이 우주의 창조 작업을 위해서 직접 땅과 에덴동산에까지 내려오셨다고 말한다. 미드라쉬에는 우주를 하나님의 왕궁으로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이 직접 건축자가 되었다는 해석이 많이 나온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이 말씀으로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것과 달리 창세기 2장 이후의 구약성경에는 하나님이 우주만물을 직접 창조하시는 모습을 서술하고 있다. 하나님은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사 45:7)하셨다. 하나님은 홀로 하늘을 폈으며, 그와 함께 한 자 없이 땅을 펼치셨다(사 44:24). 하나님은 그 외에는 다른 이가 없다고 선언하신다(사 45:18). 혼자 모든 것들을 창조하셨으니, 선과 악도 기쁨도 슬픔도 모두 그분에게 책임이 귀속될 수밖에 없다. 고대 히브리인들은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선하시고 악의 원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현대 기독교 교리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서로 모순되는 토라의 구절들과 유대교 랍비들의 미드라쉬가 현대에서 기독교 창조론의 서술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고대 히브리인들은 하나님의 전지전능과 무한성(왕상 8:27), 그리고 공의와 편재성(램 23:24)을 믿었지만, 유대교 랍비들은 하나님의 창조가 그렇게 성공적인 것은 아니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담이 곧 타락했고, 악도 곧 세상에 들어와서 창조가 불완전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구약성경에서 형성된 고대 히브리인들의 세계관을 요약해보면, 창세기에서 골격을 잡고, 욥기와 잠언에서 살을 입혔으며, 시편이나 예언서 등에서 혈관을 만들어놓은 것으로 보인다. 토라와 미드라쉬에 나타난 고대 히브리인들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창조론을 서술한다면, 현대인들의 과학적 상식과 합리적 이성에 맞지 않는 부분이 너무도 많이 나타난다. 미드라쉬 문헌을 조금이라도 읽어본 현대인이라면, 누구도 이런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므로 고대 유대교 랍비들의 미드라쉬는 올바른 현대적 창조론 서술에 적합한 참고 자료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물론 오늘날 고대 유대교 랍비들의 창세기 미드라쉬를 읽고, 하나님이 창조를 미드라쉬의 서술처럼 하셨다고 믿을 유대인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미드라쉬 연구를 통해 한 가지는 올바른 창조론에 일치함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님은 유일하신 분이며, 그는 피조물을 독립적으로 창조하셨고, 초월적으로 존재하시면서도 섭리의 손길을 끊지 않으신다는 사실이다. 이를 통해 유일신론 이외의 범신론, 범재신론, 이신론 등이 오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현대에 이르러 기독교의 올바른 창조론은 고대 히브리인들의 세계관을 탈피하고, 좀 더 과학적인 사실에 기초하여 합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서술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토라와 미드라쉬를 새로운 관점으로 읽어야 한다. 이미 이런 목적으로 유대교 랍비인 마이클 카츠(Michael Katz)와 게르숀 슈바르츠(Gershon Schwartz)가 『모세오경 미드라쉬의 랍비들의 설교' Searching for Meaning in Midrash: Lessons for Everyday Living』(이환진 역)를 출판했다. 이 책은 보수적인 유대 민족이 시대 또는 환경의 변화에 대해 어떻게 진취적으로 적절하게 대응하고 있는가를 서술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이 책에서는 이미 유대교 랍비들이 창조 6일의 하루(욤)를 한 시대로 해석하여 과학적 사실에 적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사실을 보면 고대 히브리인 후손들인 현대 유대인들이 조상들의 세계관 패러다임을 어떻게 현대적으로 전환하였으며, 그 결과 세계에서 가장 소수 민족에 속하는 유대인들이 어떻게 노벨상 수상 과학자를 가장 많이 배출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이해의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이 책을 다 읽을 필요는 없지만, 이곳에 인용해둔 '토라를 해석하는 13가지 지침'만은 알아두어야 한다. 왜냐하면 창세기를 읽을 때나 올바른 창조론을 쓰고 읽고 이해하는데 매우 참고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유대교 랍비인 저자들은 이를 '토라를 해석하는 13가지 지침'이라고 했지만, 현대 기독교인들이 창세기는 물론 성경 전체를 새롭게 해석하는 방법으로도 적용할 수 있는 탁월한 것이다. 특히 9, 10, 13번을 잘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1. 먼저 배운다.
2. 배우려면 도구가 필요하다.
3. 질문한다.
4. 문맥을 알아야 한다.
5. 자세히 말하는 것에 주의를 기울인다.
6. 자세히 말한다고 그 속에서 헤매지 말라.
7. 공백을 메꾸라.
8. 말이 중요하다.
9. 다른 자료를 활용하라.
10. 바른 해답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11. 철저해야 한다.
12. 토라가 도전하게 하라.
13. 토라를 오늘과 연결시켜라. 토라 속에서 깊이 침잠한 뒤 밖으로 나와 우리의 삶과 이 세계 속에서는 무엇을 말하는지 생각해 본다. 그렇지 않다면 무엇 때문에 읽는가?
그러나 기독교인들이 이런 지침을 알고 있다고 해도 성경을 오늘(의 자료들)과 연결시키고, 그것이 이 세계 속에서 무엇을 말하는지를 설명할 수 없다면, 올바른 창조론은 그런 기독교인에게서 나올 수도 없고, 그런 기독교인에게 이해될 수도 없다. 올바른 창조론은 고대 히브리인들의 세계관에 기초한 기독교 창조론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어야 한다. 결국 창조론의 각 문제에 올바른 해답은 고대 히브리인들의 세계관이 아닌 다른 자료를 활용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올바른 창조론을 위해 다른 자료들을 찾고 검토하는 작업은 계속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