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찬북뉴스 서평] 길이 어두울 때, 별을 보라
성경 속 왕조실록
배경락 | 샘솟는기쁨 | 304쪽 | 14,500원
책이 나오기 전 '브런치'에서 먼저 읽었다. 그런데 글이란 참 묘해서 인터넷상에 읽는 글은 흥미 위주로 읽지만, 책이라는 옷을 입으니 깊이를 요구한다. 동일한 글인데도 책으로 읽자 이전에 느끼지 못한 감동과 깊이가 더해진다. 책을 읽고 어떻게 서평의 가닥을 잡아야 할까 고민하다 류호준 교수의 추천사를 보며 무릎을 쳤다.
"고대 유대 이스라엘 왕조사인 열왕기서 전체를 현대적 내레이션으로 재미있게 들려주는 책입니다. 저자는 형사의 직감으로 궁중에서 일어나는 각종 사건과 음모들을 파헤치면서 하나님을 떠난 왕들의 허영과 욕망, 권력의 무상함과 어리석을 질타합니다."
물론, 위의 두 문장으로 이 책을 논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단 두 문장이 책의 특징을 단호하고 명료하게 잡아 준다. 백석대 이우제 교수는 '와우! 손끝에서 다소 지루하던 열왕기서가 꿈틀거린다'고 말했다. 담백하면서 진솔한 감탄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을 읽어본 이들이라면 이우제 교수의 '와우!'를 함께 공감할 것이다.
이 책은 현대적 감각으로 열왕기서를 풀어낸 책이다. 즉 설교집이 아니다. 설교집이나 강해가 아닌 것만으로도 놀라운 책이다. 맛깔스러운 글은 어떤가. 말로 표현하기 힘들 만큼 책은 흥미롭다. 내가 읽은 성경 속 열왕기와는 닮아 있으면서도 생소한 열왕기를 읽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건 그렇다 치고, 이 책을 단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길이 어두울 때, 우리는 별을 본다'로 정했다. 열왕기는 길을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저자가 서문에서 '가짜 뉴스의 역사는 오래되었다'고 말할 때 섬뜩함을 느꼈다. 그렇다. 열왕들의 시대는 길을 잃은 시대이고, 어둠의 시대다. 그들은 수많은 진짜 같은 가짜에 휘둘렸다. 길을 잃었음에도 진리의 길을 찾지 않았고, 어둠 속에서 지혜를 갈망했지만 별을 보지 않았다. 그러니 삶의 지표를 잃고 표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저자는 열왕들의 시대를 네 가지로 구분했다. 1부는 '솔로몬 통치 시대'를 다룬다(왕상 1-11장). 2부에서는 '분열 왕국 시대 전기'를 다루고(왕상 12-22장), 3부에서는 '분열 왕국 시대 후기'를 다룬다(왕하 1-17장). 마지막 4부에서는 북이스라엘이 멸망한 후부터 남유다가 바벨론에 점령당하기까지의 과정을 다룬다(왕하 18-25장).
열왕기는 솔로몬으로부터 시작된다. 열왕기서는 이스라엘이 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정리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동일한 사건이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한 역대기와는 사뭇 다른 관점을 견지한다.
멸망의 시작이자 씨앗을 솔로몬으로 잡고 있다는 것은 열왕기서의 명백한 평가이다. 저자 역시 이러한 관점을 놓치지 않으며 열왕기서가 말하는 의도를 옳게 따라가고 있다.
"열왕기서는 솔로몬의 성전이 무너지고, 이스라엘이 멸망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는 원인을 찾았기 때문에 솔로몬의 문제점을 수시로 거론하였다(49쪽)".
성경은 사실이다. 그러나 사실만 기록한 것이 아니다. 동일한 사건과 정보를 가지고 당대의 시대적 환경과 필요성에 따라 재해석한 설교에 가깝다.
열왕기서는 심판의 이유를 알려주는 책이면서 동시에 '포로로 잡혀와 온갖 수모와 고초를 겪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로하고 하나로 뭉치게 하려고'(53쪽) 기록했다. 열왕기에 등장하는 솔로몬 시대 화려함의 극치(極侈)를 강조한 이유를 생각해 보자.
포로로 잡혀온 유대인들이 '잃어버린 시대' 또는 '회복해야 할 시대'가 바로 솔로몬의 시대인 것이다. 죄는 그렇게 간교하게 모든 것을 잃게 만들었다. 이것의 열왕기서의 목적이다. 바울의 말처럼 역사는 거울이다. 열왕기서는 화려했던 시절을 회상함으로 죄의 무게를 알려주면서 다시는 숨겨진 악을 망각하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다.
역사를 망각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망각하는 것이다. 망각은 가치를 상실한 것이며,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것이다. 사람은 중요한 것을 기억하고, 가치 있는 것을 담는다. 열왕기가 길을 잃어버린 시대가 된 이유는 최고의 가치, 최고의 우선순위인 하나님을 잃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2장에서 분열 왕국 전기를 다루면서 이스라엘이 어떻게 점차 하나님을 떠나 변질되어 가는가를 주도면밀하게 살핀다. 솔로몬이 멸망의 씨앗을 심었다면, 여로보암은 길을 놓았다. 그렇게 '여로보암의 길'은 열왕기서를 도도하게 흐르는 대하가 되었다. 저자는 열왕기상 12장 16절의 여로보암의 고백을 끌고 와 이후의 시대를 암시한다.
"우리가 다윗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81쪽)?"
'잘 먹고 잘 사는 것(83쪽)'을 추구하는 악한 시대를 예리하게 파헤친다. 저자의 명민함은 통찰력 있는 문장에도 있지만, 성경이 말하는 바를 간결하게 요약 정리하는 것도 포함한다. 르호보암과 여로보암을 비교한 문장들, 레위인들의 토지법을 정리한 곳(138쪽) 등은 다른 성경을 통해 열왕기를 밝혀준다.
저자는 영민하게 길을 열왕기 시대의 이스라엘이 길을 잃었을 때 어디로 돌아가야 하고 무엇을 보아야 했는가를 말한다. 영적 방황이 삶을 지배한다면, 진지하게 하나님께 돌아가야 한다. 영적 어둠이 삶을 혼돈(混沌)에 빠뜨린다면, 우리는 다시 기록된 말씀을 봐야 한다. 열왕기서는 길을 잃고, 표류하는 영혼들에게 던지는 영적 처방전이다. 다시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강력한 외침이다.
탁월한 통찰력, 그리고 현대적 감각으로 되살려낸 문장들만이 이 책의 전부는 아니다.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저자의 박식한 성경 지식, 열왕기서가 미처 말하지 않았던 자료까지 제시하며 다부지게 밀고 간다. 열왕기 기자의 마음을 읽어가는 섬세한 관찰은 책을 읽는 이들에게 새로운 맛을 선물한다.
저자 배경락
서북교회 담임목사, 백석대학원에서 미래목회를 가르쳤다. 배양찬 목사와 한옥수 사모 사이 맏아들로 태어난 저자는 목사가 되기를 원했던 부모의 뜻을 따라 믿음과 기도로 엄격하게 성장했다. 사춘기 기독교에 회의를 느껴 불교, 허무적 실존주의 등 비기독교적 사상에 심취하고, 문학과 철학에 심취하면서 다양한 책들을 섭렵하였다.
아버지의 강요로 총신대학교에 입학한 저자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보수 신학에 답답함을 느끼고, 당시 교수들이 비판한 독일 신학, 토착화 신학, 여성 신학 등 다양한 학문을 탐닉하면서 이들이 왜 비판받는지 연구하게 됐다. 보수 신학자, 칼 바르트, 본회퍼, 구티에레즈, 한스 큉 등의 저서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보수 신학자들의 신학 사상을 폭넓게 이해할 수 있었고, 보수 신학의 견고한 성을 지어가는 데 긍정적인 도움이 되었다.
이 같은 학문적 깊이가 바탕이 되면서 확실히 개혁주의 신학에 서게 된 저자는, 대학을 졸업할 즈음 목회의 길과 학문의 길 사이에서 깊이 고민하다 부모의 기도대로 공부하는 목회자, 책 읽는 목회자, 인문학에 능한 목회자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목회의 길을 걷고 있다.
목회 초기 4년간 필리핀에서 선교사로 섬겼으며, 이 경험은 신학이 삶의 현장에 구체화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지금도 선교하는 목회, 가르치는 목회를 실천하고 있으며, 여전히 공부하는 목회자로서 은평구 신사동 서북교회 담임목사로 시무하고 있다.
저서로는 포토에세이 『곧게 난 길은 하나도 없더라』, 이야기 역사신학 열왕기서 『성경 속 왕조실록』이 있다.
정현욱 목사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인, 에레츠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