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지 않고 끝까지 사랑하기> 저자 유은정 원장(上)
“너무 힘들어서 성경을 펴도 어디를 읽어야 할지 모르겠고, 기도도 안 나오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죄의 길로 빠질 때 대개 그러합니다. 상처를 극복하기 위한 방어 기제로 방황하거나 자기 학대를 합니다. 또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화를 내고 상처를 줍니다.”
상처에 갇혀 있으면 죄 가운데 빠지고, 결국 하나님께 등을 돌리게 된다. 지난 2016년 베스트셀러 <혼자 잘해주고 상처받지 마라>를 썼던 저자(유은정 정신과전문의)는 2년만에 ‘성경적 상담 이론’을 접목해 특히 크리스천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이번 책 <상처받지 않고 끝까지 사랑하기>를 썼다.
“심리학적 견해는 항상 ‘나’를 중심으로 출발하지만, 기독교적 관점은 내가 아니라 내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가 주인”이시고,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따라 끝까지 이웃을 사랑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서초좋은의원과 굿이미지 심리치료센터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담아 진심 어린 상담으로 많은 사람들을 깨우고 있는 유은정 원장과 나눈 이야기들을 두 차례에 나누어 게재한다.
-기독교인들 가운데 심리상담이나 정신과 치료에 대해 가장 크게 퍼져 있는 편견이나 오해가 있다면.
“정신과 약물을 복용하는 것은 믿음이 부족한 사람이고, 심리상담은 인본주의적이라 기독교인들에게는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 정신과 약물은 복용하면 바로 중독이 되므로 빨리 끊어야 한다거나, 심리상담은 자아를 강화시키는 작업으로서 기독교의 자기 부인과는 대립된다는 말도 합니다.
그래도 요즘은 목회자와 교인들 중 깨어 있는 분들이 많아서, 상담이나 정신의학을 신앙과 다른 영역으로 여기고 도움을 받으려 하십니다. 어떤 분들은 모든 것을 뇌 질환이나 병 탓으로 돌리지 않고 자신의 영적 상태를 점검해야 한다고 하시는데, 그 이야기도 옳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치료법이 약과 의사, 그리고 상담이듯, 모든 방법들을 동원해 한 사람을 회복시켜야 할 것입니다. 로뎀나무 밑에서 엘리야가 회복되는 모습을 보십시오. 천사의 음식과 손길, 그리고 휴식과 잠이 필요했습니다. 궁극적으로 의욕이 살아나고 우울증이 완전히 회복되는 시기는, 비전이 생기고 하나님을 통한 새 힘을 얻었을 때입니다.”
-말씀처럼, 교회에서는 마음이 힘들면 ‘더 기도하고 성경을 읽으라’고 하고, 상담이나 심리학을 ‘인본주의’라고도 합니다.
“마음이 힘든 사람에게 ‘더 기도하고 성경을 읽으라’고 조언한다면, 그 사람에게 ‘기도하지 않고 성경을 제대로 읽지 않아서’ 또는 ’믿음이 부족하거나 영성이 덜 되어서’ 마음이 힘들어졌다는 이야기로 들릴 수 있습니다.
책에도 썼지만, 조언보다 침묵이 차라리 나을 때가 있습니다. 섣부른 위로가 오히려 상처로 남기도 합니다. 힘든 마음이 회복되려면, 궁극적으로 △모든 것이 인과관계가 아니고 △하나님의 주권 아래 어떤 일이든 생길 수 있으며 △하나님을 원망치 않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감사하며 △하나님을 잠잠히 기다리며 만나는 것 등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기도하고 성경을 읽으라’고 하기보단, ‘어떤 것을 기도해 줄까?’라고 묻거나 자신에게 힘이 된 구절들을 소개하는 편이 어떨까요?
반대로, 교회에서 심리학이나 상담·치유를 접목하다 말씀이나 기도가 소홀해지는 경우도 종종 봅니다. 로버트 슐러나 조엘 오스틴 등의 긍정심리학 영향이기도 한데, 저는 이 모든 학문들이 균형적으로 통합을 이뤄야 한다고 봅니다. 아직도 논란이 계속되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풀러신학교 신학부와 심리학부 사이에 있는 긴장감이 이를 대변할 것입니다.”
-정신과 치료에 성경을 접목하고 계신데, 오해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1930-1950년대 미국에서는 성경과 상담을 접목하려는 시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후에는 심리학의 발전과 인본주의, 약물과 과학 등에 의해 성경과 학문의 접목이 시대에 뒤떨어진 시도라는 느낌을 줍니다. 그러나 성경에 나와 있는 훌륭한 삶의 지혜와 상담의 법칙들이 그냥 버려지는 느낌이 듭니다.
성경적 상담은 지식적이고 비인간적이라는 비난도 받았습니다. 성경으로 가르치려 들고 정죄한다는 말이지요. 그러나 예수님은 뛰어난 상담가(wonderful counselor)이셨고, 예수님의 치유와 설교 행적을 따라 제자들도 말씀을 전하면서 치유를 일으키는 은사를 구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권면하는 사역을 해 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상담가를 ‘이 시대의 사역자’라 부르고 싶고, 상담 현장이 사역 현장이며 영적 전쟁이 일어나는 곳이자 선교(회심)의 현장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마음이 가난하고 아픈 자들에게 예수님과 복음이 필요하듯이 말입니다. 구체적인 방법들은 각자 자질과 은사에 달려 있을 것입니다. 정신의학과 상담 수련 과정을 마친 사람들이, 이런 성경적 지식과 기도의 능력을 배제한 채 진료하고 상담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기독교적 상담’에 대한 거부반응은 없었나요.
“비기독교인들에게 기독교적 상담을 제시하진 않습니다. 상담에서는 종교를 강요하지도 않고, 종교의 자유를 철저히 존중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인이었다가 상처를 받아 교회를 떠났거나, 사람들 때문에 교회를 가지 않으려 작정한 분들에게는 신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합니다.
기독교적 상담이란 꼭 성경이나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인 상담가가 환자를 위해 기도해 주는 것, 그리고 기독교적 윤리관을 가진 상담가가 상담하는 전체를 포괄하는 개념일 수도 있습니다. 성경 말씀도 옛 조상들의 지혜에 대한 비유 또는 성자의 가르침으로 제시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자녀들에게 말로 상처를 주는 부모들에게는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고 자녀를 노하게 하지 말라’는 말씀을 많이 이야기합니다. 부부관계에 있어서도 ‘남편을 존경하라, 아내를 사랑하라’는 비기독교인들에게도 자주 사용하는 구절입니다.”
-개업했던 병원을 닫고, 신학 공부를 위해 미국으로 떠날 수 있는 용기가 어디서 나왔을까요.
“30대에 개업했던 병원을 접는다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하나님과 한 약속을 지키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제 삶이라는 생선의 ‘가운데 토막’을 드리겠다는 마음이었습니다.
이제껏 살던 의사가 아닌 신학생으로서의 삶이 어려웠지만, 책으로는 배울 수 없는 많은 경험들을 할 수 있었습니다. 본토 고향을 떠나는 것은 사실 광야의 시작입니다. 광야에는 외로움과 고독과 비움이 있고, 많은 가르침이 있었기에 결코 후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더 찾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교회에서 뵙던 목사·전도사님들을 친구처럼 만나 그들의 고민을 솔직하게 들으면서, 그들에게 어떤 어려움이 있고 무슨 문제가 있는지 좀 더 이해하게 됐습니다.
사실 의사들은 학창시절 공부를 잘 하다 보니 별 생각 없이 그 길로 접어든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는 유학 동안 하나님 앞에서 정체성을 찾게 됐습니다.
책에도 썼지만, 의사 가운을 벗고 나니 저를 지탱해줄 것이 없었습니다. 유학 기간 허락하겠다고 하신 금은보화가 무엇일까 기대했는데, 하나님께서는 ‘바로 네가 금은보화’라고 하셨습니다. 성취지향에서 벗어나 ‘너는 내 것’이라는 존재론적 자존감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고, 그때부터 자존감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자존감 파티’도 하시지요.
“심리치료센터도 운영하고 있는데, 자존감을 세우는 곳입니다. 선생님들이 모두 크리스천입니다. 그래서 환자들에 대한 기도제목을 돌리면서 병원을 사역지처럼, 교회처럼 여기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안내와 봉사 등을 하는 사역도 있지만, 평신도들은 일터가 곧 사역지 아니겠습니까. 선생님들에게도 늘 그렇게 말씀드립니다.
병원에서 가장 교회다운 일이 바로 ‘자존감 파티’입니다. 먼저 지역사회를 위해 무료로 열고 있습니다. 그리고 환자들은 좋아지면 병원에 다시 오실 일이 없습니다. 조금 안 좋아지더라도 오기가 꺼려지는데, 환자들을 양떼처럼 여기고 기도하던 입장에서 더 이상 안 온다고 끝낼 것이 아니라, 올 수 있는 장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딱딱한 진료실에서 ‘나는 치료자, 너는 환자’로서 만나는 게 아니라 말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파티를 열게 됐고, 벌써 여덟번째를 맞았습니다.
SNS나 인터넷을 통해 40-50명만 받는데, 아무래도 정신과라는 문턱이 높아서 오지 못하는 일반인들이 절반 정도 참석하십니다. 상담으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상담 없이도 ‘앞으로 이렇게 살아야겠다’는 힘을 받거나 정신과가 이런 곳이구나 접하고 가십니다.
하이라이트는 5명씩 하는 소그룹인데, 다들 너무 할 말이 많아 리드하는 상담 선생님들이 할 일이 없어요(웃음). 교회에서 소그룹을 많이 하는데, 집단 정신치료처럼 자기 이야기를 나누고 말씀을 바탕으로 이렇게 살겠다는 다짐도 하고 함께 기도하고 지지하는 등 정신치료적으로 아주 좋습니다.”
-선생님 같은 사역을 꿈꾸는 크리스천들에게 한 말씀 해 주신다면.
“기독교와 상담을 접목하는 사역을 꿈꾸는 분들에게는 두 가지 깨달음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먼저 이 길은 어려워 보이지만, 이미 이루어놓으신 ‘쉬운 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치유를 이미 경험했기에, 예수님의 방법이 쉬움을 알고 있습니다. 우물가의 여인에게 다가가신 예수님의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내가 그 방법을 다 깨닫고 완벽하게 접목하려면 너무나 할 일이 많아 보이지만,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동일한 고민을 갖고 비슷한 사역을 하셨고, 기록해 놓은 책들이 있습니다. 이를 비판하는데 급급하기보다, 높이 평가하고 배우고 롤 모델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둘째로 ‘토끼보다 거북이가 되라’는 것입니다. 다 이루려 애쓰지 말고, 거북이처럼 내가 깨달은 그 하나를 내 세대에서 이루다 보면, 하나님의 시간에 후배와 후대들이 그 대를 이어갈 것입니다. 치유의 광선이 우리와 우리 선후배들을 통해 뻗어갈 것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