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를 적당히 두면, 아이들의 문제는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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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찬북뉴스 서평]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선생님의 숨바꼭질
권일한 | 지식프레임 | 304쪽 | 15,000원

1950년, 하와이의 카우아이 섬은 실업자와 알코올, 마약 중독자들이 팽배한 곳이었다. 불우한 환경은 수많은 사회적 부적응자를 만들어 냈다.

심리학자인 에이미 워너는 ‘불우한 환경이 범죄자를 만든다’는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종단 연구를 시작한다. 800여 명의 아이들을 연구하면서, 가장 고위험군은 201명을 따로 집중적으로 살핀다.

그 가운데 31%의 정도 ‘예외’가 생겼다. 그들은 당연히 범죄자로 전락해야 했지만, 학교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두고 좋은 대학에 들어갔으며, 훌륭한 모범 시민으로 성장했다.

에이미 워너는 ‘왜 이런 예외가 발생하는가’ 의아해하면서, 연구의 방향을 바꿔 ‘예외’의 이유를 찾아가기 시작한다. 다양한 환경임에도, 유일한 공통점을 발견했다.

그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지지해준 단 한 명의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다. 단 한 명의 지지자만 있어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여 노력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만들어 준 것이다. 그녀는 그것을 ‘회복탄력성’이라 명명했다.

권일한 선생의 새로운 책이 출간되었다. 이번 책은 이전 책들과 사뭇 다르다. 지금까지의 책이 ‘실용적’ 측면이 강했다면, 이번 책은 ‘원리’에 가까운 책이다.

지금까지의 책들은 독서토론과 글쓰기를 진행하면서 체득한 경험을 정리해 놓은 것들에 가깝다. 그러나 이번에 출간한 책은 자기독백적이며, 독서 토론과 글쓰기를 통해 만나고 나누었던 삶의 이야기를 다룬다.

<선생님의 숨바꼭질>이란 제목이 의아해 한참을 고민했다. 책 표지에 ‘꼭꼭 숨겨진 아이들 마음을 찾아 나선 산골 학교 선생님의 가슴 뭉클한 교단일기’로 적혀 있지만 그것만으로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적당히 거리를 두면 아이들 문제가 보이지 않는다. 그럼 숨바꼭질에 매달리지 않아도 되고 좌절할 일도 없다(175-176쪽)”.

숨바꼭질은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아이들의 숨겨진 마음 찾기다. 글쓰기를 하면서 아이들의 마음을 읽고, 삶을 보았다. 강원도 탄광촌이라는 산골 마을, 이혼과 죽음, 가난과 폭력이 일상에 스며있는 곳이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아픔을 꼭꼭 숨기고 자신의 상처를 마음 깊이 침전시킨다. 저자는 글쓰기를 통해 그들의 마음을 수면 위로 올려놓는다. ‘직면이 곧 치유다’는 말이 있지 않던가. 글을 통해 발견한 아이들의 생채기를 안고 함께 삶을 나눈다.

책의 절반쯤 읽어 나갔을 때, ‘회복탄력성’이란 단어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실패와 좌절이 불가피한 상황 속에서도 마침내 성공적 삶을 살아간 이들의 한결같은 특징은, 자신을 믿고 기다려준 한 사람이 있었다. 권일한 선생은 바로 그 ‘한 사람’이다.

“상처를 입으면 사랑하는 사람 곁으로 가라고 했다. 비난하지 않고 섣불리 충고하지 않으며 아픔을 함께해줄 사람 곁에 가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다시 일어설 힘이 난다. 그런 사람 곁에 있으면 꽁꽁 얼어붙은 마음이 슬며시 녹고 누군가 손을 잡아 주는 것 같다(177쪽)”.

책은 크게 3부로 나눠져 있고, 17개의 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숨바꼭질하는 아이, 어떻게 대할까?’는 눈으로 보이는 아이들의 행동을 보고 ‘하지 마!’라고 말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현대의학의 병폐로 알려진 대증요법(對症療法)은 병의 결과만 보고 처방한다. 병의 원인과 뿌리를 간과함으로 무리한 약리작용으로 인해 부작용이 속출한다. 아이들의 문제적 행동은 ‘그림자(21쪽)’다. 유능한 교사는 그림자를 보고 판단하지 않고, 아이들의 숨겨진 마음을 찾는 술래가 되는 것이다.

아이들은 언제 자신의 숨겨둔 마음을 보여줄까? 자신을 믿어줄 때, 자신을 사랑할 때 마음을 연다. ‘하지 마!’는 판단이며, 모욕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부족함을 알지만, 그것을 지적당하는 순간 방어한다. ‘해와 구름’이라는 이솝 우화의 이야기처럼 판단하고 지적하는 것은 결코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다.

초보 교사 시절, 권일한 선생은 ‘하지 마!’를 적지 않게 내뱉었다. 아이들의 마음을 열기보다, 오히려 상처를 주고 닫게 만들었다. 아이들의 그릇된 행동을 바로잡아야 한다. 하지만 먼저 ‘무슨 일 있어?’라고 물어야 한다.

2부 ‘아이는 부모에게 숨바꼭질을 배운다’에서는 부모를 통해 학습되는 아이들의 마음을 다룬다. 폭력적인 아버지로 인해 마음이 삐뚤어진 영철이의 이야기는 심장에 통증을 유발한다.

자존감이 낮은 부모는 자신을 함부로 다룬다. 저급한 언어와 폭력적 행동, 게으름과 부도덕한 삶을 살아간다. 그런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그것을 혐오하면서도 학습한다. 부모의 아픔은 고스란히 아이들의 아픔이 된다. 부모는 아이의 잘못을 야단치기 전에 자신을 보아야 한다.

“진짜 용감한 부모는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한다. 아이를 위해 아픔을 참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지만, 아이를 위해 도움을 요청하는 태도야말로 지혜로운 용기이다(135쪽)”.

믿기지 않지만 ‘머릿니’로 인해 곤욕을 치른 이야기는, 열약한 교육 현실의 민낯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머릿니를 옮긴 아이는 어머니가 없었다. 아버지는 아이에게 큰 관심이 없다. 씻지 못한 아이는 이를 달고 다녔고, 아이들에게 옮긴 것이다. ‘이를 잡으려면 집 안 어디에 이가 있는지, 왜 이가 생겼는지 알아야(175쪽)’ 한다.

아무리 상담해도 알 수 없던 문제의 원인을, 집으로 찾아가고 부모님을 만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아이가 처한 환경이 문제를 만든 것이다. 보이는 이만 잡으려고 한다면 결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를 잡기 위해 아이의 삶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적당한 거리를 두면 아이들 문제는 보이지 않는다(175쪽)’.

3부 ‘아픈 아이 마음 찾기’에서는 마음의 병을 안고 살아가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기고백적 글쓰기를 통해, 아이들은 자신의 마음을 드러낸다. 생채기 가득한 아이들의 마음을 꾸미지 않고 보여준다. 이것이 글쓰기의 힘이 아닐까?

부모의 이혼 때문에 동굴에 사는 아이, 아버지의 욕설과 학대로 인해 주눅이 들어 꽁꽁 숨어버린 아이들이 글로 숨겨진 마음을 표현한다. 아픈 사람은 자신을 감춘다. 아프지 않은 것처럼, 용감한 것처럼, 가난하지 않은 것처럼 자신을 포장한다.

선생은 아이들 마음에 숨겨진 상처를 찾아내야 한다. 그것은 불편한 일이고, 희생과 수고를 요구한다. 저자는 글쓰기를 통해 그것을 끄집어낸다. ‘해와 구름’에 나오는 해처럼 글쓰기는 그들이 발설하도록 만들어 준다.

“감정은 밖에서 밀어 넣기 전에 안에서 터져 나와야 한다. 관계가 먼저이고 기능은 다음이다. 아이를 바라보고, 희망 꽃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아이를 대하면 글이 달라진다(221쪽)”.

솔직한 글에 박수를 보내고, 서로 위로하게 했다. 마음에 감춰둔 아픔을 꺼냈다. 아이들은 견디기 힘든 현실이지만 벗어나기 위해 ‘새가 울듯이 글을 썼다(225쪽)’. 조그마한 흙만 있어도 식물은 자라고 꽃을 피운다. 누군가 자신을 지지해 준다면 아이들은 기꺼이 ‘마음의 빗장(226쪽)’을 연다.

사고로 얼굴을 다친 아이는 하나도 아프지 않은 것처럼 살았다. 그러나 어느 날, 아이는 자신 때문에 아파하는 엄마의 마음을 글로 ‘처음’ 표현하기에 이른다. ‘아이는 사물을 꿰뚫어보는 눈으로 글을(232쪽)’ 썼고, ‘사고를 당했지만 사물을 관찰하고 생각하는 능력은 다치지(228쪽)’ 않았던 것이다.

이 책은 ‘한 명의 지지자’에 대한 이야기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 생존의 뿌리를 내리며 살아가는 아이들을 지지하는 ‘한 명의 지지자’, 권일한 선생의 이야기는 좋은 교사의 본이 무엇인지 알려 준다.

카우아이섬의 아이들은 대부분 ‘불우한 환경은 아이들은 범죄자로 만든다’는 가설을 따라갔다. 그러나 ‘예외’의 아이들이 있었다. 그들의 공통점은 하나, ‘한 명의 지지자’다.

저자는 분명 글쓰기를 통해 자신이 체득하고 배운 것들을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그러나 내가 읽기로 이 책은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을 역전시키는 멋진 선생님의 뜨거운 희생과 사랑의 이야기다. 책을 다 덮고 나서야 아이들의 마음을 찾는 것은 사랑임을 알았다.

정현욱 목사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인, 에레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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