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방탄소년단)에게 배우는 기독교 문화의 방향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기독교 문화의 중요성, 여전히 선명한 콘셉트와 메시지에”

▲방탄소년단(BTS). ⓒ페이스북 공식 홈페이지

▲방탄소년단(BTS). ⓒ페이스북 공식 홈페이지

방탄소년단(BTS)이 유엔 총회 연설과 ABC 방송 ‘굿모닝 아메리카(Good Morning America)’ 출연 등으로 다시 화제를 모으는 가운데, 지난 6월 윤영훈 교수(성결대)가 문화선교연구원에 기고한 ‘BTS 신드롬과 다시 부르는 청춘예찬’이 회자되고 있다. 윤영훈 교수는 지난 2016년 ‘대중음악 묵상 이야기’ <윤영훈의 명곡묵상>을 펴낸 바 있다. 다음은 그 내용.

◈다시 만난 ‘다시 만난 세계’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 뛰는 말이다.” 민태원의 수필 <청춘예찬(1924)>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이다. 하지만 오늘날 대한민국의 청춘들은 취업과 경쟁에 내몰려 그 싱그러움을 상실하며 피어보지도 못한 채 시들어가고 있다.

그러나 청년의 빈궁한 삶 보다 더 심각한 것이 있다. 그들의 청년정신이 함몰되어 가는 현실이다. ‘3포세대(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세대)’,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요)’ ‘소확행(바쁜 일상에서 느끼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 등의 신조어는 젊은 세대의 보편적 성격이 아니라, 이들의 좌절된 꿈과 치열한 현실 속에 최소한의 자존감을 지키고자 스스로 찾아낸 생존 기술인지 모른다.

지금 우리 시대에 ‘청년문화’는 과연 존재하는가? 청년기는 혼란과 모순의 급격한 변화를 겪는 시기이며 자신의 이상이 점차 무너지며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자기 고뇌를 통한 예술적 감성이 극대화되는 시기이다. 따라서 이들의 문화는 기성문화의 진부함과 청소년 문화의 미숙함을 뛰어넘어 늘 새롭고 실험적인 문화의 트랜드를 주도해 왔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의 청년 문화는 청소년 중심의 소위 ‘아이돌’ 문화로 그 중심이 급속히 옮겨가게 된다. 1970년대 이후 한국 청년문화의 주체는 대학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활동한 젊은 지식인들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이전의 청년문화가 보여주었던 새로운 가능성의 공간은 미디어 자본과 거대 기획사의 교묘한 자기증식의 전략에 의해 선점되고 말았다. 들국화와 김광석의 노래를 들으며 성장한 나는 2000년대 이후 급부상한 케이팝(K-POP)과 한류 열풍에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오히려 대놓고 무시하고 비판했다.

그러던 중 2016년 국정농단과 박근혜 정권의 도화선이 되었던 이화여대 시위 현장에서 울려퍼진 한 노래는 나의 이런 ‘꼰대’적 선입견에 큰 충격을 주었다. 그들은 ‘아침이슬’도 ‘임을 위한 행진곡’도 아닌, 인기 걸그룹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열창하며 기득권에 저항했던 것이다.

“눈앞에 선 우리의 거친 길은 알 수 없는 미래와 벽
바꾸지 않아 포기할 수 없어 변치않을 사랑으로 지켜줘…
이 세상 속에서 반복되는 슬픔 이젠 안녕
수많은 알 수 없는 길속에 희미한 빛을 난 쫓아가
언제까지라도 함께 하는 거야 다시 만난 나의 세계”

-소녀시대, ‘다시 만난 세계’ 중

뜻밖의 장소에서 만난 이 노래 가사는 어쩌면 21세기 신세대들의 ‘그것만이 내 세상’인지 모른다. 명색이 대중문화를 연구한다는 나 역시 8090 문화에 경도되어 신세대의 음악도, 그 안의 메시지도 귀 담아 들으려 하지 않고 싸잡아 비판했던 것이다.

지난 십 수 년간 K-POP 아이돌 음악 역시 진화하고 있다. 최근 아이돌 음악을 접하며 우리는 그들의 열망이 얼마나 간절한지, 그들의 음악적 재능이 얼마나 휼륭한지, 그리고 그들의 생각에서 얼마나 진지한 고민도 깃들여 있는지 알게 되었다.

◈BTS(방탄소년단)와 아이돌의 진화

나는 한 보이그룹에게서 우리 시대의 ‘청춘예찬’을 만날 수 있었다. 이들은 오늘날 전 세계 청춘들의 귀와 눈 뿐 아니라 정신과 마음까지 사로잡고 있는 BTS(방탄소년단)이다.

2013년 BTS(방탄소년단)가 처음 데뷔했을 때, 이들이 빌보드 차트 정상에 빛나는 글로벌 스타가 될 것을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작은 기획사, 그룹명에 대한 조롱 등으로 인해 그저 그런 ‘원 오브 뎀(one of them)’으로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5년 뒤 이 일곱 청년의 위치는 그들이 롤모델로 삼았던 빅뱅을 넘어 진정한 글로벌 K-POP스타가 되었다. 이들은 거짓말처럼 막연하게 꿈꾸던 ‘화양연화’를 꽃피웠다. 방탄소년단은 그야말로 한류 아이돌 역사의 결정판이다. 감각적이고 트랜디한 비트와 압도적 칼군무 퍼포먼스는 그들의 트레이드 마크이지만, 그들에겐 다른 아이돌과 구별된 차별적 요소가 있다.

BTS(방탄소년단)의 성공의 가장 중요한 기반은 트위터와 유튜브와 V앱으로 대표되는 뉴미디어 플랫폼이다. 그들은 거대 기획사의 마케팅 홍보가 아니라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적극적이고 친근하게 팬들과 소통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를 통해 그들의 팬클럽 아미(A.R.M.Y)의 글로벌 확장과 결집을 불러온다.

이런 방식은 주류 미디어의 마케팅 공식이 아니라,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변방으로부터 확산된 성공 사례이다. 이전에도 늘 그렇듯 대중문화는 뉴 미디어 환경을 통해 새로운 스타를 만들어 왔다. 온라인 소통 뿐 아니라 그들의 ‘Airplane pt 2’ 가사에서 드러나듯 부지런한 해외 활동으로 보다 넓은 한류 영역을 개척할 수 있었다.

두 번째로 BTS(방탄소년단)는 음원 시대에도 콘셉트를 입힌 앨범 중심의 활동을 하는 것에서 차별성이 있다. 지금까지 발표한 작품들은 ‘강남 스타일’처럼 어느 특정한 곡의 신드롬이 아니라, 앨범 전체에 녹여낸 그들의 작품 구성과 멤버들의 균등한 참여와 앙상블로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BTS(방탄소년단)가 고집하는 앨범의 서사성은 그들의 앨범 <화양연화 pt 1>부터인데, 초기 ‘상남자’ 시절과는 확연한 변화가 보인다. 앨범마다 그들은 ‘인트로’와 ‘아웃트로’를 수미상관으로 구성하고, 중간에 다양한 ‘싸이퍼’와 ‘스킷’를 삽입하며 개별 곡과 앨범 전반 서사에 봉사하도록 연계시킨다. 그들의 퍼포먼스와 뮤직비디오 역시 그들이 담아내는 앨범의 콘셉트를 강화하는 예술적 장치로 BTS 세계관을 이미지로 확장한다.

세 번째로 그들의 가사에 담아낸 이 시대 청춘들의 방황하는 자화상과 희망의 메시지이다. 이들은 염세와 희망이 교차하는 인생의 길목에 서서, 세상과 불화하기 때문에 오히려 수혈받을 수 있는 청년 정신을 노래했다. 이들의 팬들이 BTS(방탄소년단) 음악을 한번 빠지면 빠져 나올 수 없는 ‘개미지옥’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이들의 세련된 음악과 퍼포먼스 뿐 아니라 내재된 메시지 때문이다.

이들의 노래에는 성장의 아픔과 근본적 삶에 대한 철학적 사유, 그리고 위로의 메시지가 녹아있다. 이들은 당돌하게도 전 세계 청춘들의 헤르만 헤세가 되기로 작정한 듯하다. BTS(방탄소년단) 멤버들은 ‘독서돌’이라 불릴 만큼 데뷔 전부터 많은 책을 함께 읽으며 감수성을 키워 온 것으로 유명하다. 이들은 특히 소설 <데미안>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고, 자신들의 노래들에서 알을 깨고 나와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으로 존재하며 살라고 이야기한다.

◈BTS(방탄소년단) 노래 속의 청년정신

이들의 노래 중 몇 곡의 예를 들어보겠다. 이들은 이 노래들에서 이 시대 청춘의 좌절과 방황을 대변하고, 때로는 기성세대에 대한 비판으로, 때로는 우리 시대 청춘들의 무력감에 대한 질책을 쏟아낸다.

‘우릴 공부한 기계로 만든건 누구
일등 아니면 낙오로 구분짓게 만든 건
틀에 가둔 어른이란 걸 쉽게 수긍할 수 밖에
단순하게 생각해도 약육강식 아래
친한 친구도 밟고 올라서게 만든 게 누구라고 생각해?

-BTS(방탄소년단), ‘N. O.’ 중

3포세대, 5포세대, 그럼 넌 육포가 좋으니까 6포세대
언론과 어른들은 의지가 없다며 우릴 싹 주식처럼 매도해
왜 해보기도 전에 죽여, 걔넨(enemyx3)
왜 벌써부터 고개를 숙여. 받어!(energyx3)
절대 마 포기
(You know you not lonely)
너와 내 새벽은 낮보다 예뻐
(So can I get a little bit of hope yeah )
잠든 청춘을 깨워. Go!

-BTS(방탄소년단), ‘쩔어’ 중

우리가 그토록 기다린 내일도 어느새 눈을 떠보면 어제의 이름이 돼
내일은 오늘이 되고 오늘은 어제가 되고 내일은 어제가 되어 내 등 뒤에 서 있네
삶은 살아지는게 아니라 살아내는 것…
포기하지 마, 알잖아. 너무 멀어지진 마, tomorrow

-BTS(방탄소년단), ‘Tomorrow’ 중

21세기 계급은 반으로 딱 나눠져
있는 자와 없는 자 신은 자와 없는 자
입은 자와 벗는 자 또 기를 써서 얻는 자
이게 뭔 일이니 유행에서 넌 밀리니?
떼를 쓰고 애를 써서 얻어냈지, 찔리지?
가득 찬 패딩 마냥 욕심이 계속 차
휘어지는 부모 등골을 봐도 넌 매몰차
친구는 다 있다고 졸라대니 안 사줄 수도 없다고…
니가 바로 등골브레이커, 니 부모님의 등골브레이커
철딱서니 없게 굴지 말어. 그깟 패딩 안 입는다고 얼어 죽진 않어
패딩 안에 거위털을 채우기 전에 니 머릿속 개념을 채우길,
-BTS(방탄소년단), ‘등골 브레이커’ 중

거의 모든 노래 속에 담긴 선명한 메시지는 다른 아이돌과 이들을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이 외에도 ‘고민보다 go’는 희망을 잃어버린 이 시대 청년들이 ‘욜로(YOLO)’와 ‘탕진 잼’에 빠질 수밖에 없는 현실을 재치있게 관통하고 있고, ‘봄날’의 서사에는 추운 겨울같은 현실을 ‘눈꽃’이란 중의적인 비유로 표현하며 ‘봄날’의 희망을 기대하는 마음을 담아낸다.

최근 앨범의 타이틀곡, ‘Fake love’에서도 ‘이뤄지지 않는 꿈속에서 피울 수 없는 꽃을 피웠어’라고 말하며 청춘의 이중적 고민에 대한 진지한 메시지는 계속되고 있다. BTS(방탄소년단)는 그렇게 염세와 희망의 경계에서 서성이며, 다시 한번 도전하는 청춘의 정신을 노래한다.

◈BTS(방탄소년단)에게 배우는 기독교 문화의 방향

이 반전의 희망은 성경의 중심 주제이며 다윗의 시편이 가장 선명하게 전하는 내러티브이다. 시편을 주의 깊게 읽다 보면 청년 다윗의 많은 노래들이 불안과 두려움, 절망과 분노의 넋두리로 시작하지만, 곧이어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고는 구원과 감사의 송축으로 마무리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다윗의 현실은 “기다리고 기다릴” 수밖에 없고,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 빠져 있지만, 주님이 “내 입에 두실 새 노래”를 통해 희망을 꿈꾼다. 현실에 아무 변화는 없지만 다윗의 마음에 찾아온 ‘새 노래’ 그 자체가 여호와의 응답이었다(시 40:1-3).

우리에게 이런 고통의 시간은 어쩌면 제3의 가능성을 상상하고 실험할 수 있는 최선의 환경일지 모른다. 주님이 주시는 이 ‘새 노래’는 우리를 다시 일으켜 뭔가를 해보게 만든다. ‘청년’은 생물학적 개념이 아니라 새로운 실험에 기대와 용기를 불어넣는 ‘정신’이다.

오늘날 교회의 청춘들 역시 동시대 청춘들의 고민을 공유하고 있다. 그들을 위한, 그들에 의한 새로운 기독교 문화가 절실하게 요청된다. 하지만 오늘날 청소년-청년 사역은 엄밀히 말하면 이들 세대를 위한 사역이 아니라 이들 세대를 교회 어른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이끌기 위한 대행 사업으로 보인다. 젊은이들의 패션과 언어를 쓴다고 청년-청소년 사역의 전문가는 아니다.

CCM 가수나 예배음악 사역자에게 생계 문제는 고통스런 현실이며 해결하기 힘든 고민이다. 게다가 익숙한 예배곡만 반복해서 연주하다 보니, 예술적 테크닉도 늘지 않는다. 상투적 고백들을 되풀이하다 보니 창의적 메시지도 희미해진다. 새로운 시도를 할 때면 ‘이렇게 해도 되나?’ 스스로 의심하며 교리적 자기 검열에 빠지기도 한다.

BTS(방탄소년단)에게서 기독교 문화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SNS는 이제 새로운 선교의 통로라는 것, 여전히 기독교 문화의 중요성은 선명한 콘셉트와 메시지에 있다는 것, 그리고 동시대인의 방황과 고민의 대변자로서 메시지의 예술적 공교함을 높여가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들이 꾼 꿈과 현실이 막연한 기적이 아니라 눈물 젖은 빵을 씹으며 이루어낸 ‘피, 땀, 눈물’의 결실이라는 것 말이다.

모두가 고개를 젓는 이 순간에도 대안적 삶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현실에 좌절하거나 타협하지 않고 묵묵히 새로운 변화를 꿈꾸며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각자의 상황에서 그런 창조적 삶으로 우리를 부르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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