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과 은혜의 욥기 11] 하나님의 사랑을 불신하는 것
욥기 11장 강해
요절: 만일 네가 마음을 바로 정하고 주를 향하여 손을 들 때에 네 손에 죄악이 있거든 멀리 버리라 (13절)
엘리바스와 빌닷에 이어 소발이 욥에게 권면합니다. 엘리바스는 죄로 인해 벌 주시는 율법적인 하나님을 말했습니다. 빌닷은 죄에 대해 심판하시는 공의로운 하나님을 말했습니다. 나아마 사람 소발이 이들의 뒤를 이어 욥에게 회개를 촉구합니다. 그러나 그는 회개보다 더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습니다.
1. 하나님 앞에서 말이 많은 것은 좋은 것이다
1-4절에 보면, 욥은 자신의 고통을 많은 말로 토로하였습니다. 욥은 자신이 정결하고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깨끗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소발이 볼 때 욥이 자신의 의를 주장하는 자였습니다. 그는 말을 많이 하는 자는 의롭지 않다고 합니다. 소발은 욥을 말이 많은 자로 규정하여 그를 우둔한 자로 취급합니다.
소발은 자신이 욥의 죄를 지적하여 부끄럽게 하겠다고 말합니다. 욥이 혼자서 큰소리로 떠들어도 우리는 대답할 말이 있다고 합니다. 욥이 친구들을 비웃어도, 내가 너를 책망하겠다고 말합니다. 욥은 자신의 생각(도)이 옳다고 주장하고 주님 보시기에 흠이 없다고 우기지만, 소발은 그의 죄를 지적하겠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이 생기면 말이 많아집니다. 사람들 앞에서 말을 많이 하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하소연하며 기도의 말을 많이 하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2. 욥에 대한 고난의 신비는 다 알 수 없다
5-10절에 보면, 소발은 이제 하나님이 입을 여셔서 욥에게 말씀하시고, 지혜의 비밀을 욥에게 드러내 주시기를 바란다고 합니다. 욥의 죄에 대해 하나님이 벌주시기를 원하신다고 합니다. 그가 하나님이 보이시는 비밀, 숨겨진 것 등을 말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지식은 광대하다고 합니다. 광대하심은 ‘이중의, 두 배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지식은 보여지는 면과 보여지지 않는 면이 있습니다. 소발은 현재 욥이 하나님의 지식의 보이지 않는 깊은 면을 알고 있지 못함을 은근히 나무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란 우리가 이해하기에는 너무나도 어려운 것입니다.
소발은 욥에게 하나님이 내리시는 벌이, 욥의 죄보다 가볍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욥에게 벌을 주셔서 욥이 죄를 잊게 하신 것도 하나님의 지혜라고 말합니다. 그는 하나님이 욥의 불의를 모두 징벌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중 일부분에 대해서만 징벌하고 계신다고 말합니다.
소발은 욥과 같이 말이 많고(2절) 어리석은 자는 결코 하나님의 깊은 뜻과 비밀들을 발견할 수도 깨달아 알 수도 없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하늘보다 높고 하나님은 스올보다 깊으니, 욥이 하나님을 알 수 없다고 합니다.
소발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초월적인 하나님의 지혜를 욥으로서는 도무지 알 길이 없으리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두루 지나다니시며, 죄인마다 쇠고랑을 채우고 재판을 여시면, 누구도 감히 하나님을 막을 수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소발이 놓친 것이 있습니다. 지금 하나님이 욥에게 고난을 주신 것은 심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이요, 은혜의 손길이요, 신뢰의 손길입니다. 소발이 하나님의 깊은 세계를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잘했지만, 그것을 욥의 죄와 연결시키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두신 하나님의 뜻을 다 측량할 수 없습니다. 의로운 욥에게 주신 고난의 의미를 이루 다 알 수 없습니다. 욥에게 고난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다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크신 뜻이 욥의 죄를 찾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현재 욥에게는 하나님의 크신 뜻으로 신뢰와 사랑을 보이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길이는 땅 끝까지의 길이보다 길고, 그 넓이는 바다보다 넓습니다.
3. 욥은 회개해야 하는가
“하나님은 허망한 사람을 아시나니 악한 일은 상관하지 않으시는 듯하나 다 보시느니라. 허망한 사람은 지각이 없나니 그의 출생함이 들나귀 새끼 같으니라. 만일 네가 마음을 바로 정하고 주를 향하여 손을 들 때에 네 손에 죄악이 있거든 멀리 버리라 불의가 네 장막에 있지 못하게 하라(11-14절).”
하나님은 허망한 사람을 아십니다. 소발은 욥이 지각 없는 허망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소발은 욥이 그 속에 지혜, 진리가 없고 거짓으로 가득찬 사람이라고 합니다. 허망한 욥은 꼭 들나귀 새끼같이 무지하다고 합니다. 들나귀가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허망한 욥이 지각이 있게 되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소발은 욥과 같이 어리석고 속이 빈 허망한 자는 결코 하나님의 오묘하신 깊은 뜻, 지혜를 깨달아 알 수 없다고 단정합니다. 소발은 욥이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한다고 합니다. 욥에게 죄를 멀리 버리고 장막에 있지 못하게 하라고 합니다. 한 마디로 회개하라고 합니다. 마음을 하나님께 대하여 확고히 하고 다른 길로 나아가지 말라고 합니다(삼상 7:3). 과거의 죄악된 곁길에서 떠나 하나님께 순종하고 그분을 따르라고 합니다.
욥이 손을 들고 지난 과거의 죄악된 길에서 떠나 회개하고 하나님께 도움을 간청하라고 말합니다(시 28:2, 63:4, 134:2, 141:2, 사 1:15, 애 2:19, 3:41). 욥에게 갑질하던 것을 회개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 고난의 때에 욥이 회개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깊은 사랑의 세계로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4. 회개할 때만 복을 주시는가
15-19절에 보면, 소발은 욥이 회개하면 아무 부끄러움 없이 얼굴을 들 수 있다고 합니다. 욥의 마음이 편안해져서, 두려움이 없어질 것이라고 합니다. 회개하면 이전에 가졌던 사회적 지위와 권위, 명성 등을(29:4-25) 회복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현재 고난받고 질병으로 시달리는 것을 매우 두려워하고 있으나 회개하면 두려움이 사라질 것이라고 합니다(9:28). 괴로운 일을 다 잊게 되고, 그것을 마치 지나간 일처럼 회상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회개할 경우 현재 당하고 있는 고난과 고통에서 해방되어 새롭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욥이 그의 당하는 바 고통과 고난에서 벗어나, 그 모든 고난을 아득한 옛일처럼 기억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회개하면 그의 생활이 한낮보다 더 환해지고, 그 어둠은 아침같이 밝아질 것이라고 합니다.
결국 소발은 욥이 그의 죄악을 회개하고 그 불의한 길에서 돌이킬 경우, 그의 생애가 더욱 왕성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욥의 현재 처지가 암울하고 환난과 고통으로 가득한 것이라 할지라도, 이것들이 사라지고 밝고 활기찬 삶이 도래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제 욥에게 희망이 생기고, 욥은 확신마저 가지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소발은 욥이 회개하면 장차 현재 당하는 고통과 고난에서 벗어나 온전하게 될 뿐 아니라, 왕성하고 풍요로운 장래를 누리게 되리라고 주장합니다. 회개하면 사방을 둘러보아도 걱정할 것이 없어, 안심하고 자리에 누울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욥이 누워서 쉬어도 욥을 깨워서 놀라게 할 사람이 없고, 많은 사람이 욥에게 잘 보이려고 할 것이라고 합니다. 회개하면 예전의 사회적 지위와 명성, 권위를 회복하여 많은 사람들이 다시 그를 따르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15절, 29:2-25).
그러나 소발의 말과는 달리 욥은 회개할 것이 없고, 계속 이어지는 고난과 질병으로 인해 소망이 끊겨졌다고 탄식할 정도로 심각한 고통에 처하게 됩니다(13:15, 14:17, 17:13, 15, 16, 19:10).
5. 욥은 회개치 않아 벌을 받는가
“그러나 악한 자들은 눈이 어두워서 도망할 곳을 찾지 못하리니 그들의 희망은 숨을 거두는 것이니라(20절).”
그러나 욥이 회개하지 않으면 도망할 곳을 찾지 못할 것이라고 합니다. 결국은 죽음이라고 합니다. 소발은 악인의 비참한 최후를 묘사함으로써, 욥에 대하여 회개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그는 앞에서(15-19절) 묘사된 회개한 자의 형통과 대조를 이루어 말합니다. 욥이 고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죄를 회개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고난 중에 하나님 앞에서 죄를 발견하고 회개해야 하는 것은 맞습니다. 죄를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 은총을 베풀어 주시는 것도 맞습니다. 모든 선지서의 주제가 회개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멸시치 않으십니다.
그러나 그것이 욥에게 적용되지는 않습니다. 욥은 죄인이지만 지금 질병과 죄는 관련이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를 회개하면 복이 온다고 하지만, 회개한다고 욥의 이 질병이 떠나는 것도 아닙니다.
욥이 크신 하나님의 뜻을 다 알 수 없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의 뜻이 죄를 징벌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의 고난은 하나님의 사랑에 기초한 것입니다.
지금 욥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욥은 지금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의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폭군처럼 생각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절대적 사랑을 확신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욥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하고 고난을 참고 견디도록 돕는 것입니다. 가장 좋으신 하나님을 가르쳐야 합니다.
결론: 회개가 좋지만, 사랑이 더욱 좋다
어떤 시련 가운데서도 좋으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사단이 노리는 것이 고난 중에 하나님의 사랑을 불신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욥에게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과 섭리를 가르쳐야 합니다.
로마서 5장에서처럼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는 사실을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이 외아들을 주시기까지 욥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게 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부활시키신 주님이 욥에게 영광을 주신다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욥이 하나님의 훈련을 잘 받고 참고 기다리면, 그가 변화되어 하나님이 귀하게 쓰실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과 소망을 가르쳐야합니다. 우리는 고난 중에 있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도록 도와야지, 회개하는 것만 도와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한다면, 혹시 죄가 있었을 때 스스로 자신의 죄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죄를 회개하는 것도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할 때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며 하는 회개가 진정한 회개입니다.
오요한 목사(천안 UBF, <오요한 목자의 로마서 강해>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