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강해설교집 <복음의 언어, 로마서> 펴낸 박광석 목사(下)
설교 준비, 성경 잘 파악하고 시대 꿰뚫어야 한다는 부담감
로마서 핵심, ‘왜 예수가 그리스도? 신자는 어떻게 살아야?’
설교 준비, 목적이 분명하면 방법이 자동적 생기게 돼 있어
근본적인 힘 본질에서 나와, 현대적 적응이 진짜 힘 아니다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믿으라. 그러면 벅찬 감격에 빠질 것이다. 바울이 경험했고, 수많은 믿음의 사람이 느꼈으며, 나 자신도 그 체험을 했다. … 우리도 의인이 될 수 있다. 하나님의 능력이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을 때 가능하다. 우리는 그리스도께 ‘하나님 나라의 대사’로 임명받은 의인이다.”
<복음의 언어, 로마서> 발간을 기념해 만난 일산벧엘교회 박광석 목사는 책에 이어 로마서와 바울, 목회와 독서, 설교와 설교 준비, 본질과 비본질, 최근 철학계의 ‘바울’ 논의 등 다방면의 논의를 펼쳤다. 다음은 전편에 이은 박광석 목사와의 인터뷰.
-목회와 설교에 있어, 초창기에 가장 힘들었던 부분과 30여년이 지난 지금 가장 힘든 부분이 다르신지요.
“초창기에도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제 말이 아니라, 성경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 결정적 포인트는 중간에서 어떻게 성경을 잘 이해시킬 것인가에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성경을 나름대로 봤지만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기 때문에, 성경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에 비중을 많이 뒀습니다.
저는 <성경 66권 공부>를 전도사·강도사 시절에 썼습니다. 책을 쓴 이유는 이런 책이 없었기 때문에, 저 자신이 성경을 잘 알기 위해 메모를 하면서부터였습니다. 그리고 제가 맡고 있던 중고등부 아이들이 제가 가졌던 성경에 대한 갈증을 느끼지 않도록, 성경 앞으로 잘 이끌고 싶었습니다. 아이들이 그런 부분에서 굉장히 좋아했고, 상당한 부흥도 경험했습니다. 그러니 저는 당연히 그 길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달라진 고민이 있다면, 과거에도 그랬지만 남의 설교를 참고할 수 없는 사람이 돼 버렸습니다. 제 설교가 시대적으로 성경을 잘 파악하고 꿰뚫어볼 수 있는 것이 돼야 한다는 부담감을 갖고 있습니다.”
-로마서의 핵심은 무엇인가요.
“우리가 믿는 그것입니다. ‘왜 예수가 그리스도인가?’ 다음 하나는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가장 간단하고 명료한 내용입니다.”
-제목이 <복음의 언어, 로마서>인데, 오늘날에는 왜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을까요.
“이 말씀을 드리면 누군가 저 혼자 독선적이고 잘났다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현대 목회자의 관심은 주로 변하는 세상에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이 변하고 다변화할수록, 우리는 진리를 붙들어야 하고, 그 진리가 우리에게 적용돼야 합니다.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진리와 떨어져선 안 됩니다.
이 시대 목사님들은 기독교가 전해져 와서 적응하는 이 모든 패턴이 마치 목회자의 생활처럼 생각하시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얼만큼 그리스도 앞에 충실하고, 그리스도를 성도들 마음 속에 잘 심어주고, 그들이 그리스도와 그의 말씀을 붙들고 살게 할 것인가? 이것이 본질이어야 합니다.
사실 방법은 따라하기 쉽지만, 본질은 따라하기가 어렵습니다. 그것이 가장 문제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본질을 묻지 않고, 방법을 묻습니다. 신학교에 가서도 ‘어떻게 하면 목회를, 설교를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방법을 배우려 하는데, 사실 그것은 거꾸로 된 것입니다.
방법을 알아야 문제가 해결된다기보다, 목적이 분명하면 방법이 자동적으로 생기게 돼 있습니다. 물론 그게 쉽지 않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그것을 믿지 못합니다. 목적을 붙들고 있다가 방법을 찾지 못하면 어쩌지 하고 불안한 것입니다.
목적을 분명히 붙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본질이 안 된다면, 비본질은 키우면 키울수록 오히려 본질을 훼손시킬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신학교에서도 설교를 ‘서론-본론-결론’ 식으로 가르치지 말라는 게 아닙니다. 그것을 가르치면서, ‘이것은 방법일 뿐, 이러한 방법으로 실제 핵심을 잘 전달해야 한다’는 걸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 본질이란 무엇인가요.
“목회의 본질은 설교이고, 설교의 본질은 성경입니다. 성경의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까? 한 걸음 나아가 성경을 이야기하고 있습니까? 내 말을 이야기하기 위해 성경을 인용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이야기하고 우리는 그것을 삶에 적용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항상 거꾸로 하고 있습니다.
항상 성도님들 마음 속에 ‘이렇게 가야 하는구나, 하나님께서 이것을 원하시는구나’가 새겨져야 합니다. ‘이렇게 해도 되네’는 본질적인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예수를 믿고 살았는데 이렇게 사니까 부자가 되었습니다’라고 한다면, 그것은 방법론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이 이렇게 살면서 예수님을 잘 믿었다. 잘 믿으니까 이렇게 됐다’고 잘 믿는 것이 중요하게 돼야 본질을 건드릴 수 있습니다.
또 예배 시간에 설교를 듣고 교회를 나갈 때 예화만 생각나고 성경이 생각나지 않는다면, 잘못된 것입니다. 목사님이 아무리 본질적 이야기를 했다 해도, 그렇게 들어서야 되겠습니까. 보편적으로 들었는데도 예화밖에 생각나지 않는다면, 문제가 있습니다.
설교를 예화로 짜깁기를 하니 예화만 생각이 나고, 목회자 자신이 예화에 목을 걸고 있기 때문에 예화가 강조가 되고 생각이 나는 것입니다. 결코 비난하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의 은혜가 얼마나 좋은지에 집중한다면, 어떤 예화를 들어도 주님 마음 속으로 가게 돼 있습니다. 그러나 1주일 내내 예화 생각만 한다면, 다른 모든 것, 심지어는 말씀 본문까지 양념이 되고 말 것입니다.”
-로마서의 저자 바울이 이 시대 대한민국 성도들에게 로마서 같은 편지를 보낸다면, 뭐라고 쓸까요.
“물론 제가 바울이 아니라서 이에 대해 말할 수 없습니다(웃음). 그러나 로마서나 바울이 쓴 서신을 여러 가지 놓고 봤을 때, 빌립보서나 골로새서, 갈라디아서 등은 지역성이나 그곳만의 의미가 들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로마서에는 ‘기독교가 무엇인가’ 하는 내용이 기록돼 있습니다. 왜 바울이 로마서에 심혈을 기울였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까요. 로마는 당시 제국의 수도였고, 로마는 인구의 30%가 자유인이고 70%가 노예였습니다. 그 70%마저 고급 노예였습니다. 이들에게 접근해서 예수를 전하면, 파급 효과가 로마 제국 전체에 미친다는 것을 염두에 뒀습니다.
또 하나는 로마 시민들은 고급 인력이고 상당한 지식인층이었습니다. 당시의 지식은 철저히 헬라 철학을 기초로 했습니다. 헬라 철학이라면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플라톤 철학이 중심인데, 바울은 이를 충분히 커버하고 능가할 수 있는 메시지를 쓰고자 했습니다. 그러니까 칼빈이 로마서를 보고 기독교 강요를 쓴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다시 쓴다 해도, 그 본질 자체는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분명히 그대로 쓸 것입니다. 단지 달라지는 것은 이해를 돕기 위해 이 시대적 상황의 옷을 조금 입혀서 ‘엣지’를 넣는 정도 아닐까요.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때문에 오늘날도 로마서가 우리의 필독서로 불리는 것입니다.
참 안타까운 것이 로마서도 그렇고 대·소요리문답 같은 것들은 매우 중요합니다. 목회자들이 알고 붙잡아서 현대적으로 풀어내면 상당한 파워가 있을텐데, 요즘 목사님들에겐 구미가 안 당기나 봅니다. 구미가 없는 이유는 케케묵은 사람이 될 거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요즘 철학계에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많이 거론된다고 합니다. 세상 사람들도 ‘사상의 뿌리로 가야 한다’는 걸 아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더더욱 ‘진리의 뿌리’를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뿌리보다 가지나 잎사귀에 관심을 둔다는 것은 지적받아야 할 문제 아닐까요?”
-20세기 중반 이후 철학계에서도 바울과 그의 저작들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일반 철학계나 세속에서는 바울에 대해 ‘기독교를 만든 사람’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런 시각으로 바울을 조명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기독교는 예수가 아니고 바울이 만들었다’고 봅니다. 제자들이 복음서를 썼다지만 예수님은 글을 하나도 남기지 않았고, 오늘날 기독교를 이방에 전하고 글을 남긴 사람이 바울이라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그리스도교가 아니고 바울교’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책을 안 썼다고 해서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지요. 바울은 예수가 그리스도이기 때문에 그를 믿는다는 내용을 쓴 것 아닙니까? 어중간한 지식과 철학적 시각으로 접근하다 보니 그런 표현이 나온 것입니다. 사실 목사님들이 그런 책들도 봐야 하는데, 보지 않으니 어떻게 답을 해야 할지 알지 못합니다.
시대는 변해도,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본성을 떠난 모든 과학과 기술은 무의미합니다. 기술의 기술일 뿐입니다. 기술은 항상 발전하면 원래 자리로 돌아와, 이것이 적용되는가 연결되는가를 다시 보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아이패드가 있는데 이런 기능이 안 되니 새로운 것이 나오고. 또 둘 간의 차이가 생겨서 문제가 되는 식입니다.
근본적인 힘은 본질에서 나옵니다. 현대적으로 잘 적응되는 것이 진짜 힘은 아닙니다.”
-목회자 아닌 일반 그리스도인들에게 추천할 만한, 로마서 입문 서적이 있을까요.
“먼저 성경을 직접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두 번째는 우리 교회에 와서 설교를 들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쓴 이 책도 참고서이고, 저는 해설을 했을 뿐입니다. 성경 자체를 봐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와서 들으라는 말씀은, 설교를 들으면서 ‘성경을 저렇게 접근하는구나’를 느끼면 조금 더 관심이 깊어지고 성경을 읽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입니다.
가끔 그런 말씀을 드립니다. 제 설교로 포만감을 느끼고 성경을 읽지 않으면 잘못이라고 말입니다. 저는 성도님들이 성경을 직접 보시라고 설교하는 것입니다.
물론 참고할 만한 책들은 정말 많습니다. 훌륭한 책들도 많습니다. 루터가 쓴 것, 칼 바르트가 쓴 것, 칼빈이 쓴 기독교 강요도 있고, 너무 많아서 어느 하나를 추천하기는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