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진의 기호와 해석] 광복 직후 ‘빨갱이’ 용법
“일제는 독립군을 ‘비적’으로, 독립운동가를 ‘사상범’으로 몰아 탄압했습니다. 여기서 ‘빨갱이’라는 말도 생겨났습니다.
사상범과 빨갱이는 진짜 공산주의자에게만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민족주의자에서 아나키스트까지 모든 독립운동가를 낙인찍는 말이었습니다.
좌우의 적대, 이념의 낙인은 일제가 민족의 사이를 갈라놓기 위해 사용한 수단이었습니다. 해방 후에도 친일청산을 가로막는 도구가 됐습니다.
양민학살과 간첩조작, 학생들의 민주화운동에도 국민을 적으로 모는 낙인으로 사용됐습니다. 해방된 조국에서 일제경찰 출신이 독립운동가를 빨갱이로 몰아 고문하기도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빨갱이’로 규정되어 희생되었고 가족과 유족들은 사회적 낙인 속에서 불행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지금도 우리 사회에서 정치적 경쟁 세력을 비방하고 공격하는 도구로 ‘빨갱이’란 말이 사용되고 있고, 변형된 ‘색깔론’이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루 빨리 청산해야 할 대표적인 친일잔재입니다. …“
문재인 대통령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3·1절 100주년 기념식 연설에서 위 발언처럼 “빨갱이”라는 호칭이 정치적 경쟁 세력을 비방하고 공격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면서, “하루 빨리 청산해야 할 대표적인 친일 잔재”라고 밝힌 바 있다.
빨갱이는 우리가 익히 아는 대로 사전적 의미로는 ‘공산주의(자)를 속되게 이르는 표현’이며, 파르티에서 유래한 파르티잔이 라는 프랑스 어휘가 ‘빨치산’으로 변형되다가 최종적으로 빨갱이가 됐다는 보고도 있다.
그러나 보다 실용적인 용례는 그 시대에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살피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다음은 광복 직후에 사용된 ‘빨갱이’ 용법의 대표적인 예시이다.
“… 요즘 유행하는 말 중에 ‘빨갱이’란 말이 유행이다. 이는 공산당을 말하는 것인데 수박같이 겉은 퍼렇고 속이 빨간 놈이 있고 수밀도 모양으로 겉도 희고 속도 흰데 씨만 빨간 놈이 있고 토마토나 고추 모양으로 안팎이 다 빨간 놈도 있다.
어느 것이 진짜 빨간 놈인지는 몰라도 토마토나 고추 같은 빨갱이는 소아병자일 것이요. 수박같이 거죽은 퍼렇고 속이 붉은 것은 기회주의자일 것이요. 진짜 빨갱이는 수밀도같이 겉과 속이 다 희어도 속 알맹이가 빨간 자일 것이다.
중간파나 자유주의자까지도 극우가 아니면 ‘빨갱이’라 규정짓는 그 자들이 빨갱이 아닌 빨갱이인 것이다. 이 자들이 민족분열을 시키는 건국 범죄자인 것이다. …”
위 본문은 광복 직후 창간한 <독립신보>라는 2면짜리 타블로이드판 1947년대 가을호 지면의 일부이다.
이 내용에 따르면 극우가 아니면 빨갱이라 부른다 하여 지금처럼 격정을 토로한다.
하지만 실상은 이 매체가 당시 대중에게 극렬 좌익지로 인식되었던 매체임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이다.
이 신문의 논조는 시종일관 극좌익만의 입장을 대변하면서 신탁통치안을 적극 지지하고, 당시의 일반적 표기였던 ‘제주도 폭동’을 벌써부터 ‘제주도의 궐기’로 표기하여 긍정적 의미로 선호했는가 하면, 특히 남한만의 단독선거안에 대하여 극렬히 반대하였다.
따라서 이 신문의 논조에 준거하면 ‘빨갱이’란 전통적으로 극좌익 노선 층에서 듣기에 불편한 용어였던 셈이기에, ‘빨갱이’가 “하루빨리 청산해야 할 대표적인 친일 잔재”라고 언급된 3·1절 100주년사 속 해당 문맥이 적절한지 유의할 필요가 있다.
광복 직후인 1946년에 장순각(張洵覺), 고경흠(高景欽), 서광재(徐光齋) 등에 의해 창간된 이 극좌익 매체는 1948년에 휴간 또는 종간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