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남식 목사 ‘대학과 세계 선교를 향한 권서행전’ 펴내
3년 동안 한 사람 얻기 위해 기도하면서 캠퍼스 누벼
최초 동구권 선교, 문 열리기도 전 러시아 선교 꿈꿔
사진 중심 비슷비슷한 교회사 편찬에 새로운 길 열어
다음 세대가 캠퍼스 사역과 세계선교 계속 이뤄가길
대학선교와 세계선교를 향한 권서행전
우남식 | 지식과감성 | 911쪽 | 45,000원
그 시대 한국 사회 역사와 선교 역사가 오롯이 담긴 교회 35년사가 편찬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1982-2017 대학선교와 세계선교를 향한 권서행전’이 그것이다.
이 책은 ‘대학선교와 세계선교에 불태운 젊은이들의 선교 기록’이라는 부제 아래, ‘오직 성경으로, One Man Vision으로 대학 선교와 세계 선교를 꿈꿨던’ 인천 대학마을교회와 우남식 목사 부부의 흔적이 900쪽 넘는 분량에 담겨 있다.
우남식 목사는 편찬사에서 “하나님께서 35년 동안 이루신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다음세대가 하나님이 이루신 역사를 잊지 않고 기억하여 제2, 제3의 캠퍼스 사역과 세계선교 역사를 계속 이뤄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35년사를 집필했다”고 밝혔다.
특히 우 목사는 대학교 1학년 때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구주로 만난 후 같은 처지의 대학생들을 구원하기 위해 캠퍼스선교에 뛰어들었고, 그들과의 성경공부를 통해 길러낸 제자들을 세계 열방으로 파송하는 일에 평생을 바쳤다. 그는 “하나님은 20대의 젊은이들에게 복음을 심으시고 그들의 전 삶을 통해 놀라운 일들을 행하고 계신다”고 했다.
이 책은 한 교회의 사례를 통해 지난 35년간 한국교회 캠퍼스와 세계 선교 역사를 돌아볼 수 있는 귀한 사료이다. 단편 사실과 사진 나열로 이뤄진 ‘OO교회 OO년사’ 류(流)들이 대부분인 가운데, 새로운 길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대학마을교회는 우 목사의 비전과 함께 움직였다. “하나님은 20대에 성경 말씀으로 찾아오셔서 구원하시고 대학생 복음 역사에 부르셨습니다. 30대에는 인하대를 중심으로 예수님의 제자들을 양성하게 하셨고, 40대에 한국교회사에 기록될 동유럽 첫 선교사 파송과 수교도 안 된 러시아에 첫 선교사를 파송하게 하셨습니다. 50대에 교수로 티칭(teaching), 60대에 집필로 라이팅(writing)을 하게 하셨습니다.”
그의 비전대로 교회가 설립된 1982년부터 1988년까지는 인천을 중심으로 한 대학선교와 제자 양성을, 올림픽을 기점으로 1989년부터는 동유럽 첫 선교사 파송과 센터 건축을, 월드컵이 있었던 2002년부터는 이웃을 섬기는 지역교회 설립과 지경을 넓힌 세계선교를, 2011년부터는 사회문화를 섬기는 문서선교를 주로 다루고 있다.
그러한 가운데 1980년대 최루탄 연기 자욱했던 민주화 운동과 냉전 시대 종식 이후 소련(러시아)을 비롯한 동구권 선교 등 사회 변화와 결코 무관하지 않았던 교회의 세계와 지역 선교 이야기들이 펼쳐지고 있다. 1988년 아직 수교도 이뤄지지 않은 소련 선교사 파송을 꿈꾸며 사도행전 19장 21절 말씀을 토대로 “후에 모스크바도 보아야 하리라”고 선포한 곳은 압권이다.
책에서는 성경 말씀과 그 해의 이야기에 이어 ‘세계선교’와 ‘성서한국’으로 나눠 각 연도의 사역을 설명하고 있다. 특히 35년간의 사역을 소개한 1-4부에 이어, 5부에서는 세계 각지 선교사들의 각종 선교보고와 기록을 수록했다.
우남식 목사는 “대학마을교회 35년 역사를 돌아보니, 매년 한 사람 한 사람과 일대일 성경공부, 성경공부를 통한 제자양성의 반복된 역사였다. 이는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굳게 닫힌 여리고성을 도는 것과 같았다”며 “그러나 성경 말씀은 힘이 있어 잠든 젊은이들을 일깨웠다”고 회고했다.
그는 35년사를 기록하며 세 가지 때문에 눈물 흘렸다고 한다. “하나는 나와 같은 사람을 구원하시고 지성인 복음 역사에 쓰신 하나님의 한량없는 은혜와 사랑에, 다른 하나는 부족한 나와 함께 동역하며 복음 역사에 동참한 많은 믿음의 사람들로 인해 감사의 눈물을 흘렸고, 또 다른 하나는 매년 수양회를 여덟 번 이상 할 만큼 열심히 했지만 저의 미성숙으로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많은 사람을 잘 품고 섬기지 못한 참회의 눈물이었습니다.”
대학마을교회 ‘권서행전’이 사료로서 가치가 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우 목사가 추가로 6가지의 아쉬운 점을 고백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노하우’는 후배들인 대학생(캠퍼스) 선교단체 사역자들이나 청년 중심 교회 목회자들이 새겨들을 만하다.
먼저 대학생 중심 사역의 특수성만 강조하다 보편성이 결여됐다는 것이다. “보편성 없는 특수성은 독단에 빠지기 쉽고, 특수성 없는 보편성은 자기 색깔이 없게 됩니다. 보편성 속에 특수성이 세워져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유연함이 없었습니다.”
둘째로 대학생 중심 사역을 하다 보니 전 생애를 주기로 목회하지 못한 것이다. 이는 대학생 중심 교회 사역의 약점이기도 하다. “각기 발달단계에 맞게 성경 말씀으로 도와 예수님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해야 하는데 많이 부족했습니다. 이제 교회는 담임목사 중심 사역에서 발달 단계별 전문 목회자들과 팀워크를 이루는 입체적 목회를 해야 하고, 이를 위해 발달 단계별 목회자 양성이 필요합니다.”
셋째로 인위적 훈련이 없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시 ‘제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문화와 군사문화의 영향으로, 상처받은 형제자매들이 많았습니다. 훈련은 좋은 것이지만, 성경 말씀을 통한 성령의 감화로 자발적 순종을 이끌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점이 있었습니다.”
넷째는 일본 우치무라 간조의 영향을 받아, 교회와 교회 조직을 간과했다는 점이다. “UBF에 와서 신앙을 가졌기에 교회에 대해 무지했습니다. 교회의 본질은 예배와 성례전, 성경공부, 기도와 전도와 교제입니다. 개척 초기에 평신도 사역자로 열심히 성경을 공부하고 연구하고 복음을 전했지만, 예배와 성례전을 중히 여기지 않았기에 신앙생활에 경(輕)한 경향이 있었습니다.”
다섯째, 행복지향적 목회보다 성공지향적 목회를 했다고 한다. “일대일 팀 수와 주일예배와 선교사 파송 숫자, 교회를 짓는 외형적인 것이 목회의 성공으로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슬픈 자화상입니다.”
마지막 여섯째는 제자들을 한 카테고리(선교단체)에 묶어두고자 하는 편협한 마음이었다. “이로 인해 사람을 넓게 키우지 못했습니다. 이제 대학복음 사역을 하는 미래 지도자들은 주님 안에서 성숙한 믿음의 사람이 되어 나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이만열 박사(전 국사편찬위원장)는 “한국은 예수 그리스도교를 이 땅에 전파한 많은 선교사들의 헌신으로 교회 성장이 이뤄졌고, 또 그동안 많은 선교사들이 해외로 나가 사역하고 있지만 그 기록들을 제대로 수집·보관하지 못했고 그들의 자료를 완벽하게 모아놓은 곳이 없다”며 “이런 상황에서 우 목사님 내외분이 그동안 세계를 향해 감당한 선교사역의 기록들을 정리하고 남겼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이 박사는 “아직도 한국에서는 이 나라를 거쳐간 많은 선교사들의 자료를 완벽하게 모아놓은 곳이 없다. ‘선교사 연구소’가 제대로 없다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며 “대형교회가 많고 선교사들을 많이 파송했다고 자랑하지만, 그들의 아름다운 ‘권서행전적 자료’들을 모아놓은 곳이 별로 없는 것”이라고 했다.
우남식 목사는 “3년 동안 한 사람을 얻기 위해 날마다 기도하면서 캠퍼스를 누비며 복음을 전하고 기도하던 우리에게 하나님은 몇몇 제자들을 세워주시고, 그들이 또 다른 충성스러운 일꾼들을 키우게 하셨다”며 “이 역사가 35년이 흘러 오늘에 이르렀다”고 고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