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 돌이키고 후회하는 하나님? 오류 아니라 ‘사랑’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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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찬북뉴스 서평] 사람들의 죄로 아파하시는 하나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김지찬 | 생명의말씀사 | 600쪽 | 37,000원

들어가면서

제2성전 문헌 중 하나인 에녹서를 보면 ‘거인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타락한 천사들이 사람의 딸들과 관계하여 거인들이 탄생한다는 이야기다. 창세기 6장을 근거하여 묵시적 상상력을 동원해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천사들은 헤르몬 산에서 회집하여 동맹을 결성하고 지상 세계에 내려온다. 그들은 인간의 딸들과 결혼하여 거인을 낳고, 인간들에게 의료 지식과 저주를 가르친다. 그 외에도 많은 지식을 전수해 주어 인간 문명이 발달하는 토대를 제공한다.

여인들이 낳은 거인들은 땅의 모든 열매를 먹어치우므로 더 이상 그들을 키울 수 없게 되고, 거인들은 사람들을 잡아먹고 포악한 행동을 하기에 이른다. 결국 세상은 다시 심판 아래 놓이게 된다.

경건한 신자라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신화적 이야기인데도, ‘노아의 홍수’와 관련된 고대의 이야기는 유대문헌 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영화로도 몇 번에 걸쳐 제작된 ‘노아의 홍수’ 이야기는 현대를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이번에 출간된 김지찬 교수의 이 책은 그 이전 ‘노아의 홍수’ 이야기와는 완전히 다르다. 저자는 그 이유를 화란 유학 때부터 가졌던 ‘언약 신학(Covenant Theology)’과 현대 신학계가 관심을 갖고 살피는 ‘시초론(protology; 창 1-11장)’ 때문이라고 밝힌다.

시초론은 고대의 사건을 살펴봄으로 궁극적으로 종말에 대한 이해를 얻으려는 것이다. 종말은 다시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삶의 지표를 잡아주기 때문에 중요한 신학적 주제가 된다.

나아가 노아의 홍수를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과 노아에 대한 바른 이해를 추구하고자 저술한다고 밝힌다. 신약의 저술가들은 예수님의 입을 통해 ‘노아의 때’가 이미 도래했으며, 종말론적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미 심판의 선고된 종말의 시기에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 축복과 저주의 갈림길 사이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이름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노아의 내러티브를 읽어 가면서 생길 수 있는 질문을 22개로 만들었고, 그에 대해 답변하는 방식으로 서술해 나간다. 필자는 모든 질문과 답을 정리하지 않고, 몇 가지 중요한 이슈를 정리하고 평가하려 한다.

하나님은 후회할 수 있는가?

아마 노아 홍수 사건을 시작하면서 가장 이해하기 힘들었던 부분은 하나님이 후회하시는 장면일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에 대한 이야기는 신화적 이야기라면 넘어갈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 후회하신다는 이야기는 심각한 신학적 난제가 아닐 수 없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만드시고 죄를 범하니 후회하신다는 것은 이해하기 쉽지 않다. 저자는 두 번째 질문으로 이 문제와 직면한다.

먼저 하나님이 진노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한다. 하나님의 진노를 표현하는 ‘아프’와 ‘헤마’라는 동사가 노아 내러티브 안에서 나오지 않으며, 진노하셨다는 개념도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죄지은 인간들에 대해 아무런 감정도 품지 않으셨을까?

저자는 진노가 아니라 ‘후회’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인간들의 악을 보시고 한탄(나함)하시고, 마음에 근심하신다. 한글 개역판은 ‘한탄’을 ‘후회하셨다’고 바꾸어 번역했다.

존 월튼이 고민한 것처럼, 하나님의 한탄(후회)는 심판을 가져온다는 측면에서 난제이다. 이것은 단순히 ‘신인동형론적’ 표현일 뿐일까?

저자는 이것을 넘어서야 한다고 말한다. 한탄을 뜻하는 ‘나함’을 살피면서, 그 단어가 하나님께서 마음을 바꾼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런데, 그것 역시 난제다. 하나님의 뜻이 바뀐다는 것은 섭리와 작정 등의 모든 신의 속성 자체에 심각한 오류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무엘상 15장 29절에서 하나님은 변개(나함)치 않는다고 선언하고 있지 않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세기 기자는 왜 하나님께서 마음을 바꾸셨다고 말하는가?

하나님의 작정은 변하지 않으나, 섭리는 바뀔 수 있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죄를 지을 때 돌아오기를 기다리신다.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오면 하나님은 뜻을 돌이켜(나함) 그들을 용서하신다. 저자는 그 근거로 요엘서 2장 13-14절과 요나서 3장 9-10절을 제시한다.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시고(나함)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가 멸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그렇지 않을 줄을 누가 알겠느냐 한지라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나함)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욘 3:9-10)”.

하나님은 요나에게 사십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멸망당할 것이라고 선포하라고 하신다. 그런데 느니웨 백성들은 혹시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내릴 심판을 바꾸실(나함)지 모른다며 회개한다. 하나님은 그들의 회개를 보시고 뜻을 돌이키신다(나함).

4장으로 넘어가면 요나는 이러한 하나님을 향하여 분노하며 실망한다. 뜻을 돌이키시는 하나님을 알기 때문에 다시스로 도망가려 했다고 토로한다.

하나님의 작정은 변하지 않으나, 섭리에서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한탄이나 후회보다는 중립적으로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셨다(82쪽)’고 번역하는 것을 추천한다.

저자는 여기는 끝내지 않고 좀 더 깊이 하나님의 돌이킴을 탐색한다. 비록 하나님께서 중립적으로 뜻을 바꾸셨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한탄이나 후회를 제거할 필요는 없다고 단언한다.

나함이란 단어가 ‘정서적인 고통이나 약함을 경험한다’란 의미를 갖는다고 주장한다(83쪽). 하나님은 인간의 죄를 보시고, 진노하시기 전에 아파하시고, 근심하신다.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죄악과 인간의 사악한 생각에 대해 마음에 고통을 느끼고 근심하는 분(85쪽)’이시다.

하나님의 아픔은 ‘골고다의 길’에서 절정을 이룬다. 저자는 ‘노아의 홍수’에서 ‘갈보리 산상에서 절정에 달했던 하나님의 고난의 시작(86쪽)’을 본다는 헬무트 틸리케의 묵상을 끌고 온다.

그렇다. 하나님의 고통은 십자가의 사랑으로 치환된다. 기타모리 가조는 하나님의 아픔에 대해 이렇게 역설한다.

“하나님의 아픔 속에 들어갈 때, 우리 자신은 자기 죄의 참모습에 대해 각성하고, 자기를 미워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이때 하나님 자신은 이러한 우리를 진실하게 한결같이 사랑하고 계신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의 아픔의 영역도 꿰뚫고 하나님의 아픔도 잊어버릴 정도의 한결같은 사랑이다(기타모리 가조 <하나님의 아픔의 신학> 새물결플러스, 150쪽).”

뜻을 돌이키신 하나님은 오류가 아니라 ‘사랑’이며, 변덕이 아니라 ‘긍휼’이다. 노아 홍수 이야기를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하나님은 ‘언제나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애가 크신 하나님(79쪽)’이시다.

어쩌면 하나님의 한탄은, 인간을 사랑하시지만 그들의 죄로 인해 아파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우리를 초대하는 초대장일 수 있다.

▲실물 크기의 &lsquo;노아의 방주&rsquo; 테마 파크 전경  ⓒ앤서스인제네시스

▲실물 크기의 ‘노아의 방주’ 테마 파크 전경 ⓒ앤서스인제네시스

노아 홍수의 정경학적 의의

한 가지 주제를 더 살펴보자. 저자는 8장에서 ‘노아의 홍수가 지역적인가, 전 지구적인가’를 다룬다. 그러나 제목과 다르게, 이곳에서는 노아의 홍수가 갖는 신학적 의미를 다룬다.

창조과학에 한 발자국이라도 디뎌본 사람이라면, 아니 창조과학에 조금이라도 관심있는 이들을 가까이 둔 사람이라면 ‘노아의 홍수’ 사건이 얼마나 큰 논쟁의 핵심에 자리하고 있는지 알 것이다.

젊은 지구론을 비롯해 화석, 지층의 연대 등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들을 들먹이며, ‘노아의 홍수’ 사건이 역사적 사건인 것과 전지구적이었다고 주장한다. 캐럴 힐 등이 공저한 <그랜드캐니언, 오래된 지구의 기념비(새물결플러스)>에서는 많은 사진과 함께 지질학적 관점에서 노아의 홍수를 추론한다.

그런데 그렇게 성경을 읽는 것이 옳을까? 성경은 과학이 아니라고 하면서, 왜 유독 과학적 관점으로 노아의 홍수를 바라보는 것일까? 저자는 이러한 관점에서 벗어나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맥락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아의 홍수 사건에 대해 저자는 “우주적인 혼돈의 물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창조 질서의 해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우주적 홍수를 선포하는 담교적 담론(253쪽)” 안에 들어 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과학이니 비과학이 하는 성경 외의 관점이 아니라, 성경이 말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성경의 언어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노아의 홍수’는 일반적인 비가 아니라, 특별한 비(게솀)가 내린다. 비만 내린 것이 아니라 깊음(테홈)의 샘이 터지고, 하늘의 창문이 열렸다.

깊음(테홈)이란 단어는 창세기 1:2에 기록된 깊음과 동일한 단어다. 이 단어는 ‘창조 시에 땅을 덮고 있었던 원시의 바다 혹은 태고의 혼돈의 물(255쪽)’을 가리킨다는 것이 학자들의 정설이다.

궁창을 만드시고 위의 물과 아래의 물로 나뉜 창조가 다시 하나로 합해지는 사건이 바로 ‘노아의 홍수’인 것이다.

인간의 죄악들이 하나님의 ‘창조 시계’를 거꾸로 되돌려 놓은 것이다. 창조가 무질서에서 질서로, 공허에서 충만으로 나아갔다면, ‘노아의 홍수’는 정확하게 그 반대로 역행한 것이다.

저자는 이것을 ‘정확하게 창조의 순서로 창조를 해체하시는 하나님의 무서운 손길(263쪽)’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인간의 죄로 인해 아파하실 뿐 아니라, 피조된 세계를 기꺼이 해체할 수 있다고 선언하고 계신다.

역으로 생각해 보자. 그렇다면 하나님은 오직 인간을 위해 세상을 창조하셨고, 창조의 영광으로 여기고 계심이 분명하다. 또한 하나님의 심판은 언제든지 임할 수 있다는 경각심을 일깨운다.

노아의 홍수가 전환점을 맞이하는 부분은 창세기 8장 1절에 기록된 ‘하나님의 기억’이다. 하나님께서 노아를 기억하심으로 불어났던 물은 줄어들기 시작하고 마침내 방주는 땅에 바닥을 내린다. 구원은 하나님의 기억을 통해 시작된다.

출애굽기에서도 하나님은 족장들과 맺은 언약을 ‘기억(출 2:15)’하심으로 구원을 시작하신다. 하나님께서 기억하시자 태초에 불었던 바람(루하흐)이 다시 불기 시작한다(창 8:1하).

지나간 세상을 심판하셨지만 방주에 있는 노아의 가족과 동물들을 기억하심으로 ‘혼돈으로 돌아간 세상을 다시 새롭게 재창조(289쪽)’하신 것이다.

나가면서

이기주 작가의 <언어의 온도>가 출판되기 20년도 더 오래 전에, 김지찬의 <언어의 직공이 되라>가 출판되었다.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의 감격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수년 후에 필자는 그 주인공 밑에서 구약을 공부했고, 성경을 읽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씩 배워 나갔다.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었다면, 구약신학을 전공했을 것이다. 히브리어가 갖는 독특성과 신비로움 때문이다. 헬라어가 과학적이고 치밀하다면, 히브리어는 서정적이며 묵시적이다.

이 책은 다시 한 번 언어의 직공이 무엇인지, 왜 언어의 직공이 되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신화적 상상으로만 치부했던 ‘노아의 홍수’는 우리가 알고 있던 기존의 지식을 초월해, 하나님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긍휼과 아파하심을 읽게 도와준다.

삶의 맥락을 통해 하나님의 일하심이 현재를 살아가는 신자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정확하게 짚어 준다.

몇 달 전에 출간된 <룻기, 어떻게 읽을 것인가>의 감격이 아직 가시지 않았는데, 그보다 더 깊고 웅장한 노아 홍수의 이야기로 초대되어 기쁘다. ‘노아의 홍수’ 이야기를 깊게, 그리고 즐겁게 읽고 싶다면 이 책을 강력 추천한다.

정현욱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인, 에레츠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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