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부터 <봉오동 전투>까지, 반일 영화 ‘전성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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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 한국의 ‘반일 영화’ (上)

▲오는 8월, 광복절을 전후해 개봉이 예정된 반일 영화, &lt;봉오동 전투&gt;.
▲오는 8월, 광복절을 전후해 개봉이 예정된 반일 영화, <봉오동 전투>.

이번 박욱주 박사님의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에서는 최근 매년 제작되고 있는 반일 또는 항일 영화들을 유해진(황해철), 류준열(이장하), 조우진 등의 출연으로 오는 8월 개봉 예정인 원신연 감독의 영화 <봉오동 전투>를 중심으로 살펴봅니다. 반일 영화들은 올해 <자전차왕 엄복동>과 <항거: 유관순 이야기>, 2017년 <군함도>, 2016년 <밀정>, 2015년 <암살>, 2014년 <명량> 등 계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편집자 주

◈반일 정서와 대중문화: 반일 정서와 친중 성향의 결합

2014년 7월, 임진왜란을 다룬 영화 <명량>이 국내에서 역대 최다 관객수를 기록한 이후, 해마다 광복절이 가까운 시기가 되면 마치 연례행사처럼 반일 정서에 편승하는 영화들이 출품되고 있다.

2015년 <암살>, 2016년 <밀정>, 2017년 <군함도>가 각각 개봉했고, 2018년에는 <군함도>의 저조한 흥행성적 때문에 반일 영화 출품이 잠시 주춤하는 듯 하더니 올해 3∙1절을 전후해 다시금 <자전차왕 엄복동>이나 <항거: 유관순 이야기> 등 일제강점기의 비극을 부각하는 영화들이 연이어 개봉하기 시작했다.

같은 맥락에서 올해 8월에는 <봉오동 전투>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봉오동 전투는 1920년 중국 길림성에서 벌어진 전투로, 한국 독립운동 역사상 독립군이 일제 정규군을 상대로 최초로 승리를 거둔 기념비적 사건이다.

이처럼 임진왜란이나 일제강점기 반일 독립운동을 그린 작품들이 2010년대 중후반에 이르러 흥행에 성공하며 한국 영화계의 한 조류를 형성하고 있지만, 이는 특별히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한국 영화 및 방송계에서 반일 정서를 독려하는 영화나 드라마는 말 그대로 ‘끊임없이’ 제작되어 왔고, 또 대부분 큰 인기를 얻어왔던 것이 사실이다.

2000년대에는 영화에서 (2002), 드라마 편으로 <명성황후>(2001-2002) 등이 많은 사랑을 받았다. 1990년대에는 한국 영화계의 거장 임권택 감독의 <장군의 아들>(1990) 시리즈가 반일 정서를 대변하는 영화로 흥행에 성공했고, 방송으로는 김성종 작가의 소설을 기반으로 제작된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가 큰 신드롬을 일으켰다.

1970년대에는 당대 최고의 스타 이대근이 주연한 <협객 김두한>(1975)과 <시라소니>(1979) 등이 반일 정서를 반영하는 영화로 대중에게 사랑을 받았다.

다만 최근의 반일 영화들은 기존 작품들과 달리 친중 성향을 강하게 내보인다는 점이 큰 차이로 부각된다.

기존 반일 독립운동을 그린 영화들이 주로 국내에서 벌어진 사건들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었다면, 최근 개봉되는 반일 영화들, 대표적으로 <암살>, <밀정>, 그리고 <봉오동 전투> 등에서는 독립운동의 주요 거점이 상해, 만주, 간도, 길림 등 중국 편으로 확연하게 이동해 있는 모습이다.

물론 실제 역사에서 항일 독립운동이 중국이나 만주국, 혹은 연해주 등지에 거점을 두고 이뤄졌던 것은 사실이다. 이 지역들은 당시 조선반도 본토에 비해 일제의 정치적-군사적 영향력이 약하게 미치는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반일 영화들은 의열단, 대한민국 임시정부, 혹은 신흥무관학교 등이 자리잡았던 중국 각지의 풍경을 마치 오래된 유럽의 도시를 보는 듯 복고적인 느낌으로 미화하는 가운데, ‘독립 정신=반일 정서=친중 정서’라는 공식을 은연중에 관객들의 마음에 각인시키는 듯하다.

▲영화 &lt;암살&gt; 속 중국의 이미지(상해 프랑스 조차지). 유럽식의 안티크한 분위기가 돋보이는 세련된 이미지로 포장되어 있다.

▲영화 <암살> 속 중국의 이미지(상해 프랑스 조차지). 유럽식의 안티크한 분위기가 돋보이는 세련된 이미지로 포장되어 있다.

◈반일 정서와 과거: 복고적 역사관과 진취적 역사관

이런 반일 영화들은 비극의 역사를 되짚어보고, 과거의 과오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교훈을 준다는 점에서는 상당한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국내의 반일 영화들은 다분하다 못해 거의 노골적으로 정치적 프로파간다를 목적으로 기획∙연출되고 있는 감이 없지 않다.

어느 나라든 실제 역사를 다루는 영화들, 특히 침략과 약탈, 전쟁의 역사를 그리는 영화들은 자민족 중심주의나 애국주의적 색채를 강하게 덧입기 마련인데, 그 가운데 유독 중국과 한국 영화들은 객관성이나 고증을 상당부분 무시한 채 지극히 단편적인 ‘적대감’과 ‘원망’에 호소하는 방식으로 역사를 그려내는 성향이 강하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터인데, 무엇보다 중국과 한국 집권층이 전통적으로 정치적 논란들을 덮고자 할 때 반일 감정을 부추기는 전략을 택해온 게 가장 큰 원인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기존 우파 계열 집권층이 주로 반공 감정을 부추기는 방식으로 정치적 난관들을 돌파했다면, 현재 좌파 계열 집권층은 그 적대감의 방향을 일본으로 돌리고 있으며, 이 점에서 현재 중국-북한-한국 집권층의 이해관계가 일치한다.

최근 반일 영화에 중국이라는 시공간적 배경이 제법 안티크한 방식으로 미화되어 표현되는 이유도, 이런 이해관계의 일치가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론해볼 수 있다.

여기에 원인을 한 가지 더 지목해 보자면, 동아시아 및 동남아시아 전역에 걸쳐 확인되는 역사 개념의 복고성, 과거지향성을 들 수 있다.

기독교 문화권이 아닌 지역 대부분, 특히 유교, 도교, 불교 사상으로 대변되는 동아시아 및 동남아시아 문화권 국가들 대부분은 역사를 시간적으로 ‘과거’에 고정시키는 모습을 보인다.

▲영화 &lt;밀정&gt;의 한 장면. 한국의 반일 영화 대부분은 과거 그 시점의 울분과 원망을 그대로 되살려 관객들을 그런 과거의 감정에 몰아넣는 데 주력한다. 매국노 일제경찰 간부로 독립운동가 검거현장을 지휘하는 이정출.
▲영화 <밀정>의 한 장면. 한국의 반일 영화 대부분은 과거 그 시점의 울분과 원망을 그대로 되살려 관객들을 그런 과거의 감정에 몰아넣는 데 주력한다. 매국노 일제경찰 간부로 독립운동가 검거현장을 지휘하는 이정출.

유교 사상은 상고 시대에 속하는 요순 시대의 정치적-문화적 상황을 그리워하는 윤리관을 가진 만큼, 당연히 복고적인 시간관념을 갖는다. 도교는 무위자연의 도를 통해 육체와 정신의 영속성을 보존하려 하는 믿음을 갖기에 시간의 경과를 극복하려 하며, 이로 말미암아 미래보다는 과거와 현재의 시간 속 현존을 훨씬 중시하는 모습을 보인다.

불교는 시간에 귀속된 이 세계를 참 실재가 아닌 허상으로 보려는 사고 때문에, 시간의 경과와 발전이라는 개념 자체를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이렇게 각각의 사상적인 이유 때문에 동아시아 및 동남아시아에서 역사란 과거를 되돌아보고, 과거의 지혜와 경험과 감정을 되짚어 끄집어내는 것으로 정의되기 마련이다.

현 상황을 판단하고 미래를 앞질러 보고자 한다면 반드시 과거를 되짚어야 한다는 사고는, 달리 말하면 항상 과거로 복귀하는 것이 가장 지혜롭고 이상적인 문제 해결 방법이라는 말과 다를 바가 없다.

물론 우리가 역사에서 지혜를 얻기 위해 반드시 과거를 되짚어봐야 하는 것은 불문가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이 때 그 과거를 대하는 태도를 어떻게 방향잡느냐 하는 것은 과거를 열람하는 일 자체와는 또다른 문제다.

통상 우리가 되짚어보는 과거의 사실들은 이미 현실에서 이루어져 버린 고정된 사실들이다. 이 사실들을 서로 연결하는 과거 그 시점의 논리와 현실 자체를 지혜의 원천으로 바라보는 경우, 우리는 과거를 반성없이 현재로 끌어오는 우를 범하게 된다.

오늘날 중국과 한국의 반일 친중 영화들이 내세우는 논리는 1900년대 초 일제가 침략해 들어오던 시절의 논리와 단 한 치도 변함이 없다.

우리가 사는 현실은 2019년의 현실이다. 반일 영화들이 그려내는 현실과 이미 100년의 터울이 난 시점임에도, 오늘날 한국 영화계는 그 시절의 현실 이해를 별다른 반성 없이 가져와 정치적 프로파간다로 이용하는 행태를 계속적으로 반복하고 있다.

▲영화 &lt;암살&gt;의 일본군 장성 암살 장면.
▲영화 <암살>의 일본군 장성 암살 장면.

◈기독교적 역사 이해와의 차이: 과거 집착과의 결별

그렇다면 항일 독립운동의 역사를 볼 때, 보다 객관적으로, 그러면서 진정 발전적이고 진취적인 태도로 그 처절한 역사를 해석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답은 아마도 기독교적 역사 이해에 기반을 둔 서구적 역사 개념과 시간 개념을 참조하는 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의 역사관은 구원사적이고 종말론적이다. 거기에는 한 순간도 빠짐없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 나가는 ‘발전적이고 성취적인’ 시간 개념이 반영되어 있다.

서구의 근대 역사관은 이처럼 하나님의 뜻이 성취돼 가는 시간이라는 개념을 인본주의적으로 재구성한 계몽주의적 역사관을 그 특징으로 삼는다.

오늘날 한국의 반일 영화나 드라마가 보다 진지한 역사적 의미를 담지하기 위해서는 다소간 과도하다 할 만큼 과거 자체에 집착하는 복고적 성향에서 일정 부분 벗어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한국의 영화, 드라마가 보다 객관적이고 진취적인 역사의식을 전하는 콘텐츠로 자리잡을 수 있을까? <계속>

▲&lt;봉오동 전투&gt; 중 한 장면. 일제강점기 민족주의적 감정과 분노를 진지한 반성과 해석 없이, 정치적 프로파간다를 위해 이용하는 것이 오늘날 한국 반일 영화 대부분이 보이는 공통점이다.

▲<봉오동 전투> 중 한 장면. 일제강점기 민족주의적 감정과 분노를 진지한 반성과 해석 없이, 정치적 프로파간다를 위해 이용하는 것이 오늘날 한국 반일 영화 대부분이 보이는 공통점이다.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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