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 보람튜브, 뉴미디어, 그리고 기독교(下)
기독교와 미디어: 문화 민주주의 사상의 기독교적 배경
유튜브의 기독교적 선용 가능성을 가늠해 보려면, 우선 문화 민주주의(cultural democracy)라는 개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문화 민주주의란 20세기 초반 미국의 다문화 교육 이론을 정립하고 실천했던 여류 교육사상가 및 인권운동가 레이첼 데이비스 뒤부아(Rachel Davis DuBois, 1892-1993)가 제시한 개념이다.
물론 이전에도 이와 비슷한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문화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정확하게 사용한 것은 뒤부아 여사가 최초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뒤부아 여사가 추구했던 평생의 과업은 바로 ‘평등’이었다. 그녀는 미국의 시민이라면 누구에게나 교육받을 기회와 문화를 향유할 기회가 평등하게 주어져야 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언뜻 듣고 보면 사회주의적 성향이 강할 법한데, 사실 그녀의 평등 사상은 사회주의와는 무관하게 확고한 기독교적 배경을 갖고 있었다.
그녀는 어려서 퀘이커 교도 집안에서 태어났고, 독실한 퀘이커 교인으로 자랐다. 퀘이커 교인들은 사회 변혁을 위한 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신앙의 주된 사명 가운데 하나로 여겼다.
실제로 미국의 식민지 시절부터 19세기까지 노예 해방, 인종차별 철폐, 여성 인권 향상을 위해 헌신한 이들 가운데 퀘이커 교인들을 찾아보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대표적 인물을 지목하자면 오늘날 펜실베니아 주를 개척한 17세기 퀘이커 지도자 윌리엄 펜(William Penn)을 들 수 있다. 펜실베니아는 당시 미국 전역에서 최초로 종교의 완전한 자유, 노예제 철폐, 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한 차별 철폐, 평등한 어린이 교육을 보장했다.
뒤부아 여사 역시 퀘이커 교인들의 기독교적 복지 및 평등 사상을 이어받은 가운데, 20세기 초반까지도 해결되지 않던 인종 차별, 문화 차별의 문제를 비판했다. 그녀는 미국의 교육 및 문화 정책이 모든 유색인종과 이민자들에게도 평등한 방향으로 제정되고 실행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녀의 사상은 원래 기독교, 특히 개신교회가 갖고 있던 문화에 대한 생각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했다.
인류 역사 전체를 되돌아볼 때, 인종과 신분에 상관없이 일반 대중에게 교육받을 기회 및 문화를 향유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최초의 집단은 개신교회였다.
이유는 단순했다. 인간이라면 누구든 스스로 성경을 읽고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할 기회를 얻어야 한다는 선교적 소명 때문이었다. 개신교 선교가 활발하게 전개된 지역마다 문맹 퇴치 운동과 대중적 문학 발전이 이루어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애초 개신교회를 탄생시킨 16세기 초 종교개혁부터가 일종의 문화 민주주의 조류에 편승한 바가 컸다. 루터는 95개조 반박문을 비텐베르크의 교회 정문에 게시했는데, 루터의 주장에 적극 동조한 비텐베르크의 인쇄업자들이 반박문을 팜플렛으로 만들어 불과 2주 만에 독일과 스위스 전역에 퍼뜨렸다.
덕분에 가톨릭 교회가 반박문의 전파를 금지할 타이밍을 놓쳤고, 그로부터 북유럽 전역에 종교개혁의 불길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구텐베르크의 활판인쇄술 보급을 통해 예비된 문화 민주주의의 가능성이 종교개혁과 함께, 그리고 훗날에는 루터의 독일어 성경 번역 작업과 함께 급격하게 현실화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기독교와 유튜브:
진솔한 신앙의 삶을 보여줄 수 있는 전도와 교육의 통로
이처럼 문화 민주주의라는 개념은, 비록 오늘날에는 세속화된 방식으로 정의되고 있지만, 원래는 기독교 선교와 교육을 지지하려는 목적으로 창안된 것이라 볼 수 있다.
기독교는 문화 발전에 대단한 경계심을 갖는 일부 교파(예를 들어 메노나이트 교파 등)를 제외하고는 미디어의 발전에 항상 열린 자세를 갖고 있었으며, 이는 디지털 혁명을 치러낸 오늘날의 현실에서도 결코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종교개혁 시대에 활판인쇄술과 성경 보급 노력이 문화 민주주의의 조류를 정착시키는 주된 수단이었다면, 오늘날 문화 민주주의를 선도하는 통로는 온라인과 모바일 기기의 보급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온라인과 모바일 기기를 통한 콘텐츠 유통시장의 최강자는 유튜브임에 틀림이 없다.
유튜브는 대형 미디어 기업들이 독점하고 있던 영상 콘텐츠의 제작 및 유통 기회를 대중에게 되돌려 주었다. 이제는 개인들도 문화 콘텐츠의 소극적이고 일방적인 소비자 역할에서 탈피해 콘텐츠 제작과 유통에 적극 가담할 수 있게 되었다.
전편에서 언급한 바대로, 유튜브는 주로 선정적이거나 자극적인 영상자료의 유통을 목표로 기획된 서비스이지만, 현재는 유용한 정보 제공과 교육, 그리고 선교 및 신앙교육을 위해서도 적극 활용되고 있다.
미국에는 성경에 관련된 단편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The Bible Project’와 같이 구독자 100만을 넘는 기독교인 유투버 채널이 존재하며, 국내에도 다수의 목회자와 사역자들이 유튜브 채널 운영에 관여하고 있거나 관심을 보이고 있다.
개신교회는 전도와 선교를 위해 다양한 콘텐츠 유통 경로를 확보해 왔다. 라디오와 케이블 방송이 대표적이다. 기독교 라디오 및 케이블 방송이 지금까지 이뤄온 공로는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유튜브가 영상 콘텐츠 유통의 제1경로로 등극한 현재, 그 포맷이 구시대적이라는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전문 프로듀서와 촬영 인력을 활용하는 공급자 중심 콘텐츠 제작 방식에 크게 의존하기 때문에, 오히려 시청자들과 점차 멀어지는 결과를 낳고 있다. 이는 특히 젊은 기독교인 세대에서 두드러지는 현상이다.
<보람튜브>의 성공 사례를 되짚어 보자.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삼는 영상 콘텐츠는 공중파나 케이블 채널에도 넘쳐난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전문성 측면에서 뒤떨어질 수밖에 없는 <보람튜브>에 열광했다. 대체 무엇 때문일까?
기존 미디어 기업들의 공급자 중심 콘텐츠는 전문성을 갖춘 대신 생동감이 떨어진다. 거기에는 여러 모로 멋들어지게 ‘가공된’ 현실이 담겨 있다.
유튜브, 전도와 신앙교육 수단으로 효과적 활용하려면
반면 유튜브 채널은 콘텐츠 제작 단계에서 보이는 아마추어리즘과 사소한 실수들조차 생동감을 전하는 요소로 활용한다.
개인 유튜버 채널의 영상들은 별달리 가공되지 않은 ‘날것의’ 현실을 보여준다는 점이 강점이다.
개인 유튜버들의 콘텐츠는 구독자들의 삶에 친숙하며, 기존 대형 미디어 기업들이 공급하는 콘텐츠들의 천편일률적인 포맷이 지닌 식상함을 극복한다.
그러므로 약간의 전문성과 아이디어, 그리고 참신성만 갖춰도 채널 시청자들의 열화와 같은 호응을 얻을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런 사실은 기독교인들이 유튜브 채널을 활용하는 데 있어, 중요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유튜브 채널은 기존 미디어들이 보여주지 못하는 생동감 있는 방송제작 현장, 삶의 현장을 보여준다. 기독교인의 전도는 성경 지식과 화술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신앙의 실존적 진정성을 보여줄 때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오늘날 대형교회 중심으로 운영되는 기존 기독교 미디어들은 이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되는 바, 이제 삶과 생활 속에서 현실화되는 신앙의 진정성을 보여줄 새로운 경로로서 유튜브 채널이 가진 가능성을 타진해볼 시점이 아닌가 생각된다.
유튜브 채널을 기독교인들의 전도 경로로 활용하는 데서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유튜브는 삶의 직접적인 체험과 현장감을 전달하는 데 유용하기도 하지만, 극단적으로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이지만 않다면 따로 필터링을 받지 않기 때문에 자칫 그 사실성이 검증되지 않은 자극적인 내용을 퍼뜨리는 경로로 활용될 소지도 높다.
실제 현재 국내에서 제작되고 있는 개인 기독교 유튜브 콘텐츠 가운데는 성경적-신학적 근거가 희박한 예언이나 이설(異說) 등을 흔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이는 유튜브 채널이 가진 진정한 강점을 파악하지 못한 나머지 발생하는 현상이라 볼 수 있다.
유튜브 채널을 전도와 신앙교육의 새로운 수단으로서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진정성 있는 신앙과 헌신의 삶을 감당하는 신자들에 의해 콘텐츠 제작이 이루어져야 하며, 그들의 꾸밈 없는 영적 체험과 간증으로 그 내용을 채워야 하지 않을까 조심스레 전망해 본다.
왜냐하면 유튜브는 생동감 어린 삶의 모습들을 전달함으로써 문화 민주주의의 이상을 현실화하는 데 특화된 미디어이기 때문이다.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