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주의 신학을 지켜온 총신대학교에 지난 수년간 여러 가지 힘든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총신대학교는 그 동안 많은 복음주의 목회자를 양성하고 바른 신앙관을 정립한 지성인을 배출해 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교수의 강의 내용을 두고 성희롱, 성차별이라는 학생들의 문제제기로 인해 내홍을 겪고 있다. 특히 여기서 우리가 관심을 두어야 할 부분이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되었는가 살펴보는 일이다.
첫째, 총신대학교가 신학대학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현상이다.
청교도들의 눈물과 기도와 희생으로 세워진 프린스턴대학의 세속화 과정을 살펴보면 좋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프린스턴대학은 1746년 장로교도들이 목사를 양성하기 위해 설립한 신학교에서 시작된 학교다. 미국의 독립선언서 내용에 기독교정신을 넣는 중요한 역할을 한 학교다. 이런 학교가 명문대로 성장을 했을지 모르지만 현재는 세속화된 대학으로 변질된 상황이다. 자유주의 신학을 추구하는 지도자가 대학총장이 되면서 벌어진 일이다. 대학 지도자의 영적 분별력이 떨어질 때 사탄은 여지없이 침투해 들어온다.
바른 교리를 추구해야 할 신학교가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세상과 타협하기 시작할 때, 작은 누룩에 점령당해 버렸다. 신실한 장로교도들의 눈물과 신앙으로 세워진 신학교가 바로 서지 못하고 혼합된 신학에 맥없이 무너져 버린 교훈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프리스턴대학의 주류를 형성한 자유주의 신학자 그룹은 복음주의 신학자 메이첸(Gresham Machen) 교수를 핍박하기 시작했다. 소금의 맛을 버리고 관용하고 포용하라고 요구했다. 메이첸은 모세처럼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했다. 좁은 길을 택했다. 메이첸의 신앙은 살아 전해지고 있고 프린스턴신학교는 죽어버렸다. 소금의 맛을 잃어버리면 길가에 버려지게 된다(눅 14:43). 소금의 맛을 잃지 않고 화목해야 한다(막 9:50).
둘째, 세속주의 세계관과 기독교 세계관이 충돌하고 있는 현상이다.
성정치 이론에 매몰된 그룹의 주장이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다. 세상은 성(性)을 무기로 성도와 가정과 국가를 무너뜨리려고 다가온다. 제일 먼저 공격하는 대상은 목사와 신학교다. 신학교가 바로 서야 바른 목사가 나오고, 바른 목사가 바른 설교로 바른 신앙인을 세운다.
1973년 미국에서 24주까지 낙태를 허용한 로 대 웨이드(Roe vs Wade) 판결 역시 교회의 영향을 받은 판결이다. 청교도적 신앙을 바탕으로 건국한 미국에서 왜 이런 판결이 나온 것일까? 남침례교가 미국 기독교 교계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1960년대부터 70년대 말까지 남침례교 신학교와 교단 총회에는 자유주의 신학에 물든 좌파 신학자와 교계지도자들이 많이 포진하고 있었다. 이들은 낙태에 대하여 상당히 유화적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이런 분들의 설교를 들은 정치인들과 법관들 역시 낙태 허용에 대해 유화적인 입장에 서게 된다. 신학적 입장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은 매우 중요하다. 신학이 바로 서야 신앙인이 바로 선다.
셋째,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의 입을 막으려는 현상이다.
법과 규정을 들고 나온다. 내게 피해를 입었다고 감정이 상했다고 처벌을 요구한다. 차별금지법이 아직 제정만 안 되어있지 실제적으로는 표현의 자유, 신앙의 자유, 학술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 하고 있는 현상이다. 신앙의 자유와 예배를 자유롭게 드릴 수 있는 자유는 신앙의 선배들이 피 흘리기까지 싸운 결과인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신학자의 혀가 맵다고 혀를 뽑으려 하면 안 된다. 진정한 신앙인은 비록 몸은 죽여도 영혼을 죽이지 못 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마 10:28).
특별히 이상원 교수의 경우를 볼 때 다른 영역에서 이런 방법이 통했을지 모르지만 상대를 잘못 집은 것 같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상원 교수는 비록 향후 어떤 결론이 날지 모르지만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과 불명예를 감수하며 주님과 함께 치욕의 영문 밖으로 나갈 사람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교수와 같은 길을 걷는 제2, 제3의 이상원 교수가 나와 총신대를 무너뜨리려는 세력과 맞설 것이다.
존 낙스를 핍박하던 영국 여왕 메리가 중병으로 죽어가면서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남겼다. "존 낙스의 기도는 100만 명의 군대보다 더 두렵다." 지금도 이교수를 위해, 진리를 지키고 총신대를 지키기 위해 세상에 무릎 꿇지 않은 성도들의 눈물의 기도가 끊임없이 주님의 보좌로 올려지고 있다는 것을 알기 바란다.
이제 깨어있는 총신대 교수들과 학생들의 신앙의 양심과 학자의 양심에 호소한다. 신앙의 양심에 따라 두려워하지 말고 같은 목소리를 내어 주기를 바란다. 좁지만 바른 길로 함께 걸어가는 동역자가 있을 때 가는 길이 험하고 어려워도 힘이 나게 된다. 주님은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계신다. 우리 모두 주님 앞에 섰을 때 부끄럽지 않게 행동해야 한다.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행18;9,10)
침묵은 암묵적 동의이고 악과 타협하는 행위다. 지금 바른 목소리를 내지 않고 눈감아 버린다면 총신대의 미래는 점점 어두워지고 신학교의 정체성을 상실할 날이 급속히 다가올 것이다. 주님 오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주님의 보좌 앞에 정직한 모습으로 나아갈 때 우리 모두는 주님의 보혈로 싸매지고 회복 될 수 있다. 깨어진 자, 모난 자, 병든 자, 슬픈 자 모두 예수님의 보혈로 거듭나기를 기도한다.
이명진 성산생명윤리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