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1장 1-5절을 통해 본 제주선교 과제 (2)
벨테브레, 병자호란 참전해 큰 공 세워
인조 설득으로 귀화해 훈련도감에 편입
하멜, 귀츨라프까지 크리스천임 드러내
제주 목회자 최상권 목사님(제주하람교회)께서 한국 개신교 선교의 관문이 ‘제주도’라는 주장과 함께 복음화율이 현저히 낮은 제주도 복음선교를 위한 방안을 시리즈로 제시해 주십니다. -편집자 주
2. 제주도 토착신앙과 기독교의 유입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 하나님과의 관계를 점검할 필요가 있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명령을 다 알렸다(신 1:3). 이것은 가나안에 있는 이방 문화와 토착신앙에 대한 경계도 포함되어 있다.
1) 제주의 토착신앙과 환경
제주는 고려에 점령당하기 전, ‘탐라국’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탐라국의 기원을 보면 사람이 살지 않던 아주 아득한 옛날, 세 사람의 신인이 한라산 북녘 기슭 땅으로부터 솟아났다.
이들은 모흥굴, 지금의 삼성혈에서 솟아났다. 고, 양, 부 삼신인(三神人)이 어느 날 한라산에 올라갔다가 바닷가에 옥함속에 있는 여인 세 명과 혼인하여 세워진 나라다.
지금은 2022년이지만 제주는 여전히 굿문화가 자연스럽게 펼쳐지고, 마을마다 ‘제사’를 드리는 등 고유의 행사를 갖고 있다.
제주는 각 지역 마을마다 포제가 있어, 지금도 날을 정해놓고 제사를 드린다. ‘제주칠머리당굿’은 1980년에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71호로 지정됐고,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한낱 미신으로만 치부되던 제주 마을 당굿이 국가와 세계가 인정하는 문화유산이 된 것이다.
제주에는 또 ‘올레’ 길이 있다. ‘길에서 집까지 연결된 아주 좁은 골목 비슷한 길’이라는 뜻의 제주 지방 방언이다. 그러나 제주 사람에게 올레길은 조상의 혼이 통하는 길로 여겨진다. 올레길은 바람이 많이 분다. 그 바람으로 인한 소리가 제주의 돌담으로 인해 ‘우는 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제주는 ‘신구간’이라는 세시풍습이 아직도 존재한다. 신구간은 대한(大寒) 후 5일째부터 입춘(入春)이 되기 3일 전까지 일주일 동안으로, 2022년의 경우 지난 1월 25일부터 31일까지였다.
제주에서는 이 기간에 일제히 이사를 하는 풍습이 있었다. 이 기간 인간의 길흉화복을 관장하는 제주의 모든 신들이 임무 교대를 위해 하늘로 올라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제주도민들은 지상에 신이 없는 이 시기에 이사를 하거나 외양간 수리, 무덤의 담 손보기, 집 고치기 등 평소 못했던 일을 해야 아무런 탈이 없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제주에서는 한겨울 혹한 속에서도 곳곳에서 이사하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이사와 관련된 업체와 행정기관들까지 덩달아 바빠진다. 제주 지역 가전제품 판매업체는 별도로 신구간 특별세일이나 이벤트를 하기도 한다.
이 기간이 끝난 후 제주도 내의 큰 행사로는 ‘영등할매제’가 있다. 제주도의 연등제(燃燈祭)는 영등신을 대상으로 하는 제주도 지방 당굿을 말한다.
연등신이란 영등할망이라 불리는 여신으로서 2월 1일에 입도(入島)하여 15일에 나가는 내방신(來訪神)이다. 따라서 이월 초하루부터 보름까지 연등제를 지낸다. 막대기 12개를 세우고 연등신(燃燈神)을 맞아 제사를 지낸다.
신을 즐겁게 하기 위해 막대기 위에 비단으로 마령(馬鈴)을 꾸며놓고, 약마희(躍馬戱)를 한다. 연등제 동안 어부나 해녀들은 바다에 나가지 않는다. 이때 빨래를 하면 구더기가 생긴다고 한다.
2) 제주의 기독교 유입
제주도는 유럽인 항해가들에게 ‘켈파트(Qualpeart)’로 알려졌다. 이 켈파트가 오늘날 가파도의 유래가 된 것이다.
‘케파트’라는 표현은 포르투갈어로 ‘galtot’, 즉 갤리선으로, 2개의 돛대가 달린 소형 선박에 해당한다. 이 배가 최초로 1642년 제주도에서 발견되었다. 아마 하멜의 배로 추정된다.
① 박연(Jan Janes Weltvree, 1627)은 우리나라에 최초로 기독교를 전파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박연, 즉 벨테브레는 네덜란드 사람으로 처음 3인이 제주에 표류했는데, 병자호란에 참전해 2명이 죽고 벨트브레는 큰 공을 세운다. 인조는 벨트브레를 설득해 귀화시켜 훈련도감에 편입한다.
벨테브레는 조선에서 ‘선악화복(善惡禍福)’을 자주 거론했다. 벨테브레는 전도자는 아니었으나, 신실한 기독교인의 한 사람으로 한국으로 귀화해 살았던 사람이다.
② 이 미지의 땅 제주를 최초로 서방 세계에 알린 사람이 유명한 핸드릭 하멜(Hendrick Hamel, 1653)이다.
하멜은 1653년 제주에 표류한 후 약 10개월 동안 제주에서 생활했다. 하멜은 암스테르담 연합 동인도회사 소속이었던 스페르웨르호에서 서기로 근무하고 있었다.
당시 동인도회사는 아시아 무역을 주도했는데, 비단과 직물, 향신료를 싼 가격에 수입하고 그것을 다시 비싼 가격에 유럽에 팔던 무역회사였다. 스페르웨르호에 실렸던 무역품은 <효종실록>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하멜은 자신이 ‘길리시단자’, 즉 크리스천임을 밝혔다. 하멜의 제주 표류 사실을 보고받은 왕은 효종이었다. 당시 조선은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이후 전란 수습은 물론, 병기 개량을 위한 무기 개발에 주력하고 있었다.
신진 외국의 무기 개발 기술 등을 배우기 위해 서양인을 훈련도감에 둘 정도였다. 그 서양인이 하멜보다 앞서 제주에 표류해 있었던 벨테브레였다.
‘박연’으로 이름을 개명한 벨테브레는 훈련도감 관원으로 통역을 위해 제주로 다시 내려온다.
하멜과 만남이 이루어진 벨테브레는 제주가 유배지이며 조선시대 200년 동안 육지 이동을 막은 ‘출륙금지법’으로 나갈 수 없으니, 자신과 같이 귀화하자고 설득한다.
그러나 하멜은 박연의 설득을 거부해 한양으로 압속됐고, 다시 1656년 전라 병영으로 이송되었다. 그러다 마침내 1666년 9월에 탈출해 다시 고향인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돌아가게 됐다.
하나님의 제주를 향한 선교역사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③ <하멜표류기>로 인해 유럽에 조선이 소개되면서 관심을 갖게 된 또 한 사람이 있으니, 그 사람이 바로 칼 귀츨라프(Karl Fredirich August Gutzlaff)이다.
귀츨라프의 <중국 연안 항해기>에서의 자료를 보면, 조선 서해안 전도기사 중에서 발견된다. 그는 한국에서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로서 전도했으나 당시에는 열매를 맺지 못하였고, 순조에게 성경을 헌상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귀츨라프의 한국 선교에 관한 일기는 1832년 7월 17일 시작해 8월 17일에 끝났다. 그 일기 중 제주도에 4일간 머물렀던 이야기가 등장한다.
한국 선교 역사는 1885년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오기 전, 제주에서 기독교인과 선교사의 접촉을 통해 이미 시작됐던 것이다. <계속>
최상권 목사
제주 하람교회
백석대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