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교부터 하교까지, 출근부터 퇴근까지
시간의 흐름 따라 일상 떠올리며 적용
그러다 보면, 당연히 인간관계 따라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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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티 적용 대상은 우리 일상이어야 한다. ⓒ픽사베이
2024년은 ‘화룡점정(畵龍點睛)’의 해라고 한다. <트렌드코리아 2024>에서 2024년 트렌드를 전망하며 그렇게 명명했다.

화룡점정은 눈을 그려 넣어야 용이 된다는 의미다. 아무리 인공지능이 근사치까지 작업을 완성해 놓는다 해도, 사람이 마무리해 주지 않으면 제대로 된 수준을 갖추기 어렵다는 것이 <트렌드 코리아 2024>의 설명이다.

큐티 적용이 바로 그렇다. 아무리 큐티를 열심히 했어도, 적용을 하지 않으면 ‘눈을 그리지 않은 용’과 다를 바 없다. 묵상해서 깨달은 내용을 일상에 적용하지 않으면, 큐티가 아닌 것과 같다. ‘적용’을 큐티의 꽃이라 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여기까지는 큐티를 하는 분들이 대부분 동의한다. 그래서 큐티를 시작하면 적용까지 하고 싶어 한다. 그래야 일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까닭이다.

하지만 적용이 쉽지 않다. 적용할 거리도 생각나지 않는다. 적용할 거리를 찾겠다고 멍하게 앉아 끙끙거리다 보면, 오히려 큐티가 하기 싫어지기도 한다.

오늘부터는 적용을 구체적으로 하는 방법을 소개한다.

먼저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며 적용하는 방법과 인간관계를 중심으로 적용 대상을 찾는 방법이 있다. 이 두 방법은 뗄 수 있는 부분은 아니지만, 설명을 위해 두 부분으로 나누었다.

첫 번째로 시간의 흐름을 따라 가보자. 기상 시간부터 잠자리에 들기까지 스케줄을 떠올리며, 그 흐름 중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지 생각해 보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적용하기 위해, 일상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떠올려 보자. 아침에 일어나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 살펴본다. 일어나서 집을 나서기까지는 대개 가족과의 관계다.

예를 들면 집을 나서기 전 내가 해야 할 부분을 못한 것이 있는지 살펴본다. 등교해서 하교까지 혹은 출근해서 퇴근까지 구성원들과 관계다. 하교 혹은 퇴근 후의 일들도 있다. 학원, 친구, 모임, 가정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있겠다. 시간의 흐름에 좇아 적용하다 보면, 당연히 인간관계가 따라온다.

두 번째로 인간관계라는 측면에서 보면, 우리 일상은 끊임없이 대인관계가 이어진다. 일상에서 교류하게 되는 사람마다 적용할 것이 무엇인지 찾아가면 된다.

하지만 주의할 점이 있다. 관계를 세상처럼 ‘기브 앤 테이크(give & take)’로 바라보면 안 된다. 왜냐하면 대인관계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아닌, 하나님과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인간관계에서 내가 하나님 사랑을 흘려보낼 수 있다. 그렇게 인간관계가 원만해지고 겸손하게 섬기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적용은 사람의 마음에 하나님의 마음을 넣는 것이다. 사람을 대할 때 ‘하나님께 하듯’ 대하면 된다. ‘하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라는 고민을 현실에 적용하는 방법이다. 상대방이나 ‘그’가 나에게 어떻게 하던지, 심지어 미워하건, 못살게 굴건, 어떤 컨디션에도 ‘나’에게 적용하면 된다. 상대방의 상태가 아닌, 그 날 주신 깨달음에 따라 적용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얄밉거나 하는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적용을 못한다면, 큐티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고백이 된다. 하나님 사랑을 이웃에게 전하는 게 ‘적용’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구체적인 적용은 내가 해야 한다. 상대방이 생각나고 ‘그’가 생각나면 안 되는 이유다.

예를 들면 이렇다. “사랑한다”는 말을 배우자에게 꼭 하겠다고 적용한 성도가 있다. 그러나 막상 배우자 앞에 가면 말을 하지 못한다. 말을 하려고 기도도 하고 굳게 마음도 먹었는데, 배우자가 인상을 지푸리고 있더란다. 그래도 “사랑한다”고 말하려 했는데, 개그가 될 거 같더라는 것이다.

배우자의 문제가 아니다. 배우자의 찌푸린 얼굴은 당신 모습의 거울일 수 있다. 배우자가 찌푸리지 않도록 당신의 자세 혹은 생활방법을 바꿔야 하는 것이다. “나는 하려고 했는데, ‘그’가 하는 짓(?) 때문에 못하겠어요”? 먼저 본인의 태도부터 바꿔야 한다. 인간관계는 하나님과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악인을 다른 사람들에게서만 찾을 이유는 없다. 악인도 알고 보면 ‘나’일 수 있는 까닭이다.

예를 들어보자. 시편 7편 1절이다.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시여, 내가 주께 피하니 나를 뒤쫓는 사람들에게서 나를 보호하시고 구해 주소서”. 나를 괴롭히는 사람들로부터 구해 달라는 본문이다.

이 본문을 적용하면 어떻게 되는 걸까? 자신을 힘들게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다. 또한 뒤쫓는 사람들이 생기지 않을 수 있는 직장 여건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직장 상사가 이유없이 괴롭힌다면, 그 직장 상사를 위해 축복기도할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직장 상사가 괴롭힐 수 없도록, 업무를 더욱 열심히 하는 방법도 있다.

나를 뒤쫓는 사람이 꼭 ‘그’라는 것도 편견일 수 있다. 인간관계를 넘어, 나 자신의 문제가 ‘나를 뒤쫓는 사람’일 수 있는 까닭이다. 예를 들면 나의 습관, 태도, 게으름이 나를 힘들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럴 경우 나의 습관, 태도, 게으름을 고치는 적용을 하면 된다. 그렇게 성경본문에 ‘그’가 ‘나의 마음’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석현 읽고 쓴다
▲이석현 목사.
이석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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