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메르 등에 영감 준 선각자
평범한 가정 모습 화면에 담아
수수하고 재치 있는 장면 감탄
가정 미덕 중시 기독교 가르침

니콜라스 마스
▲니콜라스 마스, 레이스 짜는 여인, 캔버스에 유채, 45.1x52.7cm,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전기 작가 아놀드 하우브라켄(Arnold Houbraken)에 따르면, 니콜라스 마스(Nicoleas Maes, 1634-1693)는 대상을 부드럽게 포착할 수 있는 ‘숙련되고 매력적인 브러쉬’를 지녔다고 한다. 그의 다재다능함은 그가 인물과 옷차림, 기물, 배경과 기타 세부사항을 다루는데서 여실히 드러난다.

네덜란드 도르트레히트에서 상인 집안에서 태어난 니콜라스 마스는 유년시절 개혁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10대에 렘브란트에게 그림을 배운 제자 중 한 명이었다.

당시 렘브란트는 학생들에게 체계적인 훈련으로 명성이 자자했는데, 마스는 렘브란트에게 ‘오디니른(ordineren)’, 곧 역사화에서 이야기의 모든 측면이 잘 전달되도록 구성을 작성하는 법을 배웠다. 말하자면 화면 속 인물들의 포즈와 배치를 다채롭게 하여 그들의 몸짓과 표정을 통해 등장인물의 감정을 드러내는 법을 익혔다.

이에 더하여 니콜라스 마스는 렘브란트 스튜디오에서 ‘하우딩(houding)’ 기법, 즉 명암을 교묘하게 분배하고 색상의 강도를 조절하여 공간의 환영을 연출하는 수법을 익혔다. 이 같은 조형훈련은 추후 그의 작업 세계에 큰 힘이 되었다.

공부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온 후 마스의 작업은 차츰 자신의 것을 찾아간다. 역사화(성경 그림)보다는 일상생활의 장면들을 포착하는 등 장르화의 혁신적 화가로 부상한다. 피테르 드 호흐(Pieter de Hooch)나 요하네스 베르메르(Johannes Vermeer) 같은 유력한 장르 화가들에게 영감을 준 것도 바로 니콜라스 마스였다. 이런 면에서 마스는 장르화의 선각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스는 주로 가정의 평범한 모습을 화면에 담았다. 아이를 재우는 여인, 바느질하는 여인, 양육하는 장면, 장보기와 채소를 다듬는 여인, 식전 기도를 드리는 여인, 성경책을 읽다 잠이 든 노인, 물레를 돌리는 사람, 시장에 다녀온 여인 또는 우유를 파는 여인, 집안일을 하다 깜빡 잠이 든 시녀 등.

일상생활의 모습을 포착할 때 마스는 암스테르담 스튜디오에서 배운 ‘오디네겐’과 ‘하우딩’ 기법을 활용하였다. 후기작은 장르화보다 우아하고 세련된 초상화에 치중했다면, 도르트레히트 시절 작품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주목하였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많은 사람들은 마스의 수수하고 재치 있는 장르와 장면에 감탄하였다. 여성은 이러한 친밀한 작업에서 주도적 역할을 한다.

마스가 예찬의 대상으로 삼은 장면들은 작은 사이즈에도 불구하고 고요하고 기념비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아리안 반 쉬델렌(Ariane van Suchtelen)의 말을 빌면, 어떤 예술가도 이런 주제를 그린 적이 없었고 그를 따라갈 수 없었다.

이처럼 마스의 장르화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특별한 관심도 있었지만, 가정을 중시하던 당시 문화적 배경도 빼놓을 수 없다. 당시 도시의 권위는 가정을 보호하고 가정이 성장하고 번영할 수 있는 조건을 제공하는데 두었다고 한다.

다른 유럽 지역보다 평균 가족 수는 4.75명으로 적었으나, 훨씬 더 긴밀한 유대감을 갖고 있었다. 이때 가정에 활력을 불어넣은 것은 가정의 미덕을 중시한 기독교적 가르침이었다.

한 예로 개혁교회 설교자 피트루스 위트브론헐(Petrus Wittewrongel)은 창세기 2장 18절을 인용하여, 하나님께서 특별히 여자를 남자의 돕는 배필로 세우셨으며 “머리가 몸 없이 존재할 수 없듯 신랑도 신부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고 하였다.

네덜란드 개혁교회는 사랑을 순종에 종속시키기보다 오히려 고양시켰다. “모든 우정과 사랑 속에 사랑의 불씨를 지펴서, 부부애로 서로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몸도 이 끈으로 하나가 되어야 한다.”

야곱 캇츠(Jacob Cats) 역시 남편과 아내를 인생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함께 맞물려 도는 한 쌍의 맷돌에 비유함으로써, 동일한 취지의 발언을 하였다. 그에게 있어 결혼은 ‘동거’가 아니라 ‘연합’이었다. 부부는 “분주함과 안식 속에, 근심과 기쁨 속에, 손해와 이득 속에, 오락과 노동 속에, 위험과 축복 속에” 함께하는 존재였다.

<레이스 짜는 여인>(1656)을 보면, 젊은 여성이 아이를 돌보며 열심히 레이스를 짜고 있다. 화가는 젊은 주부가 양육과 가사에 얼마나 열중하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엄마 옆에서 살이 포동포동 찐 사랑스러운 아이의 모습도 눈에 띈다. 아이의 손에는 자그마한 장난감이 들려 있는데, 엄마가 쥐어준 것으로 보인다. 바닥에 떨어진 컵은 아이가 무심결에 떨어뜨린 것임이 분명하다. 그것은 집안의 무질서를 암시하기보다, 아이가 딸린 가정의 자연스런 모습을 환기시키기 위한 의도로 파악된다.

어머니의 상의, 아기의 모자, 그리고 식탁보의 빨간 색은 통일성을 유지하면서 가정에 흐르는 따듯함을 전달하고 있다. 남편은 출타 중이지만, 가정 내 훈훈한 온기를 느끼기에 전혀 부족하지 않다. 고급 가구나 장식물이 없지만, 사랑만으로도 행복한 가정을 꾸려가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요하네스 베르메르
▲요하네스 베르메르, 레이스 짜는 여인, 24.5x21cm, 1669, 파리 루브르미술관.
동일한 모티브를 취한 베르메르의 <레이스 짜는 여인>(1669년경)은 마스의 작품보다 13년이나 늦게 나온 것이다. 두 작품의 차이는 제작 년도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베르메르의 수작 <레이스 짜는 여인>이 탁월한 솜씨로 일하는 여인의 아름다움을 되살려낸 점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겠지만, 마스는 여성만이 아니라 아이까지 등장시켜 가정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말하자면 마스는 베르메르가 놓친 것을 보충해 주고 있는 셈이다. 그의 작품에서는 금세라도 아빠가 집안으로 들어와 아이 뺨에 입맞춤을 하고 안아줄 것만 같다. 사치와 허영을 멀리하고 단란함 속에 피어난 네덜란드 가정의 절제와 행복을 보여준다.

서성록 명예교수
안동대 미술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