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적 악한 일 저지른 형들
요셉은 거부, 아버지에 말해
악 용납 못하는 성품과 신앙
하나님 앞 신앙인이기 때문
하나님 앞 사는 사람 찾으셔
어디서나 하나님 중심 신앙

노예 12년
▲영화 <노예 12년> 중 한 장면.

<노예 12년>이란 영화를 알고 있는가? 미국 뉴욕에서 살고 있는 솔로몬 노섭은 인정받는 바이올리니스트로, 아내, 두 아이와 함께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노섭은 두 명의 사람을 소개받는다. 그들은 노섭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는데, 한 달 정도 같이 공연하러 다닐 악사를 구하고 있다며 함께 일을 하자고 말한다.

노섭은 그들이 제안한 높은 보수에 같이 일을 하기로 수락하고, 그들을 따라 워싱턴으로 향한다. 그런데 노섭은 저녁식사 후 술을 너무 많이 마셔 정신을 잃었고, 눈을 떠보니 쇠사슬에 묶여있는 자신을 보게 된다. 노섭은 노예 인신매매단에게 납치를 당한 것이다. 그렇게 노섭은 한밤중에 마차에 실려 미국 남부로 향하는 배에 끌려간다.

당시 미국은 크게 두 지역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공업 중심의 북부와 농업 중심의 남부로 나뉘어 있었다. 당시 북부는 노예제도를 인정하지 않고 반대했다. 그러나 남부는 노예제도를 찬성했다. 농업이 중심이던 남부는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노예의 노동력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특히 1840년 미국은 노예 수입이 금지됐기에, 남부는 더욱 노동력이 부족했다. 그래서 흑인 노예를 잡아오는 인신매매가 미국 곳곳에서 일어났다. 노섭도 그렇게 노예로 잡혀 왔던 것이다.

남부로 잡혀온 노섭은 플랫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가지게 된다. 플랫은 목화밭을 운영하는 에드원의 집에 팔려가는데, 주인 에드원은 흑인들을 가축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에드원은 흑인들에게 폭력을 가하는 데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 에드원은 매일 수확량을 체크해 목표에 미달하는 노예에게 채찍질을 했을 뿐 아니라, 힘든 노동으로 지친 흑인들을 유흥거리로 삼기도 한다.

조금씩 시간이 지나면서 플랫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노예로서의 삶을 받아들인다. 어느덧 12년이란 세월이 지났다. 주인 에드원은 마당에 정자를 짓기 위해 목수 베스를 고용한다. 그런데 목수 베스는 지금까지 남부에서 보았던 백인들과 달랐다. 베스는 노예제도를 인정하지 않고 반대했던 것이다.

베스와 단둘이 일하게 된 플랫은 지금까지 자신에게 있었던 일들을 모두 말한다. 그리고 플랫은 베스에게 북부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편지를 써달라고 부탁한다. 베스는 플랫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하고 편지를 써주었으며, 베스의 편지 덕분에 플랫은 극적으로 다시 신분을 되찾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다.

플랫에서 다시 이전 이름인 노섭으로 돌아온 그는 1853년 <노예 12년>이란 책을 출간한다. 이후 노섭은 노예제도 폐지 운동에 적극 참여했으며, 미국 북동부 전역을 돌아다니며 노예 제도를 왜 반대해야 하는지 강의를 하고 다녔다. 또 여전히 고통받고 있는 노예들을 도와주며 살았다.

노예 12년
▲영화 <노예 12년> 중 한 장면.

이 영화를 통해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한 가지 있다. 여러분이 하루아침에 누군가에게 팔려 노예가 되어 버린다고 상상해 보자. 그만큼 끔찍한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하루아침에 사랑받는 아들에서 노예로 팔려간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바로 요셉이다.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노예로 팔아버렸다. 도대체 요셉의 형들과 요셉 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야곱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요셉이 십칠 세의 소년으로서 그의 형들과 함께 양을 칠 때에 그의 아버지의 아내들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과 더불어 함께 있었더니 그가 그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말하더라(창 37:2)”.

요셉은 아버지 야곱의 사랑을 독차지한 아들이었다. 아버지 야곱은 요셉을 다른 아들들보다 훨씬 사랑했다. 야곱에게 요셉은 특별한 아들이었다. 그가 사랑하던 아내인 라헬이 낳은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야곱의 차별적 사랑 때문에, 요셉은 형들의 미움과 질투를 받게 됐다. 아버지 야곱이 형들보다 요셉을 더 사랑하니까, 형들이 그런 요셉을 미워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어린 시절 요셉은 어떤 아이였을까?

말씀을 보면, 요셉이 17세 소년일 때 형들과 함께 양을 치고 있었다. 그때 요셉이 한 가지 주목할 만한 행동을 하는데, 바로 형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일러바친 것이다. 즉 요셉은 아버지 야곱에게 가서 형들의 잘못을 고자질했다.

학교 다닐 때 제일 얄미운 학생이 누구인가? 내 잘못이나 실수를 담임 선생님 또는 친구들에게 고자질하는 친구다. 즉 남의 허물, 안 좋은 모습을 때로는 눈 감고 넘어갈 수 있어야 하는데, 동네방네 소문을 내고 다닌다.

예를 들어보자. 만약 내가 중간고사를 쳤는데 영어 성적이 25점이 나왔다. 그런데 옆 친구가 내 점수를 알고 친구들한테 소문을 내고 다닌다면? “야~ OO이는 영어 25점 받았더라.”

그럼 그 친구를 향한 내 마음이 기분이 좋을까? 당연히 좋을 리 없다. 안 그래도 시험을 못 쳐서 마음이 우울한데, 친구가 점수까지 말하면서 놀리니 더 화가 난다. 이처럼 요셉이 겸손한 줄 모르고 오히려 형들의 잘못을 일러바치니, 어떤 형이 그런 동생을 좋아하겠는가?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이 한 가지 있다. 그렇다면 요셉의 형들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느냐 하는 것이다. 여기서 형들이 잘못을 저질렀다는 말은 자잘한 실수를 했다는 뜻이 아니다. 형들이 잘못을 저질렀다는 말은 도덕적으로 상당히 악했다는 뜻이다.

그렇다. 요셉의 형들은 도덕적으로 봐도 악한 일을 실제로 저질렀다는 사실이다. 요셉은 형들이 저지르는 악한 일들을 거부했고, 형들의 그런 잘못들을 바로잡기 위해 아버지 야곱에게 말했던 것이다. 즉 요셉은 악을 용납하지 못하는 곧은 성품과 신앙을 가지고 있었으며, 형제들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선택했던 것이다.

요셉은 형들처럼 얼마든지 악한 일에 동참할 수 있었다. 아버지의 눈을 피해 얼마든지 타락해서 살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요셉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요셉은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신앙인이었기 때문이다.

요셉은 늘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삶을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다. 하나님은 그런 요셉을 눈여겨 보셨다. 요셉은 아직 어리고 실수가 많지만, 하나님은 그런 요셉을 훈련시키셨고 하나님 나라에 귀하게 사용하셨다.

요셉을 통해, 여러분에게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다. 하나님은 오늘도 살아계셔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찾고 계신다는 점이다.

얼마 전 학생 한 명과 대화를 한 적이 있다. 그 학생은 한 가지 힘든 일이 있다고 말했다. 학교에서 친한 친구들 몇몇은 장점들이 하나씩 다 있는 것 같은데, 자기는 잘하는 게 하나도 없는 것 같아 마음이 너무 힘들다는 것이다. 필자는 그 학생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그 학생은 평소 성격도 밝고 활발하고 매사에 늘 적극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그 학생이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지 생각조차 못했다.

여러분은 그 학생의 말에 공감이 가는가? 필자는 너무나 공감이 간다. 필자도 청소년 시기 잘하는 게 없어 혼자 마음을 앓았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특별히 잘하는 게 없는데, 앞으로 내 인생은 어떻게 될까?’라는 고민을 참 많이 했다. 필자는 마음 속에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마음이 불안하고 우울했으며, 근심 걱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 공부? 좀 못해도 괜찮다. 돈? 좀 없어도 괜찮다. 외모? 못생겨도 괜찮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공부, 돈, 외모가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바로 우리가 어디에서나 하나님 중심 신앙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 중심 신앙이란 과연 무엇일까? 바로 하나님 말씀이 당신의 삶에 1순위가 되는 것이다. 내 상황과 환경에 상관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1순위로 여기고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다.

하나님은 오늘도 하나님 중심 신앙으로 사는 사람을 찾고 계신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마음, 하나님을 위해 살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을 가진 사람을 찾고 계신다. 여러분이 그런 사람 되기를 축복한다.

김맥
▲청소년들과 함께하고 있는 김맥 목사.

김맥 목사

초량교회 교구담당 및 고등부 담당 주일학교 디렉터
청소년 매일성경 집필자

저서 <얘들아! 하나님 감성이 뭔지 아니?>
<하나님! 저도 쓰임 받을 수 있나요?>
<교사는 공감이 필요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