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원로들 힘 모아 급식소 마련
소외된 이들에게 영육간 위로 제공
코로나 장기화로 안타깝게 문 닫아

무료급식 ‘라면한끼’ 재오픈 준비 한창
▲어려운 이들을 위한 무료급식소 ‘라면한끼’ 재오픈을 앞둔 지난 24일, 종로5가 효제동에 위치한 급식소 건물에서 송용필 목사가 설교하고 있다. ⓒ송경호 기자

원로목회자들이 중심이 돼 소외된 이웃들을 섬겨 온 ‘라면한끼’ 무료급식 사업이 ‘시즌 2’를 맞이한다. 한국교회가 함께하는 사단법인 한국기부재단(이사장 송용필 목사, 대표회장 이주태 장로)과 사단법인 한끼나눔이 24일 서울시 종로구 급식소 예정 부지에서 예배를 드리고, 한국교회의 기도와 관심을 요청했다.

코로나19로 온 국민이 신음하던 당시, 한국 기독교의 중심지인 ‘종로5가’ 연동교회 앞 사거리에서는 매일 점심 때면 라면 냄새가 가득했다. 한국교회 부흥기를 이끌었던 원로목사들이 어려운 이들을 위해 팔을 걷어붙여 만든 ‘라면한끼’ 무료급식소 덕분이었다.

‘라면한끼’는 지난 2021년 5월, 성도들의 발걸음이 가장 많이 오가던 거리에 문을 열었다. 끼니를 해결하기 어려운 노숙자부터 학생, 직장인, 근처 효제초등학교 어린아이들까지 누구나 부담 없이 내 집처럼 마음껏 끼니를 해결할 수 있도록 했다.

‘라면 한 끼’
▲원로목사들은 지난 2021년 힘을 모아 ‘라면한끼’ 무료급식소를 종로 5가에 열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코로나 팬데믹 장기화로 안타깝게 문을 닫았다. 당시 무료급식 봉사를 펼치던 (왼쪽부터 순서대로) 박장옥 한국원로목자교회 담임목사, 송용필 한국기부재단·한끼나눔 이사장, 이주태 한국기부재단·한끼나눔 대표회장. ⓒ크투DB

코로나로 예배조차 드리기 어렵던 시기에, 원로들은 “가만히 앉아만 있을 순 없다”며 독립 법인을 세웠고,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까지 운영하는 식당을 열어 하루 60여 명의 손님을 맞이했다. 라면 요리와 이후 설거지까지 스스로 하게 해 오히려 타인의 시선을 부담스러워하는 이들의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

스피커에서는 설교방송이 흘러나와 지치고 낙심한 이들에게 영적 위로도 줬다. 그동안 ‘목자카페’에서 원로목자교회(담임 박장옥 목사)를 중심으로 모였던 원로들은 “남은 생에 행동으로 사랑을 전하자”며 앞다퉈 생활비를 내어놓았고, 설거지와 청소 등 무료 봉사도 주저하지 않았다.

소문이 확산되자 믿지 않는 이들조차 라면을 10박스, 5박스씩 내어놓으며 섬김에 동참했다. 어느 날은 초등학교 5학년 아이가 어린 동생 다섯을 데리고 와 배불리 먹은 다음, 만원 한 장을 후원함에 넣기도 했다. 감동이 감동을 낳았고, ‘라면한끼’는 종로 1호점을 시작으로 전국에 섬김과 나눔의 공간을 늘려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은 예상보다 오래갔고, 모든 운영비를 후원에 의존해야 하는 봉사단체들에게도 큰 타격을 줬다. ‘라면한끼’도 이 파고를 넘지 못했다. 은퇴 후 강단에 서지는 못했지만 기도와 각자의 재능으로 봉사하며 기쁨의 섬김을 이어 온 원로목사들은 눈물을 머금고 급식소의 문이 닫히는 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원로들과 ‘라면한끼’ 사역 섬기던 이 장로,
“더 이상 기회 없다” 의사 경고에 대수술
후유증에도 매일 현장에 나와 공사 동참

그렇게 2년여가 흘렀고 차츰 일상이 회복될 즈음, ‘라면한끼’의 재기를 꿈꾼 건 15년 넘게 원로목사들의 후원자를 자처해 온 이주태 장로였다. 한때 성공한 사업가였던 이 장로는 오래 전 하나님께 서원한 것이 있었다. “언젠가 원로목사님들을 섬기겠다”는 마음의 감동이자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였다.

하지만 이전의 건물은 재개발로 헐려 사용할 수 없게 됐다. 어려운 이웃은 물론이고 은퇴 후 제2의 사역을 펼치는 원로들이 쉽게 오갈 수 있는 장소를 놓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놀랍게도 한국기독교회관 바로 맞은편(효제동 297-1)의 한 건물을 허락하셨다. “기독교인들에게는 절대 세를 주지 않겠다”던 건물 주인은 이 장로의 섬김 사역을 익히 알고 있었고, “당신에게만은 허락하겠다”며 흔쾌히 내어줬다.

무료급식 ‘라면한끼’ 재오픈 준비 한창
▲‘라면한끼’ 무료급식소는 성도들이 가장 많이 오가는 종로5가 한국기독교회관 맞은 편에 오는 5월 재오픈을 목표로 준비 중이다. ⓒ송경호 기자

앞서 교회로 사용되던 건물이 불의의 화재로 전소된 후 급히 지은 터라, 골조만 있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최소한의 예산으로 공사를 시작할 때,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사업을 이끌던 이주태 장로의 건강에 적신호가 켜진 것이다. 의사는 “당장 신장을 이식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고 말했다.

7년 전부터 몸의 이상을 느끼던 차였다. 하지만 목자카페를 만들어 쉼과 재기의 공간을 제공하고 매주 원로목사예배를 드리는 등 쉼없이 달려온 터라 건강조차 돌볼 틈이 없었다. 견딜 수 없는 통증에 병원을 찾았고, 의사는 “콩팥 기능이 일반인의 8%밖에 남지 않았다”며 “이 시기를 넘기면 더 이상 기회는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렇게 올해 1월 수술대에 올랐고, 두 달 사이에 그의 체중은 93kg에서 69kg까지 줄었다.

수술 후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병상에 있어야 할 이 장로가 모습을 드러낸 건 공사 현장이었다. 박장옥 목사는 “예산을 줄이려 업체에 맡기지 않고 직접 공사를 해 왔던 터라 모든 게 멈춰섰는데, 이 장로가 하루도 빠지지 않고 현장에 나와 공사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라면한끼’ 재건에 동참한 이들은 그런 그를 보고 가슴에 뜨거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고, 모두가 다시 팔을 걷어붙였다.

24일 예배에서 만난 이 장로의 겉모습은 이전과 다름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는 “수술 후 다리가 많이 부었다. 후유증으로 손이 떨리고, 기억력도 예전 같지 않고, 말하는 것도 편치 않다. 그래도 주변에서 걱정하면 안 되니 옷은 말끔하게 입는다”며 웃어 보였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거룩한 부담감을 외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도전받은 원로들, 앞다퉈 후원 동참
“섬김은 돈 아닌 사랑으로 하는 것”
5월 재오픈 목표… 각계 관심 요청

이날 예배에 함께한 이들은 이 장로가 은퇴한 목회자들을 위해 연합단체들을 세우고 섬기기 시작했던 10여 년 전부터 동행해 온 원로들이 대부분이었다. 벽면 단열공사를 겨우 끝낸 ‘라면한끼’가 목표하는 오픈 시점은 오는 5월. 기본 공사에 필요한 예산을 비롯해 냉장고, TV, 음향시설, 식당용품 등 운영에 필요한 물품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송용필 목사(카이캄 대표회장, 88)는 설교에서 “우리가 원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약속을 따라 공급해 주신다”며 “우리가 건물을 지을 계획을 세운다 해도, 그 꿈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라고 격려했다.

무료급식 ‘라면한끼’ 재오픈 준비 한창
▲24일 예배에 참석한 원로들이 올해 1월 신장이식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인 가운데서도 공사에 앞장서고 있는 이주태 장로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송경호 기자

‘라면한끼’를 위해 가장 먼저 주머니를 연 것도 원로들이었다. 송용필 목사는 이날 전기공사비 1,350만 원을 흔쾌히 내놓았다. 김마리 목사(예닮교회, 64)는 기초 인테리어 비용과 온풍기, 강대상, 테이블 등 물품 약 1천만 원 상당을 선뜻 후원하고, 박장옥 목사는 바닥공사비 120만 원을 약정했다.

첫 번째 무료급식소를 열 당시부터 물질과 재능으로 동참한 원로들은 한둘이 아니었다. 미국 뉴욕 베이사이드교회 협동목사로 사역하다 은퇴한 조병완 목사(76)와 이명숙 사모(75)는 “결혼 50주년 기념으로 아들이 세계여행을 가라며 준 1천만 원을 보탰다”고 했다. 이 사모는 “이 장로님이 지난 세월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겠다며 내어놓은 물질이 상상할 수 없이 크다. 마음에 감동이 왔다”고 전했다.

벽지 공사비 90만 원을 후원한 윤봉순 목사(신이문우리교회, 82)는 “섬김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많은 원로들의 마음을 헤아려가며 섬기고 구제에 앞장서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며 “무료급식사업은 예수님의 사랑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강문자 목사(화곡동 명성교회, 83)는 “섬김은 돈이 아니라 사랑으로 하는 것”라며 “사실 원로가 무슨 수입이 있겠느냐. 생활비를 아끼고 아껴서 내어놓는 것”이라고 했다.

무료급식 ‘라면한끼’ 재오픈 준비 한창
▲사단법인 한국기부재단 이사장 송용필 목사(앞줄 가운데), 대표회장 이주태 장로(앞줄 맨 오른쪽), 한국원로목자교회 담임 박장옥 목사(앞줄 맨 왼쪽)를 비롯한 원로들이 예배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송경호 기자

원로목회자 수요예배 초기부터 성가대원으로 섬기며 가운비용 100만 원 일체를 내어놓았던 김화자 사모(82)는 “하나님께 은혜를 받았고 이 장로님으로부터 많은 섬김을 받았던 한 사람으로서, 영원히 하나님의 자녀로 살며 힘 닿는 데까지 어려운 이들에게 힘이 되고 싶다”고 했다. 배우 문천식의 아버지기도 한 문무엘 목사(마포 기쁨의교회, 84)는 ‘라면한끼’에서 서빙과 온갖 심부름을 도맡았다. 그는 “몸으로, 또한 기도로 섬기는 일도 행복하다”고 했다.

태권도 전국체전 우승 경력의 오세영 목사(서신감리교회, 80)는 “젊은 시절엔 철없이 힘을 믿고 살았지만, 지금은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를 섬기려 한다. 갈 곳 없는 원로들이 이곳에서는 가족과 같다”고 했다. 13년째 원로목사회를 섬기는 서태봉 목사(영신교회, 83)와 차재연 사모(74)는 “원로는 사역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에서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후원구좌/ 기업은행 016-065319-04-015 예금주 : 한국기부재단 (02-3394-8877)
한국기부재단을 통해 (사)한끼나눔으로 전달됩니다.
문의) 010-2351-67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