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인물로 보는 신앙세계(9)
"엘리야"가 출현한 이후 약 한세기가 지난 후, 그러니까 기원 전 8세기가 되었을 때에 이스라엘에는 이스라엘의 정신사를 주도할 일련의 탁월한 종교 지도자들인 예언자들(8C 예언자들)이 등장하였는데, 그들 중 첫 인물이 "아모스"이다. 아모스의 등장과 함께 이스라엘 종교사에 일어난 대 변혁은 크게 두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그 하나는(1) 이스라엘 옛 예언운동이 단지 "설화문학"의 형태로만 소개되어 예언의 "말씀"이 예언자의 인격과 생애 속에 묻혀 버렸었으나, 그러나, 아모스의 등장과 더불어서는 예언자의 인격이나 생애는 오히려 예언자의 "말씀"에 묻혀 버리고 오직 "말씀" 만이 그 전면(前面)에 나타나게 되었던 것이다. 소위, "예언문학"이라는 것이 비로소 이 때부터 등장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다른 하나는(2) 개국이래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잘못된 관념 속에 묻혀 있었던 옛 이스라엘의 전통(傳統)들이 모두 바르게 이해 정립되고 새롭게 해석되는, 이른 바, 이스라엘 자신의 올바른 정신사적 "자리매김"(자기정립[自己定立])이 일어났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열왕기상 17-19, 21장과 열왕기 하 1장에 나타나는 엘리야에 관한 기사(記事)는, 마치 신명기적 역사가(dtr.)의 "말씀" 강조의 역사신학이 강변하듯이, "루아하"(영 또는 바람)의 역사 속에도, 지진의 현상 속에도, 그리고 "불"의 역사 속에도 야훼 하나님이 계시지 아니하고 오직(!) 야훼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만 자신을 계시(啓示)하신다는 그 "말씀"의 의의를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신명기의 정신이요 예언자들의 일관된 주장과 이념이며 구약세계의 기본 주장점이다. 이러한 야훼종교의 기본 이념을 "경전문학" 특히 "예언문학"에 담아 분명한 언어로 우리에게 전승시킨 대표적인 이스라엘의 정신적 지도자 중의 그 첫 번째 인물이 "아모스"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가 남긴 예언문학 속에 정립되어 있는 바, 이스라엘 신앙(정신) 전통의 새로운 확립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아모스는 이스라엘의 이념과 정신의 "혁신자"(innovator)라기 보다는 오히려 고대 이스라엘 전통들을 새롭고도 바르게 정립한 "고대 이스라엘 전통의 올바른 변호/정립자"(an upright upholder of the ancient Israelite traditions)라고 칭하여야할 것이다.
그는 오랜 역사 속에서 이스라엘 신앙전통이 잘못 이해되고 잘못 실행되어 왔던 점들을 철저한 심판언어로, 철저한 정의(正義)의 예언자 이미지로, 새롭게 정립한 자였다. 그 정립 내용들을 간결하게 요약 정리한다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1) 예언은 하나님의 소명(召命)에 대한 직접적인 응답이므로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의 대언(代言=신탁[神託: oracle])이다는 것이다. 즉 직업적 말씀선포는 예언이 아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왕궁 제사장인 벧엘의 아마샤가 "선견자야, 너는 유다 땅으로 도망하여 가서 거기에서나 떡을 먹으며 거기에서나 예언하고 다시는 벧엘에서 예언하지 말라"(암 7:12-13)라고 말하였을 때, 그는 "나는 선지자도 아니며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라. 나는 [한낱] 목자요 뽕나무를 재배하는자이지만 양 떼를 따를 때에 야훼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라 하셨나니 이제 너는 이 야훼의 말씀이나 들을지니라"(암 7:14-16)라고 담대히 외쳤던 것이다.
여기서 "선지자가 아니며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라"는 말은 자기는 세습적이고도 직업적인 예언자가 아니라는 의미의 말이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말씀을 받아 그 말씀대로 전(傳)하는 대언자(代言者)일 뿐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계시(啓示)의 직접성과 진실성(眞實性)을 예언의 생명으로서 강조하고 있다고 하겠다.
물론 이것은 예언자직의 제도권이 지닌 성격과 그 직업성(職業性)을 전면(全面) 부인(否認)하는 말이라기 보다는 제도권이 가지는 종교형식주의(宗敎形式主義)를 비판하는 말이라고 하겠다(cf. 암 5:4-6, 21-23에 나타난 종교형식주의에 대한 비판 참조).
벧엘을 찾고 길갈을 찾고 브엘세바를 열심히 찾는 것만으로 신앙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요, 절기와 성회를 잘 지키고 번제와 소제를 열심히 드린다고 하여 신앙 문제가 다 잘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종교적 미로(迷路)라는 것이다.
말씀이 곡해되고 그 진실성이 훼손되고 있다는 것이 우리 기독교(성서종교)의 최대 문제점이라고 하겠다. 우리 종교의 생명은 이 "말씀"이 바로 전달되고 바로 지켜지는 것에 있다. 예언자들의 최대 쟁점도 여기에 있다. 이러한 쟁점을 강력하게 부각시켜 이러한 비판전통을 수립한 것이 바로 "아모스"라고 하겠다.
(2) 아모스는 또한 선민의식(選民意識)이 매우 곡해(曲解)되어 있음을 인식하고 선민(選民)의 본질이란 그 특권(特權)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의무(義務)와 책임감(責任感)에 있음을 밝혔다. 야훼 하나님은 이스라엘 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구스 족속과 불레셋 족속과 그리고 아람 족속의 하나님도 되신다는 것(암 9:7), 심판도 또한 어디까지나 그 반윤리성 때문에 오는 것이지 결코 선민(選民)이라고 해서 면책 특권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암 1:3-2:16에 나타난 열국심판의 우주적 성격에 대한 강조는 신학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야훼의 날"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역사심판 개입(介入)의 날인데, 이 날을 마치 선민(選民)에게는 축복만이 기다리고 있는 디-데이(D-day)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일종의 종교적 자기기만(自己欺瞞)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선민에 대한 심판의 표준은 더욱 가혹하다는 것이다.
(3) 아모스의 이러한 종교적 비판이 사회정의(社會正義), 특히 가난한 자, 과부, 고아와 같은 사회경제적 약자를 변호하는 사회정의에 입각하였다는 점이 또한 그의 특징이요 공헌이다. 즉 사회적 질서를 바로 세우는 것이 <야훼-이스라엘 간의 계약(契約)>이 지닌 본질을 바로 실현하는 것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사회정의를 외면하는 종교적 정의(正義)란 있을 수도 없고 있다면 그것은 거짓이라는 것이 아모스의 확신이었다. 우리 기독교(성서종교)가 비윤리적(非倫理的) 종교로 떨어지지 않도록 하나님의 참 뜻 위에 확고히 서도록 해 준 공헌은 전적으로 아모스에게 있다고 하겠다. 이런 점에서 아모스는 예수의 윤리종교의 선주자(先走者)였다고 하겠다.
김이곤(한신대 신학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