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명섭 칼럼]김규식과 언더우드 선교사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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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명섭 박사의 이야기를 통해 보는 한국교회의 역사[71]

				▲허명섭 박사(서울신대 성결교회역사연구소 전임연구위원)
▲허명섭 박사(서울신대 성결교회역사연구소 전임연구위원)

우사 김규식(1881-1950)은 해방 공간에서 이승만, 김구와 함께 ‘우익의 3영수’ 중의 하나로 알려진 민족 지도자이다. 그는 좌우가 극단으로 치닫던 상황에서 여운형과 함께 중도 온건노선을 표방하며 좌우합작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했던 인물이다. 그는 1946년 12월에 구성된 과도입법의원에서 의장에 피선되어 당시 정국을 이끌기도 했다. 미군정 당국은 그의 포용적인 자세를 높이 평가하여 그를 과도정부의 대통령으로 세울 계획을 강구하기도 했다.

그런데 김규식이 중요한 민족의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그 초석을 마련해 준 것은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 선교사였다. 언더우드와의 만남이 없었다면, 김규식의 미래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 만남을 계기로, 김규식은 어릴 적에 찾아왔던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언더우드의 세심한 배려와 지원으로 서양문물과 근대교육을 폭넓게 접할 수 있었다. 그 와중에 김규식은 일생 자신의 사상적 토대를 이루었던 기독교 정신을 몸에 익힐 수 있었고, ‘함께 더불어 사는 민족’을 꿈꾸며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이다.

언더우드와 김규식의 만남은 고아원에서 시작되었다. 한국에 상주하는 최초의 복음 선교사로 입국한 언더우드가 고아원을 시작한 것은 1886년 5월이었다. 이는 내한한지 거의 1년 만의 일이었다. 당시 한국인들 중에는 어느 누구도 고아원에 대해 관심을 갖지 못하던 때였다. 남자 아이들과 접촉하는 가운데 언더우드는 그들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되었고, 그들을 위한 고아원 설치의 필요성을 느꼈던 것이다. 경신학교의 전신으로, 이후 예수교학당 혹은 민노아학당으로도 불리게 되는 이 고아원은 고종의 호의로 승인을 받았다. 처음에는 언더우드가 직접 고아원을 관리하며 학생들을 가르쳤다.

언더우드와 김규식의 만남은 이때 이루어졌다. 당시 김규식은 ‘변갑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경남 동래부의 관직에 있었는데, 정치적 사건에 휘말리게 되면서 귀양을 가게 되었다. 그 여파로 가세는 기울게 되었고, 그의 어머니도 사망하고 말았다. 김규식의 나이 4살 때의 일이었다. 그런데 그의 친척들도 생활형편이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그 누구도 김규식을 맡으려 하지 않았고, 그를 언더우드가 운영하던 고아원으로 보내었다. ‘고아 아닌 고아’가 된 것이다. 하지만 네 살짜리 아이를 맡는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따라서 그는 다시 친척들에게로 돌려 보내졌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언더우드는 그 아이가 몹시 아픈데도 돌보아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딱한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에 언더우드는 자기도 많이 아픈데도 불구하고, 분유와 약을 들고 아이가 있는 곳으로 찾아갔다. 너무 굶주렸던 그 아이는 먹을 것을 달라고 울부짖으며 벽지를 뜯어 삼키고 있었다. 너무 딱하고 불쌍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언더우드는 그 아이를 돌본다는 것이 무척 힘들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 아이를 고아원으로 데려 가고자 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 아이가 틀림없이 죽을 것이라고 하면서, 언더우드의 그러한 행동을 말렸다. 그 아이가 죽게 되면 언더우드가 그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너무도 위험한 모험이었다.

하지만 언더우드는 그러한 반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 아이를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그 아이를 극진히 간호했다. 마침내 그 어린 생명은 죽음의 위기를 벗어나 정상으로 회복되었다.

이후 그 아이는 자신의 탁월한 재능을 유감없이 드러내기 시작했다. 놀라울 정도로 영어를 빠르게 익혔으며, 기독교에 대한 이해와 적용 또한 탁월했다. 그 결과 그는 한국인 교역자들 중에서 가장 성실하고 유능한 사람의 하나로 인정을 받으며, 학교와 교회 그리고 YMCA 등에서 주도적인 위치에 있게 되었다.

이러한 김규식의 재능과 가능성을 발견한 언더우드는 그의 유학길도 열어주었다. 1896년 서재필의 권유와 언더우드의 도움으로 미국 유학길에 오른 김규식은 1904년 프린스턴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마치고 귀국했다. 나라의 사정이 참으로 어려운 때였다. 이후 그는 새문안교회와 YMCA를 중심으로 선교 및 교육을 통해 복음과 민족을 위해 헌신하다가, 일제의 극심한 감시와 탄압을 피해 중국으로 망명했다. 겨레와 민족의 독립을 위해 본격적으로 싸우기 위함이었다. 이에 그는 1919년에는 파리강화회의에 한국대표로 참가해 임시정부의 탄원서를 제출하는 등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민족의 독립을 위해 노력했다. 물론 김규식의 민족 사랑에는 기독교 정신이 깊이 함유되어 있었다.

포기해 버릴 수도 있었던 한 생명에 대한 언더우드의 관심이 그처럼 놀라운 일들을 가능케 했던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에는 언제나 인간의 계산을 초월하는 예외의 법칙이 있다. 그리고 그 예외의 법칙은 하나님의 마음을 품은 자들을 통해 세상에 드러나게 된다. 한 철학자는 “황금은 땅 속에서보다 사람들의 생각 속에서 더 많이 채굴된다”라고 말했다. 생각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지혜이다. 어떤 생각을 갖고 오늘을 담아내며 내일을 바라보느냐가 중요하다. 최근 한국사회는 생명경시의 풍조로 큰 곤혹을 치르고 있다. 황금만능주의가 만들어내고 있는 병리현상의 하나이다. 이제 생명에 대한 바른 생각을 회복해야 할 때이다. 이를 위해 한국교회와 사회는 우리들만의 바벨탑 쌓기를 그만두고 함께 더불어 살 수 있는 십자가와 부활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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